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6화
“그럼 다녀올게요·”
라온이 실비아와 에드가에게 손을 흔들다가 등 뒤로 눈길을 돌렸다·
“저기 누나? 나 이제 가봐야 하는데····”
어깨에 매달려 있는 시아의 머리를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못 가!”
시아는 절대 안 보내겠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약속한 대로 집을 지켰는데, 왜 또 가는 거야!”
그녀는 자신이 별관을 떠나는 게 싫다며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었다·
“가, 가고 말고를 떠나서 뼈가 부러질 것 같은데····”
시아가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을 끌어안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팔이 닿아 있는 쇄골과 갈비뼈가 이대로 깨져나갈 것 같았다·
다만 자신이 했던 말이 있기에 쳐내지는 못하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몇 밤 안 걸릴 거야·”
라온은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두 손을 모았다·
“누나한테 줄 선물도 꼭 가져올게·”
그의 목소리는 가을 낙엽처럼 따스한 색으로 바스락거렸다· 정말 아이를 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선물···?”
시아는 선물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홱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루비처럼 아롱진 빛을 드러냈다·
“어떤 선물이야?”
“그건 비밀이지·”
미리 생각해놓지 않았기에 일단 말을 돌렸다·
“으음····”
시아는 선물이라는 단어에 혹한 듯 어깨를 꽉 조이던 팔에 힘을 풀기 시작했다·
“시아야· 라온도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게 아니야·”
실비아는 기회라고 생각한 듯 시아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주었다·
“그럼! 라온도 다 우리를 위해서 임무에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선물이라는 거짓말까지··· 커헉!”
에드가는 시아한테 준다고 말한 선물이 거짓말이라고 중얼거리다가 실비아에게 걷어차였다·
어찌나 세게 차였는지, 그의 몸이 훌쩍 날아가 별관의 울타리에 처박혔다·
“으응····”
다행히 시아는 에드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눈동자를 좌우로 돌리며 라온의 등에서 내려왔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이번에도 집을 지키고 있어줘·”
라온이 시아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서 다정한 미소를 머금었다·
“응· 알겠어· 대신····”
“그래· 꼭 선물을 가져올게·”
선물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벽에 박혀 있는 에드가를 노려보았다·
“알겠어! 집은 누나한테 맡겨!”
시아는 선물에 힘이 난 듯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여전히 아이였지만 그 기세는 격렬한 포효를 내뿜는 전장의 장수를 보는 것 같았다·
‘복귀한 후에 누나한테 검을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지닌 기운이 워낙에 강하니, 제대로 가르쳐서 힘을 통제하고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정말 가볼게요·”
라온은 실비아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시아에게 손을 흔들고서 정원을 나섰다·
-네놈의 누나답게 고집이 세구나· 앞으로 귀찮겠어·
라스는 미래가 빤히 보인다며 입맛을 다셨다·
‘딱히 귀찮지는 않아·’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안정감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전생이라면 라스의 말대로 귀찮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번 생을 살며 가족과 인연에 대해 알게 되었기에 시아의 투정 정도는 귀여웠다·
-네놈도 사람이 되어가는 건가····
‘원래 사람이었거든?’
-흥! 네놈은 본래 천족 그 자체였느니라·
라스는 인간의 정체성 자체가 없었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쌍욕은 하지 말자·’
라온이 라스의 코를 툭 치며 웃었다· 이제 자신도 천족이 욕이라고 느끼게 된 것을 보면 참 많이 변한 것 같았다·
“광풍대주 라온 지그하르트를 저렇게 쩔쩔매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앞으로 잘 보여야겠는데·”
정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버렌은 남매 관계가 귀여웠다며 온기 있는 미소를 그렸다·
“저 순진한 웃음 속에 그랜드 마스터의 무력이 숨겨져 있다는 거지? 이거 오싹한데?”
