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9화
“대련··· 아!”
라온이 글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뤄졌었지·’
초월에 오른 후 가문에 복귀했을 때 글렌이 가벼운 대련을 하자고 했었다· 당시 아리스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기한 없이 연기를 했는데, 그 대련을 지금 치르자는 것 같았다·
“저야 영광입니다·”
글렌의 가르침을 감사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며 허리를 굽혔다·
-끄으윽!
라스가 좋지 않다고 외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러면 더 시끄러워서 못 자지 않느냐!
녀석은 시끄러움이 배가 되었다며 짜증이 어린 신음을 흘렸다·
‘조용히 할게·’
-저 영감탱이랑 싸우는데 조용히 싸울 수 있겠냐고!
라스는 그게 되겠냐며 이를 갈았다·
“그리 좋아할 것 없다·”
글렌이 느릿하게 진천검을 들어 올렸다·
“적당히 봐주면서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는 전력으로 오라는 듯 턱을 주억였다·
“음····”
라온이 글렌을 바라보며 이빨로 입술을 짓눌렀다·
‘빈틈이 없어·’
아니, 다 빈틈이라고 해야 하나?
글렌은 그저 검을 들고 서 있을 뿐인데,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예 빈틈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게 다 빈틈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게 진정한 의미의 자연체이니라·
라스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공격할 수 있는 곳도, 공격할 수 없는 곳도 모두 함정이니라·
녀석은 이미 이 공간이 글렌에게 잡아먹혔다며 혀를 찼다·
“오지 않는 게냐?”
글렌은 무거우면서도 날카로운 기파를 두른 채 가느다란 웃음을 그렸다·
“머뭇거리다가는 검 한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패하게 될 것이다·”
그 말대로다· 글렌과 마주 선 것만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의 기파가 점점 자신의 공간을 파고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럼 힘으로 가는 수밖에 없어·’
라온이 탁한 숨을 내쉬며 제천검과 진혼검을 뽑았다· 새롭게 벼려진 두 검의 의념이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을 천천히 가라앉혀 주었다·
쿠우우웅!
제천검과 진혼검을 연무장에 꽂으며 심상의 세계를 개방했다·
검계현신·
신마조화결·
먹구름이 찬 어둑한 밤하늘 위로 붉은 태양과 푸른 달이 떠오른다·
열기와 냉기의 오러가 무대의 조명처럼 이어지며 라온에게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
라온은 태양의 불꽃으로 벼린 신검과 달의 서리로 빚은 마검을 세운 채 다시 글렌의 앞에 섰다·
‘검이 내게 힘을 주고 있어·’
신검의 불길과 마검의 서리가 이전보다 더 강맹한 기운을 뿌리는 게 느껴진다·
제천검과 진혼검이 강화되며 신마조화결의 격도 상승한 것 같았다·
“가겠습니다·”
라온이 짧은 한마디와 함께 태화보를 끌어냈다· 어둠을 가르는 시뻘건 섬광을 남기며 글렌의 좌측으로 들어섰다·
후우우우욱!
발끝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검을 쥐고 있는 손목을 틀었다·
신검의 불꽃 속에서 광아검의 미친 짐승이 날뛰고, 마검의 서리 위에서 설풍검결의 차디찬 바람이 피어났다·
치아아아앙!
셰릴의 쌍검술에 광아검과 설풍검결의 극의를 담아서 글렌의 어깨와 허리를 노렸다·
“상대의 무력을 알아보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라····”
글렌이 좋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전략이지만, 가볍구나·”
그가 신검과 마검이 조화를 이루는 가느다란 틈 사이로 진천검을 찔러넣었다·
시곗바늘처럼 맞물리는 쌍검술의 흐름을 단숨에 와해시키는 일격이었다·
쩌어어어엉!
글렌이 가볍게 내지른 검에는 천근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광아검과 설풍검결이 동시에 깨지고, 라온이 거칠게 뒤로 튕겨 나갔다·
“후우····”
라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털어내고서 신검과 마검을 고쳐잡았다·
“그럼 조금 더 무겁게 가보겠습니다·”
입술을 깨물며 극쾌의 태화이보를 밟았다· 시야가 꺼멓게 물들 정도의 속도로 내달려 글렌의 눈앞에서 신검과 마검을 내뻗었다·
고오오오오!
신검의 불꽃이 요동치며 용의 형상을 그리고, 마검의 서리가 새하얀 구체가 되어 번득인다·
염룡결과 중천포· 위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검격이 동시에 폭발했다·
쿠와아아아아앙!
