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8화
“검? 검을 만들었어?”
시아가 라온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까 라온의 검이 안 보이네?”
그녀는 제천검을 어디에다 두었냐며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더 좋은 검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해서 맡겨놓고 왔어·”
라온은 장인 할아버지들한테 검을 주고 왔다고 말하며 편지지를 가리켰다·
“어? 그런데 왜 검이 아니라, 악마가 나타났다고 하는 거야?”
시아는 보르고스의 편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라온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편지를 접었다· 시아한테 장인 할아버지들이 검을 만드는 것으로 경쟁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노인네들이 나이만 먹었지, 애들보다 더 유치하느니라·
라스는 한심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반짝이는 검을 가지고 싶어!”
시아가 시위를 하듯 목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흐음····”
라온이 눈매를 가늘게 좁힌 채로 시아를 바라보았다·
‘나쁘지는 않겠는데?’
힘을 조절하는 법도 배웠으니, 날을 세우지 않은 진검 정도는 들게 해도 될 것 같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님도 드리고·’
시아의 검을 만드는 김에 실비아와 에드가 그리고 북망산을 올라갔다는 아리스의 검까지 만들어 주고 싶었다·
“좋아·”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시아를 데리고, 실비아와 에드가가 앉아있는 정원의 테이블로 향했다·
“두 분도 이 기회에서 검을 만드시는 게 어때요?”
“검? 그 드래곤 뼈로 만드는?”
“설마 우리 것도 만들어 주려고?”
실비아와 에드가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한 듯 눈을 끔벅였다·
“네· 누나의 검을 주문하는 김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검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요·”
라온은 어떠냐고 물으며 실비아와 에드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지금 쓰는 검도 나쁘지 않지만, 아들이 만들어서 준다면 받아야지!”
실비아는 아들이 구해온 검이라면 당연히 쓰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 그럼 나는 드래곤의 뿔로 검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에드가는 흥분한 듯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뿔이요?”
“그래·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은 단단하고, 이빨로 만든 검은 예리하고, 뿔로 만든 검은 오러를 더 잘 흡수하거든·”
그는 드래곤의 부위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특성이 있었어?”
실비아는 전혀 몰랐다는 듯 멍한 눈으로 에드가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떤 재료를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같은 장인이 만든 검도 천지 차이로 다르다고!”
에드가는 장인의 세계는 심오하다고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몰랐습니다·”
라온이 헛바람을 흘렸다· 발칸과 쿠베러드, 보르고스를 믿고 맡겼기에 재료마다 저런 차이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본왕도 몰랐느니라· 그냥 엉덩이 살이 연하고, 뱃살이 탄탄하고, 안심이 살살 녹는다는 것만 아는데····
라스는 뼈와 이빨, 뿔 대신 드래곤 고기 중 어디가 맛있는지만 알고 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참으로 대단한 마왕님이었다·
“그래? 그럼 내가 좀 설명해 줘야겠네! 뼈와 뿔만이 아니라, 드래곤의 비늘도 다 사용처가 달라! 목 주변의 비늘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서 갑옷을 만들기 좋고, 몸통 주변의 비늘은 그저 단단하기만 해서 방패나, 무구에 넣기 좋지· 거기다 드래곤의 종류마다 속성도 달라서····”
에드가는 말을 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묻지도 않은 답을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레드는 당연히 화속성 저항력과 친화력· 블루는 수속성, 골드는····”
“아, 아버지! 드래곤이 셋이니까· 검 전체를 뿔로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라온은 에드가의 끝없는 수다를 끊기 위해서 뿔로 검을 만들어 주겠다고 외쳤다·
“저, 정말?”
에드가가 설명을 멈춘 후 맥주를 한 번에 들이킨 듯한 탄성을 흘렸다·
“내 생에 드래곤의 뿔로 만든 검을 쓰게 되다니! 역시 자식 잘 두는 게 최고라니까!”
그는 본인이 잘 되는 것보다 자식이 잘되는 게 으뜸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럼 나는 이빨로 만든 검을 쓰고 싶어· 이곳을 넘보는 놈들을 모조리 베어버릴 수 있도록·”
실비아는 살벌한 말과 달리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별관을 지키겠다는 실비아의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백혈교가 쳐들어왔던 일을 지금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드래곤의 뿔을 주재료로 해서 날렵한 형태의 검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원하는 검술을 적재적소에 펼치려면 유연성도 필요해· 아, 물론 연검처럼 흐물거리는 건 별로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야지· 길이는 장검보다 살짝 짧아야 하고····”
에드가는 요구를 할 때도 말이 많았다· 그동안 실비아 때문에 참고 살았던 수다를 한 번에 다 털어내려는 것 같았다·
“나는 다!”
