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110. 봄이 오는 소리 1
[체리블라썸의 신곡 . 지상파 MBS <쇼! 음악센터>의 순위 진입과 동시에 2위 달성!]
[체리블라썸의 팬클럽 ‘벚꽃패밀리’. 일당백의 함성으로 현장 방청석을 압도!]
[의 무서운 상승세. 너튜브 조회수 100만 돌파!]
어제 MBS <쇼! 음악센터>에서는 아쉽게도 2위를 차지했다.
1위와 단 2점 차이였다.
현장 투표에서는 압도적으로 쁘띠모를 이겼지만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 밀렸다나?
쁘띠 엔젤이 집중 화력을 퍼부은 탓에 1등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때문에 한명호 팀장은 진짜로 심장 마비에 걸릴 뻔했었다.
억울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KBC <뮤직스테이지>의 녹화를 위해 공개홀에 도착했다.
그런데 드디어 기다리던 장문기 기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 대리. 한 시간 뒤에 기사 나가.
“증거 확실합니까?”
-물론이지. 테디 킴. 그놈 절대로 도망 못 가니까 두고 봐.
장문기 기자의 목소리에 자신만만함이 깃들어 있었다.
-까톡으로 증거자료랑 기사 일부 보낼 테니까 확인해 봐.
“감사합니다. 장 기자님. 이 은혜 안 잊겠습니다.”
-약속한 거다?
“예.”
-그러면 이따가 체리블라썸 인터뷰 좀 잡아 줘. 어제 진짜 핫했다던데?
2점 차이로 2등을 했다는 소식에 1등을 한 것보다 화제가 된 상황.
이슈를 먹고 사는 연예기자인 장문기는 그것부터가 화젯거리라며 낄낄 웃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밤 인터뷰 잡겠습니다.”
-콜! 낙장불입!
장문기 기자와 전화를 끊고 곧장 이동민 실장과 강지영 본부장에게 장문기 기자의 자료를 보냈다.
때마침 방송국 근처에 있던 이동민 실장이 곧장 대기실로 달려 들어왔다.
급하게 뛰어온 듯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헉헉헉. 정 대리. 기사는 언제 뜬대?”
“1시간 안에 올릴 거랍니다.”
“아자!”
이동민 실장이 주먹을 불끈 쥔다.
들뜬 표정의 그가 날 재촉했다.
“정 대리 넌 나 따라오고. 한 팀장. 애들 케어 좀 부탁하자.”
한명호 팀장에게 체리블라썸의 케어를 맡긴 채 이동민 실장과 함께 주조정실로 향했다.
최은혁 PD가 의 런칭과 함께 자리를 옮기며 자연스레 과거 부사수였던 차태희가 PD로 승진했다.
“3번 2번 카메라. 세팅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1번 카메라. 큐시트 확인해 주시고요.”
리허설 도중 카메라 동선을 체크하던 차태희 PD가 우릴 발견했다.
“잠깐만 쉬다 갈게요.”
차태희 PD가 주조정실 밖으로 나왔다.
“연락도 없이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급히 말씀드릴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이동민 실장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난 장문기에게 받은 까톡 내용을 내밀었다.
“PD님. 잠시 후 이게 기사로 나올 겁니다.”
까톡 화면에는 기사의 요약본과 증거로 쓰일 사진 그리고 음원 조작을 인정하는 녹취록이 있었다.
차태희 PD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거 진짜예요?”
“저희가 미치지 않고서 아닌 걸 보여드리겠습니까?”
오늘 1위 후보인 쁘띠모의 대규모 음원 조작 기사에 차태희 PD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진짜 하필이면 오늘이야? 진짜 미치겠네.”
PD로 승진해 첫 방송을 맡은 날 사건 사고가 터진 탓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긴 숨을 몰아쉬고 감사 인사를 해왔다.
“먼저 알려준 거 절대 안 잊을게요.”
차태희 PD가 급히 주조정실로 뛰어 들어갔다.
기사가 사실인지 크로스 체크도 해야 하고 CP부터 윗선까지 줄줄이 보고해야 할 테니까.
이동민 실장은 복도에 비치된 긴 의자에 걸터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차 PD 성격이면 이거 절대 그냥 안 넘어갈 것 같은데.”
“그러게요. 저분 TK 엔터에 쌓인 게 많아 보이던데요.”
“날 잡았으니 칼춤을 추겠지.”
‘이거 완전 팝콘 각인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손이랑 입이 근질거렸다.
이렇게 재미있는 건 주전부리를 씹으면서 봐야 제맛인데.
이동민 실장의 입에서도 실없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쁘띠모와 TK 엔터에 대해서 쌓인 게 많은 건 비단 차태희 PD만이 아니었으니까.
