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진면 (4)
노델리에 찾아온 학회원들은 총 스무 명·
그중 유적 탐방에 참여했던 여섯 명은 가람 학회 소속이 아닌 루나브의 납치를 노렸던 아우람 학회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책임자였던 카론 레인즈를 포함해 내가 흔적도 없이 죽인 놈들은 네 명·
그렇담 아직 처리하지 않은 두 명의 학회원들이 유적에서 먼저 나와 일을 저질렀다는 건데·
정체를 들킬 걸 우려해 먼저 선수를 친 건가?
추측하건대 먼저 달아난 두 명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필시 마을에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아우람 학회 소속원들이 남아있을 터·
뭐가 어찌됐든 숨겨 놓은 이빨을 드러낸 이상 이 마을을 조용히 떠나진 않을 것이다·
“선배는 카론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계셨던가요?”
마을을 향해 황급히 달려가던 도중 루나브가 나를 보며 물었다·
“너희 학회에 반하는 놈들 소속 아니야?”
“맞아요· 고백하자면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사실을 알면서도 학회엔 줄곧 함구하고 있었죠·”
“뭐 때문에?”
“그때의 전 학회가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던 그야말로 아무 의지도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어차피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해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죠·”
그 말은 즉 지금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단 소리일까?
“애초에 전 학회에 있는 동안 그 누구도 믿지 않았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믿지 않았던 게 바로 카론이었죠· 마법은 능력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산유물이라며 저를 교화시키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럴때 마다 역겨워서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너희 할아버지는? 그런 놈들이 나라에서 활개 치고 다니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던 거야?
“진리를 모르는 놈들의 하찮은 발버둥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어요· 그나마 최근에 있었던 제 납치 사건 이후론 마음이 바뀌시긴 했죠· 아마 지금의 일이 학회에 퍼진다면····”
“퍼진다면?”
“아마 반 정도는 목이 잘리지 않을까 싶네요·”
그녀가 음침한 눈을 희번덕거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뭐 목이 잘리든 다른 곳이 잘리든 내 알 바 아니라지만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건 나로서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조용히 다녀오자는 처음의 목표를 달성하기엔 이미 그른 것 같지만·
“앞에 사람이 있어요!”
앞서 달리던 루나브가 전방을 보며 소리쳤다·
모래가 휘날리는 길 한복판에 푸른 로브를 두른 채 쓰러져 있는 한 남성·
더 볼 것도 없이 가람 학회 소속의 마법사였다·
“이봐요! 정신 차리세요!”
학회원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고 있는 루나브와 시선을 마주했다·
“루 루나브님?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구원자라도 발견한 듯한 환희의 미소를 짓고 있지만 상태를 보니 이미 살기는 글러 보였다·
“아우람 학회 놈들이 저희 쪽에 숨어있었습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속히 대피를····”
“말씀하지 마세요! 어서 치유를···!”
급히 치유마법을 시전해 그를 치료하려던 것도 잠시
-푹
학회원은 힘겹게 고개를 떨구며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
이미 죽은 사람에게 미련을 가질 만큼 그녀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다·
덤덤히 눈만 감겨주고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제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사람이 사는 데 있어 목표가 있는 삶과 그러지 않은 삶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목표가 없다는 건 즉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 주위에서 뭔 일이 벌어지든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자연스레 모든 것에 무감각해지지·
황성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가 딱 그러했다·
허나 이젠 아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루나브의 눈빛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감정이 엿보였다·
그중 가장 특출 나게 보였던 건
분노였다·
지금의 사태를 발생시킨 아우람 학회를 향한 분노·
이거 아무래도 일이 점점 커질 것 같은 느낌이····
콰콰쾅!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큰 굉음과 함께 마을 중심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모래 폭풍·
우리보다 먼저 마을로 달려간 세트의 힘이 분명했다·
저 녀석 마을을 다 부술 생각인가?
“어서 가요 선배!”
그녀를 뒤따라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일단 거리에 사람은 없었다·
다만 중간중간 주택 창문 너머로 불안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대부분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며 지금의 사태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였다·
잠시 후 도착한 마을 중심부·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모래 폭풍 안에서 쌍심지를 잔뜩 세운 분개한 눈으로 살기를 뿜고 있는 세트였다·
그 옆엔 기진맥진한 얼굴로 간신히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세 명의 학회원들이
다른 쪽엔 똑같은 로브를 입고 있지만 절대 같은 편으론 보이지 않는 다수의 마법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단 대충 어림잡아도 스무 명은 넘었다·
그 말은 즉 저들 중 대부분은 처음부터 마을에 있었던 자들이 아니란 거겠지·
그들의 시선이 전부 우리 쪽으로 향했다·
“루 루나브님?”
결계를 치고 있던 학회원들이 루나브를 보고선 안도의 탄성을 질렀다·
“뭐야? 왜 저들이?”
반면 반대쪽 마법사들의 눈빛엔 놀람과 의문이 가득했다·
“설마 카론님이?”
책임자는 어디 가고 우리가 멀쩡한 상태로 나타난 것에 어지간히 당황한 듯했다·
“한눈팔지 마 새끼들아!”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분노한 왕자님께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휩쓸 기세로 점점 더 힘을 증강시키고 있었다·
절대 코마에서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만큼의 힘을 회복하다니·
자칫 폭주라도 하면 마을 일대가 흔적도 없이 날아갈 판인데····
주민들이 걱정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군·
“감히 내가 없는 동안 마을에서 소란을 일으켜? 믿는 신 있으면 짧게 시간 줄 테니 마지막 기도라도 해라! 니들은 오늘 전부 내 손에 뒤질 테니까!”