시아는 전부 다 해달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늘? 뼈? 다 써줘!”
그녀는 재료를 다 합쳐서 만들어달라며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알겠어·”
라온이 세 사람의 요구를 종합한 후 미르탄 마을로 출발하려고 할 때 시아가 소매를 잡았다·
“나도 갈래!”
시아는 함께 가고 싶다며 헤헤 웃었다·
“재미없을 텐데?”
라온이 시아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보이는 게 망치질뿐이라서 지루할 거야·”
“갈래! 갈 거야!”
시아는 이번에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팔을 꽉 잡았다· 그녀의 힘이 워낙에 강했기에 단단한 수련복이었음에도 소매가 찢겨 나갔다·
“데려가는 게 어때?”
“그래· 거기에서는 별일 없을 테니까·”
에드가와 실비아는 좋은 기회이지 않겠냐며 웃었다·
“음····”
라온은 시아의 눈꼬리에 맺힌 물기를 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어쩔 수 없나·’
실비아, 에드가와 달리 처음 만드는 검이기에 직접 가서 대장장이와 말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알겠어· 같이 가자·”
라온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시아는 언제 눈물을 글썽였다는 듯 눈가를 훔치고 헤헤 웃었다·
“엄마가 말한 거 통했어!”
그녀는 눈물이 먹혔다고 말하며 실비아의 품에 안겼다·
“말했잖니· 네 동생이 냉정해 보여도 여리다니까·”
실비아가 잘했다며 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라온은 에드가와 실비아에게 자랑하는 시아를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연기였다고?’
-벌써 연기를 한다고?
라스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네놈의 누나가 확실하느니라! 연기의 신이 여기에 하나 더 있었어!
‘····’
* * *
쩌엉! 쩌어엉!
시아는 미르탄 마을 전체에서 울리는 망치 소리가 신기한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망치! 저기도 망치야!”
그녀는 사람의 팔뚝보다 큰 망치를 가리키며 헤헤 웃었다· 새로운 것들이 신기한 것 같았다·
“누나 덥지는 않아?”
라온이 시선을 내려서 방실거리는 시아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시아는 딱 좋다며 고개를 저었다·
‘육체 능력은 여전히 그랜드 마스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가·’
검술과 무학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었지만, 육체 능력 자체는 그대로였기 더위와 추위를 모두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망치로 불꽃을 치는 거야?”
시아가 달군 쇠를 망치로 두드리는 장인을 가리켰다·
“저건 불이 아니라, 불에 달군 쇠야· 쇠에 열을 주면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거든·”
검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며 미르탄 마을을 올라가고 있는데, 중간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총관님?”
도괴였다· 그는 손가락에 술병을 걸친 채로 느릿하게 미르탄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나도 검을 좀 만들려고 왔다·”
도괴는 본인도 별관의 소속이니 먼저 주문을 넣어도 되지 않겠냐며 손을 까딱였다·
“물론이죠·”
라온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 그리고 드릴 선물이 있었습니다·”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서 도괴를 위해서 사 온 명주를 꺼냈다·
“커흠! 이런 건 괜찮은데!”
도괴는 괜찮다는 말과 달리 바로 손을 뻗어서 술병을 챙겨갔다·
“너는 검이 완성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왔····”
“할아버지!”
도괴가 검에 관한 것을 물어보려고 할 때 시아가 앞으로 나와서 그의 손을 잡았다·
“요즘 왜 집에 안 와?”
시아는 가끔 찾아오던 도괴가 안 오는 게 아쉽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찌푸렸다·
“시, 시아야· 그, 그게 요즘은 애들을 좀 보느라····”
도괴는 시아의 맑은 눈동자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첫째 할아버지도 안 오고, 둘째 할아버지도 안 오고, 검은 할아버지도 안 와서 심심해!”
시아는 글렌과 렉타르, 도괴 모두가 안 보인다며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었다·
“그, 그러냐! 그럼 나라도 가야겠네!”
