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5화
“····”
라온이 한참 동안 리메르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글래시아를 운용하며 손아귀에서 은빛 서리를 뿌렸다·
화아아아아!
싸라기눈처럼 연하게 퍼져나간 서리가 리메르의 몸을 부드럽게 감싼 채 회전한다·
육체의 부패를 막으면서, 피부에 동상을 입지 않게 만드는 조치였다·
-됐느니라·
라스가 멈추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 정도면 부패 되지도 않고, 동상을 입지도 않을 것이니라·
녀석은 힘 조절을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된 거야?”
버렌이 리메르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서리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그래· 한동안은 괜찮을 거야·”
라온이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잠에 빠져도 유지되도록 만들었기에 청풍까지 이동하는 동안은 별일 없을 것이다·
다만 부상을 입고,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냉기를 짜냈기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저기, 음····”
버렌은 할 말이 있는 듯 자신의 눈치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왜?”
“아, 아니, 네가 그렇게 통곡을 할 줄은 몰랐어서· 괜찮은지 물어보려고····”
그는 자신이 오열할 줄은 생각 못 했다며 입맛을 다셨다· 정말 당황했는지 말투가 어색했다·
“미안하다· 대주로서 좀 그랬지?”
라온이 고개를 숙이며 눈물이 마른 볼을 쓸어 내렸다·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걱정되어서 한 말이야· 네 성격을 알고 있으니까·”
버렌은 따지려고 한 말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잘 울었지·”
마르타가 다가와서 광풍대를 가리켰다· 검사들은 자신에 못지않게 감정의 뚝을 풀어두었는지, 지금도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네 덕분에 애들이 슬픔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저런 감정은 쌓아두면 병이 된다며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너도 그랬나 보네·”
라온이 술을 마신 듯 붉어진 마르타의 눈과 코를 보며 옅게 웃었다·
“왜? 내가 우니까 꼬와? 나는 눈물이 없을 거 같았어?”
마르타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씹었다·
“나찰녀· 라온만큼이나 울었어····”
루난이 마르타의 옆으로 다가와서 고개를 저었다·
“야! 너는 더 심하게····”
“그리고 나도····”
그녀는 지금도 서글픈 듯 입을 삐죽 내민 채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하아····”
마르타는 고개를 숙인 채 훌쩍이는 루난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저 둘이 저렇게 사이좋게 안고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
라스는 잠이 든 듯 가늘게 웃고 있는 리메르를 바라보며 푸른 눈동자를 구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라온이 라스를 보며 손을 까딱였다·
-본왕의 한심함을 생각하고 있었느니라·
라스가 천천히 시선을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또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느니라·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농땡이를 부리고, 건들건들했던 귀때기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죽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느니라·
라스가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본래 눈물이 많은 녀석인데, 아예 울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고맙다·’
라온이 짧은 숨을 내쉬고서 라스의 머리를 두드려주었다·
‘너와 스승님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언제나 화를 내는 라스와 능글맞게 흘려 넘기는 리메르가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으니 그저 가슴만 아팠다· 다시 울고 싶을 정도였다·
“저기 도련님····”
유아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리메르를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의 소매를 붙잡았다·
“지, 지그하르트에는 보물이 많잖아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엘릭서 같은 게 있으면 부대주님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녀는 아직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눈망울 속에 희망을 담고 있었다·
“아, 도, 도리안 님이라면 분명 가지고 계실 거예요!”
