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용인
대륙에 떠도는 신화들 중 반인반수(半人半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생물과 교미해서 생긴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괴물·
즉 양쪽의 특성을 모두 타고난 독보적인 존재·
허나 반대로 말하면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해 배척받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왜 배척받을 수밖에 없는지 좀 더 논리적으로 말해보겠다·
당신은 인간이다·
인간이지만 특수한 힘이 있어 개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다고 개랑 교미를 하겠는가?
아무리 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어디까지나 인간이 반려견으로서 좋아하는 거지 성욕의 대상으로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개가 아니라 고양이 소 닭 등으로 바꿔도 마찬가지·
정신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미친 행위를 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는 마당에 우리의 전능한 종족이신 드래곤은 어떻겠는가?
그들은 애초에 인간 자체를 발톱의 때만큼도 못 할 정도로 하찮게 여긴다·
그런 종족이 인간이랑 정분을 나눠 애를 낳는다니·
(참고로 드래곤은 인간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지나가던 개도 말 같지 않은 소리라며 짖어대고 갈 것이다·
근데 그 말 같지도 않은 일이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푸르륵!”
아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며 머리에 묻은 파편을 털어냈다·
“····”
낯선 공간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똘망똘망한 눈동자·
나 역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아이의 전신을 쭉 훑어보았다·
인간으로선 가질 수 없는 뿔 날개 꼬리·
거기에 엉덩이까지 닿는 분홍색의 긴 머리카락까지·
게다가 성별은··· 여자였다·
“···!”
그녀의 방황하던 눈동자가 마침내 우리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흠칫 놀랐고 아무런 말없이 그녀의 또렷한 시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왠지 그 중에서도 나를 유독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스윽
뚫어지게 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아장아장 기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이제 막 태어난 애가 벌써부터 기어 다녀?
저 애가 특별한 건지 아님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아 성장이 빠른 건진 몰라도 그녀는 흐트러짐 없는 똑바른 눈빛으로 나를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이에 눈치를 보던 브라이언과 케이람이 옆으로 슥 하고 빠졌다·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아이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빵싯 하고 웃었다·
“파파!”
“···?”
순간 내가 뭘 들은 건가 싶어 두 눈을 번뜩였다·
머릿속이 멍해진 느낌이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적을 깬 건 케이람의 웃음소리였다·
[푸하하하! 파파래! 파파! 아이고 웃겨! 이제 열한 살밖에 안 된 우리 주인님께서 벌써 아빠가 되셨네! 캬하하하!]
“쿠흡···!”
브라이언 또한 웃음을 감추지 못해 작게 실소했다·
순간 마검이고 종자고 저 입들부터 틀어막을까 생각했지만····
“···?”
저 순수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차마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아이는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전생의 난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자식을 낳을 일도 없었다·
고로 세상 빛을 처음 본 갓난애가 나를 보며 ‘파파!’ 라고 외쳤을 때 어찌 반응해줘야 할지 모른다·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군요· 살다 살다 드래곤과 인간의 혼종을 보게 되다니····”
아이를 살펴보던 시리카가 흥미로운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
“딴 걸 다 떠나서 얘는 왜 절 파파라고 부르는 겁니까?”
“가 각인(刻印)의 영향 때문 아니겠습니까?”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브라이언이었다·
“각인?”
“원래 모든 생물은 태어난 순간 눈앞의 있는 대상을 의지할 존재로 인식하는 법입니다· 저 아이가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본 사람이 도련님이었다 보니 자연스레 도련님을 가족으로 인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너 되게 잘 안다?”
“베 벨리아스에 있을 때 가축들을 좀 키웠다 보니····”
경험담이라 이건가?
“흠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보이네요· 아무래도 이 아이는 지금 자신이 무슨 존재인지도 모르겠죠· 그냥 알에서 나와 처음으로 본 게 시안 학생이다··· 이 정도로 정리 할 수 있겠네요·”
너무 명쾌해서 말이 안 나오는군·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당돌한 용인 꼬맹이는 아랑곳 않고 내 무릎에 앉아 달콤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
그러다 잠이 깼는지 눈을 비비고선 몸을 일으켰다·
“파파 나 배고파·”
“····”
이젠 뭐 놀랍지도 않네·
그래 이제 태어난 지 2시간은 됐을까 싶은 꼬맹이가 기는 걸 넘어서 이제는 또박또박 말까지 한다?
이러다 아예 대놓고 걷기까지 하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부엌으로 걸어 나갔다·
[확실히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성장 속도가 말이 아닌데?]
그러곤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 차려진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시 식성도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못해도 성인 남성 두 명분의 식사였건만 눈 깜짝할 사이에 빈 접시만 남게 되었다·
“푸하!”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배를 내보이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러곤 식곤증이 온 듯 꾸벅꾸벅 졸더니 그대로 잠에 들었다·
“뭐 먹고 자고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신생아의 모습이네요·”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냥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돌덩이일 줄 알았건만·
갑자기 예고도 없이 태어나질 않나 나를 보고선 대뜸 파파라고 하질 않나·
이 꼬맹이를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그 노예 시장에 있던 여인이 함에 집착했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아이의 엄마였던 거겠지·
그럼 그 여인이 바로 어느 이름 모를 용이랑 정분을 나눴던 장본인이란 건데····
결국 자기 아이를 부탁한다는 명분으로 나한테 함을 내밀었던 거로군·
나보고 뭐 용인의 수양부라도 하라는 건가?
