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마검의 주인 (1)
누나가 아카데미로 돌아 간지 벌써 2주가 흘렀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안부 차 들른 것이기에 전선에 계신 아버지만 뵌 뒤 바로 돌아갔다·
그래도 빈손으로 온 건 아닌 터라 몸 져 누운 크란츠에겐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며 귀한 백곰의 웅담을 주고 갔다고 한다·
몸보신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백곰의 웅담이라····
뭐 나 역시 선물을 받긴 했다만····
“으 냄새!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접시를 내려놓은 에밀리가 바로 코를 틀어막았다·
불그스름한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올라올 비주얼이다·
허나 나는 개의치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도련님 정말 이게 맛있으세요?”
“넌 내가 맛있어서 먹는 것 같니?”
“아무리 엘리스 아가씨께서 선물로 주고 가신 거라지만··· 죄송해요 도련님! 저 잠깐 나가 있을게요!”
에밀리는 급기야 입을 틀어막고선 식당을 나갔다·
홀로 남겨진 나는 화를 꾹 참으며 접시의 내용물을 비우기 시작했다·
냄새에 비해 맛은 생각보다 그럭저럭·
이보다 더한 것도 먹어왔던 터라 에밀리처럼 난리칠 정도는 아니었다·
누나가 주고 간 것은 다름 아닌 마수 ‘헬하운드’의 피·
최전선지역인 레메아 골짜기에 서식하는 마계 생물의 진액이다·
대륙의 미신 중엔 마계 생물의 피를 인간이 섭취하면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는 말이 있다·
마수 자체가 워낙 보기 드문 생물이라는 점과 전선의 기사들이 대체로 강인하다는 점이 부합되어 생긴 미신이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미신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족의 몸은 인간의 몸과 비교했을 때 월등한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수를 식량으로 섭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 돼지 같은 고기를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헬하운드를 비롯한 마수가 가진 영양소는 이 땅의 생물과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풍부하고 뛰어나기에 소량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 효과를 볼 수 있다·
내가 전선으로 가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도 사실은 이 때문이다·
마계에서 넘어오는 마수들의 피와 살덩이들을 섭취하고 몸의 근력을 단숨에 성장시키는 것·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지금의 내가 가장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는 루트였다·
더불어 세간에선 아직 이 사실을 미신으로만 치부하고 있는 만큼 나에겐 블루오션과도 같은 곳이지·
근데 이걸 봤을 땐····
숟가락에 담긴 피를 지그시 응시해보았다·
헬하운드 특유의 쌉싸름하고 진득한 맛·
내가 전생에서 느꼈던 맛과 일치했다·
일단 엘리스 누나는 미신을 잘 믿는다·
몸에 좋다는 소리만 들으면 진위확인 조차 할 생각 없이 몽땅 사들이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그래서 처음엔 이것도 누나가 사기 당했다고 생각했다·
암만 그래도 마수의 피가 고작 암시장 따위에서 거래되고 있다니····
마계 생물을 우습게봐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허나 속는 셈 치고 먹어 본 결과 사기가 아니었다·
나는 헬하운드의 피 맛을 알고 있다·
피뿐만이 아니라 살덩이도 여러 번 먹어본 경험이 있다·
그 경험으로 봤을 때 이건 완벽한 헬하운드의 진액이었다·
설마하니 알게 모르게 마계 생물의 피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을 줄이야·
아마 공급처가 있다면 전선과 관련된 자가 유력할 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기에 차차 알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접시를 비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도련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에밀리가 들어왔다·
“마실·”
“또 뒷산 가시려는 거죠? 검술 연마 하실 거면 대련장이 더 낫지 않을까요?”
“체력운동 하려고 가는 거야· 갔다 오면 시원한 마실 거라도 준비해줘·”
에밀리는 조심히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일단 말은 했지만 제발 먹을 수 있는 걸로 준비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저택에서 나와 뒷마당을 가로질러 산과 이어진 숲길로 들어갔다·
2주 동안 이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율켄의 감시 때문에 매번 헛걸음만 했지만 오늘은 정기보고를 위해 그도 자리를 비운 터였다·
즉 지금 이 시간만큼은 나를 감시하는 눈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산을 한 시간 정도 올랐을까?
