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5화
-사기가 아예 없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
라스가 콧방귀를 뀌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마기도 없느니라····
녀석은 본인이 느낄 수 있는 마기도 완전히 사라졌다며 푸른 눈동자를 떨었다·
‘정말 마기도 안 느껴지는 거야?’
라온이 헛바람을 삼키는 라스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하느니라· 본왕이 영체 상태라 정상적인 감각은 아니지만, 마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라·
라스는 장담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기와 마기처럼 부정적인 기운은 어디에서나 존재해야 하는 거 맞지?’
라온이 몬티로의 맑은 하늘을 올려보며 입술을 살짝 씹었다·
-어디든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니라·
라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인간답지 않은 네놈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생물이니라· 본인이 금화 하나를 얻은 것에 기뻐하다가도, 이웃이 10개를 얻었다고 하면 그 기쁨이 질투와 분노가 되느니라·
녀석은 마족이나, 천족보다도 더 귀찮은 존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복잡한 존재이기에 동물들이 털을 떨어뜨리듯 숨을 쉬는 것만으로 사기와 마기처럼 부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느니라· 물론 너무도 미세한 양이기에 누군가에게 악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지· 하지만····
라스가 동그란 손을 들어서 허공을 내리쳤다·
-이 땅에는 그 작디작은 마기도 존재하지 않느니라· 인간들이 모여 있는 이상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니라·
녀석은 분명 어떤 장치가 숨겨져 있을 거라며 눈동자를 굴렸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라온이 다시 앞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사기가 느껴지지 않은 곳은 없었으니까·’
지그하르트를 출발한 이후 항상 <사기 탐지>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아주 자그마한 사기도 느껴지지 않은 곳은 이 몬티로뿐이었다·
몇 사람이 살지 않는 소규모 마을에서도 사기의 알갱이들이 느껴졌는데, 이곳에는 그 미세한 흔적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해볼까·’
혹시나 하여 다시 사기 탐지를 운용해 보았지만, 사이로운 기운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투명하고도 맑은 새벽 샘물을 보는 것처럼 천지가 깨끗하게만 다가왔다·
-본왕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라스가 미간을 깊게 구겼다·
-여전히 마기가 느껴지지 않느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니라·
녀석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라며 입술을 씹었다·
‘그럼 무엇이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도····’
라온이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손끝에 힘을 주었다·
‘여기가 이상하다는 건 맞네·’
사검마가 죽기 전에 했던 말들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부터 시작이겠지만·
“아직 멀었어? 나 빨리 물건 사러 가야 하는데?”
도리안은 급하다는 듯 발을 구르며 렌시아를 재촉했다·
“저기예요· 가장 비싼 숙소는 전망 때문에 언덕 위에 있거든요·”
가이드를 맡은 렌시아가 웃으며 언덕 위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하얀 건물이 각진 파도의 형태로 솟아 있었는데, 관리를 잘했는지 하얗게 빛나서 굉장히 고급스럽게 보였다·
“와, 저긴 좀 비싸겠는데요?”
어깨에 대검을 걸치고 있는 크레인이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럼 넌 여관에서 묵던가·”
라온은 돈 많고, 건방진 한량의 모습을 연기하며 턱을 까딱였다·
“아, 아닙니다! 저는 상회주님을 지켜야죠!”
크레인은 절대 아니라고 말하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를 보내주세요! 제발!”
도리안은 최고급 숙소보다 빨리 물건을 사는 게 중요한 듯 입맛을 다셨다·
“어휴····”
라온은 도리안의 뒤통수를 치며 빨리 가기나 하라고 중얼거렸다·
“세 분은 상인이시죠?”
렌시아가 녹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물었다· 흑발에 연두색 눈동자· 지금은 귀여운 정도지만, 성장하면 눈에 띄는 미인이 될 것 같은 아이였다·
“그래· 이것저것 주워다가 먹고 살고 있지·”
라온이 하품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상회의 주인이 그런 말씀을 하면 안 되죠! 자부심을 가지세요!”
도리안은 상인의 자세를 보여주라며 말아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너나 가져· 물려줄까?”