“시안 학생은 이 아이 어쩌고 싶어요?”
이런 내 복잡한 심경을 눈치 챘는지 당주가 나를 보며 물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뭐 결정을 부추기려는 건 아니지만 일단 이 아이는 기숙사를 못 벗어나요· 아마 그녀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아카데미는 발칵 뒤집히겠죠· 그럼 그 즉시 생포당하는 건 물론이고 시안 학생의 안위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뭐 나뿐만 아니라 브라이언을 비롯해 당주에게도 피해가 가겠지·
“지금이야 신생아니까 여기서 지낼 수 있다 쳐도 아마 조금 더 자라 유년기가 되면 그때부턴 진정한 드래곤의 신기를 발산할지도 몰라요· 그럼 정도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총장급의 사람들은 바로 눈치를 채겠죠· 이 아카데미 내에 드래곤이 있다고····”
그나마 완전한 드래곤이 아닌 용인이라는 점과 내 어둠 속성 마법을 이용한다면 로얄관 근처까지는 감당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일정 마법 등급을 넘는 사람들이 온다면 바로 들키고 말겠지·
제일 위험한 이는 역시 총장일 것이다·
“또한 알다시피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종족이에요· 어쩌면 이 용인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겐 매우 치욕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죠· 아마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알고 있다·
만약 이 아이의 존재가 드래곤들에게도 알려진다면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없애려 할 것이다·
아마 관련자들까지 싹 다 찾아서 죽이려 들겠지·
“하지만 그만큼의 메리트도 있을 거예요· 일단 인간과 드래곤의 성향을 모두 가졌다 보니 발전 가능성만큼은 무궁무구진하다고 봐요· 조직에서 키워도 될뿐더러 시안 학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도 있겠죠· 뭐가 됐든 상상 이상의 성장치를 보여줄 거예요·”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이라····
일단 앞서 말했듯 난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으며 제자를 양성해 본 적도 없다·
즉 어느 쪽으로 키우든 좋게 클 것이라 장담은 못 한다·
[왜? 난 한번 키워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이야 해츨링 수준이라지만 더 자라면 드래곤화의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럼 날아다닐 수도 있고 좋겠네 뭐!]
그게 뭐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다·
애초에 이 아이가 성체가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게다가 난 드래곤 라이딩 같은 눈에 띄는 일 따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까지만 봐도 이 아이를 거둬야 할 이유는 아무리 봐도 없었다·
무엇보다 장담치 못할 미래를 추구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저··· 도련님? 혹시 양육의 걱정을 하고 계시는 거라면····”
잠자코 듣고 있던 브라이언이 급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적어도 이 안에서라면 제가 책임지고 키울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보모를 하겠다는 소리였다·
“가축을 키우던 거랑은 느낌이 다를 텐데?”
“괜찮습니다· 저 아이도 어디까지나 사람이지 않습니까? 집에 동생들이 많았던 터라 갓난아이 때부터 키워본 경험도 있습니다· 잘 키워보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적어도 도련님의 일상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사람이라····
그래 저 아이도 결국 사람이지·
인간 어미의 뱃속으로부터 세상 밖으로 나온 분명한 사람·
다만 이 불편한 세상은 그녀를 어느 쪽으로도 봐주지 않겠지····
“전에도 말했지만 이 아이에 대해선 우리는 권한이 없어요· 전적으로 시안 학생의 생각을 존중해주도록 할게요·”
당주는 알 때와 마찬가지로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신묘한 기운에 이끌리듯 잠을 자고 있는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세상모르게 곤히 자고 있는 모습·
비록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였지만 이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가족으로 인식했다·
지금 내가 이 아이를 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누구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지겠지·
장담하는데 인간과 그 드래곤 그 어느 집단에서도 동화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여기서 아무런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그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이 무심한 세상에서 고통만 받으며 살 바엔 그냥 이번 생을 빨리 끝내고 온전한 다음 생을 살게 해주는 것이 이 아이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결심이 선 순간 눈에 살기가 돋기 시작했다·
“····”
주변인들은 이미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눈치 챈 모양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이 행위도 어디까지나 책임을 지기 위해 하는 것임을 알기에·
-스윽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목을 잡았다·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아닌 솜털을 만지듯 부드럽고 고운 살결·
이 정도라면 큰 힘을 주지 않더라도 목을 바로 꺾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안한 감정은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결코 적응하지 못할 그녀의 고통을 미리 덜어주기 위한 배려인 것이니····
“···!”
힘을 주려는 순간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다·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이·
그 눈빛을 본 순간 손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떨리고 있었다·
뭐지?
설마 망설이는 건가?
암살자인 내가?
그렇게 머뭇거리기를 10초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또 한 번 빵싯 웃으며 말했다·
“파파~!”
-털썩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안는 아이·
내 품에 안긴 그녀는 머지않아 다시 잠에 들었다·
느껴진다·
맞닿은 살결 속에서 요동치는 그녀의 심장박동이····
“····”
“도 도련님?”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뭐랄까? 이후에 벌어질 일들 자체가 무덤덤해졌다고나 할까?
그냥 뭐가 됐든 내가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아이를 자연스럽게 들어 올린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의연하게 말했다·
“키우지 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