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8화
“하····”
체임버는 흑발흑안이 된 라온을 바라보며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라온이 정말 탄생석의 악마를 얻는 건가?’
시작의 탄생석에 깃든 존재들은 알을 깨고 태어난 아기새와 같다·
돌을 깨준 사람을 죽을 때까지 따르는데, 12월의 악마 지르콘은 본래의 주인인 흑탑주가 아니라 라온을 선택하고 그에게 힘을 전해주었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힘을·’
현재 라온이 지닌 기운은 7월의 천사 페리도트를 흡수한 흑탑주에게 조금 밀리는 정도였다·
지르콘의 마기를 완벽하게 흡수했다는 뜻· 일시적인 힘이라고 해도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변수의 왕이라····’
내가 만든 별명이지만, 이 이상으로 라온을 뜻할 말이 없네·
라온은 위기의 상황을 언제나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를 변수의 왕이라고 칭했다·
오늘도 어둠 속에서 희망의 등불을 밝혀준 것을 보면 자신이 별명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든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체임버가 들끓어 오르는 기운을 갈무리하는 라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싸워볼 만해·’
흑탑주가 무인이었다면 라온이 지금보다 배 이상 많은 기운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놈은 마법과 주술을 사용하는 마법사이기에 자신이 보조해준다면 최소한 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체임버가 흔들림이 점점 심해지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입술을 씹었다·
‘내가 버텨야 하겠지만····’
연속된 결전기의 사용으로 상단전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난 상태다·
마나가 조금 회복되었다고 해도 육체적, 정신적인 통증이 너무 심해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니, 약한 소리 하지말자·’
체임버가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말아쥔 채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죽더라도 싸워야 해·’
앞서서 걷는 자는 후배들을 위해서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법· 자신 역시 선배들의 피가 얼룩진 길을 밟고 지금의 위치에 섰으니, 라온과 아이들을 위해 죽어서도 싸워야 했다·
“그래·”
체임버가 떨리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라온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함께 싸우자· 내가 저 마귀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마·”
그녀는 뼈와 살을 짓누르는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산뜻한 웃음을 그렸다·
* * *
“체임버 님····”
라온이 웃고 있는 체임버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상태가 심각해·’
지르콘의 힘을 받아들이자, 체임버의 상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상단전은 당장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지금까지 버틴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저런 상태에서도 싸워주겠다니····’
자신 역시 상단전이 손상될 정도의 전투를 치러봤기에 알 수 있다·
지금 체임버는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참고 있었다· 저런 통증을 견디며 싸워주겠다고 말하는 그녀가 안쓰럽고 고마워서 가슴이 아려왔다·
-본왕이 저 늙은이 애를 우습게 보았군·
라스가 체임버를 바라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저 녀석은 훌륭한 전사이니라·
녀석은 체임버의 정신을 인정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녀의 정신을 무시하지 말거라·
‘알고 있어·’
라온이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체임버의 마음을 알기에 쉬고 있으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없다면 흑탑주를 이길 수 없기에 휴식을 줄 수도 없었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회복하세요·”
라온은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으로 체임버의 육체의 상처를 회복시켜주었다· 렌시아에게 전부 쏟아내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정신적인 상처와 피로는 지울 수 없다는 게 안타깝군·’
[···그건 내 기운으로 할 수 있다·]
지르콘이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뭐?’
[광석 지르콘의 힘은 안정· 저 인간의 상처를 모두 회복시킬 수는 없지만, 정신적인 고통과 상처를 조금 줄여줄 수는 있다·]
그는 체임버의 부담을 가라앉혀 줄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자신 역시 검계현신을 연달아 사용하고, 분노를 폭발시켜서 육체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심했었는데, 지금은 뇌리에 찬물을 부은 듯 시원함만이 남아 있었다·
지르콘의 능력 안정이 정신적인 피로와 고통을 줄여준 것 같았다·
-그럼 이 새끼야! 빨리 말했어야지!
라스가 지르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이, 입을 다물라고 하셨어서····]
지르콘은 라스에게 얻어맞은 뒤통수를 잡으며 눈동자를 슬쩍 굴렸다·
-지금 말대꾸하는 것이냐? 어이구! 세상 많이 좋아졌네· 본왕에게 말대꾸하는 마족 놈이 다 있고?
[그, 그게 아니라····]
-본왕의 밑으로, 네놈의 위로 집합 한번 할까? 앙?
