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0화
라온이 검게 갈라진 차원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라스의 말대로야····’
무릎을 꿇리고, 가슴을 콱 조이는 거대한 존재감· 저 차원 안쪽에 서 있는 발록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마왕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기파를 지니고 있었다·
[날 노리는 덫에 걸린 듯하여 데리러 왔더니, 이미 늦은 모양이로군·]
검게 출렁이는 차원 안쪽에서 둔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무감정한 목소리였음에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다만 저 말을 들어보니, 흑탑이 처음부터 노린 건 자신이 죽인 발록이 아니라, 발록의 왕 아스카라인 것 같았다·
[네놈들이 나를 끌어내려고 한 것이냐?]
적광으로 번뜩이는 아스카라의 시선이 자신의 눈으로 향했다· 안구가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힘은 몰라도 성격은 다른 마왕과 달라·’
아스카라는 다른 마왕들과 달리 지닌 패기를 아끼지 않고 뿜어냈다·
그의 앞에서 버티는 것만으로 정신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
라온은 입을 다문 채 담담한 안색을 드러냈다·
명경지수 덕분에 아스카라가 일으키는 강대한 투기의 폭풍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네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라스가 이상하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예전 같으면 또 본왕의 흉내를 내면서 까불었을 텐데?
‘이번에는 위험하니까·’
녀석에게 답을 해주며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생각을 잘해야 해·’
저놈은 마왕이 아니니까·
아스카라는 마왕의 옥좌에 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싸우며 살기 위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괴짜다·
다른 마왕들에게 했듯 라스를 연기한다면 당장 저 차원을 뚫고 나와서 자신의 목을 비틀지도 모르기에 일단 말을 아껴야 했다·
-하여튼 대가리 하나는 비상하게 돌아가는 놈이니라·
라스는 아깝다는 듯 혀를 찼다·
-그 말대로이니라· 네놈이 본왕의 연기를 했다간 저 투귀가 바로 튀어나와서 덤벼들었을 것이니라· 물론 본래의 힘을 쓸 수는 없겠지만·
녀석은 자신이 미꾸라지 같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혹시 너와도 싸운 거야?’
-그렇느니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덤벼들었지·
라스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눈매를 좁혔다·
‘네가 이겼어?’
-당연하지 않느냐!
라스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 인상을 구겼다·
-저 투귀 놈을 얼려서 마계의 심해에 던져버렸느니라· 튼튼하기는 더럽게 튼튼해서 결국 올라왔지만·
녀석은 끔찍한 육체라며 고개를 저었다·
‘죽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네·’
-나름 마음에 들었으니까· 저런 놈은 마계에도 몇 없거든·
라스는 군주의 옥좌를 버리는 패기가 좋았다며 픽 웃었다·
‘그래····’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셨다· 라스의 말을 들으니, 더욱 확실해졌다·
발록의 왕, 아스카라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싸움에 미친 괴물이었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될 거야·’
자신이 초월자라고 해도 저 투귀의 눈을 채우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동족에 대한 복수심도 보이지 않기에 조용히 있으면 알아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았다·
[답을 하지 않는 건가· 뭐, 좋다· 이미 끝난 싸움에는 흥미가 없으니··· 음?]
이대로 돌아갈 것처럼 몸을 돌리던 아스카라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발록의 시체 위로 피어오르는 은빛 냉기에서 굳어졌다·
[백은의 오로라···· 설마 글래시아?]
아스카라의 눈빛이 시뻘겋게 타오르며 그가 피워내는 패기가 급격히 강해졌다·
[라스? 너인가!]
그의 음성에는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흘러넘치도록 담겨 있었다· 귀가 쨍하고 터져나갈 것 같았다·
‘이런····’
라온이 입술 안쪽을 깊게 깨물었다·
‘글래시아를 알아보다니·’
라스와 싸운 경험으로 글래시아와 백은의 오로라를 알아본 것 같았다·
벌집이 스스로 날아와서 자신에게 부딪친 것과 다를 바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호오?