“흐흐흐. 오늘은 정 대리 덕분에 내가 두 다리를 쭉 펴고 자겠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뮤직스테이지> 녹화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였다.
장문기 기자의 기사가 드디어 포털 연예 기사면의 메인에 올라왔다.
[(특종) 음원 1위 사재기. T모 엔터의 P 걸그룹. (주간 스타 by 장문기 기자)]
-최근 T모 사는 음원 앨범 순위를 사재기를 통해 조작했다.
(사진 : 사재기 취재 중 음원 조작업체 A 사의 상담 도중 제의받는 특파원) [녹취록]
-K 사장 : 1위로 올려주는 데는 5억. 계속 유지하려면 하루에 3천만 원씩 들고 밀릴 거 같으면 또 3천만 원씩 더 요구할 수도 있어.
-A 씨 : 에이 형님. 그거 전부 구라 아닙니까? 플랫폼에서도 부인하는 걸 요즘 세상에 누가······
-K 사장 : 어허.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지금 차트 싹쓸이하는 쁘OO 알지? 그거 전부 우리가 작업한 거야. 테디 킴 그 친구가 우리 단골이라고.
······
장문기가 내세운 증거들에 이어 녹취 녹음 동영상 파일들이 대거 올라오고 있었다.
동시에 주간 스타의 기사는 단숨에 실검 1위를 차지해 버렸다.
[속보! 쁘띠모 순위 조작]
“끝났네.”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KBC <뮤직스테이지>의 녹화가 중단되었다.
동시에 모든 기획사 매니저들은 주조정실로 소환되었다.
“일단 오늘 기사 뜬 쁘띠모는 음방에서 빠지세요.”
“차 차 PD님. 오해입니다. 기사만 믿지 마십시오.”
TK 엔터의 성지혁 팀장이 억울하다며 항의했다.
“닥쳐요. 크로스 체크 끝난 거니까!”
차태희 PD의 냉랭한 말투에 TK 엔터 성지혁 팀장이 움찔거렸다.
차태희 PD는 다른 매니저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다른 그룹들도 기사에 언급되기라도 하면 무조건 녹화에서 뺍니다. 그리 아세요.”
차태희 PD의 눈빛에는 서슬 퍼런 광기가 어려 있었다.
몇몇 매니저들이 그 눈빛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저 인간들도 조작했나 보군.’
중 소형 매니지먼트의 매니저들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거론조차 안 될 거다.
인기 없는 아이돌에게는 대중은 관심조차 두질 않으니까.
사회면에 실릴 중요 범죄라도 저지르면 모를까.
“쁘띠모 빼고 그 자리에 GOD.6 들어갑니다. 바로 촬영 이어서 일단 들어가는 거니까 그리 아세요.”
“예. PD님.”
“다들 가 보세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다시금 녹화가 재개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쁘띠모는 무대에 설 수 없었고.
하지만 음원 순위 조작의 후폭풍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 * *
팡파르와 함께 KBC <뮤직스테이지> 진행을 맡은 MC가 외쳤다.
“축하드립니다. 체리블라썸!”
무려 1200점 차이로 1위가 된 체리블라썸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팡팡!
폭죽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금박 가루가 떨어졌다.
방청객 석에 있던 횡성여고 4인방과 벚꽃패밀리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체리블라썸!”
“꺄아아악! 1등이다!”
20명이 주축이 된 소박한 응원이라지만 체리블라썸은 연신 손을 흔들어대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감사합니다!”
“언니! 나 1등 했어!”
진즉에 이랬어야 했다.
방선우의 작곡.
장예빈의 작사.
그리고 박선녀의 안무까지.
최고의 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체리블라썸의 신곡 이 족보 없는 쁘띠모의 곡에게 밀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사이 방청객 석을 향해 인사를 마친 체리블라썸이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한명호 팀장과 이주영 대리 그리고 이동민 실장은 모두가 감격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어. 조심해~. 전선 밟으면 넘어져 얘들아.”
한명호 팀장의 걱정에도 체리블라썸은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으흐흑. 팀장님!”
“주영 언니!”
한명호 팀장과 이주영 대리가 휘청대며 각각 두 사람씩을 안았다.
“그래. 그래. 진짜 수고 많았다.”
“내가 될 줄 알았다니까! 말했잖아! 니들이 최고라고!”
유진이의 인생을 바꾸고 미소를 살린 후 또 한 번 찾아온 새 인생의 이정표다.
자칫 해체될 뻔한 체리블라썸이 결국엔 1위를 차지했으니까.
넘쳐 오른 기쁨이 눈물로 변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뿐만 아니라 한명호 팀장과 이주영 대리도 체리블라썸을 껴안고 울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주영 대리에게 안겨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세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세리가 이주영 대리의 품에서 벗어나 내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오빠!”