라스가 푸른 눈동자로 흘기며 이를 갈았다·
[죄송합니다····]
지르콘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숙였다· 놈도 상위 초월자의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이렇게 쭈구리가 되는 게 신기했다·
‘됐고· 체임버 님의 정신적인 피로를 회복시켜줘·’
[내, 내 기운을 전해주기만 하면 된다· 양을 조절해서·]
그는 너무 과하게 주면 오히려 버틸 수 없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체임버 님· 잠시 손을·”
“이런 때의 고백은 곤란한데?”
체임버가 힘 빠진 미소를 그리며 손을 뻗어왔다·
“농담을 할 기운은 있으신가 보네요·”
라온이 체임버의 손을 잡고, 지르콘에게 얻은 기운을 넣어주었다·
“저를 믿고 받아들이세요·”
“음····”
체임버는 마기를 띤 기운에 당황했지만, 자신을 믿고 마나 회로를 열어주었다·
그녀는 지르콘의 힘을 받아들이자마자, 정신적인 고통과 피로가 줄어들었는지 눈을 부릅떴다·
“이게 어떻게 된····”
“상단전의 상처 자체를 지운 건 아니에요· 고통과 피로를 줄였을 뿐이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라온은 체임버에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준 후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체임버가 라온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잘 자란 손주를 보며 뿌듯해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럼 시작하죠·”
라온이 체임버의 앞에 서서 제천검과 목륜검을 세웠다·
“제가 앞에서 싸울 테니, 보조를 부탁드립니다·”
“누구한테 보조를 하래!”
체임버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네· 앞으로 나가· 내가 뒤를 받쳐줄 테니까·”
그녀는 공격에만 집중하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세워서 마법의 술식을 맺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군·”
흑탑주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다가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내가 준비했던 가장 큰 안배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그는 검은 눈동자 위로 분노와 허탈, 질투 그리고 탐욕을 드러냈다·
“네놈을 죽이고, 그 시체를 뼈까지 씹어 삼켜 다시 지르콘을 나의 것으로 만들겠다·”
흑탑주는 체임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자신을 노려보며 두 손을 모았다·
“해봐·”
라온이 제천검 위로 금빛 불꽃을 일으키고, 목륜검 위로 은색 서리를 피워냈다· 지르콘 덕에 얻은 오러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턱을 까딱였다·
“그 전에 네 목이 떨어질 테니까·”
“하룻강아지 놈이!”
흑탑주가 페리도트를 죽이며 얻은 마기를 개방하자, 검은 하늘 위로 장대한 파동이 일어나며 얼어붙었던 마계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네놈들이 쌓아 올린 희망을 모조리 부숴주마!”
그는 자신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마계의 문도 되살리려는 듯 짙은 끊임없이 퍼뜨렸다·
“말이 많군· 그것도 쓸데없는 말이·”
라온이 오러를 발끝에서 폭발시키며 흑탑주의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의 잔상이 쫓아오기도 전에 불길에 타오르는 제천검을 내리그었다·
“마신주!”
흑탑주는 마법사임에도 눈으로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고, 검은 장막을 펼쳐냈다·
촤아아아아아악!
제천검의 날카로운 검격이 검은 장막을 찢고 들어갔지만, 무언가를 베는 듯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꼭 물을 찌른 것 같았다·
후우우욱!
검은 장막은 제천검을 막아낸 것으로 모자라서 자신을 잡으려는 듯 밧줄 같은 형태가 되어 팔목과 다리를 노려왔다·
촤아아아악!
라온은 목륜검의 서리로 검은 밧줄을 잘라낸 후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검은 밧줄은 처음부터 미끼였는지 잘린 부분에서 쇠사슬이 튀어나와, 자신의 전신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만화공을 일으켜서 검은 쇠사슬을 불태우려고 하는데, 공간이 잘려 나가며 검은 쇠사슬이 지워졌다· 체임버의 지원이었다·
“마신주라는 아티팩트야! 네가 죽였던 흑색왕 시겔이 입은 장포의 원본이지!”
체임버는 검은 쇠사슬을 녹이며 마신주라는 아티팩트를 설명해주었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뚫을 수 없고, 공격할 때는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검이 되니까 조심해!”
그녀는 마신주가 공격과 방어를 모두 할 수 있는 아티팩트라며 눈매를 찌푸렸다·
“뚫는 방법은요?”
라온이 흑탑주의 주변을 돌며 마신주를 뚫을 방법을 물었다·
“마신주가 방어하고 있는 공간을 베어내거나, 마신주보다 격이 높은 마법이나, 무학을 사용하거나, 아예 힘을 뚫어버리거나·”
체임버는 세 가지 방법이 전부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전부 네놈이 할 수 없는 일이구나!”