라온은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제, 제가 어떻게····”
도리안은 대형 상회인 세피아의 정식 후계자이면서도 부담스럽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그럼 조용히 따라오기나 해· 둘 다·”
라온은 도리안과 크레인에게 입을 다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맞춰주는군·’
도리안은 진심을 보여주어서 말할 게 없을 정도였고, 크레인도 나사가 빠진 듯한 호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누구에게 보여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이곳은 흑탑의 안방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라온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대비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은 채 렌시아의 뒤를 따라서 언덕을 올라갔다·
“도착했어요!”
한참을 걷던 렌시아가 작은 발을 멈춘 채 우측으로 손을 뻗었다·
“여기가 몬티로 최고의 호텔 발로렌스예요!”
그녀는 거대한 호텔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힘차게 손을 뻗었다· 물론 아직 어리기에 귀엽게 보이기만 했다·
“저기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시면 돼요!”
렌시아는 호텔의 입구를 가리키며 싱긋 웃었다·
“너는 안 들어가나?”
라온이 렌시아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가이드를 맡은 아이들은 숙소를 소개해 주고, 그곳의 지배인에게 팁을 받는데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다·
“아, 저는 마차를 챙겨야 하니까요·”
렌시아는 작은 손으로 쥐고 있는 말의 고삐를 흔들며 웃었다·
“그래?”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먼저 숙소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호텔의 문이 열리고, 회색 정장을 입은 노신사가 걸어 나왔다·
“몬티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발로렌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노신사는 손을 가슴에 올리며 라온과 도리안, 크레인에게 허리를 굽혔다·
“저는 발로렌스의 지배인을 맡고 있는 아펠이라고 합니다·”
그는 몸을 곧게 세우며 스스로를 아펠이라고 소개했다·
“케이든·”
라온은 현재의 위장을 하고 있는 상회주의 이름을 꺼냈다·
“반갑습니다· 케이든 님·”
거만하게 이름만 말했음에도 아펠은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유지했다·
“렌시아· 네가 이분들을 모시고 온 게냐?”
아펠은 마차를 호텔 외곽으로 끌고 가려던 렌시아를 보며 턱을 끄덕였다·
“아, 네!”
렌시아가 헤헤 웃으며 아펠에게 다가갔다·
“그럼 말을 해야지· 이것아·”
아펠은 렌시아를 오랫동안 봐온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팁을 건네주었다·
‘····’
라온이 싱긋 웃고 있는 렌시아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손을 떠네?’
렌시아는 허리 뒤로 젖힌 손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마차를 모느라, 힘이 들었나?’
입구에서 이 언덕까지 말고삐를 쥐고 왔으니, 손에 힘이 빠진 것 같았다·
-쯧쯧· 저런 꼬맹이한테 일이나 시키고·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의 나는 라온 지그하르트가 아니라, 한량 상회주 케이든이라고·’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돈 자랑을 할 수는 있지만, 다정하게 챙겨줄 수는 없었다·
‘흠····’
라온이 렌시아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발로렌스의 지배인 아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사람에게도 느껴지는 게 없군·’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호텔을 운영할 정도라면 뒷세계와도 연결이 되어 있을 텐데, 아펠에게서는 사기와 마기는커녕 오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평범한 노인이었다·
“들어오시죠·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펠은 렌시아와의 대화를 끝낸 후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전망 좋은 방 말고· 최고의 방으로·”
라온은 돈은 상관없다고 말하고서 아펠에게 금화를 던졌다·
“허허, 알겠습니다·”
아펠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허리를 살짝 굽힌 채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아펠이 열어준 문을 넘어서 호텔로 들어갔다·
대성당처럼 높이 솟아오른 천장 아래, 웅장하게 내려앉은 샹들리에가 자신들을 환영하듯 찬란한 빛망울을 쏟아내고 있었다·
‘분명 화려한데····’
라온은 화려함이라는 글자를 펴 바른 듯한 호텔 내부를 보며 눈썹을 살짝 내렸다·
‘왜 어두워 보이는 걸까?’
