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4화
라온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사검마를 보며 신검과 마검을 세웠다·
‘오러의 양은 저쪽이 위야·’
사흑련의 절반이라는 산 제물을 바쳤기에 사검마가 운용하는 사기의 양은 자신의 오러를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정면에서 힘 대 힘으로 싸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놈보다 우위에 있는 건····’
검술이겠지·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올린 만검은 초월에 오르며 더욱 찬란한 꽃을 피워냈다· 사검마의 검술은 초월자 중에서도 난해한 편이지만, 자신의 검에만 집중한다면 유리한 싸움을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육체와 체력도 내 쪽이 더 나아·’
사검마가 젊어졌다고 해도 라스의 힘을 강탈한 자신의 육체와 체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 새롭게 돋아난 저 보라색 팔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
‘거기다 한 가지가 더 있지·’
얼마 전 글렌과의 대련을 통해서 배운 요소들을 이용한다며 분명 사검마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죽을 만큼 힘이 들겠지만·
“시간 벌이라····”
사검마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채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본좌는 말이다· 네놈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보라색으로 물든 손을 내리며 살기로 번뜩이는 미소를 그렸다·
“어디, 뼈와 살을 발라도 그 여유가 남아 있을지 궁금하구나·”
사검마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발을 굴렀다· 지축이 뒤틀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놈의 발밑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피아아아앙!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던 사검마의 사기가 칼날의 형태로 다듬어지더니, 라온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수천 명의 궁수가 동시에 독화살을 날린 것 같은 매서운 공세였다·
후우·
라온은 밀려오는 사기의 칼날들을 보며 고통이 어린 숨을 내쉬었다·
‘상처를 입어서는 안 돼·’
사기에 적중 당했던 허리의 상처가 조금씩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이 이상 피해를 입는다면 전투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에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라온이 쇄도해오는 사기의 칼날을 향해 나아가며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쿠와아아아아아!
신검의 불꽃이 나선으로 솟아오르며 붉은 해일을 일으켰고, 마검의 서리가 얼음꽃으로 이루어진 정원을 그려냈다·
쿠우우웅!
만화공 염해무결과 화령의 조화· 불꽃의 파도 속에서 솟아오르는 냉기의 꽃잎들이 천지사방에서 밀려오는 사기의 칼날과 격돌했다·
콰드드드드득!
우측에서 밀려든 사기는 염해무결의 불꽃 앞에서 검은 재가 되어 가라앉았고, 좌측에서 쏟아진 사기의 물결은 화령의 냉기에 얼어붙어 바스러졌다·
터엉·
라온은 방어에 만족하지 않고, 얼어붙은 사기를 짓밟으며 사검마에게 돌진했다· 사검마의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 신검으로 적섬을 그어 내리고, 마검으로 서리연을 펼쳤다·
날카로우면서도 극쾌를 담아낸 두 검격이 사검의 목과 가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쩌어어어엉!
사검마는 전부 다 보인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서 사선으로 틀어 올린 검으로 적섬과 서리연을 한 번에 막아냈다·
“느리구나·”
그가 신검과 마검을 맞댄 채로 검격을 일으켰다· 보랏빛으로 물든 검신을 따라 그려지는 거대한 반원· 사기의 규모가 너무도 압도적이었기에 눈앞으로 보라색 반달이 떠오른 것 같았다·
‘힘으로 밀어내려는 건가·’
사검마는 본인에게 유리한 점이 오러의 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힘으로 자신을 꺾으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그럼 검술로 버텨주마·’
라온이 장중한 검무를 펼치는 검희처럼 좌우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자세를 취했다· 신검을 내리그으며 무금향의 결을 휘감고, 마검을 치켜들며 백영섬의 호흡을 담았다·
후우우욱!
불꽃의 실로 이루어진 비단이 유려하게 펼쳐지며 밀려오는 사기의 물결을 가두고, 백색의 빛무리가 비단을 빠져나오는 사기의 조각들을 지워버렸다·
치이이이잉!
라온은 태화이보를 밟으며 나아갔다· 백영섬의 반격기로 사검마의 어깨를 노리며, 신검으로 은검몽을 펼쳐냈다·
쩌저저저정!
사검마는 사기로 이루어진 두터운 벽을 세워서 백영섬을 막아내고, 목을 향해 짓쳐 드는 은검몽은 직접 검을 들어서 쳐냈다·
“내게 다가오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사검마는 이 주변에서 피어나는 사기를 견딜 수 있겠냐며 비웃음을 흘렸다·
“네놈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라온은 사검마의 말을 무시하고, 놈에게 다가가 마검을 찍어눌렀다·
캬아아아앙!