지그하르트 전체가 뒤흔들릴 듯한 충격파가 터지며 대련장의 바닥이 뒤틀리고, 하늘 위로 갈색 균열이 돋아났다·
“이건 제법 맵구나·”
글렌은 중천포와 염룡결을 정면에서 맞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손을 털어냈다·
‘역시 뚫리지 않는군·’
라온이 연기를 지우는 글렌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힘으로 제압하는 건 무리야·’
제힘을 쓰지도 않고, 중천포와 염룡결을 막아낸 것을 보면 힘으로 글렌을 압박하는 건 불가능한 일 같았다·
“이번에는 내 차례로구나·”
글렌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몸을 풀듯이 힘을 뺀 검격이었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콰르르릉!
검게 물든 밤하늘이 갈라지고, 붉은 벼락이 쏟아진다· 우레보다도 강하고, 빠른 글렌의 뇌기였다·
‘막기만 해서는 안 돼····’
글렌에게 한번 밀리게 되면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전투가 끝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강한 검격이 밀려온다고 해도 반격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후우우우욱!
먼저 신검의 불꽃으로 염주벽을 세워서 떨어져 내리는 벼락을 막아섰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뇌기를 육체의 힘으로 버티며 아래로 기울여 둔 마검을 세웠다·
치이이이잉!
마검의 검신에서 피어난 백색의 물결이 염주벽을 깨부수고 밀려오는 붉은 뇌기를 집어삼킨다· 상대의 공세를 지워버리는 반격기· 백영섬이었다·
“제법 날카롭구나!”
글렌은 흥겹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고서 진천검의 검극을 틀었다· 뇌전의 조각들을 물보라처럼 번지며 백영섬이 터져나갔다·
“조금 더 힘을 주어도 되겠어·”
글렌이 짧게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다가왔다· 진천검에 응집된 뇌기가 붉은 빛살이 되어 쇄도해 왔다· 빠름이라는 단어조차 초월한 극쾌의 검술이었다·
쩌어어어엉!
신검과 마검을 사선으로 세워서 글렌의 참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방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뇌기가 오러를 뚫고 들어와 뼈와 살을 짓눌렀다·
“지금부터는 눈을 잘 뜨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글렌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서 진천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진천검 위로 깊고도 넓은 밤하늘과 그 위를 스치는 붉은 벼락이 깃들었다· 그가 직접 알려주었던 천뢰검의 검로였다·
쿠구구구구!
하지만 글렌의 천뢰검은 가르침을 내릴 때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 깃들어 있었다· 적당히 하지 않겠다는 말이 진심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버텨야 해·’
라온이 이를 악물고 하늘 그 자체를 담아낸 듯한 천뢰검을 막아섰다·
글렌이 보여주는 검술은 검사에게 있어서는 기연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든 따라붙어서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
‘천뢰검은 이렇게 쓰는 거였군·’
글렌이 직접 펼치는 천뢰검을 마주하자, 앞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느낌이 왔다·
적의 숨통을 압박하는 검· 천뢰검은 그저 빠르고 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적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을 수 있는 잔인한 검술이었다·
“잘 버티는군· 강도를 더 올려도 되겠어·”
글렌이 기껍다는 듯 웃으며 진천검에 더 짙은 뇌기를 담았다· 붉은 뇌전의 파동이 5연무장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있었다·
‘뚫고 들어온다····’
글렌의 뇌기는 신검의 불꽃과 마검의 서리를 뚫고 자신의 육체에 충격을 중첩시키고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고통과 저림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뇌기의 힘은 강함과 빠름만이 아니다·”
글렌은 점점 더 압박을 강화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검은 현묘했다가도 짐승처럼 날카롭게 뻗어나가서 흐름을 잡기가 힘들었다·
“음····”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 알고 있는 검로임에도, 뇌기 때문에 몸의 반응이 느려져서 제대로 막기가 힘들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뇌기라는 늪에 빠지는 것 같았다·
“관통력·”
글렌은 대련 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고요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뇌기에는 상대의 오러를 뚫어낼 수 있는 관통력이 있다· 미리 알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먹힐 수밖에 없지·”
그는 뇌기가 지속적인 싸움에 큰 도움이 된다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이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테니, 끝을 내자꾸나·”
글렌은 처음부터 천뢰검의 운용법과 뇌기의 효용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한 듯 대련을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그 무엇도 시험해 보지 못했다· 여기서 대련을 끝낼 수는 없었다·
후욱!
글렌이 자신의 어깨 위로 진천검을 내리칠 때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며 새롭게 얻은 힘을 끌어냈다·
쿠구구구구!
간장에 깃들어 있던 아스카라의 투기가 전신을 저리게 만들었던 뇌기를 밀어낸다· 왕의 투기는 글렌의 뇌기에도 지지 않고,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쩌어어어엉!