* * *
“음····”
라온이 호텔을 나오며 입맛을 다셨다·
‘좋긴 좋군·’
몬티로 최고의 숙소답게 발로렌스는 방 전체를 화려하면서도 깔끔하게 꾸며놓았다·
그중 최고는 바다가 보이는 창문이었다· 한쪽 벽 자체를 강화 유리로 만들어서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돈이 좋긴 좋아·”
크레인은 방에서 나오길 싫었다며 입맛을 다셨다·
“이, 이제 시장 가도 되죠? 살 게 너무 많아요!”
도리안은 금단증상에 걸린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며 보급을 해야 된다고 외쳤다·
“아직 안 돼·”
라온이 덜덜 떨리는 도리안의 어깨를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대략적인 안내는 받고 헤어지자고·”
“그게 맞지·”
“아····”
크레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리안은 참기 힘들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디부터 가실래요? 아직 낮이라, 어디든 볼 수 있어요·”
렌시아가 앞으로 다가와서 방긋 웃었다·
-밥! 일단 밥이 먼저이니라!
라스가 밥부터 먹자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돈도 많은 놈인 굶고 다니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
녀석은 빨리 밥이라고 외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흠····”
라온은 떨림이 가라앉은 렌시아의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식사부터·”
“알겠습니다! 최고급 해산물을 다루는 식당으로 가겠습니다!”
렌시아는 이제 자신의 성향을 파악한 듯 최고급 식당으로 안내를 하겠다며 앞장서서 언덕을 내려갔다·
“가자·”
“예·”
“예····”
라온은 도리안의 뒷덜미를 툭 치고서 렌시아의 뒤를 따라갔다·
렌시아는 호텔 발로렌스를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닷가 근처에 있는 푸른 간판의 식당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바다의 풍경>이 몬티로에서 해산물을 가장 잘 다루는 곳이에요!”
그녀는 재료와 셰프 모든 게 최고라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최고라····”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시고서 식당의 문을 열었다·
“너는 안 가?”
도리안이 계단 옆에 걸터앉은 렌시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죠·”
렌시아는 본인이 저길 어떻게 들어가냐는 듯 반대로 고개를 저었다·
“배고프잖아·”
“아, 저 빵 가져왔어요·”
그녀는 걱정 말라는 듯 파란색 배낭에서 빵을 꺼냈다·
“회주님····”
도리안이 렌시아도 같이 먹자는 듯 라온을 바라보았다·
“····”
라온이 눈동자를 내려 렌시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 아니에요! 여기 정말 비싸요! 제가 먹을 수가 없는 곳이라구요·”
렌시아는 사줄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며 두 손을 흔들었다·
“비싸다고?”
라온이 미간을 깊게 구겼다·
“따라와라· 그리고 앞으로는 내 앞에서 비싸다는 소리 하지 마·”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어, 네?”
“오라고·”
라온은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바다의 풍경>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도리안이 판을 잘 깔았군·’
정으로 이끌었다면 무시했겠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돈으로 흘러갔기에 렌시아를 먹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키야아아!
라스는 식당 안에서 풍겨오는 버터와 해산물 냄새에 감동한 듯 깊은 탄성을 흘렸다·
-이거지! 본왕과 잘 어울리는 고급스러움이니라!
녀석은 이 식당의 모든 음식을 주문하라며 턱 짓을 했다·
“어서 오십시오!”
검은 조끼를 걸치고 있는 식당의 주인이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여왔다·
“음 렌시아?”
그는 고개를 들어 올리다가 렌시아를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모셔 온 손님이냐?”
“네! 최고의 식당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렌시아는 발로렌스의 지배인을 보았을 때처럼 환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너밖에 없구나!”
식당 주인은 감격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렌시아에게 은화를 던져주었다·
“아····”
렌시아는 팁을 받으려다가 손에 쥐고 있던 빵을 땅에 떨어뜨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녀는 바로 고개를 숙이고 빵과 팁을 주우려고 했지만, 당황했는지 손을 떨면서 몇 번이나 은화를 놓쳤다·
“여기·”
도리안이 대신 은화를 주워서 렌시아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렌시아는 언제 손을 떨었냐는 듯 방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 아이까지 네 명·”
라온이 자리나 안내를 하라며 식당 주인에게 턱 짓을 했다·
“렌시아까지? 아, 예! 저쪽 창가 자리로 가시죠!”