라스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왕에게 기회가 왔구나!
녀석은 기대가 된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저 투귀 놈은 말이 안 통하느니라! 이대로 튀어나오면 본왕이 상대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니라!
라스는 지금은 만전이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당장 본왕에게 그 몸을 넘겨라!
‘빠져 있어·’
꼬리를 살랑이며 다가온 라스를 쳐내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너무 변했는데····’
단어 하나만 잘못 꺼내도 자신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게 된다· 긴장감에 목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생각을 하자· 최대한 빠르게·’
라스가 말해주었던 아스카라의 성격과 지금까지 있었던 경험을 뒤섞으며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그렸다가 지웠다·
수백 가지 길 중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답지를 선택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 대답해라!]
아스카라는 답을 하지 않으면 차원을 찢어버리고 나올 것처럼 사나운 기파를 터트렸다· 손가락이 바르르 떨리고, 머리털이 쭈뼛 섰다·
“하아, 귀찮은 놈이 나왔군·”
라온이 라스의 말투를 따라하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스의 수다를 하도 듣다 보니, 이제는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비슷한 어조가 나왔다·
[역시 너였구나! 라스!]
아스카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냉기를 쓰는 마족은 네놈밖에 없으니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 듯 열화에 타오르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우헤헤헤헤헤!
라스가 부들부들 떠는 아스카라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본왕의 연기를 하다니, 조급함에 실수를 저질렀구나! 이제 저놈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니라!
녀석은 곧 아스카라가 튀어나올 거라며 통통한 손을 비볐다·
‘실수가 아니라, 네 말대로 튀어나오기를 원하는 거야·’
-엉? 그, 그게 무슨····
라스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그냥은 아니지만·’
라온이 짧게 고개를 젓고서 아스카라가 서 있는 차원을 굽어보았다·
[그래· 그 분위기· 그 기파는 분노의 군주 밖에 가질 수 없지! 헌데····]
아스카라의 붉은 눈동자가 실처럼 가늘어졌다·
[왜 그리 약해진 것이냐! 이런 녀석에게도 결전기를 사용하다니!]
그가 실망스럽다는 발을 구르자, 차원 밖에 있는 이 지하 공간까지 충격이 전해져왔다· 차원의 간섭을 이겨내는 어마어마한 힘과 패기였다·
“여전히 멍청한 소리만 하는구나·”
라온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이 약해 빠진 육체가 본왕의 것 같으냐?”
[그럼···?]
“본왕의 수하들이 위기에 처했기에 잠시 도와준 것뿐이니라·”
작은 힘을 담은 영체만 보냈다고 말하며 손을 까딱였다·
“갑작스럽게 차원을 뚫어내느라 힘이 좀 빠지기는 했다면 멍청한 발록 하나 찢어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지·”
라온은 가뿐했다고 말하고서 얼어붙은 발록의 시체를 발로 밟아서 으깨버렸다·
[영체로 급격히 차원을 뚫고 나왔는데 그 정도라고?]
아스카라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본왕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으니까·”
너도 할 수 있냐는 듯 거만한 눈빛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재미있구나!]
아스카라가 좋다고 외치며 두 주먹을 부딪쳤다· 강렬한 충격파에 검은 차원이 대해의 파도처럼 요동쳤다·
[그런 방식으로 싸우는 것도 색다른 맛이겠어·]
그는 머뭇거림 없이 두 손으로 공간을 잡고 좌우로 찢어버렸다·
파지지지직!
갈라진 공간 속에서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팔이 튀어나왔다·
아스카라는 그 강대한 투기와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검은 불길을 일으켜 발록의 시체 위로 떨어뜨렸다·
파아앙!
검은 불꽃에 휘감긴 발록의 시체가 저절로 떠오르더니, 뜯겨나간 살과 뼈를 빠르게 재생시켰다· 트롤조차 넘어서는 회복력· 꼭 다시 살아나는 불사조를 보는 것 같았다·
쿠우우웅!