퍼억!
후다닥 달려온 세리의 작은 머리통이 내 명치를 직격 했다.
“커억!”
나는 호흡을 껄떡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세 세리야. 잠깐만.”
숨이 멎을 것 같다.
이대로 극락왕생하거나 다시금 죽어서 회귀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다.
세리는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너무도 서럽게 울고 있었다.
결국 한명호 팀장과 이주영 대리가 나서서 내게서 세리를 떼어 놓았다.
“세리야 정 대리 죽겠다. 그만해.”
그제야 세리가 명치에서 머리통을 떼고 날 올려보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여덟 살짜리 꼬맹이 같은 표정이다.
“흑.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아. 마이 아파.”
당황한 세리가 가슴팍을 만지며 미안하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세리 넌 돌진 금지.”
“우웅······ 알았어. 오빠 미안해요.”
세 사람의 타박에 세리가 쩔쩔맨다.
“얘들아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세리한테 장난한 거야.”
세 사람이 진짜냐며 안도하자 곁을 지나가던 매니저들이 부러워 헛기침하기 시작했다.
“크흠. 크흠.”
“체리블라썸은 매니저분과 사이가 좋으시구나.”
“부럽다.”
넘보지 마 이것들아.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는 체리블라썸의 눈물을 닦아 주며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체리블라썸은 이기철 이사에게 핍박받고 가수 1실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대기실에서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리고 저녁 스케줄을 모두 끝낸 우린 이동민 실장을 따라 국산 1++ 한우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이러다 사모님께 쫓겨나시는 거 아니냐 다들 말렸다.
하지만 이동민 실장의 손에서 나온 검은 법인 카드를 본 순간 우린 모두가 한입을 모아 외쳤다.
“와규? 꺼지라 그래! 한우님이 최고이시다!”
* * *
[체리블라썸의 신곡 영예의 1위!]
[체리블라썸. 만년 2군 아이돌의 대반란!]
[쁘띠모. 전격 활동 중단!]
[박은빈 ‘난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일 뿐 아무것도 몰라. 사업은 회사의 일.’]
[쁘띠모. 사죄 마케팅. 모든 음원 구입 비용 환원!]
[음원 조작 건은 전적으로 프로듀서인 ‘테디 킴’과 ‘대원 프로모션’ 김홍원 사장의 개인적인 일탈!]
하루 만에 경찰이 대대적인 조사에 돌입했고 TK 엔터도 긴급 사과문을 발표했다.
TK 엔터의 대표 김태권은 이 모든 일은 테디 킴이라는 개인이 저지른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책임을 통감한다며 환불을 약속했다.
쁘띠모의 모든 방송 출연은 중단되었고 덕분에 체리블라썸에게 반사 이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걸그룹 왕좌의 게임. 쁘띠모를 잡고 정상에 오른 최종 승자는 체리블라썸.
-음원 조작 없이 1등을 차지한 비결은 콘텐츠의 힘.
동시에 수많은 방송에서 빠진 쁘띠모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방송 3사의 섭외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됐어.”
순풍에 돛을 달고 출항한 셈이니 이제는 내가 빠져도 될 상황이다.
회사에 출근해 한숨을 돌린 나는 지하주차장에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그런데 기분 좋은 소식 하나가 더 있었다.
[에브리데이 V10]
[2020년 5월 11일]
-PM 01: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소속 연예인의 가족 대응법 교육 (지하 2층 소극장).)
오늘은 4월 29일.
5월 5일인 은아의 생일을 지난 뒤 계약서를 갱신한 후에야 사라질 줄 알았던 일정이 사라져 버렸다.
급히 은아에게 연락해 보니 연예계 활동을 소극적으로 지원했던 은아의 엄마가 이제는 대놓고 은아 편을 들고 나섰단다.
평생 부부싸움 한번 없던 두 분이 집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언성을 높였다나.
1위를 한 체리블라썸을 보고도 느끼는 게 없냐며 이혼서류와 도장까지 준비해 두고 배수진을 쳤다고 한다.
그 탓에 결국 그 막무가내인 은아 아빠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정을 넘겨 보다 보니 이번 사건과 연관된 일정들이 줄줄이 사라진 게 눈에 띄었다.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0년 5월 31일]
-P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골든로드 <달빛 특급> 1위 기념 회식. 압구정 유동갈비.)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골든로드의 신곡이 1위를 했을 때 참가했던 회식이다.
잠깐만.
테디 킴과 대원 프로모션이 조사를 받으니까 1위 탈환 기념 일정이 사라졌다면 설마?
“골든로드. 니들도 음원 순위를 조작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