도괴가 턱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아가 귀엽다는 듯 큼지막한 미소를 그렸다·
‘많이 친해졌네·’
도괴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기에 한 번씩 별관에 찾아가서 진짜 총관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 시기에 친해진 것 같았다·
“내일 오세요· 준비해 놓고 있겠습니다·”
“라온!”
도괴에게 내일 찾아오라고 말을 할 때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빨리 오라고 했는데! 왜 거기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것이냐!”
발칸이다· 그는 빨리 오라는 듯 본인의 공방 앞에서 크게 발을 굴렀다·
“귀 따가우니, 조용히 좀 해라·”
쿠베러드는 알아서 올 테니 놔두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그래· 이미 승부는 결정 났어· 차분히 기다리라고·”
보르고스는 이미 본인이 이기기라도 한 듯 여유롭게 턱을 끄덕였다·
“총관님· 잠시만 누나 좀 봐주세요·”
라온은 도괴한테 시아를 부탁하고서 발칸의 공방으로 올라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발칸, 쿠베러드, 보르고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셋 모두 밤을 지새우며 검을 벼렸는지 옷과 머리가 만신창이였고, 눈 밑은 시꺼멓게 물들어 있었다·
“음, 저 아이도 데리고 왔구나·”
발칸은 시아를 알아보고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괴를 쩔쩔매게 하는 아이라····”
“누군데?”
쿠베러드와 보르고스는 시아에 대해 모르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누나입니다·”
“누나? 네게 누나가 있었다고?”
쿠베러드는 처음 듣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좀 갑자기 생겼습니다·”
“허, 인간은 특이하군· 동생도 아니고, 누나가 갑자기 생길 수도 있나?”
보르고스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시아의 검을 부탁하려면 어차피 말하게 될 것 같아서 그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쿠베러드가 안타깝다는 듯 침음성을 삼켰다·
“더러운 에덴 놈들! 하여튼 얼굴을 가리고 다는 놈 중에는 정상이 없다니까!”
보르고스는 오마에 대한 깊은 원한을 드러내며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무거운 이야기는 그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발칸은 어두워진 공기를 환기하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오늘은 새로운 검을 선물하는 자리니까·”
쿠베러드가 연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든 검으로 그 귀신 놈들을 모조리 베어버렸으면 좋겠군!”
발칸은 부탁한다고 말하며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천을 거뒀다·
파아아앙!
하얀 천 아래로 새롭게 다듬은 세 자루의 검이 보였다·
“음····”
검집 안에 있기 때문일까 딱히 검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을 때와 같은 기척이었다·
“보기만 해서는 모를 것이야· 직접 살펴보거라·”
발칸은 검을 뽑아보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네가 보고 네가 판단해야 의미가 있어·”
쿠베러드는 담담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악마가 탄생한다····”
보르고스는 맛이 좀 간 사람처럼 검게 물든 눈빛으로 입맛을 다셨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짧게 숨을 내쉬고서 발칸이 만든 제천검을 잡았다· 검병까지 고치지는 않았을 텐데, 전보다 더 손에 꽉 물리는 느낌이었다·
챠아아아앙!
제천검을 뽑자, 전보다 더 청명해진 검명과 함께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태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검 스스로가 지닌 의지가 전해져왔다·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굳건함·’
처음 검을 잡았을 때부터 초월에 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간직해 온 의념이 제천검에 고요히 깃들어 있었다·
상대 누구든, 어떤 검술과 부딪치든 절대 꺾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느껴졌다·
“굉장하네요· 휘두르지 않아도 이 검의 힘을 알 것 같습니다·”
제천검을 가볍게 내리치며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를 떨었다·
“크흐흠!”
발칸은 자신의 반응이 마음에 든다는 듯 큼지막한 미소를 그렸다·
“그럼 다음으로····”
제천검을 검집에 넣고서 진혼검을 잡았다·
후우우우욱!
진혼검의 검병을 잡자마자, 손끝으로 서늘한 한기가 밀려들어 왔다· 꼭 사령술에 노출된 기분이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치이이잉!