세트는 사나운 야수를 연상케 하는 포효를 내지르며 바로 마법사들에게 질주했다·
“성스러운 빛의 은총이 나를 지킬 것이니!”
-텅!
이에 일부 마법사들이 바로 마나를 발현시켜 저항의 벽을 생성했다·
한순간 앞길이 막혀버린 세트는 가소롭다는 듯 소리쳤다·
“이깟 벽 따위 내 주먹으로···!”
바로 주먹을 들어 벽을 깨부수려던 것도 잠시
“커헉!”
심상치 않은 각혈과 함께 다리가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크윽!”
재빨리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무리가 온 몸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절대 코마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 무리하게 힘을 소비한 나머지 몸에 지장이 온 것이다·
“심판의 번개!”
틈을 놓치지 않은 마법사들이 바로 공격 마법을 시전 했다
-콰직
번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바보 왕자에게 닿진 못했다·
세트의 앞엔 균열 하나 없이 새하얀 백면을 드러내고 있는 또 하나의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했네요·”
루나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벽을 더 단단하게 보강시켰다·
그녀가 나서자 일부 마법사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루나브는 내색하지 않는 무신경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며 물었다·
“가람 학회 소속의 일원 루나브 레인리버의 이름으로 물을게요·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에 맨 앞에 있던 붉은 머리의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루나브님을 모시기로 했던 카론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죽었어요·”
망설임이라곤 먼지만큼도 없는 대답이었다·
“농담이 심하시군요· 그자는 그리 쉽게 죽을 남자가····”
“이런 상황에 그런 시답잖은 농담이나 할 만큼 제가 가벼워 보이시나요?”
예상치 못한 패기에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조용히 따라오시면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이에 노선을 바꾸려는 듯 이곳에 찾아온 본 목적을 드러내며 그녀를 회유하듯 말했다·
“안 됩니다 루나브님! 저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어서 이쪽으로····”
이에 다른 쪽에 있던 마법사들이 펄쩍 뛰며 만류했다·
허나 그들의 상태를 봤을 때 그쪽으로 간다 해서 상황이 좋게 해결될 것 같진 않았다·
“감당할 자신은 있으신 건가요? 아우람 학회에서 이렇게 대놓고 송곳니를 드러낸 이상 이젠 저희 학회에서도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거예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에게 중요한 건 오직 루나브님 하나뿐· 저희는 가람 학회라는 무지한 구렁텅이 속에서 당신을 구제해 드리려는 겁니다·”
저런 뻔한 레퍼토리를 듣는 것도 이젠 귀가 아플 지경·
일단 상황이 어찌 흘러갈지 지켜보기 위해 자연스레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저기 저 뒤에 있는 소년이 바로 시안 베르트입니다!”
그러자 비교적 익숙한 얼굴의 한 마법사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루나브를 보고 있던 수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안 베르트?”
놀란 물고기마냥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저들로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죽치고 있어야 할 내가 왜 이런 곳에 루나브와 함께 있는지·
“제안을 하나 하죠·”
정적이 흐르려는 순간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계획을 접고 지금 당장 마을에서 조용히 떠나주세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
그녀의 입이 닫힌 순간 거짓말 안 하고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지금 저 후배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루나브님 답지 않은 어리석은 말을 하시는군요· 저희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뭐 어쩌시겠단 겁니까?”
“죽을 거예요· 당신들 전부··· 물론 저도 포함해서····”
그녀는 대답과 동시에 손에서 마나 구체를 생성했다·
나타난 구체는 형태가 점점 날카롭게 변해갔으며 머지않아 단검과 비슷한 모양을 완성해냈다·
그걸로 뭘 하려는 건지 의문이 드려는 순간·
-푹
“···!”
칼날이 살점을 파고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퍼졌다·
그녀가 자신의 목을 스스로 찌른 것이다·
물론 깊게 찌른 것이 아닌 바늘구멍 내듯 살짝 댄 정도였지만 단순히 보여주기식으로 한 것은 아니라는 듯 찌른 부위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루나브님!!”
“뭐 뭘 하는?”
충격을 받은 학회원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저지만 전 당신들에게 갈 생각이 없어요· 결국 제가 없어진다면 당신들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사라지겠죠· 그리고 제가 죽은 것에 대해 저희 할아버지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요·”
목숨을 담보로 딜을 하겠다는 건가?
딴 놈들이라면 같잖게 폼이나 잡는 짓이라며 고개를 저었겠지만 그녀는 아니다·
여차하면 진심으로 찌를 생각을 하고 있겠지·
뭐 나로선 이런 상황이 낯선 것도 아니라지만 정말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 후배님이로군·
“내려놔·”
결국 보다 못한 나머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제 일이에요· 선배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게 아니야·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
“네?”
아무래도 들킨 것 같거든·
내가 아카데미가 아닌 애먼 곳에 있다는 걸·
-스스슥
거친 모래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익숙한 기척·
예상은 했지만 나로선 그리 반갑지 않을 조력자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