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6화
“아····”
라온은 흑발의 중년인을 보자마자, 싫은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계셨습니까?”
“휴양 삼아 쉬러 왔는데, 네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흑발의 중년인은 껄껄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군가 했더니, 허허탱이로구나·
라스는 김이 식었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허허탱이?’
-맨날 허허허! 하는 영감이니까· 허허탱이지·
녀석은 그게 맞지 않냐며 고개를 저었다·
‘틀린 말은 아니로군·’
라온은 중년인을 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무사하셔서 다행이네·’
갑자기 말을 걸어온 흑발의 중년인은 변장을 한 로엔이었다· 살왕이라 불리는 남자답게 연기력이 자연스러웠다·
“몬티로는 어때? 여유로우면서도 시끌벅적하지 않나?”
“저는 오늘 도착해서 잘 모릅니다· 일 때문에 온 거기도 하고·”
“일? 업무는 밑에 애들한테 시키고, 놀러 다닐 생각이겠지·”
로엔은 다 보인다며 피식 웃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도 완전 다른 색의 중년인으로 변한 게 놀라웠다·
“아닌데요?”
라온은 퉁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친구는 누구요?”
로엔의 옆에 서 있는 백발의 남자가 눈매를 좁혔다·
‘강하군·’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데, 느껴지는 무력이 마스터 최상급 이상이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무인이었다·
“내가 은혜를 입은 어르신의 아들일세·”
로엔은 나름 친분이 있는 사이라며 옅게 웃었다·
“그렇군· 그럼 대화들 나누쇼· 나는 가볼 테니·”
“오늘도 말동무를 해줘서 고맙네· 칼롭·”
“나도 즐겼소·”
칼롭이라 불린 백발의 남자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적였다·
“렌시아?”
그가 해변을 떠나기 위해서 등을 돌리다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렌시아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칼롭 님! 안녕하세요!”
렌시아는 친오빠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배낭을 꼭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네 손님이냐?”
“네· 오늘부터 도와드리게 되었어요·”
“열심히라 보기 좋구나·”
칼롭은 렌시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떠났다·
“숙소는 어디로 정했지?”
로엔은 칼롭이 떠나자마자, 어디에 묵고 있는지를 물었다·
“저기 언덕 위에 있는····”
“발로렌스? 하긴 네가 갈 곳이 거기밖에 없긴 하지·”
그는 돈을 쓰고 싶은 게 뻔히 보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발로렌스에 묵고 있는데,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로엔은 거부권 따위는 없다는 듯 따라오라고 말하며 몸을 돌렸다·
“하아····”
라온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 렌시아를 불렀다·
“오늘은 저 아재랑 술을 마셔줘야 할 것 같으니까· 내일 아침에 다시 와·”
내일 오라고 말하며 오늘의 일당을 건네주었다·
“이, 이미 받았는데요?”
렌시아는 처음에 주었던 은화를 꺼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팁이고·”
라온은 줄 때 받으라고 말하며 은화를 던졌다·
“감사합니다!”
렌시아는 빠르게 던진 은화를 가볍게 받아내고서 고개를 숙였다·
“빨리 좀 와라· 젊은 놈이 느려 터져서는·”
로엔은 정말 아버지의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건들거리며 자신을 불렀다·
“예에····”
“내가 미리 와봤는데, 여기가 생각보다 넓더구나· 볼 것도 많아· 일단 서쪽 동굴이····”
라온은 렌시아를 집으로 보낸 후 로엔의 뒤를 따라갔다· 지루한 척 눈을 반쯤 감은 채로 그가 설명해 주는 몬티로의 정보를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서쪽 종유석 동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동쪽에 있다는 교회를 말할 때쯤이 되자, 로엔의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흐음· 저쪽에 앉거라·”
로엔은 바다가 보이는 창가의 테이블을 턱으로 가리켰다·
“예····”
라온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로엔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너무 내 이야기만 했나?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뭐, 똑같죠· 일하고 쉬고, 일하고 쉬고, 반복·”
어깨를 살짝 돌리며 일만 했다고 답했다·
-여기서도 숨기는 것이냐?
‘사람은 없지만, 아티팩트나, 결계가 소리를 잡아낼 수도 있으니까·’
몬티로 자체가 이상한 것은 확실하기에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조심하는 게 좋았다·
“아버지는 잘 계시고?”
“너무 멀쩡해서 탈입니다·”
에드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일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로엔의 말을 듣고 문을 연 사람은 가이드였다· 그는 안주와 술이 올라가 있는 쟁반을 테이블로 가져왔다·
“부탁하셨던 술과 안주입니다·”
가이드 소년은 이 일이 익숙한 듯 고개를 숙이고서 테이블 위에 술과 안주를 내려놓았다·
“고맙구나· 페린·”
로엔은 페린이라 불리는 아이에게 팁을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닙니다! 두 분 좋은 시간 되세요!”
페린은 로엔에게 받은 팁을 소중하게 끌어안은 후 문을 닫고 떠났다·
“열심히 사는 아이들이야·”
“그렇죠·”
“너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나?”
