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0화
라온은 철전대가 긴급 지원 요청을 보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알현실로 달려갔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옥좌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고 있는 글렌에게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거라·”
글렌이 느릿하게 등을 돌리며 일어나라는 듯한 손짓을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글렌에게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고서 몸을 일으켰다·
“철전대가 긴급 지원 요청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비연회주가 먼저 말한 모양이군·”
글렌은 라온의 뒤편에 선 채드를 보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조금 전 긴급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광풍대만큼은 아니지만, 철전대도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며 많은 성장을 이뤄냈기에 먼저 지원을 요청하는 건 드문 일이야·”
그는 철전대주 트래빈이 보낸 듯한 편지를 잡은 채 눈썹을 내렸다·
“그 정도로 어려운 임무라는 뜻이겠군요·”
라온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본래 철전대에 주어진 임무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글렌이 짧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철전대가 처음에 맡은 임무가 무엇이었습니까?”
“정찰이다·”
“정찰····”
라온은 예상과는 다른 철전대의 임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정찰 중에 심각한 일이 터진 건가?’
정찰 임무는 지그하르트 영역만을 돌기에 귀찮고 오래 걸리지만, 그리 위험한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생겨서 긴급 지원 요청을 보냈는지 불안해졌다·
“지그하르트의 영역을 벗어나서 북동쪽으로 이동하면 보드리라는 이름의 유목민 마을이 있다· 본래에도 꽤 규모가 있는 곳이었지만, 전쟁에서 집과 마을을 잃은 이들이 모여서 지금은 더 커진 상태지·”
글렌은 갑자기 지그하르트와는 관련 없는 보드리 마을의 이야기를 꺼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자신 역시 멀리서 보드리 마을을 본 적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전대가 정찰 임무를 마치고, 가문으로 복귀하려고 하는데, 그쪽에서 몬스터를 막아달라는 도움을 요청했다는군·”
“철전대주라면 당연히 도와주겠다고 했겠군요·”
라온이 트래빈의 얼굴을 떠올리며 옅게 웃었다·
‘당연히 따라갔겠지·’
트래빈은 자신이 약하고 지위가 낮을 때도 무시하지 않고, 한 명의 검사로 인정을 해준 사람이다·
지그하르트 소속이 아닌 유목민들이 도움을 요청했다고 해도 흔쾌히 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래· 내게 먼저 허락을 구하기에 받아들이라고 했었다·”
글렌은 트래빈답게 먼저 보고를 보냈다며 가는 미소를 그렸다·
“가주님께서····”
“그 마을마저 사라지면 유목민들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는 당연한 일 아니냐는 듯 턱을 주억였다·
“그렇죠·”
라온이 글렌의 건조한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는 따스함을 느끼며 입술을 살짝 올렸다·
“처음 올라온 보고서에는 소수의 몬스터들이 계속 나타난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 강하지 않으니, 알아서 처리하고 복귀하겠다고 했었지· 하지만····”
글렌은 트래빈이 처음에 보낸 편지를 내리고, 이번에 온 듯한 편지를 펼쳤다·
“지금은 보랏빛으로 물든 땅에서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올라온다고 하는구나·”
그가 눈썹을 깊게 내렸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올라오니, 이제는 마을까지 밀려난 상태라고 한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유목민들의 터전 자체가 사라질 것 같아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글렌은 트래빈의 편지를 읽어주고서 반으로 접었다·
“보라색으로 물든 땅에서 나타나는 몬스터····”
라온은 글렌이 접은 편지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세 가지 중 하나인가?’
왕의 탄생, 흑탑 혹은 에덴·
새로운 왕이 탄생하여 그쪽으로 몬스터들이 모여들 가능성도 있고, 에덴이나, 흑탑에서 수작을 벌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보기 전에는 원인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지그하르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철전대에게 복귀 명령을 보내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
글렌은 냉정함이 담긴 목소리로 현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래도 가겠느냐?”