유아는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듯 손을 떨었다·
시프를 찌를 때 강기를 일으킨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미안해····”
도리안이 죄인이 된 듯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럼 지그하르트에는····”
“그런 말이 아닐 거야·”
라온이 유아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저었다·
“엘릭서는 죽기 직전인 사람을 살리는 물건이지, 이미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해·”
지그하르트에 엘릭서나, 그와 비슷한 영약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그 보물이 있다고 해도 이미 죽은 리메르를 살릴 수는 없었다·
“그렇군요····”
유아는 또 슬퍼지기 시작했는지 큼지막한 눈망울에서 눈물을 뚝뚝 흘러내렸다·
“이제 부대주님을 못 보는 거네요····”
그녀가 으아앙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미안하다·”
라온이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을 훔치고서 유아를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소녀는 더 서글퍼진 듯 오열하다가 기절하듯 쓰러졌다·
“내가 업을게····”
버렌이 못 보겠다는 듯 긴 숨을 내쉬고서 유아를 안아 들었다·
“헌데 아까 심상의 세계에서 대주님을 만났다고 했지?”
그가 유아를 등에 업으며 턱을 살짝 내렸다·
“무슨 말씀을 하셨어?”
“나도 궁금한데····”
“말해줘····”
버렌, 마르타, 루난 만이 아니라, 다른 검사들도 궁금하다는 듯 라온의 다가왔다·
“심상의 세계에서는 특별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 그저 내 부족함만을 알려주셨지·”
라온은 모두에게 리메르와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우리에게 남겼던 말은 ‘행복해라’가 전부였던 것 같아·”
리메르는 그 어떤 부탁이나, 명령도 하지 않았다·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던 지그하르트의 가주가 되라는 말도, 글렌과 가까이 지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행복하라는 유언만을 남겼다·
지금까지 봐왔던 그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에 가슴이 미어지듯 아려왔다·
“후회 같은 건 없었나 보네·”
마르타는 리메르답다고 말하며 픽 웃었다·
“그 양반은 끝까지 신기하네요· 어떻게 대주님의 심상에 들어갔지?”
크레인은 리메르다우면서도 신기하다며 눈을 끔벅였다·
“진혼검 덕분일 거야·”
라온이 허리에 차고 있는 진혼검을 매만졌다·
기절하기 전에 진혼검이 녹색으로 반짝이는 모습을 보았는데, 검 안에 남아 있는 영혼들이 리메르의 영혼을 이끌어서 자신을 도와준 것 같았다·
‘고맙다·’
현재 진혼검 안에 리메르의 영혼이 남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이 녀석 덕분에 마지막으로 스승을 만날 수 있어서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도리안이 무릎을 꿇은 채 땅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제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전부 다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본인이 짐덩이가 되었다며 이마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찧었다·
“너도 스승님의 마지막 말을 들었잖아·”
라온이 도리안의 머리를 잡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바라는 건 광풍대 모두의 행복이었어· 네 원망도, 후회도 없었어·”
그 말을 하며 리메르가 자신에게 해주듯 도리안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으····”
도리안은 머리를 감싸 쥔 채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보다 시프는 너와 부대주님한테 무슨 말을 했지?”
라온이 도리안을 보며 물었다· 시프가 마지막에 혼자만이 아니라고 했던 말이 걸려서 놈이 했던 대화를 들어보고 싶었다·
“아····”
도리안이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헛바람을 흘렸다·
“중요한 것들이 있어요· 먼저 시프가 아리스 님의 힘을 뺏은 건 지그하르트의 피 때문이에요·”
“피?”
“네· 지그하르트의 피에는 천족의 피가 흐른다고 해요· 공동에 새긴 저주의 주술을 이용해서 천족의 피를 빨아들인 거라고····”
그는 천족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리메르와 시프가 나누었던 대화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천족이라니····”
버렌이 귀로 듣고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지그하르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에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어쩐지! 그렇게 수련을 해도 검계가 안 열리더니!”
마르타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지들만 쓰는 검계라고 미간을 구겼다·
“응· 치사해····”
루난도 검계를 수련한 게 아깝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천족?’
-천족?
라온과 라스가 눈을 마주치며 입을 떡 벌렸다·
‘너 몰랐어?’
-너는 왜 모르는데!
‘내가 아는 게 이상하지! 너는 천족이 적이라면서 왜 모르는데!