흑염에 의해서 되살아난 발록이 제 발로 서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곧이어 띄인 눈동자 속에서는 아스카라가 보여주던 강대한 안광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떤가·”
발록의 음성에 거대한 무게감이 담겼다· 검은 차원 속에 있던 아스카라의 목소리였다·
“이 정도면 조건은 비슷하겠지?”
그는 이대로 싸워보자고 말하며 검게 물든 투기를 일으켰다· 등 뒤에서 검은 용암이 출렁이는 것 같았다·
-이 멍청한 놈아! 저 투귀 놈은 말이 안 통한다니까!
라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저 상태의 아스카라를 이긴다고 쳐도 곧 본체로 밀고 들어올 것이니라·
녀석은 지금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다며 몸을 넘기라고 외쳤다·
‘가만히 보고나 있어·’
라온이 라스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하며 입맛을 다셨다·
‘일단 생각대로 되기는 했는데····’
아스카라는 본체가 아니라, 죽은 발록의 몸을 이용하고 있었고, 억지로 차원을 넘으며 많은 힘을 소모했다·
두 단계에 의해서 크게 힘이 줄어든 상태였기에 지금이라면 최소한 버틸 수는 있었다·
‘검을 써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물론 그 부분도 생각해놓았기에 마지막 떡밥을 던졌다·
“분신조차 약하구나·”
라온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본왕의 능력을 쓸 필요도 없겠어·”
수하의 힘으로 싸워주겠다고 말하며 턱을 모로 틀었다·
“그래· 라스 너는 그리 건방진 게 어울린다· 허나····”
아스카라가 길게 입꼬리를 찢으며 흑염을 일으켰다·
“예전과는 다를 것이야!”
그는 검은 불길의 잔상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가 자신의 우측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빨라·’
아스카라는 발록의 왕답게 조금 전에 죽였던 발록보다 힘의 사용이 능숙했다·
더 적은 투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더 빠르고, 현묘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럼····’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땅에 박았다·
검계현신 신마조화결·
신검과 마검을 뽑아서 흑염으로 밀고 들어오는 아스카라의 주먹을 향해 내질렀다·
쩌어어어엉!
주먹과 검이 부딪쳤건만 거대한 쇳덩이들이 부딪친 듯한 굉음이 터지고, 지하 전체에 강대한 진동이 일어났다·
“검?”
아스카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정말 검으로 나를 이기겠다고?”
“검이라고 별게 있더냐· 그저 휘두르면 그만인 것을·”
라스인 척하기 위해서 검사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을 꺼내며 비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네놈이라고 해도 그 발언은 받아줄 수가 없구나·”
아스카라가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나와라· 바스타르!”
그의 외침이 차원을 가르고, 검게 물든 공간을 열었다·
선홍빛 용암으로 들끓는 지옥 속에서 어둠으로 벼린 듯한 흑색의 대검이 현현했다·
흑색 대검은 업화를 담아낸 듯한 지독한 열기를 내뿜으며 지하 전체의 공기를 들끓게 만들었다·
-단단히 마음먹었군·
라스가 바스타르라는 이름의 검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놈의 육체는 가짜지만, 저 검은 진짜이니라·
녀석은 저 검이 진짜 아스카라의 무기라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검을 무시하는 말 따위는 할 수 없도록 일검에 찢어주마!”
아스카라는 제힘을 쓰게 만들어주겠다고 외치며 바스타르를 내리찍었다·
검은 불꽃이 끝없이 뻗어나가며 지하 전체를 뒤덮었다· 온 세상이 잿더미 속에 파묻히는 것 같았다·
“····”
라온이 쇄도해오는 흑염의 폭풍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지금이 발록의 왕을 꺾을 유일한 기회야·’
아무리 아스카라가 힘을 줄였다고 해도 본래의 경지 자체가 크게 차이나기에 자신이 이기려면 놈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 밖에 없었다·
쿠웅!
