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구원자를 위한 구원 (1)
‘···!’
익숙한 기운을 느낀 하스티아의 눈빛이 또렷하게 빛났다·
‘이 기운은?’
그 기운은 그녀에게 있어 별로 좋은 기운이 아니었다·
하스티아는 급히 밖으로 뛰쳐나와 시안이 향한 쥬른 쪽을 보았다·
“왜 그래요 하스티아?”
그런 그녀를 보고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쁜 냄새!”
나나 역시 질 나쁜 냄새를 맡았는지 사방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지만 좀처럼 냄새의 근원을 찾지 못해 무척 난감해했다·
작지 않은 소란에 계속해서 모여드는 사람들·
마침내 캠프의 총책임자인 아린까지 오게 되었다·
“무슨 일이에요 하스티아? 뭔가 안 좋은 일이라고 생겼나요?”
‘그 그게····’
캠프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이 그녀에게 몰려든 상황·
감응을 통해 말을 전하려던 하스티아는 잠시 멈칫했다·
이곳은 엘프가 아닌 엄연한 인간의 땅·
그녀의 감응을 들을 수 있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두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선
정신 감응이 아닌 더욱 확실한 소통수단이 필요했다·
하스티아는 지그시 눈을 감은 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하스티아는 번쩍 눈을 뜬 동시에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입을 모두를 향해 열었다·
“시안 님이 위험해요!”
“···?!”
비밀이란 이름으로 그녀의 내면을 옥죄던 족쇄가 마침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시안 님에게 큰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분이 시안 님을 해하기 전에 얼른···!”
“이 이봐요 하스티아! 말을 하게 된 건 좋은데 좀 알아듣게 설명해봐요! 우리 도련님이 무슨 큰일이 벌어진 건데? 그분은 누구고?”
답답함을 느낀 에밀리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 그러니까 그게····”
“때마침 모두 모였네요·”
혼란스러운 와중에 인파 속에서 엘리스가 나타났다·
그 뒤를 루나브와 세트가 뒤따랐다·
“시간이 없으니 가면서 설명할게요· 일단 움직여요 모두·”
그들의 시선은 하스티아와 마찬가지로 시안이 향한 쥬른을 향해 있었다·
* * *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짓눌릴 만큼 압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숙한 광창(光槍)·
현 성검의 주인과 전 성검의 주인이 전부 소멸한 상황에서 또다시 내 뒤통수를 칠 존재는 이제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흔들리는 시야를 가까스로 바로잡으며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루멘델····”
빛의 신 루멘델·
우리 전능해 마지않는 지고의 존재께서 이 시원찮은 인간 한 명을 처리하기 위해 직접 강림하신 모양이다·
[이 개자식이!]
흥분한 케이람이 눈을 세우며 루멘델에게 달려들었지만
[···!]
루멘델은 단숨에 그녀의 목을 휘어잡으며 가볍게 제압했다·
케이람은 살의와 증오에 젖은 눈으로 그를 거세게 노려보았다·
[네 네놈이 왜···?]
“그래· 의아하겠지· 지고의 존재인 내가 왜 지금 네놈들이 앞에서 이러고 있는지·”
-쑤욱!
“커헉!”
가슴에 박힌 창이 빠지자 신음과 함께 몸이 절로 고꾸라졌다·
이어서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고통이 전신에서 아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광창(光槍)에 몸이 박히면서 몸에 전해진 빛의 기운이 전신으로 퍼진 듯했다·
마치 몸속으로 침투한 벌레로부터 갉아 먹히는 것 같은 굉장히 역한 기분이었다·
루멘델들은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목을 움켜쥐었다·
“그냥 처음부터 내 손으로 없앴어야 하거늘 우매한 피조물들에게 기회를 주겠답시고 방치한 내가 어리석었다! 대체 어디서 너란 인간이 나타났단 말이냐?”
글쎄? 그건 나도 나한테 묻고 싶은 말인데 말이지·
신이라는 존재가 한낱 피조물을 붙잡고선 의문을 토로하는 꼴이라니·
그 피조물에 그 창조주라는 말이 딱 어울릴듯싶었다·
“하기야 뭐 이제 와선 상관없겠지· 네놈이 설사 인간의 정점에 올랐다고 해도 넌 내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 네놈은 피조물에 불과하니까! 너희가 암만 발악해도 절대로 닿을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 존재한단 말이다!”
어련하실까?
“그러니 영광으로 알아라! 피조물이 아닌 바로 내가! 빛의 신 루멘델의 이름으로 네놈을 심판할 것이니!”
“킥!”
목이 간당간당할 만큼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반면 루멘델의 얼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피조물 하나 잡겠답시고 최고 신께서 다 나서주시다니· 나한텐 영광스러울지 몰라도 당신에겐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 아니야?”
“이 하찮은 것이 끝까지···!”
“왜? 내 말이 틀려? 맞잖아? 세상의 질서를 세울 만큼 전능하신 분께서 고작 피조물 하나 죽이기 위해 직접 나서는 꼴이라니· 다른 신들 보기 부끄럽지 않아?”
“상관없다! 어차피 이 세상의 주인은 나니까! 그 누구도 나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없다! 그게 인간이든! 신이든! 내 행위가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 없단 말이다!”