진혼검을 뽑자, 피를 뿌린 듯 더 붉어진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적색 칼날 위에서 피어나는 요기는 더 짙어졌지만, 신기하게도 원혼이 지닌 악취는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뛰어난 검수의 기운처럼 고고한 기파가 느껴졌다·
“진혼검의 힘과 의지는 강해졌지만, 원한은 줄어들었군요· 아니, 줄어들었다기보다는 그 악의를 힘으로 전환한 것 같습니다·”
라온은 진혼검의 검신을 만지며 마른침을 삼켰다·
“네 스승이 진혼검의 원혼들을 달래주었다는 말을 듣고, 검의 영혼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네가 원혼을 도와주듯, 저들 역시 너를 도와줄 것이야·”
쿠베러드는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면 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쿠베러드에게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에 있는 목륜검을 잡았다·
“음····”
검을 잡자마자, 눈앞에 붉은 기류가 일렁거린다· 살의로 가득 찬 검사를 마주한 듯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치리리리링!
목륜검을 뽑자, 리메르의 바람처럼 청명한 색을 띤 푸른 빛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그 청아함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짙고도 깊은 살의다· 사람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베어버리겠다는 강렬한 기파가 느껴졌다·
“음·”
라온이 목륜검의 검 끝으로 손가락을 가져다가 댔다·
피이익!
초월에 오르며 더 단단해진 육체였음에도 오러를 주입하지 않은 검에 베여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섬뜩하네요·”
살짝 긁히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상처가 날 줄은 몰랐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살기였다·
“그럴 줄 알았지!”
보르고스는 자신의 반응을 예측했다는 듯 연달아 손뼉을 쳤다·
“그 검으로 오마 놈들을 모조리 베어주시오!”
그는 부탁한다며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라온이 목륜검에 지지 않을 검사가 되겠다고 말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흐음, 그래서 누구의 검이 제일 나으냐?”
쿠베러드가 살짝 고개를 튼 채 물었다· 경쟁에 관심 없는 듯하더니,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다·
“뭘 물어, 뻔하잖아!”
“그래· 나다·”
보르고스는 자신 있게 본인을 가리켰고, 발칸도 당연하다는 듯 스스로를 뽑았다·
“하나 같이 제가 쓰기 아까울 정도로 훌륭한 검이라, 순위를 매길 수가 없네요·”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 목륜검을 차례로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제천검에는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깃들었고, 진혼검에는 원한을 구원으로 바꾸는 힘이 있었으며, 목륜검에는 상대가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필살의 의념이 담겨 있었다·
검의 완성도는 비등할 정도로 높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가 제각각이었기에 승패를 지을 수가 없었다·
“이 승부는 무승부로·”
라온이 정말 결정할 수가 없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에 무승부가 어디 있어!”
보르고스가 마구 고개를 저었다·
“결정을 내기는 해야 하는데····”
쿠베러드도 결정이 고프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장인의 세계에 승부가 나지 않는 건 없지·”
발칸 역시 마음에 안 든다며 눈매를 찌푸렸다·
“다시 제대로 보거라!”
“라온!”
그가 다시 보라고 말할 때 도괴가 시아를 안아 든 채로 언덕 위에 올라왔다·
시아도 여성치고는 큰 키였지만, 도괴의 덩치가 워낙에 컸기에 딱히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누나?”
“내 검을 만들어 줄 할아버지들이야?”
시아가 보르고스와 발칸, 쿠베러드를 보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도괴의 품에서 내린 후 세 장인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검?”
발칸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가 최근에 검을 배우고 있어서 날을 세우지 않은 진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음, 그렇군·”
발칸이 시아의 손과 다리를 살피며 눈매를 좁혔다·
“보기와 달리 어마어마한 검력이 느껴져·”
“재능의 덩어리라고 해야 하나·”
쿠베러드와 보르고스도 시아의 재능을 느낀 듯 마른침을 삼켰다·
[말씀드렸듯이 본래의 경지는 그랜드 마스터 최상급이었습니다·]
라온이 장인들에게만 들리게 오러 메시지를 보냈다·
[기억과 힘을 잃기는 했지만, 누나가 제대로 검을 잡는다면····]
웃으며 제천검을 살피는 시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초월에도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시아의 재능이라면 초월에 오르는 게 확정적이기에 확신을 담아서 말을 끝맺었다·
“허어!”
“그 정도라고?”
보르고스와 쿠베러드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가씨·”
발칸이 시아에게 다가가서 눈을 맞췄다·
“한번 검을 휘둘러 보겠나?”