그는 자신의 진의를 물어보듯 무거운 눈빛을 굽혔다·
“예· 가겠습니다·”
라온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지그하르트의 일이 아니지만, 곧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오마가 수작을 부릴 가능성도 있으니, 미리 막는 게 옳습니다·”
지그하르트 영역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언젠가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더 커지기 전에 막는 게 맞았다·
“철전대주가 광풍전으로 들어오고 싶다더니, 벌써 실적을 낼 임무를 물어왔네요· 마음에 듭니다·”
라온은 이 임무를 내려달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가·”
글렌은 라온의 대답이 기껍다는 듯 냉랭한 안색을 따스하게 웃음으로 데웠다·
“네 말대로 위험한 싹은 더 커지기 전에 자르는 게 옳은 일이지·”
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을 내렸다·
“사실 중무전에 이 임무를 내려도 되지만, 철전대와 한솥밥을 먹게 될 건 광풍대니, 너희가 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글렌은 자신을 부른 이유를 말하며 옅게 웃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먼저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온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였다·
‘딱 좋은 기회기는 해·’
철전대가 광풍전으로 들어오는 건 거의 확정이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수하들의 실력을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주님의 말씀대로 이번 지원 임무는 광풍대가 맡겠습니다·”
글렌에게 임무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며 허리를 굽혔다·
“긴급 지원 요청이니, 내게 따로 보고를 올릴 필요는 없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하도록·”
그는 어서 가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나도 이틀 뒤에 출정인데, 너도 나만큼이나 바쁘네·”
셰릴이 한동안 못 보겠다고 말하며 턱을 살짝 틀었다·
“조심히 다녀와·”
그녀는 나중에 보자고 말하며 가늘게 손을 흔들었다·
“허허허·”
로엔이 허허롭게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대주님이라면 딱히 조언이 필요 없겠지요· 그저 무사히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트래빈을 부탁한다는 듯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라온은 글렌과 로엔, 셰릴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고서 알현실을 떠났다·
“예전에는 저 뒷모습이 조금 불안했었는데····”
로엔이 라온이 나간 문을 보며 짧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저 든든하군요· 철전대가 무슨 일을 겪고 있다고 해도 무사히 구해올 것 같습니다·”
그는 라온의 등이 저렇게 듬직해질 줄은 몰랐다며 허허 웃었다·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셰릴이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임무에서 라온이 제 앞에 설 때 꼭 가주님을 보는 것 같더군요· 적이 누구라고 해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그녀는 철전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하며 가는 미소를 흘렸다·
“크흐흠!”
글렌은 라온을 칭찬하는 셰릴과 로엔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춤을 추듯 발목을 살짝씩 돌렸다·
“그 정도는 아니고, 어디에 내놔도 제 할 일은 할 수 있는 정도지·”
그는 겸손해 보이는 말과 달리 조명을 켠 듯한 환한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얼마 전에 나와 대련할 때 뇌전으로 일으킨 공세를 연달아 맞고도 몸을 움직이더군· 아직은 미숙한 면이 보이지만, 경험을 좀 더 쌓는다면 저 아이의 위에 설 무인이 몇 없을 것이야·”
글렌은 지금 라온의 위에 있는 건 오황오마와 신주오령의 수장들뿐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가주님·”
비연회주 채드가 단상 앞으로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라온 님을 모시러 가는 길에 보고서가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 품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신주오령을 감시하는 요원에게서 온 편지입니다·”
“신주오령····”
글렌은 채드가 내어준 편지를 읽자마자, 따스한 색을 머금었던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의 주변으로 북방의 왕이라는 이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차디찬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결국 멍청한 선택을 하려는 건가?”
* * *
라온은 알현실을 나오자마자, 5연무장으로 복귀했다·
광풍대 검사들 역시 채드의 말을 들었기에 모두가 연무장에 남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라온은 광풍대의 굳은 얼굴을 마주하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버렌, 마르타, 루난은 각자의 조 앞에 서서 곧은 자세를 갖췄고, 마크 괴튼은 단상의 모서리에 서서 손을 앞으로 모았다·
“너희가 들었던 대로····”
라온이 고요한 눈빛으로 광풍대 검사들을 굽어보며 입술을 뗐다·
“철전대가 지원 요청을 보냈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제힘으로 해결할 이들이 긴급 지원을 부탁한 것을 보면 분명 위험한 임무가 될 것이다·”
쉬운 임무는 절대 아닐 거라고 말하며 턱을 주억였다·
“하지만· 철전대 역시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차례다·”
라온은 받았던 빚을 갚을 때라고 말하며 제천검 위에 손을 얹었다·
“당연한 소리를 하네· 아니, 그게 아니라고 해도 가야지!”
