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램버스타 케이지 (1)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창가로 스며드는 로열관·
할 일이 없어 따분한 시녀는 하품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용인은 잠을 자며
지킬 이가 없어 허전한 기사는 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정작 방의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진짜 독하다·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6시간씩 운동만 하세요? 기사들은 원래 다 그래요?”
“아 그게 도련님께서 숨 쉴 시간이 1초라도 있으면 아끼지 말고 운동에 전념하라 하셔서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에밀리는 웃기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풉! 기사님 보기보다 농담 잘하시네요· 제가 그 말에 속을 줄 아셨어요?”
“예?”
“우리 도련님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남한테 그런 좋은 얘기를 할 사람이 아닌데 그런 명언 같은 조언을 했다고요? 말도 안 되죠!”
사실을 말한 브라이언으로선 그야말로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아 이참에 그거나 들어봐야겠다· 도련님 아카데미 생활은 어땠어요?”
대뜸 남겨진 이들의 시안을 주제로 한 대화가 시작됐다·
“그게 수업은 거의 안 나가시고 낮에는 저처럼 운동만 하시다가 밤이 되면 마실을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곤 하십니다· 가끔은 하루에서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우실 때도 있고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녀는 끌끌 혀를 찼다·
“하나도 안 변하셨네· 전선 지역에 있을 때도 매번 그러시더니 마실 나가는 습관은 정말 여전하시다니까?”
급기야 소파에 쭉 누워버리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고대하던 아카데미에 왔더니 어째 지루한 일만 있네· 나참 도련님은 기껏 데려와 놓고선 대체 어딜 가신 거야? 저 이상한 반쪽 꼬맹이를 남겨놓고!”
에밀리의 시선이 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나나에게 향했다·
성장을 했어도 여전히 잠이 많은 나나였다·
“하하! 혼자는 아닐 겁니다· 어쨌건 도련님 옆엔 항상 케이람님이 계셨으니까요·”
이에 위로라도 해주려는 듯 브라이언이 웃으며 말했다·
“케이람님이요? 그건 또 누구예요?”
“예?”
순간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케이람님을··· 모르십니까?”
“난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런 사람이 도련님 곁에 있었어요?”
급 난감해진 브라이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시안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했는데 케이람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니·
순수한 그로선 이를 어찌 생각해야 할지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었다·
“케이람이 누구냐니깐? 분위기 보니까 여자인데? 대체 누군데 내가 모르는 사람을 당신이 아는 거야!?”
에밀리는 급기야 브라이언의 멱살을 잡고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그 그게! 자주 보이시진 않아도 항상 도련님 곁에 있는 분이라는 말밖엔···!”
뭔가 입 밖에 꺼내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설명이 가능한 것도 아닌 자·
브라이언으로선 그냥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동화되었던 만큼 사실상 설명하라 해도 설명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뭐야 우리 도련님? 황녀님이랑 그 귀족 아가씨도 모자라서 또 누가 옆에 있는 거냐고!”
“에 에밀리님 일단 이것 좀 놓고···!”
애꿎은 그의 멱살만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우시프 제국 서남부 중립 도시 램버스타·
루웬이 아카데미의 발전을 위해 세워진 국가 간의 합법적 중립 도시라면 이곳은 인간이 물욕을 채우기 위해 암묵적으로 형성된 중립 도시였다·
달리 말하면 법과 질서보단 돈과 주먹이 앞서는 더러운 범죄 도시지·
[어우 칙칙해! 뭐 이딴 도시가 다 있어?]
마수들이 득실거렸던 전선에서 해맑게 웃고 다녔던 케이람도 심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리는 아닐 거다·
곳곳에서 욕설과 주먹질이 난무하고
바닥엔 이상한 오물과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데다
당장 거리를 나도는 놈들도 험상궂고 우락부락한 덩치들밖에 없으니·
그런데도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당주가 내려준 단독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복귀 선물로 임무를 내려주는 당주라니·
제자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너무나도 감사해 차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걔도 어지간히 미친 거 아니니? 아무리 그래도 너 같은 꼬맹이를 이런 데 혼자 보낼 생각을 하냐? 암튼 맘에 드는 구석이 없다니까?]
“글쎄 딱히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다 떠나서 그녀는 그냥 당주가 내게 지시를 내렸다는 것 자체가 불만인 것처럼 보였다·
-툭
불현듯 골목 모퉁이에서 치고 나온 물렁한 살덩어리가 내 어깨를 밀쳐냈다·
물론 밀리진 않았다·
움직이던 발을 멈춘 뒤 그대로 나를 밀친 주체를 바라보았다·
“이런 이런 앞을 잘 보고 다녀야지 사람 배를 치고 다녀서야 쓰나?”
웃기고 있네·
대놓고 옆에서 각 보고 있다 나온 거다·
“뭐야? 어른 없어? 어린놈이 왜 대낮부터 거리를 설치고 있어?”
그럼 어린놈이 대낮에 설치지 한밤중에 설치고 있을까?
뻔한 놈들의 뻔한 시츄에이션이다·
지나가던 일반인들에게 시비를 건 뒤 돈을 뜯어내는 잡배들·
아마 내 주위에 부모나 어른이 있다고 생각해 막무가내로 들이 밀 요량이었겠지·
굳이 참교육 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없는 놈들이다·
그러니 그냥 얌전히 배나 털고 지나가면 아무 일 없고 좋을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뻔한 놈들 특성상 절대로 그냥 안지나간다는 거다·
“어이 어이 어딜 그냥 지나가려고? 지금 네 어깨에 맞아서 내 배가 아파하는 거 안 보여?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하는 게 도리 아니겠어?”