흑탑주가 비웃음을 흘리며 새하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아귀가 거대하게 번지더니, 하늘 뒤덮을 정도로 커진 채 자신을 휘감아 왔다·
‘환상?’
아니, 이건 진짜다·
흑탑주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마법이자, 주술· 저 거대한 손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내가 베어낼게! 안으로 들어가!”
“예!”
라온은 체임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흑탑주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갔다·
촤아아아아악!
그의 거대한 손이 자신의 머리를 부수려고 할 때 공간이 갈라지고, 흑탑주의 얼굴이 나타났다·
체임버가 흑탑주의 마법을 지우고, 놈을 공격할 틈을 만들어 준 것이다·
파아아아앙!
태화이보를 밟으며 새까만 어둠을 뚫고 들어갔다·
서리연과 적섬· 자신의 검술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두 줄의 검격으로 흑탑주의 목과 심장을 노렸다·
후우우우욱!
붉고 푸른 섬광이 흑탑주의 목과 가슴에 닿기 직전 검은 장막이 솟아나 앞을 가렸다· 마신주였다·
‘베어낸다·’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서리연과 적섬의 검극 위로 아리스에게 배운 공간검의 묘리를 담았다·
파아아아아앙!
두 줄기의 검격이 마신주의 겉면이 아니라, 그 안쪽을 공간을 찌르며 강렬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음····’
라온이 제천검과 목륜검을 잡은 손을 떨며 눈매를 찌푸렸다·
‘이번에도 손맛이 없어·’
이전처럼 맹물이 아니지만, 꼭 진흙을 벤 것처럼 손의 감각이 옅었다· 마신주 안쪽은 찢었지만, 흑탑주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못한 것 같았다·
“네놈의 검술로는 마신주를 뚫을 수 없다·”
흑탑주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외치며 검은 마기로 이루어진 휘광을 일으켰다· 햇볕처럼 번져가는 마기가 자신의 전신을 둘러쌌다·
‘막을 수 없어·’
밀려오는 마기의 빛을 향해 제천검의 검극 위로 일으킨 불꽃의 파도를 쏟아냈다·
쿠와아아아아앙!
흑탑주의 마기와 염해무결이 부딪치며 검붉은 스파크가 천공을 가득 채웠다·
“후우·”
라온이 천천히 가라앉는 스파크를 보며 짧은 숨을 내뱉었다·
‘힘 자체는 크게 밀리지 않아· 하지만····’
마신주를 뚫을 수가 없어·
체임버가 결전기를 사용한다면 저 마신주를 지워버릴 수 있겠지만, 흑탑주는 정면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저 천막을 찢어놔야 했다·
‘계속 공격을····’
라온이 다시 공격을 들어가려고 할 때 눈앞에 떠 있는 마신주에서 검은 가시가 솟아올라 자신의 눈과 목을 노려왔다·
쩌어어어어엉!
목륜검을 휘돌려 마신주의 공세를 쳐냈다· 분명 천 같은 질감이었는데, 막을 때는 오러를 가득 두른 쇳덩이를 치는 느낌이 들었다·
우우우우우!
마신주의 공세를 막아내자마자, 머리 위로 검은 물감을 뿌린 듯한 새까만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맞으면 안 돼! 살과 뼈가 녹아내릴 거야!”
체임버는 저 빗방울 중 하나만 맞아도 생명이 위독해질 거라면서 자신의 머리 위에 비를 막을 차원을 열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라온은 체임버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 흑탑주의 뒤편으로 돌아가 제천검과 목륜검을 동시에 찔러넣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7형 공허살 쌍·
하얀 기류를 일으킨 제천검과 목륜검으로 흑탑주가 세운 마기의 벽을 부수고, 마신주의 중심을 갈랐다·
촤아아아아악!
현재 자신의 검식 중 가장 변칙적인 검술은 소슬바람이지만, 공간을 확실히 뚫어내는 검식은 공허살이다· 두 쌍의 공허살이 마신주를 뚫고, 그 안쪽을 파고들었다·
“음····”
라온이 반으로 갈라진 채 출렁이는 마신주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무언가를 가른 느낌이기는 한데····’
이전처럼 물이나, 진흙을 베는 느낌이 아니라, 고체를 가른 느낌이 들었지만, 사람의 살을 벤 느낌은 아니었다·
결국 공허살로도 마신주를 뚫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계속해보자·’
제천검에 공허살을 담아내고, 목륜검에 소슬바람을 일으키며 마신주를 연달아 두드렸다·
체임버가 방어를 맡아주었기에 공격에만 집중하며 마신주의 겉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지만, 그 안에 있는 흑탑주에는 조금도 닿지 않았다·
“하등한 놈이!”