마르타는 같은 가문이면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외치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입에서 가문 소리가 나오는 게 신기하군·”
버렌이 마르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맞는 말이다· 동료는 어떤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돕는 게 옳아·”
그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구해야 한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트래빈· 라온이 죽었다고 했을 때 많이 울었어····”
루난은 자신이 실종되었을 때 트래빈이 정말 슬퍼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이젠 우리가 도와야지····”
그녀는 꼭 돕고 싶다고 말하며 새롭게 벼린 설화를 끌어안았다·
“동쪽이에요? 그쪽에 자라는 호스펀 나무가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어서 좋은데!”
도리안은 간 김에 보급품을 챙겨야겠다며 헤헤 웃었다·
“너 요즘 더 보급에 미친 것 같다?”
크레인은 점점 더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건을 가져다 쓰기만 하는 귀신이 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 챙겨야 한다고!”
도리안은 누군가를 은근히 욕하면서 발을 굴렀다·
“마크 괴튼 경·”
라온은 도리안의 말을 흘려들으며 마크 괴튼을 불렀다·
“새로운 도는 다녀와서 맞춰야겠네요·”
“물론입니다·”
마크 괴튼은 괜찮다고 말하며 옅게 웃었다·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대련만 넘치게 해서 실전을 치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군요·”
그는 더 좋다고 말하며 여유롭게 턱을 주억였다· 정말 그릇 자체가 커진 것 같았다·
“그럼 출발 준비를 마친 후 저녁까지 이곳으로 모이도록·”
“예!”
광풍대는 기다렸다는 듯 외치고서 숙소와 집으로 달려갔다·
-크으····
라스가 떠나가는 광풍대를 보며 낮은 감탄을 흘렸다·
-저 녀석들도 참 많이 크기는 했구나· 오래 보면 정든다더니, 나쁘지 않아·
녀석은 본인의 가르침 덕분에 광풍대가 잘 자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라온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너 왜 이렇게 조용하냐?’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본왕은 본래부터 과묵하느니라·
라스는 본인의 별명이 침묵의 마왕이라며 턱을 까딱였다·
‘개똥 같은 소리를····’
-보, 본왕에게 개똥이라니!
녀석은 취소하라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침묵의 마왕 같은 헛소리 말고, 갑자기 임무에 나가게 되었는데도 별말을 안 하잖아·’
평소라면 노숙하면서 먹는 음식이 싫다고 날뛰어야 할 녀석이 조용해서 신기했다·
-네놈이 본왕과의 약속을 지켰으니, 본왕도 참아야 하지 않겠느냐·
라스는 열흘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참는 거라며 손을 까딱였다·
‘와, 그런 것도 생각할 줄 알았어?’
라온은 라스의 머리를 두드리며 진심 어린 칭찬을 해주었다·
-흥· 본왕은 마계의 군주! 주고받는 것은 칼이니라!
라스는 칭찬을 받은 게 기쁜 듯 빨개진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네놈은 본왕을 생각할 때가 아닐 텐데?’
‘그게 무슨 말이야?’
라온이 라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놈의 누나 말이다· 네놈에게 검술을 배우는 재미가 들린 상태인데, 떠난다고 하면 아주 좋다고 하겠구나!
라스는 시아의 표정이 기대된다는 듯 헤죽거렸다·
‘아·’
라온은 시아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망했다····’
* * *
긴급 지원 임무였기에 광풍대는 저녁이 다 되기도 전에 전부 5연무장에 모였다·
검사 전원이 정자세로 단상 앞에 서 있을 때 라온이 연무장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버렌은 단상 위로 올라가는 라온을 보며 눈꺼풀을 가늘게 떨었다·
“대, 대주님· 머리가····”
그는 제비가 집을 지은 것처럼 휘어져서 올라간 라온의 머리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시아 언니의 작품인가?”