-네놈의 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본왕이 어떻게 알아!
라스와 라온은 왜 서로 몰랐냐며 머리를 들이민 채 눈매를 구겼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느니라! 네놈이 처음부터 본왕의 힘을 견뎌낸 이유가 있었어! 지랄맞은 천족의 피 때문이었구나!
라스는 이제야 라온의 사악함을 알겠다며 이를 갈았다·
‘그래서 이제 떨어지려고?’
라온이 라스의 머리를 툭툭 치며 물었다·
‘너 천족이랑은 상종을 할 수가 없다며·’
-떨어지기는! 끝까지 달라붙어서 네놈의 육체를 뺏을 것이니라! 천족의 피가 깃든 육체를 본왕의 것으로 삼을 생각을 하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구나!
라스는 이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다며 이를 갈았다·
‘그러냐·’
라온이 으르렁거리는 라스를 보며 옅게 웃었다· 라스가 떠난다면 정말 허무했을 텐데, 남아준다고 하니 가슴이 조금은 따스해졌다·
-웃지 마라! 네놈 때문이 아니라, 본왕 때문이니까!
‘그래· 고마워·’
-고맙다고 하지 말라고!
라스는 절대 너 때문이 아니라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헌데····’
라온이 조각난 시프의 시체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저놈은 어떻게 할아버지의 힘을 뺏으려고 한 거지?’
글렌의 뒤에는 언제나 로엔이 붙어 있고, 그가 없다고 해도 시프의 실력으로 글렌을 기습하는 건 무리다·
오늘 아리스가 당한 것도 그녀의 체력과 정신력을 바닥까지 빼냈기 때문인데, 대체 어떻게 글렌을 기습해서 찌르겠다는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시프 혹은 데루스 로베르트에게 글렌까지 찌를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깝··· 아니야·’
라온이 가느다란 숨을 내쉬다가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죽이는 게 옳았어·’
시프가 주둥이를 털다가 도망칠 수도 있었기에 여기서 놈을 죽이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계산은 해보는 게 좋겠군·’
시프 혼자만은 몰라도 뒤에 데루스가 있다면 정말 글렌의 힘을 강탈할 방법도 생각해두었을 것이다·
여러 방향에서 생각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 검은 어떻게 할까요?”
크레인이 시프가 들고 있던 흑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
라온이 흑검과 크레인의 등에 업혀 있는 아리스를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모가 힘을 회복하려면 저 검이 필요할 거야· 다만····’
일어서실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리스는 아들에게 기습당해서 쓰러졌고, 그 아들이 리메르를 죽이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거기다 결국 그 아들마저 조카에게 죽었으니, 깨어나도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정신이 굳건한 아리스라고 해도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챙기는 게 좋을 거 같네·”
“내가 가져갈게·”
마르타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오러를 담은 손으로 시프의 흑검을 잡았다·
“그럼 돌아가자·”
라온이 무너져 있는 던전과 시프가 남긴 피 웅덩이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리메르를 등에 업고, 항구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숲을 걸어갔다·
“난 솔직히 아직도 이해가 안 가·”
마르타가 리메르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왜 마지막 유언을 행복하라고 한 거지?”
그녀는 다른 말을 할 수 있지 않았냐며 입술을 깨물었다·
“광풍대 모두에게 전할 말은 그게 전부겠지· 부대주가 의외로 배려심이 깊었거든·”
버렌은 유아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으며 턱을 저었다·
“훈련생 시절에 부대주님의 수첩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의 장단점이 하나하나 다 적혀 있었지·”
라온은 리메르를 처음으로 다시 보았던 때를 말하며 작게 웃었다·
“물론 그 때도 하루의 절반은 단상 위에서 농땡이를 부렸지만·”
“저는 웬 미친놈인가 했어요·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놀리는 게 고까웠죠·”
크레인은 정말 이상한 스승이었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본왕도 그래서 마음에 안 들었느니라! 대가리면 솔선수범을 해야지!
