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147. 비밀 스타그램 2
굴렁쇠 엔터와 계약을 맺은 헤어샵 ‘포레스트’에 도착하자 아침 7시 20분이었다.
“이 대리님. 헤어샵 바꾸는 문제는 말씀해 보셨어요?”
“했지. 근데 아직 피드백이 없어.”
“오늘부터 골든로드도 활동을 시작하는데 괜히 같은 헤어샵을 쓰다가 충돌이라도 생기면······.”
“어쩌겠어.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한숨을 쉰 이주영 대리가 체리블라썸을 재촉했다.
“자자. 얘들아 빨리 앉아서 머리부터 하자. 오늘도 바쁘잖니.”
“네.”
체리블라썸 멤버들은 헤어디자이너들이 가리키는 자리에 하나씩 자리했다.
헤어드라이어가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주영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대리. 잠깐 여기 있어. 내가 김밥 좀 사 올게.”
“제가 갈게요.”
“아냐. 나 조금 전부터 속이 안 좋아서 바람 좀 쐬려고. 바로 올 테니까 잘 지키고 있어.”
이주영 대리가 나가고 10분 뒤.
헤어샵의 입구 벨이 울리더니 은지유 대리의 인솔하에 골든로드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은 대리님.”
“어? 정 대리 아냐? 먼저 와 있었네?”
뒤편으로 보이는 골든로드와도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다들 받는 둥 마는 둥이다.
“아 예. 뭐. 안녕하세요.”
대충 예상했던 터라 따지지는 않았다.
체리블라썸 멤버들은 이미 스타일링 중이었기에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인사했다.
골든로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으며 체리블라썸의 옆자리에 일렬로 앉았다.
은지유 대리가 짐을 놓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리님은?”
“요 앞에 김밥 사러 가셨는데요?”
“그래? 그럼 잠깐 우리 애들 좀 봐줘. 나도 이 팀장님이 오시기 전에 뭔가 요깃거리라도 사 둬야 할 거 같아서.”
“예. 제가 자리 지킬 테니까 다녀오세요.”
은지유 대리가 고맙다며 빠르게 김밥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은지유 대리가 사라지자마자 장은영이 바로 곁자리의 우연희에게 시비를 걸었다.
“야. 우연희. 너희 실장님이 이제부터는 우리보고 연락하지 말라더라? 너 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한 거야?”
“······별말 안 했는데요.”
“별말을 안 했는데도 그렇게 생난리를 펼쳐?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진짜 실망이다. 좋은 만남 주선해주고 고맙다는 말은커녕 이게 웬 망신이래?”
“저희가 바란 건 아니잖아요.”
“야. 그냥 끼리끼리 동년배들도 알아두면 좋지. 누가 사귀래?”
“······.”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장은영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기에 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은영아. 아침부터 인상 쓰지 말자. 그리고 앞이나 봐. 그러다 머리 망치면 어쩌려고? 오늘이 컴백인데.”
내 간섭에 장은영이 코웃음을 치며 덤벼들었다.
“정 대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지 말지?”
나이 차이가 2살이나 나는데도 여전히 반말이다.
“무슨 일 있었는지 아니까 그만해. 뭐 좋은 일이라고 동네방네 떠들어 대!”
내 호통에 장은영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거울을 쏘아본다.
반사된 얼굴에 심술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골든로드의 막내 윤지희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야야! 아 진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머리카락 끝을 붙잡고 있는 윤지희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윤지희의 헤어디자이너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데기로 머리카락을 펴다가 끝을 살짝 태운 모양이었다.
원장님을 불러 커버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윤지희가 사고를 먼저 쳐 버렸다.
“아 XX. 오늘 컴백인데 내 머리 어떻게 할 거야? XX.”
머리카락을 붙잡은 윤지희의 쌍욕에 곁에 있던 헤어디자이너들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실수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쌍욕을 먹을 일은 아니었으니까.
다급히 윤지희를 말렸다.
“윤지희. 말 이쁘게 안 해? 아무리 신경이 예민해도 입조심 좀 하자.”
현역 아이돌의 이미지를 생각해 조심하라고 타일렀지만 그녀는 개X 마이웨이로 나왔다.
“아 진짜. 짜증 나! 정 대리! 그쪽은 우리 매니저잖아! 근데 왜 나보고 XX이야?”
자기편을 들어 주는 건데도 알아먹지 못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멍청하면 착하기라도 하든지.