흑탑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천지사방에서 새까만 불길이 밀려왔다· 흑염으로 이루어진 감옥· 어마어마한 열기에 피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쳐내야 해!’
라온이 입술을 깨물고, 좌측에서 다가온 검은 불꽃의 벽을 향해 창궁대연을 그어 내렸다·
촤아아아아악!
장대함을 두른 검식이 불꽃을 갈라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태화보를 밟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젠장····”
빠르게 재생을 마치는 마신주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자신의 공격은 조금도 먹히지 않고, 상대의 공격은 한 수 한 수가 위험했다· 너무도 힘든 싸움이었다·
쯧·
라온이 흔들리는 손아귀를 보며 혀를 찼다·
‘지금의 경지로 흑탑주의 마신주를 뚫어내는 건 힘들겠군·’
마신주라는 초월급 아티팩트에 흑탑주의 마법까지 운용되고 있으니, 현재 자신의 검술로 저 방어를 뚫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그 방법뿐인가·’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아껴둔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 힘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라온·”
체임버가 창백해진 얼굴로 앞으로 나왔다·
“역할을 바꾸자· 내가 공격을 할게·”
그녀는 입술 사이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라온이 앞으로 나가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해보지 않은 게 있습니다·”
지금은 인정해야 한다· 현재 자신의 경지로 흑탑주의 마법을 뚫어내는 건 무리다·
아니, 처음부터 뚫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자신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벌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검술의 경지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는 아직 뚫을 방법이 남아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라온이 양손에 제천검과 목륜검을 잡고, 이기어검의 묘리로 진혼검을 띄웠다·
“겁쟁이로구나·”
흑탑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희생을 두려워하는 네놈의 태도가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그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쿠구구구구구!
어둑한 하늘을 부수고 불길에 타오르는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내린다·
자신과 체임버만이 아니라,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위험한 절대의 마법이었다·
“막으실 수 있죠?”
라온은 흑탑주의 말을 무시하고, 체임버를 바라보았다·
“그래·”
체임버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뚫어보겠습니다·”
라온의 검은 눈동자 위로 붉은 뇌광이 타오르자, 그의 손목을 휘감고 있는 마왕들의 팔찌가 각자의 색으로 반짝였다·
“라온 지그하르트!”
흑탑주는 무시당한 것에 화가 난 듯 악을 지르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기이한 형태를 지닌 마물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자신을 집어삼켰다· 마물 하나하나가 초월급 마법의 위력·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흐읍·
라온이 호흡을 참으며 마물들을 향해 두 손에 든 검을 그어 내렸다·
촤아아아악!
검게 그을린 듯한 제천검의 불꽃이 마물들을 불태우고, 연녹색 서리가 피어나는 목륜검이 흩어지는 마물들을 새하얗게 얼려버렸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달리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무슨····”
흑탑주는 본인의 마법이 라온에게 밀렸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이놈이!”
그는 본인이 소환한 마물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마기로 이루어진 파도를 일으켜 라온을 찍어눌렀다·
쿠와아아아아아!
라온이 목륜검을 휘두르자, 검게 일렁이던 마기의 파도가 모조리 얼어붙었다· 어깨로 얼어붙은 파도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흑탑주를 향해 내달렸다·
우우우우웅!
당연하게도 마신주가 튀어나와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
치이이이잉!
제천검에 중천포를 담아내고, 목륜검의 검극 위로 염룡결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아아아!
검게 물든 중천포와 연녹빛으로 가라앉은 염룡결이 폭발하며 마신주의 중심이 완전히 뜯겨나갔다· 검술의 경지가 아닌 힘으로 뚫어낸 결과였다·
“하···?”
중심이 뚫려나간 마신주 사이로 흑탑주의 경악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믿지 못하고 찢어질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파아아앙!
라온은 구멍이 뚫린 마신주 안으로 들어가 흑탑주를 향해 제천검과 진혼검을 내리쳤다·
“무얼 한 거냐!”
흑탑주는 오망성을 그리는 마기의 방패로 두 줄의 참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무기는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피아아아아앙!
하얀빛을 띤 진혼검이 흑탑주가 세운 마기의 방패를 뚫어내고, 놈의 가슴에 박혔다·
“커헉!”
흑탑주는 진혼검이 박혀 있는 가슴을 잡은 채 허리를 굽혔다·
“네, 네놈이 어떻게 마신주를····”
그는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피가 흐르는 턱을 파르르 떨었다·
“이간 이 대 일의 싸움이 아니다·”
라온은 은은하게 빛나는 마왕들의 팔찌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숫자의 힘으로 너를 짓밟아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