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Chapter 145


제145화· 진면 (3)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처럼 요동치던 유적은 방문객들이 떠난 순간 거짓말처럼 진동을 멈췄다·

“참나····”

통로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던 흑발의 남성은 잠잠해진 유적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뭐하는 짓이지?)

그러는 것도 잠시 곧 뒤에서 꿰뚫을 듯한 시선과 함께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만 돌렸다·

“거 눈에 쌍심지 좀 푸시지? 나 당신한테 그딴 눈초리 받을 만큼 잘못한 거 없거든?”

(내 분명히 나서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사는 거에 미련이 없어지기라도 했나?)

“그래! 당신 말대로 안 나대고 가만히 있었잖아· 내가 둘이 싸우는데 뭐 방해하기라도 했어? 난 그저 내가 구해줬었던 꼬마 숙녀님을 살짝 도와줬을 뿐이라고! 그것까지 당신과 관여된 일인가? 난 아니라고 봤는데?”

(····)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사불롬은 입을 열지 못했다·

“당신 입으로 그랬잖아· 내가 무가치한 인간 하나를 구하든 말든 당신 알 바 아니라고· 근데 이제 와서 왜 따지려 드는 거지? 나 지금 굉장히 어이없거든?”

(예나 지금이나 네놈의 족속들은 변하지 않는군····)

“조금 애매한 감이 있지만 칭찬으로 받아둘게·”

남성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발언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우우웅

이내 남성의 몸에서 짤막한 빛이 일더니 몸이 점차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소환한 마수도 죽고 내 조각도 밖으로 옮겨졌으니 더 이상 여기 남아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네· 썩 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잘 놀다 갑니다~!”

꼴에 마지막 인사랍시고 남성이 정답게 손을 흔들었다·

사불롬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정색한 얼굴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네놈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 단 그 여파가 이 땅으로 넘어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내 말 명심해라 레미하람·)

“거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네· 나한테 충고할 시간 있으면 당신의 추종자들에게나 하쇼· 아까 그 덩치 큰 놈 보니까 오래는 못 살 상이던데 병이라도 걸려 죽으면 억울하잖아?”

그 말을 끝으로 남성은 연기가 사그라지듯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 * *

“기억이 안 나신다고요?”

“그래· 내가 뭔 짓을 했는진 몰라도 너희들한테는 미안하게 됐다· 아주 가끔씩 이런 일이 있어· 어떤 정체도 모르는 놈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이상한 말을 지껄이다가 갑자기 정신이 뚝 하고 끊겨버리는····”

세트는 아직 두통이 아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거듭 사과를 반복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절대 코마’ 상태에 빠졌던 이들은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게 저 녀석이라고 다를 건 없겠지·

기억해 봐야 별 좋은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유적은 잠잠해졌네요·”

한순간 폭삭 무너질 것처럼 요동치던 유적은 우리가 나온 순간 바로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유적에 서려 있던 모래 신의 기운이 유적 밖까지 뻗치진 못했던 모양인데

그 모래의 신도 어지간히 당황했겠군·

설마 내 뒤에 자리하고 있던 꼬맹이 마법사가 대공간전이를 쓸 줄은 몰랐겠지·

대공간전이(Spatial transition)·

쉽게 설명하면 일정 범위에 있는 사람들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마법이다·

못해도 7성 이상의 경지는 돼야 겨우 흉내 정도는 낼 법한 고위 마법이지만 단순히 마법 등급이 높다고 해서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이동하고자 공간과 공간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야 하는 것은 물론 마나의 흐름과 목표로 하는 장소의 주변 지형지물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머릿속으로 파악하고 계산하여 마력으로 형상화해야지 실현시킬 수 있는 굉장히 복잡한 마법이었다·

유적과 입구 사이에 순수 거리를 감안해 봐도 절대 짧은 거리가 아니었던 마당에 그녀는 애초부터 마나가 바닥났던 상태이지 않았던가?

