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81. 버거퀸 광고 1
현장 주차장에 세워 둔 대형 벤츠 스프린터.
뒷좌석에 앉은 주영인이 버럭 성질을 냈다.
“정 대리는 촬영장 스태프들한테 전부 초콜릿을 돌렸는데 우린 왜 남자 스태프만 돌렸어요! 아까 여자 스태프들 나 씹는 거 들었죠?”
“미 미안. 지금이라도 가서 제대로 준비해 올 테니까······”
“진짜 사람 이상하게 만드시네. 뒤늦게 그러면 내가 사과하는 꼴이잖아요! 쪽팔리게!”
주영인의 짜증에 강명길 팀장은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윤호 그놈 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 꼴이야? 도대체 발렌타인데이에 여자한테도 초콜릿을 왜 주냐고!’
정윤호가 여자 스태프에게도 초콜릿을 돌린 덕에 원하지 않게 매니저로서의 역량이 비교되어 버렸다.
그때였다.
드르륵.
최종혁이 마치 자기 차라도 되는 듯 문을 열었다.
“야. 네 목소리 밖에도 다 들리니까 매니저 좀 그만 잡아라. 솔직히 매니저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유진이 매니저 그 인간이 유별난 거지.”
최종혁을 본 주영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 팀장님. 나 종혁 오빠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자리 조금 비켜줘요.”
“괜찮겠어? 괜히 둘만 있다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비키라면 그냥 좀 비키지!”
강명길은 눈치를 보다 자리를 비웠다.
주영인은 최종혁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오빠. 정유진한테 작업 들어간다면서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이런 식이면 은아 언니하고 다리 놔 주는 것도 못 하는 거 알지?”
최종혁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작업은 진즉에 들어갔지. 요즘 우리 둘 사이가 가까워진 게 안 느껴져?”
“가까워졌다고? 내가 볼 때는 걔가 철벽을 치는 거 같던데?”
주영인의 핀잔에 최종혁은 자신만만하게 검은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오늘 정윤호가 현장에서 돌린 초콜릿 케이스였다.
그런데 최종혁의 손에 들린 케이스는 다른 스태프들이 받은 것과 모양이 달랐다.
“흐흐흐. 나한테만 수제 초콜릿을 챙겨 주더라고. 걔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지 이렇게 조금씩 티를 낸다니까?”
주영인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웬 도끼 병? 이 인간도 주성진 과였어?’
주영인은 애써 화를 억누르고 어떻게 정유진을 유혹할 건지를 물었다.
최종혁은 신이나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가만히 듣다 보니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접근 방법이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고 나도 정보 아는 거 있으면 알려 줄게. 그나저나 빨리 좀 진도 빼 봐.”
“오케이.”
그때였다.
최종혁이 케이스에 담겨 있던 초콜릿을 하나 꺼냈다.
주영인은 자신도 한 개 달라면서 손을 내밀었다.
“당 떨어지는 거 같으니까 나도 한 개만.”
“유진이가 나만 먹으라고 한 건데······”
“아 시끄럽고. 하나 줘 봐.”
“하여간 성질은. 자 여기.”
최종혁은 자신이 먼저 한 알을 입에 넣고 선 민트색 포장지에 쌓인 초콜릿을 내밀었다.
주영인은 아무 생각 없이 초콜릿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정유진을 생각하며 콱하고 씹었다.
그 순간.
음식에서는 나서는 절대 안 되는 맛과 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우욱. 이 이거 뭐야?”
“민트초코?”
“우웩.”
주영인은 자신의 입안에 있는 모든 걸 휴지에 뱉어 버렸다.
“켁켁. 정유진이랑 잘 되긴 개뿔! 이건 오빠보고 치근거리지 말고 꺼지라는 거잖아! 세상에 누가 이딴 걸 먹어!”
하지만 최종혁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얘가 민트 초코 무시하네. 야 이거 내 최애 초콜릿이야. 걔가 내 취향을 저격한 거라니까?”
주영인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최애고 나발이고. 차에 치약 냄새 배니까 나가! 꺼지라고!”
최종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민초단의 저주를 받을 거라는 악담을 퍼부으면서.
* * *
촬영이 끝난 즉시 나는 유진이네 식구와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G 리조트로 향했다.
회사 차가 아닌 장준혁에서 선물 받은 벤츠를 몰고서.
리조트에 도착하자 조수석에 앉은 유진이가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소야. 그만 자고 일어나. 다 왔어. 아줌마도 일어나세요.”
“어이구. 벌써 도착했어?”
“으······응. 나 안 잤는데······?”
미소가 눈을 비비며 안 잤다고 우긴다.
입가에 침이 묻어 있는데!
아줌마가 미소의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주자 그제야 미소가 배시시 웃는다.
“조금 잔 거 같아요······ 헤헤.”
귀여우니 봐줘야겠다.
“자 그러면 내릴까?”