라온은 리메르의 검을 등 뒤로 띄운 후 아스카라의 흑염을 향해 나아갔다·
우우우우웅!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흑염의 검을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었기에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아스카라의 투기를 담아낸 흑염과 청홍의 오러가 부딪치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대지를 가득 채운 용암이 증발하며 안개 같은 연기를 뿌렸고, 단단한 지하의 벽과 천장이 진흙을 후벼 파는 것처럼 바스러졌다·
아스카라가 차원을 뚫고 나오며 생겨난 균열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모든 것이 무너졌을 것 같았다·
“고작 이 정도로 검을 우습게 봤던 것이냐!”
아스카라는 같잖다는 듯 입매를 비틀며 흑색의 대검에 더 짙은 투기를 담아냈다·
찌지지지직!
흑색의 물결이 청홍의 빛을 지우며 밀어닥쳤다· 너무도 강대한 힘에 신검과 마검 모두가 꺾여버릴 것 같았다·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여전하구나· 그럼 이 다음을 보여주마·”
라온이 억지로 미소를 그리며 등 뒤에 세웠던 리메르의 검으로 공간검을 펼쳤다·
아스카라의 코앞으로 검극을 이동시킨 후 자신의 마지막 무기를 꺼냈다·
검계현신 개벽·
공간을 뚫고 튀어나온 나뭇잎의 검 위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황금빛 광휘가 떠오른다·
예전부터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던 청홍무적과 개벽의 조화· 붉고, 푸른 물감 위에 황금빛 휘광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검로가 그려졌다·
쩌저저저적!
아스카라의 흑염이 갈라지고, 흑색의 대검이 튕겨 나간다· 빈틈을 드러낸 그의 가슴 위로 세 자루의 검이 동시에 박혔다·
쿠우우우우웅!
아스카라도 본체가 아니었기에 라온의 초월적인 검격을 견디지 못하고 용암이 말라붙은 대지에 처박혔다·
“커헉!”
그는 이 분신에 넣어둔 투기를 모두 소모한 듯 손가락도 까딱이지 못하고 탁한 숨을 내뱉었다·
“네, 네놈 언제부터 검을 익힌····”
“언제부터라니·”
라온이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움을 참으며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익힌 적 없느니라·”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네놈의 검에는 분명한 의념이 담겨 있었다!”
“그저····”
가는 웃음을 그리며 손가락을 내렸다·
“본왕의 수하가 겪은 것들을 따라했을 뿐이니라·”
라스는 예전에 자신이 싸워온 길을 보고, 마도현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건방을 떨며 턱을 까딱였다·
“크하하하하!”
아스카라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광소를 터트렸다·
“역시나 분노의 군주! 마계에서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너와 그 셋뿐이다!”
그는 더욱더 짙은 투기를 피워내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너와 나 모두 전력으로!”
아스카라의 영혼을 담고 있던 발록의 몸이 무너지고, 다시 차원이 일그러진다· 그는 본체로 차원을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싫다·”
라온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약한 놈과는 싸우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고 말하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개소리하지 마라! 아무리 네놈이라고 해도 본체의 나를 약하다고 칭할 수는 없다!”
아스카라는 어서 싸우자고 말하며 발을 굴렀다·
“본체를 드러내라! 안 그러면 그대로 죽여버릴 테니까!”
그는 진심이라는 듯 불꽃이 휘몰아치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거라·”
라온이 양팔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본왕은 한 번 한 말을 물리지 않느니라·”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서 눈을 내리감았다·
“끄으윽····”
아스카라는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낀 듯 더 이상 손을 뻗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뭐, 뭐야!
라스가 눈을 끔벅였다·
-이, 이러면 안 되잖아! 아스카라! 이 멍청아! 어서 달려들라고!
녀석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긴 왜야·’
라온이 당황한 아스카라와 라스를 보며 옅게 웃었다·
‘내 생각대로 이어진 거지·’
그 말을 하며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인사나 해·’
-인사는 무슨 인사!
‘새로운 호구를 환영하는 인사·’
라온의 웃음과 동시에 라스의 얼굴이 마른 낙엽처럼 찌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