난 심호흡을 하고선 천천히 윤지희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매니저가 연예인 욕받이 인생이라지만 골든로드는 회사만 같을 뿐 적이나 마찬가지니까.
“야. 윤지희! 내가 네 친구야? 어디서 쌍욕을 하고 지X이야! 그리고 너 지금 빨리 선생님한테 사과 안 해?”
쩌렁쩌렁한 내 목소리가 헤어샵을 울려댔다.
내 호통에 깜짝 놀란 윤지희의 기세가 조금은 잦아들었다.
다만 여전히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낀 채로 투덜댄다.
“아 진짜. 디자이너만 제멋대로 안 바꿨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짜증 낼 일도 없었다고요······.”
딱 한 대만 때렸으면 하는 얄미운 얼굴을 한 윤지희를 뒤로하고 담당 디자이너에게 사과했다.
“오늘이 컴백이라 예민해서 그래요. 욕한 건 제가 대신 사과드릴 테니 원장님 좀 모셔와 주세요.”
“죄송합니다. 정 대리님. 죄송해요. 지희 씨.”
“예. 앞으론 안 그러면 되니까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애들 빨리 스타일링하고 방송국 가야 해요.”
윤지희의 담당 헤어디자이너가 1층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리고 난 이 층에서 가장 선임인 부원장 김영숙에게도 허리를 굽혔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부원장님.”
“아녜요. 뭐. 컴백 날이면 예민해지는 거 아는데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일해보나?”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부원장 덕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윤지희.
회귀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내게 사과를 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상황이 마무리되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장은영이 코웃음을 치며 슬그머니 끼어든다.
“정 대리. 왜 생각해주는 척이래? 같은 1실도 아니면서?”
아주 이것들이 생난리다.
일부러 날 엿 먹이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같이.
가끔 헤어샵에서 애들의 머리카락을 싹 대머리로 밀어버리고 싶다던 선배 매니저 마음이 완벽히 와닿았다.
“야. 그래도 내가 명색이 굴렁쇠 매니저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그러면 우리 지희 헤어디자이너 좀 바꿔 줘. 실력 없는 초짜들 말고 베테랑으로.”
디자이너를 내가 바꿨나.
회사가 바꿨지.
보통 연예인을 담당하는 헤어디자이너는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골든로드의 컴백이 늦어지고 체리블라썸의 1위 기간이 늘어난 탓에 두 그룹의 대우가 역전되어 버렸다.
원래 골든로드를 맡았던 베테랑들이 체리블라썸을 담당하게 됐고 골든로드에게는 신입 디자이너들이 배정되면서.
난 참을 인을 그리며 이주영 대리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5분도 지나기 전.
이주영 대리와 은지유 대리가 김밥을 싸서 돌아왔다.
그제야 장은영의 불만스러운 입이 닫혔다.
* * *
MBS <쇼! 음악센터>의 대기실 밖 복도에서 이동민 실장에게 헤어샵에서 있던 이야기를 전했다.
“당장 헤어샵부터 바꿔야겠네.”
“그러면 압구정에 새로 생긴 비비안 어떠세요? 거기 원장이 실력자라고 하던데요?”
앞으로 5년 안에 최고가 될 압구정 헤어샵 ‘비비안’을 추천하자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 듣는데. 잘해?”
“끝내준답니다.”
“그래? 그러면 한번 물어봐. 내일 스타일링부터 해줄 수 있냐고.”
“예. 이전 스타일링 샘플 사진도 보내 달라고 할게요.”
비비안의 원장과 통화를 한 순간 들뜬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체 체리블라썸이라고요? 당장 오세요! 협찬해 드릴게요! 프리! 공짜!
내 기억 속 도도한 그녀는 없었다.
하긴 지금의 체리블라썸은 돈 주고도 모셔가기 힘든 신세니까.
협찬 약속까지 받고 전화를 끊자 이동민 실장이 어제 있었던 일을 먼저 꺼냈다.
“어제 은영이랑 애들 이야기 들었지?”
“예.”
“하여간 은영이 고 기집애. 사진을 지웠다면서 대드는데 말로는 도저히 못 이기겠더라. 그래도 사진을 지워서 다행이지.”
투덜대는 이동민 실장에게 조심스레 장은영의 비밀 계정 이야기도 꺼냈다.
“비밀 계정도 있었다고?”
“예. 오면서 기자들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지금 스타 패치에서 은영이 스타그램을 캐고 있다고 하던데요?”