마르타는 시아와 한 판 붙어보고 싶다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조금 부러운데····”
루난은 부럽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서 가시죠! 집에 가는 김에 챙겨올 게 많아요· 일단 보급을 떠나서 필수품들을 모조리 담아야····”
도리안은 세피아 상회에 가는 게 기대된다는 듯 필요한 물건들을 연달아 읊었다· 온 세상의 물건을 모조리 챙기려는 것 같았다·
“애들이 개성 넘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주 난리가 났네·”
셰릴은 각자 할 말만 하는 조장들과 도리안을 훑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르친 사람이 누구보다 개성 있는 검사였으니까요·”
라온은 당연하다는 듯 웃고서 앞으로 나갔다·
“그래· 그건 그렇네·”
셰릴이 가는 웃음을 그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 * *
라온이 저녁 식사를 끝낸 후 모닥불 앞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셰릴이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노숙도 익숙해진 것 같네·”
셰릴이 모닥불 앞에 주저앉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 데리고 나갔을 때는 어리버리했던 것 같은데·”
“저는 잘했습니다· 쟤들이 좀 느렸죠·”
라온은 주변을 정리하는 도리안과 세 명의 조장을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노숙이 삶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암살자로 긴 세월을 살았기에 노숙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자신이 어색하게 보였다면 전부 광풍대 녀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너 처음부터 우리 부대주 녀석이랑 싸웠지?”
“싸운 건 아니고, 팔씨름을 했죠·”
“그래· 그때부터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셰릴은 과거의 일이 다 떠오른다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분은 잘 계십니까?”
“전보다 근육만 더 채우고 있어· 팔씨름에서 지고 싶지 않나 봐·”
그녀는 무학보다 근육에 더 미친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왠지 좀 알 것 같네요·”
라온이 은은한 웃음을 그리며 다시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저기····”
셰릴이 짧은 침묵 속에서 느릿하게 입술을 뗐다·
“진혼검에 그 망할 놈의 영혼이 들어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야?”
“예· 정말입니다·”
라온이 셰릴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얀 님이 스승님의 영혼을 내보내주려고 했는데, 진혼검에 뿌리를 박고 나오지를 않더군요·”
“···잠시 그 검을 볼 수 있을까?”
셰릴은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마른침을 삼켰다·
“물론이죠·”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셰릴에게 진혼검을 건네주었다·
요검이라서 본래라면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되지만, 셰릴은 괜찮을 것 같았다·
“고마워·”
셰릴이 떨리는 손으로 진혼검을 받았다·
“이 망할 놈이!”
그녀는 진혼검의 붉은 날을 노려보며 꾹 참고 있던 감정을 터트렸다·
“그냥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해····”
셰릴이 진혼검을 두 손으로 말아 쥔 채 이마를 기댔다· 일렁거리는 모닥불의 그림자 때문인지 그녀가 리메르에게 안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동안 진혼검을 잡고 있던 셰릴은 조금이나마 울분을 풀어낸 듯 시원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마워· 덕분에 속이 좀 풀렸어·”
셰릴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서 진혼검을 돌려주었다·
“저기····”
라온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진혼검을 잡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스승님과 천검대주님은 어떤 관계이셨습니까?”
“어···?”
셰릴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은 듯 얼굴을 붉혔다· 언제나 당당하던 그녀의 철면이 깨진 것 같았다·
“그게· 어, 음····”
그녀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깨를 꼬며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를 굴렸다·
“라온· 준비 다 끝났어! 새벽 전에 도착해야한다며 빨리 가자!”
셰릴의 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르타가 빨리 출발하자며 손을 흔들었다·
“알겠어· 잠시만····”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셰릴에게 답을 들으려고 하는데, 그녀는 이미 자신을 벗어나 선두에 있는 버렌의 옆에 서 있었다·
“가자! 더 늦으면 위험할 수도 있어!”
셰릴은 어서 오라는 듯 붉어진 얼굴로 발목을 돌리고 있었다·
“음····”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셰릴과 리메르의 관계는 나중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헌데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스승님이 아니라, 셰릴 님이 더 많이 좋아하시기라도 한 건가?’
헷갈려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마르타가 등을 후려쳤다·
“가끔은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게 있는 거야·”
“바보····”
루난도 동의한다는 듯 혀를 살짝 내밀고 지나갔다·
‘저게 무슨 뜻이야?’
-이러니까 네놈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니라!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니, 그니까 말을····’
-천족 같은 놈·
‘천족이라도 좋으니까 답을 달라고·’
-멍청한 천족 같은 놈!
‘너도 모르지?’