사검마는 마검의 무게를 그대로 견뎌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그럼 그대로 죽거라·”
그가 마검을 막아낸 검을 비틀었다· 칼날 위에서 요동치던 사기가 검극에 응집된 채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중천포처럼 전방을 향해 쏘아내는 사기의 포탄이었다·
다만 사검마가 지닌 사기가 너무도 강대했기에 중천포처럼 힘을 응집시키는 시간 자체가 너무도 짧았다· 정신을 차린 순간 이미 놈이 쏘아낸 사기가 눈앞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아무리 빠르고 강한 검이라고 해도····’
라온이 태화삼보를 밟으며 물러나 신검을 세웠다·
‘하늘에는 닿지 않아·’
찰나의 순간을 나누고, 나눠서 창궁검의 진무유화를 펼쳐냈다· 끝없이 변해가는 하늘에는 그 무엇도 닿지 못하는 법· 사검마가 쏘아낸 사기의 포탄이 신검의 불꽃을 뚫어내지 못하고 꺾인 채 강바닥을 후려쳤다·
쿠와아아아아아앙!
사기가 폭발한 대지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덩이가 돋아났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밖에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터어엉!
라온은 튀어 오른 돌을 밟으며 사검마에게 다가가 적섬삼십육결을 펼쳐냈다· 일검에 서른여섯 방위를 찌르는 불꽃의 칼날이 놈의 전신을 휩쓸었다·
치이이이잉!
사검마는 검으로 원을 그려서 적섬삼십육결의 모든 방위를 차단했다· 보랏빛 사기가 만화공의 불길을 녹이며 끈적한 악취를 풍겨냈다·
캬아아앙!
라온은 태화보를 밟으며 사검마의 사각을 노렸다· 놈의 반격이 매서웠지만, 유검의 묘리로 사기를 흘리며 끝까지 따라붙었다·
“검술이 생각보다 조잡한데?”
라온이 이 정도로 되겠냐고 중얼거리며 회천을 그렸다·
“그 주절거림도 여기까지다·”
사검마가 회전하는 불길을 지워버리고, 발을 굴렀다· 물이 말라붙은 강바닥이 거미줄 형태로 갈라지며 어마어마한 사기를 뿜어냈다·
터엉!
라온은 대지에서 사기가 솟아오르는 순간 태화보를 밟아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따라붙는 사기를 지워버리기 위해서 신검을 그으려고 할 때 사검마가 길쭉한 웃음을 그렸다·
“그럴 줄 알았지·”
사검마는 처음부터 자신이 허공에 떠 있을 때를 노리려고 한 듯 보라색으로 물든 손을 들어 올렸다· 놈의 손아귀에서 보라색으로 번뜩이는 섬광이 튀어나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촤아아아아악!
라온은 공중에 뜬 채로 신검을 휘둘러 바닥에서 솟구치는 사기를 가르고, 마검을 내리쳐 사검마가 쏘아낸 보랏빛 섬광을 막아냈다·
우우우우웅!
일단 사기를 막아내는 건 성공했지만, 공중에 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육체 능력으로 버티기 위해서 멀쩡해 보이는 바위에 발을 디디려고 할 때 뒤편의 벽에서 검의 형태로 빚어진 사기가 치솟았다·
후우우우욱!
앞에서는 사기의 섬광이 아래와 등 뒤에서는 사기의 칼날이 쇄도해 오는 형세· 아직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기에 그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라온이 눈매를 찌푸리며 가루누아의 바람을 불러왔다·
쩌어어어어억!
녹색 바람을 타고 솟구친 목륜검이 짙은 살기를 피워내며 등 뒤로 짓쳐 든 사기의 칼날을 쪼개버렸다·
“이기어검인가·”
사검마는 어느정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가 네놈의 전력이겠구나·”
“글쎄·”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놈이 이기어검을 몰랐다면 끝까지 숨겼겠지만, 어차피 알고 있었을 테니까·’
자신이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건 이미 대륙 전체에 퍼져 있었기에 억지로 숨길 필요는 없었다· 제때 사용해서 이득을 보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럼 나도 진정한 사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마·”
사검마가 사기로 번쩍이는 검을 땅에 내리찍었다· 마른 강바닥에서 타오른 보라색 불꽃이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무시무시한 기파를 펼쳐냈다·
바드드득!
사검마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대지가 갈라진 채 떠오르고, 공간이 찢겨나간다· 격을 달리하는 무력의 발현이었다·
‘저 정도였다고?’
