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면담 (1)
솔직히 조금 놀랐다·
속성 검사로 알려진 세트의 마법 등급은 3성·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 중 단연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이에 교관들은 그의 능력을 고려해 한 단계 높은 수치인 4성급 마법 결계를 설치했다·
하지만 지금 결계의 상태를 보아라·
툭하고 건드리면 깨질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태·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마법 등급을 뛰어넘는 초월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내 무(無)의 구체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아마 장내에도 피해가 갔을 것이다·
“····”
세트의 얼굴은 예상과 달리 무념무상했다·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낸 상황에 더 이상 남은 마나도 없을 터 사실 서 있는 것조차 용한 일이었다·
“시안 베르트····”
숨을 몰아쉬다가도 간신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완벽한 패배로군·”
이번에도 쿨한 인정이었다·
설마 저 상황에 더 덤비려 하진 않겠지·
“검술 마법···· 내 스스로에게 있어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한 그 두 가지를 모두 패배했다· 그것도 아주 무기력하게····”
“위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너도 엄청났어· 순간적으로 네 마법 등급을 넘어선 거잖아?”
“전혀 위로 안 된다! 그러는 넌 나완 다르게 엄청나게 멀쩡한 상태잖아!”
흠 그렇긴 하지·
숨이라도 좀 헐떡거려 줄 걸 그랬나?
“이런 완벽한 패배도 처음이군· 하지만 그 덕분에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수련의 욕구가 마구마구 피어오르고 있어!”
아주 산속에 가서 은둔 수련이라도 할 기세다·
꼴을 보아하니 당분간 수업엔 더 안 나오게 생겼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너에게 다시 도전토록 하겠다! 그때도 물론 받아주겠지 시안 베르트?”
“뭐 기회가 된다면····”
세트는 흡족하다는 얼굴로 크게 웃었다·
“아주 좋구나! 허나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야! 내 악착같이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서 반드시 너를···!”
-쿵!
별 소리 아니다·
혼자 주절주절 떠들던 녀석이 마침내 힘을 소진해 기절한 거다·
이에 대기하고 있던 교관들이 황급히 달려와 그를 치유소로 데리고 나갔다·
“대련 종료! 승자 시안 베르트!”
“····”
승자를 호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련장엔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환호는커녕 박수 소리 하나 없는 장내·
대신 중간 중간 같잖은 웅성거림만이 일고 있었다·
“뭐야? 쟤 마법 등급 1성 아니었어? 게다가 속성도 쓸모없는 어둠이었잖아?”
“모래의 왕자도 별거 아니었나 보네· 고작 1성한테 당하고····”
“전선 기사들한테 뭐 꼼수라도 배워왔나 보지?”
“저 아무것도 아니란 듯한 표정 좀 봐! 진짜 재수 없네····”
아무렴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우리 귀족님들께서 나를 달갑게 볼 린 없지·
어차피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고 않던가?
기분 나빠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런 돼지들만 있는 것도 아니지·
고학년들을 비롯해 교관 연구진 그리고 저 특등석에 앉아계신 당주님까지·
그들의 눈빛엔 하나같이 의심만 가득했다·
‘저게 1성이라고? 못해도 4성 이상은 되는 것 같은데?’
‘역시 베르트 공작가의 자제라 이건가? 그 집안은 하나 같이 정상적이질 않네?’
‘저 나이에 벌써부터 무의 구체를 다를 줄이야···· 비록 어둠 속성이긴 해도 앞으로의 가능성이 기대되는군·’
그중에서도 우리 당주 아니 시리카 교관님의 눈빛이 제일 인상 적이었다·
마치 ‘적당히 하지 꼭 그렇게 티를 냈어야 했나요? 시안 베르트!’ 라는 말이 귓가에 생생히 들릴 정도로····
그리고 또 한 사람····
“····”
로열 아카데미의 총책임자 쿤델 퀴젤·
그는 다른 이들과는 사뭇 다른 속내를 쉽사리 알 수 없는 굳은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더 있어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군·
나는 수많은 시선들을 애써 무시 한 채 그대로 대련장을 벗어났다·
* * *
“도련님 이거····”
“뭐야 이게?”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게 브라이언이 무언가를 건넸다·
빨간색 바탕에 아카데미 문양이 찍힌 얇은 봉투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리카 님께서 자신이 줄 순 없다며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도련님께 꼭 전해 달라고····”
나는 바로 봉투를 풀어헤쳐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경고장?”