-····
* * *
대륙 서남부의 대도시 로칸·
밤이라는 두꺼운 이불이 도시 전체를 덮었건만, 세피아 상회주의 집무실은 홀로 밝은 불빛을 잃지 않았다·
“흠····”
고독한 불빛의 주인이자, 세피아 상회의 수장 아디스 세피아는 집무실을 바삐 움직이며 수많은 글귀를 적어 내려갔다·
명암을 가르는 이 늦은 시간이 대륙을 울리는 상회주의 중대한 순간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회주님·”
노집사 리그윈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그만 주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는 너무 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손을 앞으로 모았다·
“평소라면 그게 맞지· 하지만 이번에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소·”
아디스는 조언은 고맙지만, 받을 수가 없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도리안· 그 녀석이 돌아온다는데, 준비를 허투로 할 수는 없지!”
그는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모습이 기대된다는 듯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이 늦은 밤· 도시의 몇 없는 불빛의 장식했던 건 상회주로서의 신념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부성애였다·
“그리도 좋으십니까?”
리그윈은 그렇게 웃는 건 오랜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커험! 내가 무엇을 웃었다는 건지·”
아디스는 북방의 누군가처럼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지금 아주 잘 웃고 계십니다·”
리그윈은 거울이라도 가져다 드리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아니라! 우리 아들놈이 여기저기서 활약을 했다는 소문이 들어오니, 조금 기대가 될 뿐이네!”
아디스는 절대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지만, 여전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는 못했다·
“헌데 언제쯤 오려나····”
그는 기다리기 힘든지 눈썹을 내렸다·
“오늘 편지가 도착했으니, 차원문을 탄다고 해도 내일이나 모레에 도착할 듯합니다·”
리그윈은 천천히 준비해도 될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게 맞겠지·”
아디스도 조금 여유를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을 때였다·
“음···?”
리그윈이 귀에 손을 가져다댄 채 눈매를 찌푸렸다·
“왜 그러는 거지?”
아디스가 리그윈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저어····”
리그윈이 헛바람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내렸다·
“도, 도련님과 광풍대주께서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뭐? 지금?”
“예· 이미 정문을 넘었다고 합니다·”
“허····”
아디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일단 맞이할 준비부터 하시죠·”
리그윈은 아디스가 난장판을 만든 집무실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사라지고, 본래의 말끔한 집무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흠흠!”
아디스는 옷의 구겨진 주름을 펴고,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들었다· 그가 일하는 척하고 있을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회주님· 도련님과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아디스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안?’
다만 그는 아들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통통했던 아들의 살이 전체적으로 쭉 빠져 있었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검사보다도 헌양해 보였다·
물론 바로 뒤에서 들어오는 라온과 비교하면 조금 빛이 바랬지만, 평범한 이들은 압도할 정도였다·
“아버지!”
도리안은 오랜만의 만남에 흥분한 듯 자신을 향해 세차게 달려왔다·
“음····”
아디스가 눈썹을 내렸다·
본래라면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밀어내야 하지만, 저렇게 변한 모습을 보니, 감격스러워서 안아주고 싶다는 약한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 노력했으니까·’
아들이 저렇게 될 때까지 많은 노력을 했을 게 보이기에 이번 한번만 마음을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도리안!”
아디스가 아들을 안아주기 위해서 팔을 벌렸을 때 도리안이 걸음을 뚝 멈춘 채 품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꺼냈다·
“필요한 게 많아요! 일단 불에 저항력이 있는 석벽이랑, 외상약, 내상약, 성수, 노숙용 천막이랑 침대····”
도리안은 아디스가 어색하게 팔을 벌리고 있을 때 본인이 필요한 물건들만을 우르르 뱉었다·
“····”
기대감으로 타오르던 아디스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 * *
“또 망치와 톱날이 필요··· 엑!”
“그만해·”
라온은 끊임없이 보급품을 요청하는 도리안을 뒤로 잡아끌고서 멍하니 서 있는 아디스 세피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회주님· 오랜만입니다·”
“어, 어음····”
아디스도 이제 정신을 차린 듯 관자놀이를 살짝 두드리고서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오· 광풍대주, 천검대주도 오셨구려·”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셰릴에게도 예의를 갖춘 인사를 보냈다·
“늦은 시간에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셰릴이 미안하다는 듯 허리를 굽혔다·
“괜찮소· 어차피 서류 작업을 하고 있어서·”
아디스는 글씨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서류를 흔들었다· 당황하여 빈 종이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다만 이렇게까지 빨리 온 것을 보니, 생각보다 급한 일인 것 같구려·”
“예· 혹시 회색 망치 길드에 관한 정보가 있으십니까?”