로엔은 타박을 하듯이 입매를 비틀었다·
[오랜만입니다· 광풍전주님·]
다만 그는 말을 함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씨를 적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죠·”
라온은 냉랭한 대답을 흘리며 로엔과 똑같이 허공에 글을 썼다·
[걱정했는데, 무사하셨군요·]
[저도 제 변장과 연기를 믿기는 하지만, 혹여나 흑탑에게 들켰더라도 공격을 해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공격당하는 순간 이곳을 향한 의심이 확신이 될 테니까·]
로엔은 어쨌든 아직은 감시의 눈길이 붙지 않은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헌데 제가 이곳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주님을 만나기 전에 암시장의 요원과 접촉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작전을 알 수 있었죠·]
그는 암시장의 요원을 미리 만나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그럼 혹시 의심스러운 부분을 찾으셨습니까?]
[아뇨· 휴양을 즐기는 척하면서 몬티로 전체를 돌아보았지만,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
로엔은 입으로 잔소리를 퍼부으면서 손가락으로는 정중함을 담은 글을 적어 내려갔다·
[오히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여 문제가 없는 곳입니다· 몬스터가 한 번씩 날뛰지만,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나서기에 피해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로엔은 여러 모습으로 이곳을 찾아왔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라온이 가늘게 입술을 씹었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
라스도 찾지 못했으니까·
이 땅에 사기가 없다는 듣기 전에는 라스도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로엔이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헌데 영웅이라는 사람들은····]
[아까 해변에 있었던 백발의 청년을 기억하십니까?]
[네· 젊은 나이지만, 강하더군요·]
대검을 지니고 있던 백발의 청년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칼롭이라 불리는 무력대의 대장인데, 그런 친구가 다섯이 있습니다· 전부 마스터 최상급 수준인데, 대륙에 이름을 알릴 생각 없이 이곳에 머물고 있더군요·]
로엔이 칼롭의 이름을 말하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혹시 그들이 흑탑과····]
[저도 의심스러워서 계속 지켜보았는데, 아니더군요· 마기는커녕 저보다도 순수한 오러를 사용하고, 성격이 조금 거칠지만, 정말 영웅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흑탑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다며 술잔을 비웠다·
[그렇군요····]
라온은 칼롭을 만났던 상황을 다시 머리에 그려보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까지는 이곳에 흑탑이 있다는 게 믿어 지지가 않습니다·]
로엔은 본인이 지켜본 바로 이곳에 흑탑이 존재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전주님께서는 무언가 발견하신 게 있으십니까?]
[지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사기와 마기 외에도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게 있지만, 아직 확정을 지어서 말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전주님을 믿겠습니다·]
로엔은 옅게 웃으며 빈 술잔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로엔 님은····]
[저는 제 판단보다, 대주님의 뜻을 믿습니다·]
그는 스스로 지켜본 것보다 자신을 더 신뢰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주님은· 아니, 도련님은 어린 시절부터 저보다 많은 것을 보고 계셨으니까요·]
로엔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허허로운 웃음을 그리며 술을 마셨다·
[로엔 님····]
라온은 로엔의 진심을 느끼고서 술잔을 들고 있는 손을 떨었다· 누군가의 진심을 받는 것은 정말 기쁘면서도 또 무거웠다·
[이 모습으로 너무 오래 있어서 잠시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로엔은 새로운 얼굴로 다시 찾아오겠다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게 좋겠네요· 지금 광풍전과 중무전 검사들이 수를 나눠서 들어오고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럼 빨리 준비를 해야겠군요·]
그는 바로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며 가늘게 웃었다·
“내가 너무 잔소리만 했는지 얼굴이 죽상이구나· 늙으면 말이 많아져서 문제라니까·”
로엔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만 가보거라·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다· 아버지께 인사 전해드리고·”
그는 잘 가라는 듯 술잔을 든 손을 흔들었다·
“알겠어요····”
라온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 몸을 일으켰다·
“가게요····”
“멀리 안 나간다·”
손을 흔드는 로엔을 보지도 않은 채 숙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판단보다 나를 믿는다라····’
라온은 로엔이 손가락으로 써주었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찾아내자·’
이 완벽한 도시의 비밀을·
* * *
“후우····”
라온이 수평선 사이로 떨어지는 태양을 보며 가는 숨을 내뱉었다·
‘벌써 사흘이 지났나·’
사흘 동안 광풍전과 중무전 검사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잠입에 성공했고, 암시장 요원들도 모습을 감춘 채 진입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몬티로의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관광객도, 상인들도, 몬티로의 주민들도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즐겼고, 불행한 일을 겪는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 역시 돈을 퍼부어 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 하나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흑탑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체임버 님도 화를 내고 계시겠지·’
광풍전, 중무전 그리고 암시장의 요원까지· 많은 정예 부대를 투입했음에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으니, 그녀도 답답함에 발을 구르고 있을 것 같았다·
스읍·
라온이 술병을 비우고서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흥·”
렌시아가 뜨개질을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 아이도 평범했지·’
마인이 변장을 했을 수도 있기에 렌시아에게서도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딱 그 나이대에 웃음이 많은 아이일 뿐이었다·
딱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를 의심하는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렌시아·”
“아, 네!”