넓은 평지가 드러난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이곳도 오랜만에 오는군·
집에서 찬밥신세를 당할 때 그 누구의 시선도 받기 싫어 매일 같이 도망 온 곳이었다·
허나 그때는 몰랐지·
이 아래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었을 줄은····
살며시 눈을 감고선 주변 기운을 탐색했다·
자연 속 은연히 퍼져있는 마나의 기류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곳·
그곳에 바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있다·
북쪽으로 스무 걸음 이후 왼쪽으로 꺾어서 열 걸음 다시 1시 방향으로 돌아서 크게 두 걸음····
탐지를 마친 뒤 즉시 해당 장소로 향했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일말의 표시하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내 눈엔 보였다·
내가 서있는 곳 바로 아래에 한없이 요동치는 마나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주저할 것 없이 지면에 손을 갖다 대었다·
-우우웅
몸에 내재된 마나를 끌어 모아 안으로 전이시켰다·
“····”
반응이 미약한 것 같다·
그렇담 좀 더 많은 마나를 집어넣어야겠지·
-우우웅
이래도 반응이 없어?
생각보다 까다롭네·
대지 속성 마법사라면 단번에 열었을 텐데 이래서 속성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건가?
투입량을 최고 수준으로 높여봤지만 지면에선 미약한 진동만 있을 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이 몸으론 한계가 있군·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나는 다시 한 번 손을 지면과 맞대었다·
-쑤우욱!
검은 빛깔의 오라가 손을 타고 지면으로 흘러들어갔다·오라는 곧 앞서 전이된 마나와 융합하여 공명을 일으켰고 이전과 다른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한걸음 물러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쿠구궁
지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균열은 혈관처럼 갈라졌고 버티지 못할 지점에 이른 순간 매몰차게 무너져 버렸다·
이내 먼지가 걷히면서 무너진 지면 아래로 계단이 보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 펼쳐진 것은 기다란 복도였다·
분명 빛이 들지 않는 지하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빛이 은둔해있는 것처럼 시야가 확 트여 있었다·
이어진 복도에선 마나의 흐름이 계속해서 느껴지고 있었다·
즉 이 길이 끊기는 지점에 마나를 끌어 모으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전에 올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군·
마치 오래전에 숨겨두었던 장난감을 되찾으러 가는 기분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곳은 신전이다·
지금은 땅속에 파묻혀 버려진 유적지로 전락했지만 무려 수백 년 전엔 빛의 신 ‘루멘델’을 모셨던 제단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 중요한 곳이 왜 집 뒤에 있냐고?
그냥 우연의 일치다·
300년 전 ‘신마전쟁’ 이후 모든 역사가 지워진 지금 과거의 기록을 알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
하물며 이런 신전이 저택 뒷마당에 있든 똥 싸는 뒷간에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다·
그저 잊혀진 역사의 잔해물이 어쩌다 발견됐을 뿐·
물론 현시점에 이 장소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만·
10분정도 걸었을까?
복도 끝자락에서 금색의 빛이 아른 거린다·
빛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밝아졌으며 이끌린 마나들로 요동치고 있었다·
보인다·
이 신전의 주인이·
두 계단으로 쌓여진 은빛의 제단과 그 중심부에 꽂혀있는 금빛의 장검·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처럼 꺼지지 않은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다·
마치 찬란한 생명의 기운이 노래를 하는 듯한 기분·
허나 나로선 불쾌감만 가득할 뿐이다·
성검 듀란다르크·
빛의 신 루멘델의 가호가 서린 전설의 유물·
차디찬 어둠으로부터 따뜻한 생명의 빛을 이끌어낼 구원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신의 무구였다·
구원은 개뿔····
남의 등에 칼이나 꽂는 배신자들이나 쓰는 검이겠지·
아 난 심장을 대놓고 찔렸으니 뒤를 맞은 건 아닌가?