그래 말 잘했네·
지금이라도 네가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나도 그냥 지나갈 용의가 있긴 한데 말이야·
“호? 이제 보니 남자지만 꽤 곱상하게 생겼는데? 갈 데 없으면 나랑 같이 가지 않겠어? 매니악하긴 하지만 너 같은 놈 좋아하는 놈들이 꽤나 있다고! 내가 취직시켜 주겠다는 거야! 취직!”
사과는커녕 선을 넘는군·
녀석은 침을 뚝뚝 흘리며 더러운 손가락을 점점 나에게 들이밀고 있었다·
참 뻔한 레퍼토리지만 어째 한 번이라도 거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된단 말이야·
나는 녀석의 손가락을 잡아 가볍게 비틀었다·
-빠직
“욱···!”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바로 정강이를 걷어차 균형을 무너트렸다·
-쿵
육중한 덩치가 큰 소리를 쓰러졌다·
내 어깨를 쳤던 산만한 배가 어느새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며 그 위를 한쪽 발로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다시는 이딴 투박한 배로 남의 어깨를 치고 다니지 말라는 의미였다·
“크허억!”
신음과 함께 녀석의 입에서 더러운 분비물이 튀어나왔다·
이에 부러트렸던 손가락을 입에 처넣음과 동시에 빼지 못하도록 발로 밟아 고정시켰다·
몸부림치는 모습이 마치 도살장의 돼지 같았다·
“야 덩치· 머리라는 건 말이야· 장식품처럼 들고 다니라고 있는 게 아니야·”
“···!”
차마 대답을 할 순 없었는지 애먼 신음만 내고 있었다·
“네 말마따나 어린 꼬마 놈이 대낮부터 이런 더러운 곳을 왜 돌아다니겠냐? 당연히 뭔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해?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사실 눈치가 없으니 양아치 짓거리밖에 못 하는 거다·
좀 아는 놈들이라면 처음에 생각부터 했겠지·
이런 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접근부터 한 거다·
-스슥
그래도 한 명은 아니었는지 고통을 남발하는 녀석의 주위로 4명의 잡배들이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다만 쉽사리 다가오진 못했다·
이놈과 다르게 어느 정도 눈치는 있어 보였다·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라·”
“···!”
“네 주위를 비롯해서 최대한 많은 놈들에게 전해· 지금 이 시간부로 램버스타 거리를 홀로 돌아다니는 소년을 발견한다면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혹여나 이를 무시하고 접근하는 놈이 있다면····”
입을 고정시켰던 발을 더욱 강하게 내려찍었다·
-콰직
“어디 한 곳은 불구가 될 거라고 말이야· 네놈처럼····”
이에 이빨 몇 개가 부서져 나뒹구는 소리가 났다·
그나마 처음이니까 손가락 하나에 이빨 몇 개로 끝난 거다·
만약 내 경고를 무시하고 이후에도 접근하는 놈이 있다면 절대 이 정도에서 안 끝날 것이다·
“알아들었냐?”
슬며시 발을 빼주니 입을 감싼 녀석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보아하니 잘 알아들은 모양이다·
빠르게 몸을 추스른 덩치는 곧장 자신의 패거리들을 데리고선 쏜살같이 사라졌다·
거참 덩치에 안 어울릴 만큼 빠른 속도였다·
[적을 만들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너 그러다 진짜 제 명에 못 산다?]
이에 케이람은 혀를 차며 말했다·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속으로 웃고 있는 거 다 보이거든?”
적이 많아지면 싸울 일도 많아질 테니 마검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
[어머 들켰니? 여자 마음도 알아차릴 줄 알고 우리 주인 다 컸네~!]
참으로 한결같은 마검이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도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거리·
곳곳에 굶다 못해 쓰러진 거지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언뜻 버려진 도시처럼 보일 순 있지만 놀랍게도 이곳은 제국 황성에 버금 갈 만큼 자본 유입이 많은 도시다·
물론 그 자본들이 도시를 위해 쓰였다면 이렇게 을씨년스런 느낌이 나지도 않겠지·
앞서 말했듯 이곳은 중립도시이며 실질적인 주인이 없다·
그 말은 즉 이 안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상권을 통해 도시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거리를 살피다보면 아까 같은 잡배들이 아닌 어느 정도 무력을 갖춘 인간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단은 크게 신경 쓰진 않은 채 눈앞에 보이는 호화스러운 건물로 발을 옮겼다·
-끼익
칙칙한 밖과는 비교될 정도의 깔끔함·
다만 그 안에 자리한 인간들의 얼굴은 그러지 못했다·
“····”
종업원처럼 보이는 갈색 머리의 여성이 나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리는 아니다·
지금 내 복장 자체가 고상한 귀족이 아닌 허름한 방랑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뭘 도와드릴까요?”
그녀는 마지못해 말을 건넸다·
“방 잡으려고·”
눈빛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아마도 나 외에 다른 주인이 있을 거라 생각한 듯 보였다·
“투숙 인원은 얼마나 되시나요?”
“나 혼자·”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한순간이었다·
“야 꼬맹아· 건물 잘못 찾아온 거 같은데 여긴 네가 묵을 방 없거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 어른들 노시는 곳에 와서····”
-쿵!
말을 이어가던 종업원이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별거 아니다·
그냥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테이블로 위로 올려놨을 뿐이다·
“제일 좋은 방으로 하나·”
“···네?”
종업원은 그제 서야 벙찐 눈으로 주머니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여긴 손님맞이를 이따위로 하나?”
이에 그녀의 눈빛이 또 한 번 뒤바뀌게 되었다·
“래 램버스타 케이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금 당장 최상층으로 VIP룸으로 모시겠습니다!”
로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다음 페이지에 ‘나나’ 일러스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