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5화
‘마기가 독하군·’
라온이 차원 안쪽의 마기를 살피며 눈동자를 굽혔다·
마나보다 마기가 더 짙게 퍼져 있어서 검사와 마법사들이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보다 더 힘들 것이니라·
라스가 흑탑을 보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왜?’
-아까도 말했지만, 저 차원에 흐르는 마기는 마계에서 끌어 올린 진정한 의미의 마기이니라·
녀석은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인간인 이상 저 차원 안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힘 자체가 많이 억제될 것이니라·
라스는 마인과 마물만이 아니라, 마기 자체를 조심해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라온이 마기가 일렁거리는 흑탑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스의 말대로 독한 마기에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사실이지만,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네놈이 본왕의 권능을 빨아먹었으니까 그렇지!
라스가 어깨를 치며 빽 소리를 질렀다·
-본왕과 다른 호구 놈들의 권능이 있는데, 저딴 마기에 밀리면 뒈져야지! 네놈은 오히려 힘을 받을 수도 있느니라!
녀석은 저딴 마기에 지면 그릇 실격이라고 말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 그렇네·’
라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아무리 오염이 되었다고 해도 저 정도의 마기를 가져올 수 있는 놈은 드물 텐데····
라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아는 거라도 있는 거야?’
라온이 라스에게 시선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마기가 너무 많고, 지독하네·”
체임버가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허공에 띄우며 차원의 앞에 섰다·
“조금만 줄여놓을까?”
그녀가 손가락으로 삼각형을 그리자, 검은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흑탑 주변의 마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더럽게 많아서 다 지울 수가 없네· 그러면····”
체임버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깨부수는 게 낫겠지·”
그녀가 기도하듯 합장을 하자, 갈라진 하늘 위에서 무수한 양의 불꽃과 서리가 바람을 타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작디작은 화염구와 서리의 칼날로 보였지만, 그 위력은 상위 마법사들의 결전기에 못지않았다·
불길에 닿은 마물들이 잿더미로 변하고, 서리에 찔린 마인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얼음 조각이 되어 바스러졌다·
“이제 선전포고를 해볼까?”
체임버가 허공에 손을 뻗자,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지팡이가 솟아올랐다· 그녀가 지팡이를 쥐고 손을 내리자, 흑탑과 그 주변의 공간이 수직으로 갈라졌다·
쩌저저저저저적!
마기의 불길로 보호되는 흑탑도 체임버의 마법을 견딜 수는 없었는지 하층의 벽이 모조리 박살 나고, 그 안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마인들이 반으로 찢어진 채 검은 피를 뿌렸다·
쿠구구구구!
흑탑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하층에 머물던 마인들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죽어 나갔다·
체임버 혼자서 하층을 박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율적인 마법이었다·
다만 체임버의 마법에 직격당했음에도 흑탑의 중층은 작은 금만 갔고, 상층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탑의 강도도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허? 이래도 중층이 다 안 꺾인다고?”
체임버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저거 인간이 만든 성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공간 절단을 견디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마기는 줄여놨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체임버가 지팡이를 세우자, 지그하르트와 오웬, 발카르의 연합군이 검은 차원 안으로 들어가 흑탑을 향해 돌진했다·
쿠구구구구!
짙은 마기 때문에 연합군의 오러와 육체 능력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그들의 기세는 그 이상으로 북돋아져 있었다·
연합군이 체임버에게 죽은 마인들의 시체를 짓밟으며 흑탑의 입구에 닿으려고 할 때 중층의 문이 열리고, 왕국의 성문보다도 거대한 마물들이 뛰어내렸다·
쿠와아아아앙!
거마병· 흑탑의 마인들이 거인족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인공 생물이었다·
지닌 마기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지만, 육체 능력이 너무도 압도적이었기에 정예 검사들도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길을 막아선 건 거마병만이 아니다· 흑탑 뒤편의 어둠 속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숫자의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대부분이 하급 마물이었지만, 그중에는 마스터도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할 상위 마물들도 많았다·
“길을 막아라! 절대로 탑에 닿지 못하게 해!”
거마병과 함께 나온 적발의 거한이 방패를 치켜든 채 마물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마물들의 사육사라 불리는 마장랑 제플이었다·
쿠구구구구!
건물만 한 거마병과 그 뒤에 선 수천의 마물들· 그리고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흑탑의 마인들까지· 정말 지옥이나 마계를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카룬이 콧방귀를 뀌며 검을 내리긋자, 거마병의 산만 한 육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내가 앞에 있다·”
그의 외침에 오황의 연합군이 파도 같은 기세를 타며 흑탑의 방어선을 향해 돌진했다·
쿠구구구구구!