사검마에게서 피어나는 사기가 너무도 강하여 신검의 불꽃과 마검의 서리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심장이 꽉 조여들고, 팔과 다리에 둔탁한 떨림이 일어났다·
“시작· 아니, 끝을 내도록 하지·”
사검마가 비틀어진 웃음을 그리며 채찍을 후려치듯 검을 깎아내렸다·
후아아아아아앙!
가볍게 그어내리는 검격이었는데, 하늘이 보랏빛으로 갈라지며 천지를 뒤덮을 듯한 사기의 마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처음보다 검격이 배 이상 강해졌다·
으득·
라온이 어금니를 씹으며 셰릴의 쌍검술을 펼쳤다· 허공에 열 개의 원을 그리는 조화의 검술로 자신의 숨통을 노려오는 사기의 마물들을 베어버렸다·
하지만 사기의 마물이 너무도 많았고, 재생 속도가 빨랐기에 이기어검까지 운용하고 있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피이이익!
어깨와 허벅지의 살점이 뜯겨나가고, 고름이 찬 피가 흘러내렸다· 오러로 상처를 막으려고 했지만, 상처에 스며든 사기 때문에 지혈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가야해·’
상처를 입었다고 물러났다가는 사검마의 힘에 먹히게 될 것이다· 자신이 놈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돌진하는 것밖에 없었다·
터어어엉!
라온은 요동치는 사기를 즈려 밟으며 사검마의 좌측으로 들어갔다· 어깨와 허리, 허벅지에서 전해져오는 통증을 참고, 창궁검을 펼쳐냈다·
“생각 없이 달려드는 꼴이····”
사검마는 창궁검의 검식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며 턱을 치켜들었다·
“제 날개가 타는지 모르는 부나방 같구나·”
그는 벌레처럼 안쓰럽다고 중얼거리며 사검을 휘둘러 자신을 밀어냈다·
“누가 부나방인지는 지나봐야 알 일이지·”
라온은 밀려드는 사기를 흘려버리고, 사검마에게 짓쳐 들었다· 광아검과 설풍검결을 펼쳐내며 사검마의 공간과 시간을 빼앗았다·
“흥·”
사검마가 콧방귀를 뀌며 검을 비틀자, 허공에서 사기로 이루어진 검이 튀어나와 광아검과 설풍검결의 흐름을 끊어냈다· 놈은 빈틈을 노리고 쏘아낸 목륜검까지 쳐내며 완벽한 방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반응까지 빨라진 건가?’
사검마는 사기의 불꽃을 두른 이후로 자신의 검을 감각적으로 쳐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힘과 육체 능력만 강화된 게 아니라, 감각마저 상승한 것 같았다·
‘조금 더 빠르게····’
라온이 광아검과 설풍검결의 연계 속도를 높이려고 하다가 우뚝 멈춰섰다· 검을 잡고 있기 힘들 정도로 팔과 다리가 떨리고, 입과 코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이제야 온 모양이군·”
사검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리를 세운 채 검을 내렸다·
“네놈은 본좌의 사기에 중독되었다·”
* * *
“그래도 오래 버텼군· 칭찬 정도는 해주도록 하지·”
사검마는 검을 멈춘 라온을 보며 길쭉한 웃음을 그렸다·
‘그래· 지금까지 싸운 게 용한 일이지·’
현재의 나는 사기의 원천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사흑련의 무인만이 아니라, 수백이 넘는 일반인까지 제물로 바쳤기에 지금 자신의 주변은 원한과 사기로 이루어진 용암이 들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아무리 초월에 올랐다고 해도 이 주변에서 싸우고, 상처를 입는다면 이 지독한 사기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신주오령을 넘는다고 했나?”
사검마가 음습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네놈에게는 무리다· 오황오마 그리고 신주오령이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면 이 균형은 절대 깨지지 않아· 새 시대라니, 개소리일 뿐이지·”
저 녀석이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덤볐다면 넘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부 끝이다· 놈의 여정은 여기가 마지막일 테니까·
“그건 네놈이 정하는 게 아니다·”
라온은 사기에 중독되었음에도 끝까지 싸우려는 듯 떨리는 손으로 두 검을 말아쥔 채 달려들었다·
쩌저저저저적!
사기에 잡아먹히고 있고, 상처에서 지독할 정도의 통증이 올라오고 있을 텐데도, 라온의 검은 날카로우면서도 표홀했다·
‘이놈은 진짜로군····’
사검마는 죽음을 각오하며 싸움을 걸어오는 라온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지금도 검술만큼은 나보다 위야·’
변칙적이고, 사파적인 검술을 사용하는 자신과 달리 라온은 온 세상의 검술을 모두 합친 듯한 신묘한 검로를 그려낸다· 산 제물을 이용해서 사기의 양을 늘리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기는 건 나다·’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도 닿지 않느다면 의미가 없으니까·
“그만 발악하고 꺼지거라!”