렌시아가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흘 동안 나름 잘 대해주었더니, 이제는 나름 친근해진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네·”
“케이든 님도 보셨다시피 좋은 일밖에 없으니까요·”
렌시아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씨도 좋고, 바다도 맑고,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잖아요· 가끔 몬스터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용사님들이 다 처리해 주시고·”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 수가 없다며 손을 모았다·
“그런가····”
라온이 술병을 흔들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아쉽게도 세상에는 행복한 일만 존재하지 않아·’
이제 완벽해진 듯한 별관에서도 한 번씩 부정적인 기운이 피어날 때가 있다·
시녀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고, 시아의 상태를 걱정하는 실비아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본인의 죄를 잊지 못한 에드가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전생 그리고 현생· 두 번의 삶을 살아오면 완벽한 삶은· 완벽한 행복 따위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사람과 사는 이상 무조건적인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떨어졌으니까· 이제 출발할까?”
라온이 빈 술병을 내려놓고서 턱을 까딱였다· 오늘은 지하 투기장이 열리는 날이다· 이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만 열리기에 지금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네· 안내해 드릴게요!”
렌시아는 뜨개질을 하고 있던 것들을 파란색 가방에 넣고서 몸을 일으켰다·
“입장료가 꽤 들어가는데 괜찮으시죠?”
그동안 돈을 펑펑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녀는 당연히 될 거라는 듯이 물어왔다·
“물을 걸 물어·”
“그럼 갈게요!”
렌시아는 따라오라는 듯 방긋 웃고서 대로를 걸어갔다· 처음에는 자신을 무서워했지만, 돈 많은 한량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지금은 친숙하게 대하고 있었다·
“이쪽이에요·”
그녀는 자신을 호텔 발로렌스 뒤편에 있는 작은 교회로 데리고 갔다·
“교회? 여기에 투기장이 있다고?”
“네· 신기하죠?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나 봐요·”
렌시아는 본인도 신을 믿지 않는다는 듯한 말을 흘리며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2m는 넘을 것 같은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목사의 복장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렌시아는 언제나 그렇듯이 어른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목사님께 입장료를 주시면 돼요·”
그녀는 목사인지 깡패인지 모를 사람에게 입장료를 주라며 손짓했다· 실제로는 무서운 듯 손끝이 흔들렸다·
“흠·”
라온은 살짝 눈매를 찌푸리며 금화를 던져주었다·
“신의 은총이 있으시길·”
근육 덩어리 목사가 손을 젓자, 천사의 동상이 있는 바닥의 열리고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튀어나왔다·
“가요·”
렌시아를 따라서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호텔 발로렌스의 로비보다도 더 밝고 화려한 공간이 드러났다· 찬란한 조명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가 지하 도박장이에요· 밖에 보셨던 도박장보다 배율이 2배에서 10배 이상으로 높죠·”
렌시아는 웬만해서는 안 하는 게 좋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런 말 하면·”
“네· 더 하시겠죠· 죄송해요····”
그녀는 본인이 실수를 했다는 듯 살짝 혀를 깨물었다·
“····”
라온이 도박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여기에서도 사기는 느껴지지 않아·’
몬티로는 관광지답게 꽤 많은 도박장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도박장에서조차 사기와 느껴지지 않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마기도 없느니라·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콧잔등을 구겼다·
‘역시 말이 안 돼·’
돈을 잃어서 절망하고, 돈을 따서 기뻐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사이로운 기운은 나오지 않고 있다니, 이건 어떻게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투기장은 어디지?”
“이 아래에 있어요·”
렌시아는 다음 층으로 가자고 말하며 넓은 도박장을 가로질러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천장이 높기 때문인지 도박장에 내려갈 때보다 훨씬 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우와아아아아!
옅은 조명이 피어나는 입구 앞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피를 들끓게 만들고, 정신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이미 투기장이 열려서 싸움이 시작된 것 같았다·
“시작된 것 같아요!”
렌시아는 빨리 가자며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가라·”
라온이 여유롭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렌시아가 입구 앞에 멈춰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파란색 창을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청년이 렌시아의 길을 막은 채 눈매를 찌푸렸다·
“아, 펠릭스 님! 손님을 투기장으로 안내해 드리고 있었어요!”
렌시아는 창을 든 청년을 알고 있는 듯 방실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손님?”
펠릭스라 불린 청발의 청년이 라온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노는 건 좋지만, 이런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너무 하지 않냐며 불편한 숨을 내뱉었다·
“····”
라온은 펠릭스라는 남자가 아니라, 밝게 웃고 있지만, 가방을 쥐고 있는 손을 떠는 렌시아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빈틈을 찾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