무력 자체는 오황의 연합군이 압도적이었지만, 거마병과 마물들은 이 차원에 흐르는 마기로 육체를 강화하여 비등한 싸움을 벌였다·
“상층의 마인들은 나오질 않는군요·”
라온은 꼼짝도 하지 않는 흑탑의 상층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지들 안방에서 싸우고 싶다는 뜻이지·”
체임버가 추잡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저 차원의 마기가 짙은 이유는 몬티로에서 흘러나온 마기와 사기를 수년· 아니, 수십 년 동안 쌓아두었기 때문이야· 저 공간만 해도 이 정도인데, 탑 내부로 들어가면 더 짙은 마기가 압박을 해올 거야·”
그녀는 탑 안에서의 전투는 쉽지 않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흑탑주도 탑 안에서 싸우고 싶어서 가만히 있는 건가요?”
라온이 시선을 내려서 흑탑의 최상층을 바라보았다· 검은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눈동자를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그래· 타고난 게 찌질하거든·”
체임버는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원하는 물건이나, 마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저 탑에서 절대 나오지 않아·”
“아····”
“그래서 나도 결전기 급의 마법을 쓸 수가 없어· 마법을 영창하고 있을 때 흑탑주가 기습을 해오면 굉장히 위험해지니까·”
그녀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나는 먼저 들어가서 흑탑의 마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놓을 테니, 너희는 숨을 돌리고 들어오도록·”
체임버는 탑에서의 싸움을 위해 마기를 더 줄여보겠다고 말하며 검은 차원 안으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체임버의 등에 고개를 숙이고서 뒤를 돌았다·
“준비됐지?”
뒤를 돌아보며 광풍전의 무인들에게 손을 까딱였다·
“자, 잠시만요! 다들 빨리 입고, 빨리 먹어요!”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새로운 제복과 전투 중에 먹을 내상약을 꺼내서 광풍전의 검사들에게 던져주었다·
“우리도 빨리 들어가자고, 근질근질해·”
마르타가 새로운 제복을 어깨에 걸치며 입맛을 다셨다·
“응· 만전····”
루난은 내상약을 씹어 삼키고서 고개를 꾸벅였다·
“이렇게 싸우고 싶은 건 처음이야·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군·”
버렌은 더 많은 성취를 얻고 싶은 듯 검병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확실히 성장했네·’
라온은 긴장을 투지로 바꾸는 버렌, 마르타, 루난을 보며 옅게 웃었다·
‘두려움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졌어·’
-그렇느니라· 강한 무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느니라·
라스는 무인에게는 기꺼운 일이라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사실····’
라온이 우측에 서 있는 마크 괴튼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크 괴튼 경이 가장 먼저 그랜드 마스터가 되기를 바랐는데·’
마크 괴튼이 그동안 쌓아 올린 시간이 있으니, 그가 가장 먼저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를 바랐는데, 아쉽게도 홀로 각성을 하지 못했다·
-흠, 저 녀석은 조금 다르게 될 것 같구나·
라스가 마크 괴튼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조금 다르게?’
-그렇느니라· 묶였던 것들이 조금 더 강하게 터질 것이야·
녀석은 분명 좋은 일일 거라며 픽 웃었다·
‘뭔지는 몰라도 좋은 일이라면 다행이네·’
라온은 마크 괴튼에게 손가락을 치켜들어 주고서 렌시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렌시아·”
멍하니 서 있는 렌시아의 어깨를 잡고 은은한 미소를 그려주었다·
“네가 해줄 일은 다 끝났으니, 이제 우리를 믿고 동생들이랑 기다리고 있어·”
라온이 뒤에 있는 흑탑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저 탑을 부수고 올게·”
“네· 여기서 기다릴게요·”
렌시아는 이제 절망이라는 족쇄를 벗어난 듯 그 나이대의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숙이자, 허공에서 로엔이 나타나 렌시아의 뒤에 섰다·
“물론입니다· 잘 모셔드리고 오겠습니다·”
로엔이 고개를 끄덕이고 렌시아의 손을 잡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구!
우측 건물들이 무너지며 미쳐 다 잡지 못한 마물들과 놈들에게서 도망치는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키아아아아!
마물들은 기괴한 포효를 내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마기의 불꽃을 뿜어냈다·
“어딜 감히!”
버렌이 앞으로 나아가 검을 그어 내리자, 푸른 바람이 불어와 마물들의 몸을 수십 조각으로 갈라버렸다·
“허어억····”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마물들에게서 도망치던 몬티로의 주민들은 다리를 떨며 버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뇨·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버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 렌시아 누나?”