차에서 내릴 땐 알아보는 사람이 없도록 고글에 헬멧 그리고 마스크로 완전히 무장했다.
예약한 1123호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자 미소는 스키장 슬로프가 훤히 보이는 테라스로 달려나갔다.
“우와! 우와! 눈 엄청 많다!”
야간 조명에 의해 스키장 슬로프와 눈썰매장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절경에 미소가 환호성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찰랑찰랑 흔들리고 두 손은 날개가 된 것처럼 팔랑이고 있었다.
“미소야. 좋아?”
“응! 응! 진짜 좋아!”
눈썰매를 타기도 전에 이미 기분은 최고라며 쌍 엄지를 치켜 올렸다.
유진이와 난 흐뭇한 표정을 짓다 시간이 벌써 6시 30분이란 걸 깨달았다.
“오빠. 곧 광고 나올 시간인데 서둘러요!”
“그래. 일단 룸서비스로 저녁 먹으면서 광고 보고! 그리고 야간 개장에 맞춰 나가자.”
내 말에 모두가 찬성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야. 뭐 먹고 싶어?”
“나 청국장!!”
돈가스도 치킨도 아니고 청국장?
그런데 룸서비스 메뉴를 보던 유진이와 주인아줌마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미쳤어! 청국장이 만이천 원이래!”
“이런 도둑놈들!”
두 사람이 씩씩대는 걸 보고 의연하게 품속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제가 다 쏩니다.”
당당한 내 포즈에 유진이가 황급히 내 팔을 부여잡았다.
“아녜요. 오 오빠. 제가 쏠게요. 저 광고비 정산받았잖아요.”
“아냐. 이거 사실 법카임. 오늘 마음껏 먹어도 돼.”
유진이가 짙은 웃음을 머금었다.
“콜!”
그 순간 우린 단품이 아닌 세트메뉴로 하나씩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엄마 있잖아······ 나 꽁치구이 시켜도 돼?”
미소가 메뉴판을 든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다.
생선구이에 청국장이라니.
얘가 뭘 아네.
“좋아. 우리 미소.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번쩍이는 법인카드를 들고 외쳤더니 미소가 폴짝폴짝 뛰며 외친다.
“그럼 나 꽁치구이 먹을래요!”
“오케이!”
우린 룸서비스로 음식을 시켜놓고선 TV 앞에 모여 앉았다.
오늘은 버거퀸 광고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날이었으니까.
* * *
“다들 스탠바이 됐죠?”
“예.”
“기술팀. 주문받는 서버 체크 한번 해보고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주문량 띄워요.”
“예! 실장님!”
“그리고 홍보팀은 배너랑 광고 계약된 것 중에 빠진 데 없는지 다시 확인해 보시고.”
“예! 실장님.”
“흥민 씨는 너튜브에서 배너 광고 찍고 들어오는 유입량도 체크!”
안지윤은 기술팀장 홍보팀장과 함께 마른침을 삼키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현시 시각 오후 6시 59분.
말도 안 되는 병맛 광고를 찍은 탓에 고객들로부터 어떤 반응이 올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잘 돼야 하는데······’
안지윤이 불안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때 곁에 있던 이영숙 직원이 차가운 생수를 내밀었다.
“실장님. 이것 좀 드세요.”
“고마워 영숙 씨.”
벌컥벌컥!
차가운 물을 반병 정도 들이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지윤은 플라스틱 물병을 든 채 6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5 4 3 2 1.’
달칵.
7시가 된 순간 이벤트 페이지가 열렸다.
그와 동시에 배너들이 동시에 열리며 병맛 광고로의 링크가 열렸다.
“실장님. 너튜브 접속자 링크 시작되었습니다.”
“실장님. SBC KBC MBS 3사에서 송출 시작됩니다!”
실황을 일일이 보고하던 기술팀 박영수 대리가 당황한 듯 외쳤다.
“어라?”
“왜요? 박 대리. 무슨 일인데?”
안지윤 홍보실장이 다급히 묻자 박영수 대리가 곧장 답했다.
“······그 그게 너무 빠릅니다. 초당 조회수 500을 넘겼습니다.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530 550······”
박은빈을 모델로 했을 때는 너튜브 시청자 초당 조회수 증가 폭은 100에 그쳤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나 더 높은 조회수에 안지윤이 외쳤다.
“홍보팀은 지금 실시간 검색어 순위 SNS 반응 댓글 수 그리고 ‘천호동 얼짱 버거 소녀’ 카페 멤버들의 활동 기록도 다 같이 보고해요!”
비록 박은빈을 광고 모델로 선택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안지윤 실장의 경력도 무시할 건 아니었다.
“실장님! 이벤트 서버가 죽었습니다! 주문 폭주합니다!”
“뭐야? 평소보다 서버 용량 2배 늘렸잖아요!”
“5분 만에 터졌습니다.”