마르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키득였다·
“이번에는 그래도 좀 덜 쥐어뜯긴 것 같네·”
그녀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부럽다····”
루난은 뭔지 모를 일을 부럽다고 말하며 입맛을 쩝 다셨다·
“역시 시아 누님! 대주님을 꺾을 사람은 시아 누님뿐이라니까!”
도리안은 시원하다고 외치며 가슴을 두드렸다·
“아무리 누나라고 해도 저렇게 당하고 다닐 줄은 몰랐네· 도괴 님 그렇죠?”
크레인이 라온의 약한 모습은 처음 본다며 도괴에게 말을 걸었다·
“커허험····”
평소라면 한심하다고 했을 도괴는 본인 역시 시아에게 약하기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만·”
라온이 흐트러진 금발을 글렌처럼 뒤로 넘겨버리고 단상의 끝에 섰다·
“말했듯이 긴급 지원 임무이기 때문에 휴식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할 테니, 미리 각오해 두도록·”
예전이라면 어쩔 수 없이 휴식 시간을 배정해야 했겠지만, 현 광풍대는 전원이 마스터였기에 수면 시간까지 최소로 줄일 수 있었다·
“이번 지원이 광풍대로서 치르는 마지막 임무가 될 수도 있으니,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라온은 광풍대 검사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광풍대 검사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발을 구르며 포효를 터트렸다·
“그럼 출발한다·”
라온이 단상에서 내려와 전열을 갖춘 광풍대의 중앙을 걸어갔다·
그가 스쳐 지나간 검사들이 그 뒤를 따르며 흡사 검과 같은 형상을 갖췄다·
검진을 이루지 않았음에도 서로가 서로의 기운을 북돋는 경지· 광풍대의 진군에는 그들이 쌓아 올린 검력만큼 무거우면서도 날카로운 기파가 함께 했다·
* * *
라온과 광풍대는 차원문을 통해서 지그하르트 영역 끝으로 이동한 후 동쪽으로 움직였다·
웬만한 곳은 차원문을 이용하면 며칠 내에 닿을 수 있지만, 철전대가 넘어간 곳은 그 영역 밖이었기에 밤을 지새우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수면 시간을 2시간으로 제한하고, 라스의 발악을 들으며 먹은 나딘빵 덕분에 다행히 철전대가 요구한 시간보다 반나절 이상 빨리 목적지 근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으으····
라스가 손으로 혀를 닦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잠을 못 자는 건 참겠지만, 나딘빵 때문에 돌아버리겠느니라! 맛이 없어도 너무 없잖느냐! 어떻게 빵에서 고무 맛이 나냐고!
녀석은 죽겠다며 혀를 빡빡 문질렀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라온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라스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급한 불만 끄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좀 참아·’
자신은 평생 나딘빵을 먹어도 괜찮지만, 라스나 다른 검사들이 힘들어하기에 마을에 도착한 후 휴식부터 취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라온이 자신의 뒤를 따라서 산을 오르는 광풍대 검사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잘 참아주는군·’
예전이라면 육체와 정신적으로 지쳐서 얼굴에 힘들다는 티를 내겠지만, 지금은 누구 하나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단단한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저 꼬맹이들까지 올라오는데, 힘들다고 하면 뒈져야지·
라스는 다른 이들보다 안색이 밝은 유아와 율리우스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지·’
유아와 율리우스는 선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더욱 밝은 얼굴로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저 아이들이 있기에 검사들은 절대 지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이 산만 넘으면 바로 마을이 보일 거다· 조금만 힘을 내도록·”
광풍대를 격려하면서 먼저 산의 정상에 올라갔다·
“어···?”
하지만 동쪽에 있어야 할 유목민들의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우우욱!
마을이 있어야 할 산지와 초원을 채우는 건 암울한 빛을 띤 보라색 바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