내게 있어 그다지 반가운 물건은 아니었다·
“대련 승리 선물이라기엔 조금 실망인데?”
깜짝 파티 초대장이라도 든 줄 알았는데 그건 좀 욕심이었나?
“파파! 경고장이 뭐야?”
입안에 사탕을 한 움큼 집어넣은 우리 꼬맹이가 순수한 눈빛으로 물었다·
양 볼에 가득 담은 것이 꼭 햄스터 같았다·
“음··· 쉽게 말하면 자기들 말 안 들으면 우릴 여기서 내쫓겠단 소리야·”
“그럼 어떡해? 우리 길바닥에 나앉는 거야?”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니?”
나 없는 사이에 바깥 구경이라도 하고 오나?
뭐 사실 현 상황이 꼬맹이에게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경고장에는 수업에 지속적으로 불참할 시 추가적인 경고 및 제재가 들어가며 그래도 불순한 모습을 보일 경우 로열관에서 퇴출 최악엔 퇴학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꽤나 자극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언젠간 왔었을 상황이라 딱히 놀라진 않았다·
문제는 이 경고장을 보낸 곳이 아카데미 행정부가 아닌 더 위쪽이라는 거다·
-총장 쿤델 퀴젤-
경고장 아래에 떡하니 쓰여 있는 그 이름·
아카데미의 최고 권위자님께서 지금 일개 신입생에게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당주가 알려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틀 전의 대련이 그 관심을 증폭시킨 모양이다·
“그럼 우리 딴 데로 이사가?”
“응? 아직은 아니야· 우리 꼬맹이가 더 자랄 때까진 여기 있어야 해·”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수업을 나가줄 내가 아니지·
애초에 이 경고장은 총장이 내게 보낸 러브콜과 같다·
이의가 있으면 자신에게 직접 찾아오라는 일종의 부름·
나 또한 아카데미라는 울타리 안을 자유롭게 활보하기 위해선 결국 그 영역의 수장과 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즉 지금의 만남은 내 자유로운 아카데미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겠지·
“저 도련님? 슬슬 그녀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
“아이의 정서에도 그렇고 언제까지 꼬맹이라고 부르시는 것도 좀····”
그녀를 계속 꼬맹이라고 불렀던 것이 여간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도 딱히 일부러 안 짓고 있던 건 아니다·
다만 생각나는 좋은 이름이 없었을 뿐·
이 드래곤이란 놈들이 겉멋은 확고하게 챙기는 놈들이라 이름도 함부로 못 짓는다·
한 예로 전생에 만났던 어느 드래곤의 이름이 ‘마리안 델 앙트카르트 루스칼 디아 포슈타른’ 이었는데 그마저도 드래곤들 기준에서 이 정도면 짧은 이름이라고 했다·
뭐 이리 쓸데없이 기냐고 물어봤자 난 모른다·
수천 년을 지속해온 그들의 종특이라는데 내가 뭐 어쩌겠는가?
근데 생각해보면 이 꼬맹이는 굳이 그쪽 놈들의 특성을 탈 필요도 없는 거잖아? 어차피 반은 인간인데?
뭐든 자기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 했다·
나는 허리를 숙여 꼬맹이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우리 꼬맹이 갖고 싶은 이름 같은 거 있어?”
“이름?”
“그래 이름· 앞으로 우리가 널 어떻게 불러줬음 좋겠니?”
사탕을 꿀꺽 삼키며 고민에 빠진 꼬맹이는 이내 빵싯 웃으며 말했다·
“나나!”
“나나?”
적당히 부르기 쉽고 적당히 귀여운 이름이었다·
“응! 파파 성이랑 붙여서 ‘나나 베르트’라고 할래! 그래도 되지?”