이동민 실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스타 패치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생활을 캐내는 곳.
그곳에 걸린 연예인 중에 조용히 넘어간 연예인은 없다.
“하필이면 걸려도 그런 데에 걸리냐?”
이동민 실장의 한탄에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빨리 은영이한테 비밀 계정에 있는 사진을 다 지우라고 해야 합니다.”
장은영의 비밀 계정이 없어지면 업로드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체리블라썸의 사진도 자연스레 없어질 테니까.
“그래야겠네. 은영이가 혹시 우리 애들을 찍은 사진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비록 1실의 일이지만 혹여 체리블라썸이 또 얽힌 게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이동민 실장은 팔을 걷고 나섰다.
“윤호야. 근데 혹시 은영이 비밀 계정은 알고 있어?”
“아뇨.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이동민 실장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무래도 본부장님에게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겠네.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애들은 니가 좀 맡아라.”
“예. 실장님.”
“그래. 그러면 난 먼저 나간다.”
이동민 실장은 바쁜 걸음걸이로 복도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은영. 넌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해.”
체리블라썸에게 똥물이 튀지 않게 움직이다 보니 원치 않게 장은영과 골든로드까지 돕게 생겨 버렸다.
나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일정을 보며 대기실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어이 정 대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대기실 복도 한쪽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TK 엔터의 마동팔 본부장이 손을 흔들어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 햇살 좋은 데라도 다녀왔는지 피부가 짙은 구릿빛으로 변한 채로.
대기실 앞까지 온 마동팔 본부장은 함께 온 핑크다이아에게 대기실 인사를 시켰다.
“니들은 어서 들어가서 1위 분들한테 인사하고 나와.”
“네. 본부장님.”
핑크다이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하고서 체리블라썸의 대기실로 들어갔다.
핑크다이아가 대기실 안으로 사라지자 마동팔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잘 지냈고?”
“뭐. 그럭저럭요. 그보다 어떻게······. 쁘띠모는 잘 지내는지?”
내 대꾸에 마동팔이 한층 더 험악하게 웃음을 지었다.
“누구 덕분에 푹 쉬고 있어. 그리고 천 이사님도 너한테 안부 전하라고 하시더라. 덕분에 손실액이 수백억은 된다고.”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사고를 친 스스로를 탓해야죠.”
“천지 분간 못 하고 입을 놀리는 못된 버릇은 여전하군.”
난 마동팔의 협박을 무시하고 되물었다.
“그런데 너무 빨리 복귀하신 거 아닙니까? 아직 본부장님을 곱지 않게 보는 눈이 많을 텐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하여간 위로 올라갔을 때 관리 잘해라. 올라가는 건 힘들어도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니까.”
마동팔은 체리블라썸을 노리겠다는 걸 은근슬쩍 돌려 말했다.
매년 음원 시장의 매출은 거의 정해져 있기에 다른 그룹을 끌어내려야 올라갈 수 있다.
상대의 성공을 시기 질투하는 자들과 충돌하는 것쯤은 일상다반사.
하지만 내가 있는 한 체리블라썸이 바닥으로 떨어질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본인 경험담이신가요?”
내 대답에 마동팔이 팍하고 인상을 구겼다.
“하여간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지?”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린지.
그런데 협박을 당한 게 꽤 기분이 나빴다.
어떻게 갚아줄까 했는데 갑자기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런데 핑크다이아 의상 말인데요······.”
“의상이 뭐?”
“색상부터 디자인까지 비슷하게 깔맞춤을 하셨던데. 혹시 우리 따라 하셨습니까?”
체리블라썸이 7주간 1위를 한 터라 스타일을 따라 하는 걸그룹이 삼 분의 일 정도는 된다.
핑크다이아도 그중 하나냐고 묻자 마동팔이 씩씩대며 콧김을 뿜었다.
카피 아이돌이란 이야기는 삼류 아이돌이란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이 자식이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난 더는 대꾸하지 않고 잽싸게 대기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대기실 안에도 꽤 재미난 장면이 벌어져 있었다.
“민지 언니! 앞으로는 우리 연희 언니에게 그런 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연희 언니가 나이가 어려도 선배잖아요!”
“내 내가 뭘!”
“말로만 선배 선배 하면서 내려다보는 거! 그게 더 열 받는 거 진짜 몰라요?”
허풍선이 세리가 핑크다이아의 구민지를 향해 일장 훈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