라온이 오른발로 대지를 찍어 누르며 신검과 마검으로 글렌의 진천검을 쳐냈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6형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곧은 검날 위에서 타오르던 불꽃과 서리가 마지막 숨결을 펼쳐내듯 폭발하며 글렌의 전신을 휩쓸었다·
“뭐···?”
글렌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황이 비쳤다· 청홍무적검이 아니라, 뇌기에 먹혔음에도 몸을 움직이는 것에 놀란 것 같았다·
파지지지직!
그는 당황한 와중에도 뇌기를 담은 진천검을 그어서 청홍무적의 불꽃과 서리를 단숨에 가라앉혔다·
‘예상했어·’
아스카라의 투기가 있다고 해도 글렌과 자신의 차이는 여전히 하늘과 땅이다·
당연히 뚫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마지막으로 준비한 수를 펼쳤다·
치이이잉!
목륜검이 검집 속에서 그대로 이동하여 글렌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공허살· 격해무와 공간검을 조화시킨 자신만의 이기어검이 붉은 벼락을 뚫어내고, 글렌에게 쏘아졌다·
쿠구구구구!
앞에서는 다시 살아난 청홍무적검의 파동이 밀어닥치고, 뒤에서는 공허살이 짓쳐 드는 양방향의 공세에 글렌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말려 들어갔다·
“하!”
글렌의 입가에 처음으로 진한 웃음을 맺혔다·
“대단하구나·”
그의 감탄과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뇌전이 솟아오른다·
아이가 가지고 놀 법한 구슬처럼 작았던 뇌전이 찰나의 순간에 번지며 청홍무적검과 공허살을 바스러뜨렸다·
“크흑····”
라온이 지친 숨을 내뱉으며 바닥을 굴렀다·
글렌이 진심으로 저 뇌기를 터트렸다면 이미 자신이 이 세상에 없었을 텐데, 마지막까지 봐준 것 같았다· 그의 진정한 무력은 아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터어억!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신검과 마검이 힘없이 바닥에 박히고, 목륜검은 멀리 튕겨 나가 벽에 꽂혔다·
“허억····”
격하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웃음을 머금고 있는 글렌이 보였다·
“무언가 또 얻은 모양이구나·”
글렌은 제천검과 진혼검, 목륜검을 가지고 와서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매번 내 생각 이상으로 발전하지만, 이번에는 진정으로 놀랍구나·”
그는 진심이라는 듯 가는 탄성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덕분에 많은 것을 시험해볼 수 있었다고 말하며 허리를 굽혔다·
“세 자루의 검 모두 성격이 다르지만, 네게 잘 어울리는구나·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돼·”
글렌은 좋은 검을 얻은 것을 축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라온이 검을 검집에 넣고 일어나서 옅은 미소를 그렸다·
“음, 그런데····”
글렌이 웃다 말고, 심각하게 굳은 안색으로 다가왔다·
“카, 카룬과는 얼마나 친해진 게냐?”
그는 갑자기 카룬의 이야기를 꺼내며 눈썹을 깊게 내렸다·
“음, 딱히 친하지는 않습니다·”
라온이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렌은 카룬과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솔직하게 현재의 관계가 깊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 그래?”
다만 글렌은 오히려 좋다는 듯 입꼬리를 짧게 말아 올렸다·
“예· 과거를 반성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친하지 않습니다·”
“그놈이 뭐가 멋있다는 게냐! 절대 아니야!”
글렌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처럼· 딱 지금처럼만 지내거라·”
글렌은 카룬과 친해지지 말라는 듯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서 전보다 가벼워진 걸음으로 연무장을 떠났다·
“어····”
라온은 연무장을 나가는 글렌을 보며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뭐지? 카룬이 적이라는 건가?’
-흐아아암·
라스가 길게 하품을 하고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이 바보들이 언제 통할지가 궁금해지는구나·
녀석은 빨리 자러 가자며 자신의 머리를 후려쳤다·
* * *
“앞으로 네 이름은 칠흑의 물결이다· 적들을 죽음이라는 파도 속에 묻어버린다는 의미지!”
광풍대 1조의 검사가 흑색의 검을 들어 올리며 입매를 길게 말아 올렸다·
“그 정도 파도로는 이 초록물결 ver·3의 발끝도 못 따라올걸? 이 찬란하게 빛나는 검신을 보라고!”
광풍대 2조의 검사가 연한 녹빛이 깃든 검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슈퍼 학사르, 운명의 데스티니 미안하다! 새로운 검 폭풍의 스톰이 내 영혼을 이끌고 있어!”