가이드를 맡은 아이에게 음식을 사주는 경우도 흔했기에 주인은 별말 없이 자신들을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부 가져와·”
라온은 메뉴판에 있는 모든 음식을 훑어내린 후 금화를 던져주었다·
“빠르게 대령하겠습니다!”
식당 주인은 자신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음식을 대령하려는 듯 깊게 허리를 굽히고서 주방으로 달려갔다·
-네, 네놈····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왜? 뭔가 발견하기라도 한 거야?’
-그게 아니니라!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느니라!
‘더 중요한 거?’
-그래! 네놈이 부자로 변장하면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주문한다는 것을 깨달았느니라! 그냥 맨날 변장해 주면 안 되냐?
녀석은 마기나 사기를 발견한 게 아니라,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길쭉한 웃음을 그리고 있었다·
‘····’
라온이 차게 식은 눈으로 라온을 굽어보았다·
‘이 일만 끝나면 넌 나딘빵 파티다·’
* * *
-크으으!
라스는 식사를 끝낸 후 깊은 탄성을 흘렸다·
-최고의 식당이라고 자신할 만하구나! 재료고 신선하고, 조리법도 완벽하느니라·
녀석은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며 통통한 배를 두드렸다·
“그만 일어나자·”
라온이 빈 술잔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저, 저기····”
렌시아가 눈치를 보며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여기 남은 음식 좀 싸가도 될까요?”
그녀는 거의 손을 데지 않은 음식들을 가리키며 눈치를 살폈다·
“어! 상관없어!”
도리안은 가져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해산물이라 오늘 안 먹으면 맛없을 텐데?”
크레인은 괜찮겠냐는 듯 눈을 끔벅였다·
“아, 동생들 가져다 주려구요·”
렌시아는 집에 동생들이 있다며 에헤헤 웃었다·
“아, 동생이 있었구나·”
“그럼 괜찮겠지· 그래도 날음식은 놔둬· 배탈 날 수 있으니까·”
도리안과 크레인은 동생이 있다는 렌시아가 안쓰러운지 직접 포장을 도와주었다·
“····”
라온은 잠시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새 음식이라도 시켜줄 줄 알았는데?
라스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껍데기를 뒤집어쓴 케이든이라는 인간이 그 정도의 정은 없더라고·’
라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돈으로 자극했으면 또 모르지만·’
피식 웃으며 식당 아래에 있는 해변으로 내려갔다·
‘이곳에도 사기가 없군·’
조금 전에 들렸던 식당 <바다의 풍경>에서도, 지금 서 있는 해변과 바다에서도 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흑탑이든 뭐든 이곳에 특별한 결계나 아티팩트를 설치해 둔 건 분명해·’
지금부터의 문제는 그걸 어떻게 찾아내느냐고·
‘어떻게 해야 할까나····’
라온은 관자놀이를 만지며 입맛을 다실 때 뒤로 도리안과 크레인이 다가왔다·
“바다가 훤하네요· 속이 다 보여·”
크레인은 바다에 감동이 있다며 탄성을 흘렸다·
“그러게· 저거 다 상품으로 쓸 수 있겠는데?”
도리안은 바닷속을 살피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너희는 그냥····”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손가락을 저었다·
“일을 시작해라· 놔둬 봐야 의미가 없겠어·”
도리안이 조만간 미칠 것 같아서 먼저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헉! 넵!”
“알겠습니다·”
신나서 대답하는 도리안과 달리 크레인은 고개만 까딱이고서 해변을 떠났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렌시아가 배낭의 끈을 꼭 잡은 채 고개를 꾸벅였다·
“다음은····”
라온이 해변에 밀어닥치는 옅은 파도를 보며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이게 누구야?”
생전 처음 보는 흑발의 중년인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