라온이 한 발 앞으로 나가서 물었다·
로칸과 회색 망치 길드가 있는 땅은 그리 멀리 않기에 아디스가 소식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올해에는 보르고스 님을 만난 적이 없소· 작년 말에 선물을 보냈을 때 중요한 일이 있으니, 한동안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서·”
아디스가 책상에 팔을 올린 채 고개를 저었다·
“광풍대주도 알겠지만, 장인들은 갑자기 공방에 틀어박히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구려·”
“예· 오해를 살 수도 있어서 적지는 않았는데····”
라온이 보르고스가 보낸 편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으음, 그분의 필체가 맞소· 다만····”
아디스가 라온이 꺼낸 편지지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이런 내용을 보내실 분은 아닌데····”
그는 혼자 죽으면 죽었지, 친분이 없는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아니라며 미간을 구겼다·
“아마 굉장히 급하셨던 것 같소·”
“그럼 지금 바로 가보는 게····”
“일단 기다려주시오· 내 아들놈한테 회색 망치 길드 쪽으로 직접 가보라고 했으니, 곧 돌아올 것이오·”
아디스는 올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리그윈이 안내해주는 소파에 앉았다·
“그, 그럼 저는 보급! 보급을 하고 올게요!”
도리안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아디스와 라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아, 네 마음대로 해라·”
아디스는 도리안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손을 휘휘 저었다·
“옙!”
도리안은 아버지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경례를 하듯이 손을 올리고서 집무실을 나섰다·
“···저 아이는 어떻소?”
아디스는 도리안이 떠나자마자, 그에 관한 질문을 해 왔다·
“검사로 살기에는 산만하고, 겁이 많습니다·”
라온은 차분한 음성으로 도리안의 평소 모습을 밝혔다·
“역시····”
“하지만 지금은 그 겁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신념과 실력을 쌓았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훌륭한 지그하르트의 검사입니다·”
“음, 그렇구려·”
아디스는 라온의 진심이 담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듯 입매를 작게 말아 올렸다·
“충분히 제 등을 맡길 수 있는 친구입니다·”
“그 정도나?”
“예· 진심입니다·”
“허허!”
그가 웃음과 놀라움을 동시에 드러냄과 동시에 상회 건물 이곳저곳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대체 얼마나····”
아디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나자,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도리안의 형인 디알룬 세피아와 갈색 수염으로 똬리를 튼 드워프가 들어왔다·
“아,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디알룬이 거친 숨을 내쉬며 무거운 걸음을 내디뎠다·
“일단 진정하거라·”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는 드워프를 가리켰다·
“보르고스 님과 회색 망치 길드의 드워프 대부분이 몬스터에게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디알룬은 드워프들이 본인들의 거점에서 당했다고 말하며 입술을 떨었다·
“음?”
아디스가 드워프를 보며 고개를 떨었다·
“그,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드워프가 턱을 떨며 고개를 떨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아디스는 어서 설명해보라는 듯 책상을 내리쳤다·
“우리가 공방을 세운 불타는 땅 아래에서 괴, 괴물들이 올라왔소·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무력이 너무도 막강하여····”
드워프는 절망적인 힘이었다고 말하며 턱을 떨었다·
“그러면 도움을 요청했어야지!”
마르타가 미간을 구겼다·
“드워프들은 웬만해서는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소·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아디스는 드워프가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종족 전체가 위험할 때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괴물은 무엇이오? 자이언트 웜처럼 대형 몬스터요?”
“아니오· 우리처럼 말을 하는데, 덩치가 굉장히 크고, 붉은 날개를 세웠으며, 불타는 검이나, 채찍을 휘두르는 괴물이었소·”
드워프는 자신들의 무기가 통하지 않았다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불타는 검이나 채찍?”
라온이 드워프의 말을 들으며 눈매를 좁혔다·
‘그런 몬스터가 있었나?’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떠오르는 몬스터가 없었다·
-허음····
다시 물어보려고 할 때 라스가 콧잔등을 긁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저거 왠지 본왕이 아는 놈들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