누군가가 다량의 마나를 주입해준 게 아니고서야 지금의 상황은 절대로 벌어질 수 없었다·

“그나저나 후배님은 괜찮은 거야? 듣자 하니 그 삐쩍 마른 학회 놈들이 노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괜찮아요· 조금 특별한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었거든요·”

‘분들’ 이라는 말이 적잖이 신경 쓰였지만 일단은 내색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제 쪽에서도 선배들에게 피해를 끼쳤네요·”

“사과할 거 없어· 애초에 내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니까·”

세트는 힘찬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근데 우리야 둘째치고 너네 학회 놈들은 어찌 된 거냐? 먼저 빠져나온 것 같진 않아 보이던데?”

“그건····”

루나브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 쪽으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까 입구 쪽 좀 살펴보고 온다! 너흰 잠시 쉬고 있어!”

대답할 틈도 없이 녀석은 성큼성큼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의도치 않게 또 한 번 루나브와 단둘이 남겨져 버렸다·

“····”

어색하다·

조금 전만 해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는데·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도통 감이 서지 않는다·

언제까지 침묵을 유지해야 할지 애매한 감정이 웃돌던 순간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치신 데는요?”

“없어·”

“어디 힘들거나 불편하진 않으시고요?”

“네가 물어볼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참 걱정을 해줘도 난리네요 선배는····”

조금 토라진 듯 ‘피’ 하는 소리를 내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카론을 비롯한 학회인들은 어떡하신 건가요?”

“죽였어·”

이제 와 숨길 것도 아니라 생각해 단답으로 긍정했다·

“저도 죽이실 건가요?”

그 물음엔 차마 바로 답하지 못했다·

“전 아까도 말했듯 선배에 관한 걸 아무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어요· 이전부터 그래왔고요· 선배의 정체가 뭐든 무슨 힘을 가졌든 그건 선배의 일이죠· 제가 이리저리 떠들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요·”

안다·

설사 인간이 아닌 신이 찾아온다 해도 그녀는 나에 대해 무엇 하나 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입이 무거울 거란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전 선배로부터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조금 극단적일 수 있지만 전 선배가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을 거예요· 그만큼 선배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조금이 아니고 많이 극단적이다·

내가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을 거라고?

그런 하찮은 마음으로 살다가 전생에 개죽음당한 어떤 바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알았냐?”

“뭐를요?”

“내가 널 구했다는 거 말이야· 그거 어떻게 알았냐고?”

단순히 감이 좋아서 그랬다곤 못할 것이다·

그때의 루나브는 주위를 의식할 수 없었던 완벽하게 기절한 상태였다·

하트 커브를 제거하는 중에도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아 절대로 들킬 리 없다고 생각했건만

대체 무슨 근거가 있었길래 내가 본인을 구해줬다고 확신한 걸까?

“느낌으로요·”

참으로 맥 빠지는 대답이었다·

“아우람 학회로부터 납치당했을 때 전 기절한 상태였어요·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무심하게 버려져 있었죠· 그런 제 앞에 대뜸 나타난 게 바로 안개였어요·”

“안개?”

“네· 뭔가 음산하면서도 거부감은 안 들었던 무척 묘한 안개였는데 홀로 남겨져 있던 절 포근하게 감싸주었어요· 그 따뜻함에 심취해 눈을 뜬 순간 제 몸은 눈에 띄게 변해있었죠· 전 그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그리고 그것과 동일했던 기분을····”

“방금 전 나로부터 느꼈다?”

루나브는 세상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뒀다는 건가?

그녀의 촉이 남다른 것도 있겠지만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내 같잖은 동정심이라 봐야겠지·

“대공간전이는 어떻게 한 건데? 너 그거 쓸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잖아?”

“아 그건 저도 의문이긴 한데 마나를 모으고 있던 도중 갑자기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뭐라 말을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멍을 때리는 그녀였다·

그러면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마냥 대뜸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선배는 절 죽이지 못할 것 같네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저 레미하람님을 만났거든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누 누굴 만났다고?!”