마물들에게서 도망쳤던 사람 중 열두어 살로 보이는 소년이 렌시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처음 몬티로에 와서 로엔과 만났을 때 술과 음식을 가져왔던 가이드 소년이었다·
“페린?”
렌시아도 그 소년을 알고 있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 무사했구나!”
페린은 다행이라고 외치며 렌시아에게 다가갔다·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쪽으로··· 어?”
렌시아가 페린을 향해 다가가려고 할 때 라온이 손을 들어서 길을 막았다·
“라온 님?”
“가면 안 돼·”
라온은 렌시아가 페린을 볼 수도 없게 그녀를 뒤로 보냈다·
“페, 페린은 괜찮아요·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랐고, 저를 많이 도와준 아이예요·”
렌시아는 페린만큼 착한 아이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몬티로의 결계가 사라지고, 이제는 마인들이 마기를 숨길 수 없게 되었지·”
라온이 페린의 눈동자에서 피어나는 새까만 기운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저놈은 마인이다· 그것도 상당히 강해·”
어린 육체 안에 마기를 숨기고 있지만, 자신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저 페린이라는 놈은 강한 마인이었다·
“저, 절대 아니에요! 누나 잘 알잖아! 설명 좀 해드려!”
페린은 절대 아니라고 말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로엔 님·”
라온이 페린의 처리를 부탁하며 로엔을 바라보았다·
“너도 마인이었구나····”
로엔은 본인을 가이드해주었던 열성적인 소년이 마인이었다는 것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스으으으!
하지만 그의 손길은 무정할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누, 누나! 살려줘!”
페린은 평범한 사람처럼 반항할 생각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몸을 수그렸다·
“자, 잠시만요! 페린이 그럴 리가 없어요! 잠깐만 봐주시면····”
렌시아가 페린의 눈물에 마음이 아려온 듯,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소매를 잡을 때였다·
퍼어어어엉!
그녀의 가슴 부근에서 마기의 폭발이 일어나며 살벌한 양이 피가 터져 나왔다·
“아····”
렌시아는 가슴 부근만이 아니라, 입에서도 검게 변한 피를 토하며 뒤로 넘어갔다·
“렌시아!”
라온이 쓰러지는 렌시아를 잡으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검은 심장이 박혀 있던 가슴 부위가 뜯겨나가 진짜 심장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를 갈며 렌시아에게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밀어 넣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페린이 어떤 수를 써도 막을 수 있도록 긴장을 풀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터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퍼어어억!
로엔은 그사이에 페린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고, 그를 제압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했지?”
그는 진심으로 분노한 듯 페린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저년· 아니, 이 몬티로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검은 심장은 내 작품이다· 내가 죽는다면 저 도움 안 되는 년도 죽이는 게 낫지·”
페린은 본인이 만든 검은 심장을 원격으로 터트렸다면서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본인이 만들었기에 터트릴 때도 감지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빌어먹을 놈들이 끝까지!
라스도 진정으로 분노한 듯 전신에서 푸른 서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제기랄!”
라온이 이를 갈며 신성을 모조리 쏟아부었지만, 본래부터 렌시아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마기에 의한 내부의 폭발이었기에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를 않았다·
“서, 성수도 뿌려보세요!”
도리안이 최고급 성수를 상처에 부었지만, 렌시아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져만 갔다·
“하아····”
라온이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전부 다 사용한 후에 몸을 일으켰다· 출혈은 간신히 멈췄지만, 렌시아의 상태는 여전히 심각했다·
“라온 님·”
렌시아가 떨리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손을 잡았다·
“미, 미안해요· 제게 몇 없는 고마운 아이여서····”
그녀는 페린을 믿어서 죄송하다며 숨을 헐떡였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말하지 말고, 천천히 숨을 내쉬어·”
라온이 렌시아의 상처에 성수와 약을 쏟아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으니, 동생들만····”
렌시아는 동생들의 이야기를 간신히 꺼내고서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죽지는 않았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중한 상태였다·
“렌시아 님은 제가 맡겠습니다·”
로엔이 페린을 빠르게 제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온은 렌시아의 손을 마지막으로 꽉 잡아주고서 로엔에게 넘겨주었다·
“이 안에도 치료사가 있을 테니, 어떻게든 구해내겠습니다·”
로엔은 조심스럽게 렌시아를 안아 든 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젠장····’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분노하기보다 먼저 동생을 생각하는 렌시아가 너무도 안쓰러웠다·
“하아아····”
라온이 깊은숨을 내쉬고서 검에 찍혀 있는 페린에게 다가갔다·
“흐흐흐····”
페린이 턱만 든 채 입매를 비틀었다·
“우리를 치면서 너희는 무사할 거라 생각했나? 내가 죽어도 다른 마인들이 끝까지 너희들을 물고 늘어질 거다·”
그는 저주와도 같은 말을 내뱉으며 키득거렸다·
“아니, 넌 죽지 않을 거야·”
라온이 손가락을 내려서 페린의 마나 회로에 만화공과 글래시아 그리고 가루누아를 밀어 넣었다·
“뭐, 뭘 해도 소용 없··· 끄아아아아악!”