뭐 어쨌든 내게는 결코 좋은 기분이 들 수 없는 물건이다·
전생에서 이 검을 소유했던 이는 다름 아닌 에쉘 베르트·
즉 이검은 나의 심장을 찔렀던 검이다·
이 검으로 인해 난 전생에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고 삶의 이유 자체를 부정당했다·
그러니 어찌 내가 이 검을 기분 좋게 볼 수 있겠는가?
하 또 옛날 생각하니까 기분 잡쳐질라 그러네·
빨리 본목적만 달성하고 돌아가야겠다·
안 그럼 이 엿 같은 기운에 잠식된 나머지 죽어버릴 것 같으니까·
나는 성검을 지나쳐 검의 그림자가 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유감스럽게도 내 목적은 이 검이 아니었다·
뽑지 못하는 건 아니다만 쥐꼬리만한 몸으로 이 큰 걸 가져다 어디에 숨기겠는가?
게다가 쓸데없이 밝기만 해서 눈만 지지리 아파온다·
애초에 내 심장을 찔렀던 검인데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겠는가?
불결해서 기피하고 말지·
사람은 원래 익숙한 물건에 더 손이 많이 가는 법·
내가 찾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성검이 꽂혀 있는 제단 뒤로 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빛이 있는 곳엔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지기 마련·
이것은 세상이 창조된 순간부터 이어져온 자연의 법칙이었다·
허나 무지한 인간들은 그 그림자의 존재를 무시하며 항상 밝은 빛만 쫓으려 한다·
뭐 이 신전만 봐도 알 수 있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새롭게 바뀌었건만 인간은 바뀌지 않았다·
늘어진 그림자 위로 내 두발이 우뚝서있다·
살며시 몸을 숙여 두 손을 그림자와 맞닿게 했다·
-우우웅
성검의 그림자가 소용돌이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사람의 형상을 그리듯 그림자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림자는 마침내 길게 늘어져 어느 한 곳으로 쭉 뻗어나갔다·
그 끝자락에는 방금 전까진 없었던 흑색의 낯선 나무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끼익
나는 방문 드나들 듯 자연스럽게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는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 그 자체였으며 어디서 피어오르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안개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방 중앙에는 성검이 꽂혀있던 제단과 비슷한 또 하나의 제단이 보였다·
성검을 마주했을 때와는 또 다른 아늑한 기분·
그 기분에 취하고 있으니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윽고 안개를 헤집고 앞으로 나아가 제단위에서 잠들고 있던 또 하나의 검과 마주하였다·
자주빛의 짧은 도신을 가진 음침한 기운의 단검·
나는 망설임 없이 검자루를 잡았다·
-쿠구궁
순간 주위가 크게 공명했지만 당황할 필욘 없다·
본래 보물이 있는 곳엔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들이 있기 마련·
이 검도 마찬가지다·하물며 나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수호자가 아닐 수 없지·
[킥킥킥킥킥····]
기분 나쁜 여성의 웃음소리가 공간 전체를 메웠다·
잠시 후 방 어디선가 낯선 안개가 피어오르며 검과 나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윽고 검에서 솟아나오는 정체불명의 검은 영혼·
영혼은 곧 치렁치렁한 흑발을 휘날리는 고혹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바깥공기야? 너무 짜릿해!]
숨을 크게 들이쉬던 여인은 이내 검자루를 쥐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뭐야 이 햇병아리는? 꼬마야? 설마 네가 날 깨운 거니?]
“보시는 대로····”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캬하하! 어린놈이 겁 대가리를 상실한 게 아주 귀엽네?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 날 깨우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니?]
“이 검이 내 것이 된다는 거?”
[틀렸어! 검이 아니라 네 몸이 내게 되는 거라고! 캬하하하!]
입맛을 다시던 영혼은 이내 공중으로 치솟았고 빠른 속도로 하강하며 나를 덮치려 하였다·
흠····
전생에선 이렇게 대책 없진 않았는데?
-턱
[켁!]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을 틀어잡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금방이라도 나를 할퀼 것 같았지만 애먼 허공에서 노를 저을 뿐이다·
“암만 그래도 주인을 물어서야 되겠어?”
영혼의 당황한 시선이 미소를 짓고 있는 나의 얼굴과 마주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