“레미하람님이요· 레! 미! 하! 람!”

머리에 단단히 새기라는 듯 그녀가 내 귀에 입술을 갖다 대며 또박또박 소리쳤다·

뭐지? 이런 걸로 거짓말할 애는 아닌데?

그러고 보니 아까 세트한테도 특별한 분들이라고 말한 걸 보면 진짜 마서한테 도움이라도 받은 건가?

대체 마서랑 무슨 일이···

“궁금하죠?”

루나브는 뭔가 주도권을 잡은 것 같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근데 어쩌죠? 전 말해주고 싶지 않은데?”

“····”

“선배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서라도 전 아직 죽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내 얼굴과 새삼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무척이나 대비되고 있었다·

“그럼 전 잠시 세트 선배에게 가볼게요· 또 갑자기 사고 칠지 모르니까·”

당당하게 돌아서는 그녀를 차마 막을 수 없어 뒷모습만 빤히 쳐다보았다·

“아 맞다·”

그러다 대뜸 발길을 돌려 돌아오더니

“···!”

아무 예고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3초 정도 멍을 때리던 것도 잠시

빛보다 빠른 속도로 그녀를 떼어냈다·

“뭐하는 짓이야?”

“그냥 좀 아쉬워서요· 차라리 이런 상태로 돌바닥에 깔리는 게 나았나 싶어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루나브는 다시 세트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모로 복잡해진 상황에 머리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허나 그 혼란스러워진 머리를 진정시킬 시간은 없었다·

그녀가 가자마자 바로 품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어찌 그런 얼빵한 표정을 짓고 계실까?]

케이람은 세상 심술궂은 눈웃음을 지며 내 볼살을 꼭꼭 찔러댔다·

“쟤 말 사실이야?”

[뭐가?]

“레미하람을 만났다는 거 사실이냐고! 그 마서란 놈은 뭐 예고도 없이 아무 인간에게나 나타나는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그 변덕스러운 놈 성격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만··· 아 몰라! 그 자식 얘긴 내 앞에서 꺼내지 마!]

오히려 역정을 내며 이야기하길 거부하는 그녀였다·

[괜히 오지랖 부리긴····]

“뭐?”

[됐어! 혼잣말이야!]

뭔가 아는 게 있는 듯한 눈치였지만 꼬락서니를 보니 입을 열 것 같진 않았다·

결국 얻은 거라곤 마서의 일부분이라고 하는 이 종잇조각 하나뿐·

분명 의미 있는 성과인 것 같긴 한데 어째 기쁘다기보단 찝찝한 기분이 주를 이루었다·

“거 거기 당신들!”

그런 와중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다급한 부름이 들려왔다·

나를 포함해 유적 입구 쪽에 있던 세트와 루나브까지 전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부 무사하셨구려! 다행이오!”

아까 지나가면서 봤었던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이 꽤나 다급하게 달려온 듯했다·

“얼레? 여기까진 어쩐 일이요?”

세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 이게 지금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소! 그 당신들과 함께 유적에 갔던 일부 사람들이 돌아오더니 마을에 남아있던 그들의 일행들을 공격하더이다! 뭔가 다툼이 벌어진 것 같던데····”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단연 세트였다·

“마 마을 사람들은?”

“사람들은 무사하오! 다만 우리로선 차마 말릴 수가 없는 상황이오! 이대로 가다간 마을이····”

세트는 더 들을 것도 없이 바로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아우람 학회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모양이네요····”

루나브 역시 주저하지 않고 황급히 세트의 뒤를 따랐다·

뭔가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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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Cyan Vert, the best assassin of the continent, meets a pitiful death after having been betrayed by his own brother, whom he had trusted all his life. If I were given another chance at life, I would live it differently. I would only trust myself, and achieve all the things I want on my own without serving anyone else but myself. That is how I was given a second chance at life. The Cyan Vert, a shadow who lived for others, is no more. I will now pave a path on my own, for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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