사검마는 라온을 검술로 상대하지 않고, 사기의 양으로 밀어냈다· 놈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점차 힘이 빠진 듯 속도가 느려지고, 검격이 둔탁해지기 시작했다·
“허억····”
라온은 결국 발을 멈춘 채 허리를 굽히고 검은 피를 토했다· 검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끝이로구나·”
사검마가 길쭉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이 귀찮게 군 만큼 처절한 끝을 보여주마·”
그가 사기가 요동치는 검으로 라온의 살점을 뜯어내려고 할 때였다·
투욱····
사검마가 지친 라온처럼 손을 부르르 떨며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이게 무슨····”
그가 무슨 일인지 모르고 눈동자를 굴릴 때 라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와 같은 말을 해주지·”
라온이 붉은 눈빛을 굽히며 턱을 까딱였다·
“이제야 먹힌 모양이구나·”
* * *
후우·
라온은 손발을 파르르 떠는 사검마를 보며 탁한 숨을 내쉬었다·
‘조금 늦었지만, 제대로 통했어·’
-저거 설마····
라스가 손과 발을 떠는 사검마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영감한테 당했던?
‘맞아· 그 뇌기야·’
글렌이 대련에서 자신을 뇌기로 마비시켰듯이 그가 전해준 천뢰공의 뇌기로 사검마의 사기를 압박했다·
“뇌, 뇌기?”
사검마도 이제야 본인의 변화를 알아차린 듯 턱을 떨었다·
“대체 언제부터···?”
“처음부터·”
라온이 입과 코에서 흐르는 죽은 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열기와 냉기 속에 뇌기를 섞었다·”
사검마가 뇌기를 보게 되면 대비를 할 것 같아서 만화공의 불꽃과 글래시아의 냉기에 숨겨서 아주 조금씩 천뢰공의 뇌기를 뿌렸다· 덕분에 놈은 지금에서야 본인의 육체가 뇌기에 잠식된 것을 알아차렸다·
“너는 넘쳐흐르는 사기 덕분에 뇌기가 스며든 줄도 모르고 있었겠지만, 천뢰공의 기운은 아주 천천히 네놈의 육체와 마나회로를 좀 먹고 있었다· 네가 사기로 나를 노린 것처럼·”
사검마의 사기가 자신의 육체를 압박해 오는 것을 느끼고, 자신 역시 뇌기로 사검마의 기운을 통제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접근전을 벌였던 거로군·”
사검마는 이제야 자신이 근접해서 싸운 이유를 알겠다는 듯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나쁘지 않구나· 아니, 대단해· 하지만 달라질 건 없다·”
그가 땅에 떨어진 검을 잡았다· 보랏빛으로 물든 칼날 위에서 하늘에 닿을 듯한 사기의 불꽃이 타올랐다·
“사기에 중독된 네놈은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사검마는 단숨에 끝을 내겠다는 듯 대륙 전체를 지워버릴 듯한 사기를 뿜어냈다·
“만량사궁!”
놈의 사기가 끝없이 퍼져나가며 하늘과 땅에서 수천 개의 사기의 칼날을 세웠다· 셀 수 없이 솟아난 사기의 칼날이 둥글게 이어지며 거대한 궁궐 같은 형상을 그렸다· 저 사기의 궁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살점 하나 남지기 않고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라온이 차분히 고개를 저으며 신검과 마검을 고쳐 잡았다·
“나는 아직 전력이 아니다·”
간장에 깃들어 있는 패도적인 기파를 끌어올려 전신에 휘감았다· 아스카라의 투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력을 끌어낼 수 있게 해주는 패도적인 기운이 마나회로로 스며들며 악취가 흐르는 사기를 밀어냈다·
터어어억!
라온이 하늘과 땅을 뒤덮은 채 밀려오는 사기의 칼날을 향해 신검과 마검을 들어 올렸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6형 청홍무적검·
언제나 자신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던 검격을 초월까지 끌어 올리며, 목륜검으로는 바람이 깃든 천뢰공의 절기를 펼쳐냈다·
촤아아아아악!
라온의 눈앞으로 세 자루의 검이 모이며 환희로운 조화를 이룬다·
불꽃과 서리 그리고 벼락과 바람이 금빛의 선으로 이어진다·
어두운 밤을 이겨내고 떠오르는 여명처럼 새로운 시대를 여는 광휘의 검이 구시대의 망령이 일으킨 보랏빛 바다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