이미 죽음을 각오했던 페린의 입에서 목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열기와 냉기 그리고 바람이 페린의 마나 회로를 헤집으며 그에게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전해주었다·
“그, 그만····”
페린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죽여달라며 핏줄이 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절대 풀리지 않게 만들었다·”
라온은 페린의 눈빛을 무시하고 몸을 일으켰다·
“거기서 흑탑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있어라·”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며 흑탑의 차원 앞에 섰다·
“저 탑을 부수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을 테니, 각오를 단단히 하도록·”
광풍전 모두에게 흑탑의 멸망을 지시하며 손을 내렸다·
“알고 있습니다····”
버렌이 입술을 꾹 내리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 기둥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부숴버릴 테니까·”
마르타가 검을 뽑으며 바드득 이를 갈았다·
“렌시아····”
루난은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렌시아의 이름을 읊조렸다·
“젠장! 젠장!”
“으아아아아아!”
도리안은 본인의 무능함을 탓하며 발을 굴렀고, 크레인은 머리를 마구 비비며 소리를 질렀다·
“광풍전 진입·”
라온이 제천검을 뽑으며 흑탑의 차원 안으로 들어갔다·
광풍전의 검사들도 자신을 따라 어둠이 흐르는 세계로 걸음을 내디뎠다·
우우우우웅!
이 공간을 지배하는 마기가 전신을 짓눌러왔다·
하지만 들끓어 오른 분노는 오히려 마기를 받아들이며 이전보다 더 강한 기운을 전해주었다·
자신이 지닌 <분노>는 마계 군주의 권능이니, 이런 마기 따위는 먹어치우는 게 당연했다·
“라온 지그하르트!”
피부가 새까만 마인이 거마병을 타고 쇄도해왔다· 거마병이 자신을 향해 저택보다도 거대한 주먹을 내리찍어왔다·
“꺼져라·”
라온이 분노를 담아낸 제천검을 그어 내리자, 거마병과 그 위에 타고 있던 마인이 반으로 찢겨 나갔다·
고오오오오!
라온은 거마병을 죽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흑탑을 향해 걸어가며 길을 막는 마인들과 마물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퍼어어어어억!
그의 검이 지나갈 때마다 마물들이 터져나가고, 마인들의 목이 꺾였다· 거친 걸음 뒤에 남는 건 검은 피와 흩어진 마기뿐이었다·
라온의 압도적인 무력과 섬뜩할 정도의 분노에 오웬의 기사와 발카르의 마법사들마저 굳어버렸다·
“너, 위험하군·”
오른팔에 검은 방패를 걸치고 있는 적발의 중년인이 길을 막아섰다·
“마장랑 제플·”
지금 흑탑 쪽의 지휘를 맡은 층주였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 같았다·
“여기까지다·”
마장랑 제플은 이 이상 보내지 않겠다는 듯 어깨에 걸치고 있던 방패를 땅으로 던졌다·
쿠우우웅!
방패는 땅에 흐르는 마기를 먹어 치우고, 연합군 전체를 막아서는 거대한 벽을 세워졌다· 두껍고도 단단하여 쉽게 뚫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막아보든가·”
라온이 마장랑 제플이 일으킨 마기의 벽을 향해 회천을 그었다· 회전하는 불길이 마기로 타오르는 벽을 가르고, 그 뒤에 있는 마장랑의 몸까지 베어버렸다·
“이, 이건 탑주님이 주신 아티····”
마장랑은 방패가 일격에 깨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듯 경악 어린 눈동자를 뒤집은 채 추락했다·
“····”
라온이 마장랑의 시체를 밟고 나아가 흑탑의 앞에 섰다· 어디까지 이루어져 있는 알 수 없는 거대한 탑을 굽어보다가 창궁검의 창궁대연을 펼쳐냈다·
치아아아아아아!
분노가 담겨 있는 창대한 하늘이 마기를 가르고, 탑의 중앙을 후려쳤다·
탑을 휘감고 있던 마기가 겁을 먹은 듯이 밀려나며 금이 갔던 중층의 벽이 박살 나고, 그 안에 있던 마인들이 불꽃에 타오른 채 추락했다·
“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라온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마인들을 굽어보며 서슬 퍼런 눈동자를 번뜩였다·
“너희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