라스도 모두와 말이 통하는 것처럼 투정을 내뱉었다·
“오웬 왕국 사절단 왔을 때 기억나? 우리랑 오웬 기사 후보생들이랑 붙여서 이겨놓고, 타르탄 공작이 술 안 사고 도망갔다고 진짜 화내면서 울던 거?”
버렌은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며 혀를 찼다·
“나는 저 인간이 도박장에서 거지꼴로 쫓겨나서 밥 먹을 돈이라도 달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마르타는 사람이 그렇게 한심해보인 건 처음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회식하자고 해놓고 라온에게 돈 내라고 떠넘긴 적도 많았어····”
루난은 추했다고 말하며 에효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광혈귀 때는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지·”
라온이 아직 남아 있는 리메르의 온기를 느끼며 옅게 웃었다·
“맞아· 오우거를 단칼에 베어버릴 때는 솔직히 좀 멋있더라·”
버렌이 놀라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에덴에 납치당했을 때도 잠도 안 자고 움직였어·”
마르타는 제자들이 위험할 때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용감한 스승의 모습으로 변한다며 가는 미소를 그렸다·
“바람을 느낄 때도 언제나 멋있었어····”
루난은 진지한 리메르는 라온만큼이나 대단했다며 가슴 앞에 모은 손을 꼭 움켜쥐었다·
“부대주님의 가르침은 나중에서야 효과가 드러나죠·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말을 못 했네요····”
도리안은 후회가 된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우울한 소리 말고, 그 인간 사고 친 거나 말하자고· 나는 술집에서 외상 갚으라고 연무장까지 찾아온 일!”
“나는 밥 먹을 돈이 없어서 산에서 풀뿌리 뽑아먹다가 걸린 거!”
광풍대는 웃으면서 지금까지 리메르와 있었던 일들을 꺼내놓았다·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꽤 긴 시간을 걸었지만, 말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이어졌다· 리메르가 심심하지 않도록 모두가 놀아주는 것처럼·
그렇게 라온과 광풍대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라바윈은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턱만 떨었다·
“나중에····”
라온이 리메르를 그에게 넘겨주며 피 내음이 섞인 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시야가 흐려지며 세상이 둘로 나뉘었다·
* * *
리메르가 보인다· 그는 언제나처럼 청량한 바람을 두른 채 장난기 많은 소년의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리메르의 옆으로 라스가 솜사탕의 모습으로 날아와서 머리털을 세웠다· 녀석은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화를 내고 있었다·
리메르는 하품을 하며 여유롭게 말을 흘렸고, 라스는 빨간 솜사탕이 되어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셰릴과 아리스가 못 보겠다는 듯 다가가서 두 사람을 말렸고, 글렌과 로엔은 그 모습을 보며 허허 웃고 있었다·
시아는 어느새 깨어나서 맛난 음식을 즐기고 있었고, 에드가는 그 옆에 딱 붙어서 끊어지지 않는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실비아는 애 좀 놔두라면서 에드가의 등을 후려쳤다·
이건 꿈이다·
심상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바람을· 원했지만, 볼 수 없는 현실이 꿈이 되어 펼치고 있었다·
파직!
꿈이라는 것을 깨닫자, 활기차던 세계가 공간검을 얻어맞은 것처럼 깨져나가고, 새까맣게 물들었다·
“아····”
눈을 뜨자, 옆으로 자고 있었는지 선실의 문이 보인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적함을 느끼자, 참기 힘든 서글픔이 밀려왔다·
‘헌데····’
베개가 이렇게 푹신했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손을 뻗었는데, 천이 아니라 사람의 피부 감촉이 느껴졌다·
눈동자를 돌리니, 누군가의 허벅지가 보였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자, 가면을 벗은 멀린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프면 울어도 돼·”
멀린은 평소와 달리 거울을 보는 듯 자신과 비슷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