“어··· 그래 뭐 안 될 건 없는데····”
뭔가 당한 기분이다·
이 꼬맹이 내 성은 또 언제 안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나는 한없이 순수한 얼굴로 다시금 사탕을 먹기 시작했다·
* * *
쿤델 퀴젤·
로얄 아카데미의 학술 총장·
현 제국의 황제인 디오네 세벨러스의 스승이기도 하며 그 인연을 이어 황제의 장인까지 올랐던 남자·
전 황후인 디아나 퀴젤의 병사(病死) 이후 가문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현재는 아카데미 총장직에 전념하고 있다·
또한 대륙에 몇 안 되는 9성 마법 등급 경지에 오른 자이기도 했다·
즉 마음만 먹는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영지 하나는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대마법사라는 뜻·
다소 속되게 말하면 늙은 노인이라 해서 까불면 안 된다는 거다·
뭐 그렇다고 전생의 나와 딱히 접점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개인적으로 조금 쓴소리를 들었던 정도?
딱히 자랑할 건 아닌데 전생의 난 아카데미를 전체 5위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무엇 하나가 특출난 것이 아니라 그냥 당시의 내게 필요했던 성적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즉 마음만 먹으면 수석도 가능했다는 거다·)
아무튼 총장은 그런 우수 졸업자였던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끽해야 아카데미에서 일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스카웃 제의나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줄곧 아카데미에서 힘을 숨기고 있었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빛의 기사단에 입단하겠다고? 네 그 잘난 형을 쫓아가겠단 건가? 자네한텐 그리 어울리는 길은 아니라 보는데?’
내가 어둠 속성 보유자이기 때문에 그렇냐는 질문에 총장은 크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스스로도 안 맞는다는 건 아나 보지? 내 충고 하나 해주면 자네는 그곳에 가서 결코 좋은 꼴은 못 볼 거야· 설사 그게 시련이라고 생각할지언정 결국 자네에겐 아무런 득이 없는 삶이지·’
당시 신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던 내게 저런 말은 그저 악담에 불과했다· 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제대로 본 거다·
결국 그의 말마따나 좋은 꼴은커녕 세상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며 전생과 작별했으니·
근데 사람이 참 아이러니한 게 남의 앞날은 그렇게 잘 꿰뚫으면서도 결국 자기 앞날은 못 본다는 거다·
쿤델 총장이 딱 그랬지·
실로 많은 것을 보았으면서도 정작 자기 앞은 보지 못한 맹인·
어쩌면 나랑 꽤 많은 부분이 닮았던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과거를 상기하자니 어째 쓴웃음만 나온다·
총장실이 위치한 곳은 본관의 최상층·
다소 늦은 시간이긴 해도 총장은 아마 자기 방에 있을 것이다·
꺼진 조명들과 사람 한 명 없는 한산한 복도·
오늘따라 건물을 순찰하는 경비병들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 숨어서 야참이라도 먹고 있나 생각하던 그 순간
“···!”
현재 내 발이 닿은 곳은 본관의 최상층·
우측 복도 끝자락에 자리한 총장실에서 30보 정도를 앞두고 있다·
이대로 쭉 걸어간다면 문제없이 도달할 수 있을 터·
근데 그럴 수가 없었다·
-스으으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설고 살벌한 기운이 본 층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려 하는 살기 같은 게 아닌 말 그대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부정적인 기운·
피 냄새는커녕 별다른 인기척도 없었다·
다만 중간 중간에 인위적으로 생성된 마나의 기운이 살결을 거칠게 스치고 있었다·
제한 결계네····
방대한 양의 마나를 동원해 일정 공간에 침투할 수 없는 제한된 영역을 생성하는 것·
침입자들로 하여금 영역에 들어선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거부감을 주어 접근 자체를 막아버리는 일종의 마법 바리케이드였다·
그나마 느껴지는 마나가 평범하다면 방범용으로 설치했겠구나 싶을 텐데
이건 방범용 수준이 아니었다·
최소 8성 내지 9성급·
대마법사 경지에 오른 자가 아니면 발현해 낼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마력·
이 아카데미에서 그런 경지에 있을 사람이라면···
쿤델 총장밖에 없겠지·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총장님께서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