그 순간 SNS 반응을 보던 최무성 대리가 외쳤다.
“실장님! 주문 안 된다고 난리 났어요! 빨리 기술팀 백업 좀 해주세요!”
모두의 눈이 기술팀장인 강오진에게 쏠렸다.
하지만 이미 그는 전화를 들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었다.
“접속 서버를 2배 아니 3배로 늘려요! 돈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빨리하라니까! 한도 차면 바로바로 늘려요!”
안지윤 실장은 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임시로 서버를 증설해 놓았지만 일시에 몰린 주문에 서버가 견디지 못해 사이트가 터져버렸으니까.
전용 앱과 연동된 홈페이지도 셧다운 상태.
갈 곳 잃은 사람들의 비난이 버거퀸을 성토하는 SNS가 무수히 쏟아졌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홍보실에 강오진 팀장의 들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버 증설 끝났습니다! 이제 접속됩니다!”
5분도 되기 전.
다시 서버가 열렸다는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거 사람이 애가 타서 원.”
이후론 순조로운 광고 주문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홍보실장 안지윤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실수였어. 어떻게든 유진씨랑 1년 계약을 했었어야 했는데.’
안지윤은 자신을 상대로 쥐락펴락하던 정윤호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원하는 대로 끌려간 탓이었다.
순간 뒤편에서 최무성 대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실장님! 단위 시간당 주문량이 평소 주문량의 30%로 증가했습니다!”
순간 떠들썩하던 홍보실에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30%요?”
“예. 대부분이 신상 버거에 몰리고 있습니다! 대박입니다!”
“실장님. SNS에서 유진 씨를 먹방 요정이라며 난린데요?”
순간 안지윤 홍보실장은 정윤호가 했던 말을 또 한 번 떠올렸다.
-잘되면 시리즈로 하죠. 대신 시리즈 광고 찍을 땐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거 아시죠?
모든 것이 그가 생각한 것대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안지윤은 다시 한번 소름이 오싹 돋는 걸 느껴야 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뜯어먹으려 들지. 어휴.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네.’
* * *
『(성우) 모두 와서 맛보라! 버거퀸이 탐내고 용사퀸이 쟁취한 바로 그 버거! 지상 최강의 버거! 버거의 정수! 참맛! 꿀맛!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트러플 몬스터 버거’ 출시! 트리플이 아닙니다!』
『(유진) 지금 바로 맛보세요!』
광고가 끝날 무렵.
낮은 중음의 남자 성우가 목청이 터져라 외쳐대고 있었다.
동시에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문 용사퀸 유진이는 눈 한쪽이 멍이 든 채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고.
“꺄르르.”
“호호호. 유진아. 너 정말. 호호호.”
광고를 다 본 유진이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안 웃는다고 했잖아요! 다들!”
자기도 광고 보다가 웃었으면서 시치미를 뗀다.
발끈하는 유진이를 놓아둔 채 미소에게 물었다.
“미소야. 재밌었지? 엄마한테 직접 보여 달라고 해 봐.”
미소가 고개를 끄덕이곤 유진이의 팔을 흔들어댔다.
“엄마 엄마. 나. 곰 한 번만 해줘! 그거 대땅 웃겼어! 응?”
유진이가 괜히 날 찌릿하고 째려본다.
하지만 이내 두 손을 위로 들고 박력 있게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앙! 고옴!”
“꺄르르르.”
미소의 웃음소리가 방을 가득 울렸다.
덕분에 신이 난 유진이는 미소를 안고 구르며 온갖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항복하지 않으면 패티 없는 버거형에 처하겠다!”
유진이가 버거퀸 광고의 명대사(?)를 연기하며 미소와 껴안고 바닥을 뒹굴대는 동안 난 너튜브에 접속했다.
[버거퀸 : 병맛 광고 – 트러플 몬스터 버거를 찾아서. (30초 VER.)]
-조회 수 152239회
(댓글)
-ㅋㅋㅋ 감독 약 빨았냐? 얼짱 정유진을 데려다가 인형 옷을 입혀?
-인형 탈 삽니다!
-병맛 미쳤다리ㅋㅋㅋㅋ.
-이 와중에 용사퀸과 버거퀸 둘 다 이쁜 거 실화냐?
-와 눈을 못 떼겠어. 이거 풀 버전 없나여?
-오늘 저녁은 버거퀸이다.
-얼짱 먹방 요정 탄생!
-스킵 불가 광고.
예상했던 대로 병맛 광고의 조회수는 미친 듯 올라가고 있었다.
원래는 조회수만 100만을 넘은 광고였다.
하지만 모델이 유진이로 바뀌었기에 얼마나 더 올라갈지 나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버거퀸 안지윤 홍보실장의 기쁜 목소리가 들렸다.
-정 매니저! 대박이에요! 주문량 폭주해서 서버가 뻗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실장님.”
순간 안지윤 홍보실장이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있잖아요.
기다렸던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