광풍대 3조의 검사는 푸른 바람이 피어나는 검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하아····”
라온은 오랜만에 검에 대한 광기를 드러내는 검사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쟤들은 아직도 저러네·’
광풍단 초기에도 저렇게 유치한 검의 이름을 지으며 경쟁하더니, 나이를 먹은 지금도 새 검을 받았다고 저러고 있는 게 어이가 없었다·
다만 기뻐하는 건 저들만이 아니다·
광풍대 검사 모두가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을 받은 덕분에 현재 5연무장은 기합 소리 대신 행복에 찬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역시 이 검이 좋아····”
루난은 설화의 형태를 그대로 갖춘 새로운 검을 휘두르며 맹한 눈동자를 끔벅였다·
“익숙한 게 제일 맛있는 법이니까·”
마르타 역시 데니어가 주었던 검을 바탕으로 새롭게 벼린 검이 마음에 든다는 듯 짙은 미소를 그렸다·
‘음? 이 기운은····’
라온이 새로운 검을 받고 좋아하는 검사들을 보며 웃고 있을 때 익숙한 기척이 5연무장으로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터억·
5연무장의 문이 열리고, 회색 로브를 걸친 마크 괴튼이 들어왔다·
“어?”
“마크 괴튼 님!”
“돌아왔네?”
도리안과 버렌, 마르타가 반갑다는 듯 마크 괴튼에게 달려갔다·
“오랜만이로구나·”
마크 괴튼은 광풍대 검사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취하고서 단상으로 걸어갔다·
“대주님을 뵙습니다· 성검련에서의 수련을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그는 이전보다 더 무거워진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라온이 단상 아래로 내려 마크 괴튼을 맞이해주었다·
“꽤 성과가 있어 보이는군요·”
“하루하루 충실하게 수련을 했더니, 작은 길이 보였습니다·”
마크 괴튼은 수련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옅게 웃었다·
“대주님의 말씀대로 로렌스 님이 냉정한 듯 보이지만, 배려심이 깊으셨습니다· 매번 찾아가니, 여러 가지로 도와주시더군요·”
그는 로렌스 덕분에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네요· 물론 로렌스 님은 짜증이 났겠지만·”
라온은 마크 괴튼의 기운을 살피며 눈매를 좁혔다·
‘정말 많이 성장했네·’
그리 짧은 기간이 아니라고 해도 마크 괴튼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서 돌아왔다·
성검련에 가기 전에는 루난이나, 마르타와 비등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가 조금은 더 앞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가장 먼저 넘는 것은 마크 괴튼이 될 것 같았다·
-여유도 생긴 것 같구나·
‘그러게·’
마크 괴튼은 천재 소리를 듣다가, 마스터 초입에서 실력이 멈춰버린 후 언제나 조급함을 달고 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숙에 이른 무인처럼 눈빛에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담겨 있었다·
“부대주님의 소식을 듣고, 바로 오고 싶었지만, 련주께서 말리시더군요· 수련을 놓고 가는 걸 그분도 바라지 않을 거라고·”
마크 괴튼은 리메르의 장례를 치르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입술을 깨문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뇨· 그게 맞습니다·”
라온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도 같은 말을 했을 테니까·’
리메르는 언제나 죽음에 초연했던 사람이다· 마크 괴튼이 수련을 하다가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기뻐했을 것이다·
“헌데 다들 뭔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마크 괴튼은 광풍대 검사들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을 얻었거든요!”
도리안이 자랑을 하듯 새로 받은 검을 흔들었다·
“검? 아, 그 드래곤을 잡은 것으로?”
마크 괴튼은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 경도 이 기회에 새로운 도를 만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른 검사들의 검을 가리키며 마크 괴튼에게도 도를 제작하라는 제안을 했다·
“좋은 기회기는 하지만, 저는 대주님이 내어주신 이 도로도 충분합니다·”
마크 괴튼은 무기에 욕심이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세속에 욕심이 없는 초연한 도인을 보는 듯했다·
“그 도를 바탕으로 개선 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지금 미르탄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좀 대단한 분들이라····”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미르탄에 있는 장인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그건 좀 끌리는군요· 아니, 만들고 싶습니다!”
마크 괴튼의 초연함이 한순간에 끝났다· 그도 대륙장인이 만드는 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바로 가시죠·”
라온이 마크 괴튼을 데리고 미르탄 마을로 가려고 연무장을 나왔을 때 이쪽으로 달려오는 비연회주 채드가 보였다·
“대주님!”
채드는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그는 지금 알현실로 가야 할 것 같다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급한 일입니까?”
“예· 임무에 나가 있는 철전대에서····”
채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을 이었다·
“긴급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그가 굳은 안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