그는 시아에게 평범한 검 한 자루를 주고서 흔들어 보라 말했다·
“음? 얼마나?”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온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힘을 아끼지 말고 휘둘러 봐 저 산을 향해서·”
라온이 전력을 다해서 휘두르라고 말하며 멀리 있는 산을 가리켰다·
“알겠어!”
시아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을 내리쳤다·
가로베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녀의 검로에는 알려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광아검의 흐름이 어려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짐승의 이빨처럼 매섭게 뻗어나간 검격이 산의 한쪽 면을 바스러뜨렸다·
“맞혔다!”
시아는 바위를 맞힌 게 기쁘다는 듯 방방 뛰었다·
“어····”
“이, 이게 뭐····”
“허어!”
쿠베러드와 보르고스는 물론이고, 발칸까지 당황하여 눈을 부릅떴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앞으로 초월에 오를 누나의 첫 번째 검을 어떤 분이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라온은 능숙한 경매꾼처럼 세 사람에게 손가락을 흔들었다·
“나다! 내가 만들겠어!”
“아니지· 저런 아가씨의 검은 나처럼 섬세한 사람이 만져야 해!”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가릴 때야!”
세 장인은 본인들이 시아의 검을 만들어 주겠다고 외치며 또 싸우기 시작했다·
“다 좋아요!”
시아는 많으면 좋다는 듯 방실거리며 웃었다·
-유치한 영감탱이들····
라스는 한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은 것 같으니라·
‘···네가 할 소리야?’
* * *
라온은 시아를 별관에 데려다준 후 5연무장으로 향했다·
광풍대 검사들이 수련한 후 돌아갔는지 연무장 바닥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흐아암····
라스가 길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배 따시게 먹었으면 잠이나 자지 왜 또 나온 것이냐····
녀석은 눈을 비비며 자러 가자고 손을 까딱였다·
‘검을 얻었으니, 얼마나 달라졌나 확인은 해봐야지·’
제천검과 진혼검, 목륜검의 특성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으니, 직접 휘둘러봐야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맞는데, 자고 해도 되잖느냐!
라스가 왜 꼭 밤에 난리냐며 고개를 저었다·
‘조용하니 좋잖아·’
라온이 웃으며 제천검을 뽑았다· 검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육체와 정신이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무엇에도 지지 않을 것 같았다·
후우·
언제나 그랬듯이 시작은 기본 검술이다· 시아에게 가르쳐주었던 기본 검술의 흐름과 묘리를 자신에게 투영하며 제천검을 내리쳤다·
후우우욱!
자신의 신념을 담고 있는 제천검의 칼날이 차디찬 새벽 공기를 갈랐다·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 않는 검· 발칸은 자신했던 그대로의 검을 만들어 주었다·
-굳건함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벼린 듯한 검이로구나· 이전보다도 더 단단해졌어·
라스는 검사의 의지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검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르르릉·
제천검을 넣고, 목륜검을 잡았다· 짙은 살기와 함께 푸른 검신이 어둠을 지우는 살의를 뿌렸다·
치이이잉!
라온은 매끄러운 보법으로 연무장의 중앙으로 나아가 광아검을 운용했다·
목륜검에 담겨 있는 오싹할 정도의 예리함이 미친 짐승의 이빨이 되어 천지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콰아아아아아!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검로의 끝에서 거미줄 같은 살의가 피어 나와 대기를 찢어발겼다·
‘이건 위험하군·’
적만이 아니라, 아군에게도 뻗어나가는 살기·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동료의 등에도 검이 박힐 것 같았다·
-그 난쟁이가 악마를 만들었다고 한 이유가 있구나·
라스는 지랄맞은 검을 만들었다며 헛바람을 흘렸다·
‘그럼 마지막으로····’
라온이 허리 뒤편에서 진혼검을 뽑으려고 할 때 연무장의 문이 열리고, 글렌이 들어왔다·
“검을 시험하는데, 혼자 해서 되겠느냐·”
글렌이 담담한 안색으로 손을 저었다·
“가, 가주님?”
글렌이 이곳까지 왔을 줄은 몰랐기에 바로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새로 검도 받았으니, 미룬 약속을 이루는 게 어떻겠느냐·”
“약속이라고 하신다면····”
“대련·”
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진천검을 잡았다·
“네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한번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