저런 존재 아니 인간들 많이 봐왔다·
절대자라는 권위에 취해 한없이 교만해지며 방자해지는 이들·
어떻게 눈빛 하나 안 다르고 똑같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놈들 중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은
죄다 끝이 부정적이다 못해 졸렬했지·
그게 신이라고 해서 다를 거 없다·
“글쎄? 저기 계신 분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실까?”
나는 세상 비열한 미소를 흘리며 루멘델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지고의 존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루멘델 역시 내 눈을 따라 바로 눈을 돌렸다·
자만심에 가득 차 있던 그의 눈은 순식간에 변했다·
“아쿠아니스! 네년이 왜 여기 있는 것이냐?
“빛의 신을 제외한 모든 신의 의견을 규합해 새로이 정한 신계의 뜻을 이 자리에서 전합니다·”
푸른 머리의 여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빛의 신 루멘델을 최고신 자리에서 해임함과 더불어 그동안 갖추고 있던 신의 권위를 이 시간부로 전부 박탈합니다!”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누구 맘대로 그런 걸 정해!”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을 제외한 모든 신의 의견을 규합해 정했다고요· 다시 복직한 저 남자까지 포함해서요·”
“···!”
루멘델은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내 등 뒤
내 목을 붙잡은 루멘델의 손목을 연달아 붙잡고 있는 내 물주라고 해야겠지·
“아에르!!”
드디어 신다운 모습으로 새로이 나타난 검은 안개의 신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빛의 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뭐든 과하면 넘치거나 탈이 나는 법이지· 너의 행위는 기어이 신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금단의 선을 넘어버렸다· 루멘델·)
“금단?”
루멘델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창조주다! 우리가 없었으면 애초에 이놈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어! 이딴 피조물들에게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금단이란 게 대체 어디 있단 거냐?”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이다! 여기 있는 네 피조물만 봐도 그렇지 않으냐? 이렇게 난리를 쳐도 결국 우리에겐 닿을 수 없는···!”
-푸욱!
“···?!”
아에르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루멘델의 눈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두 가슴의 중앙 인간 기준으론 정확히 심장이 자리한 위치다·
솔직히 신에게는 심장이란 게 있을까 조금 의문이 들긴 했다·
하지만 검을 타고 전해지는 이 분명한 진동이 내게 확신을 주었다·
혼란에 찬 루멘델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나와 케이람은 동시에 말했다·
“불가침의 영역 좋아하네·”
[불가침의 영역 좋아하네·]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신을 향해 내지른 단 한 번의 일격·
이건 실로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찮게 여기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무시했던 인간이
창조주에게 해를 입힐 수 있으며 이에 멈추지 않고 더한 짓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를
그들에게 전했다고 볼 수 있지·
“이 인간 주제에? 어떻게 나를?”
(당연하지 않으냐?)
의문에 대한 해답은 아에르가 대신했다·
(이들은 우리의 본성을 본떠서 만든 피조물이다·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들을 몰아내고 이 자리를 차지했던 것처럼· 이들 역시 그 흐름을 똑같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
(그때가 오기 전에 빨리 도망가야 하지 않겠나? 아무렴 쫓겨나는 것보다야 물러나는 게 낫지!)
아에르는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이에 루멘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으로 아에르를 노려보다가
-화아악!
앞서 소멸한 성검의 주인들과 마찬가지로 빛의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성검 역시 그 본주를 뒤따라 소멸했다·
그가 사라지자 뜻을 전하러 왔던 신들 또한 하나둘 아공간을 떠났다·
“먼저 가겠습니다 아에르·”
(곧 뒤따르지요·)
신들을 떠나보낸 아에르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신이라고 불릴 존재는 없다· 그 말은 즉 앞으로 이 세상의 운명은 전적으로 너희 인간에게 달렸단 뜻이지·)
“짐이란 짐은 다 남기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나시겠다?”
(너도 바라는 일이지 않았느냐? 네가 원하는 세상에 신의 질서는 걸림돌에 밖에 안 된다· 질서가 없어진 세상에 혼란이 찾아올 순 있겠지만 뭐 그거야 너희가 알아서 극복할 일이겠지·)
기분 탓일 수 있지만 내가 본 아에르의 눈엔 우리가 그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란 분명한 확신이 보였다·
(너의 주인도 물주도 아닌 아에르란 이름을 가진 한 명의 남자로서 네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겠다·)
그러더니 대뜸 어울리지 않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뭘 한 게 있다고 폼을 잡고 있어? 그동안 아공간에 짱박혀서 관전만 하다가 낼름 받아먹은 주제에·]
이를 본 케이람은 어이가 없었는지 인상을 구기며 그를 쏘아붙였다·
이에 아에르는 할 말이 없어졌는지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쿠구구궁
갑자기 큰 굉음과 함께 아공간 전체에서 진동이 일었다·
(아공간이 무너지려는 모양이구나·)
주인이 사라진 마당에 공간이라고 무사할 린 없지·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아에르는 그 길로 몸을 돌렸으며 나는 잡지 않았다·
[자 잠깐! 그렇게 가면 어쩌자는 거야? 얘 상태 안 보여?]
그 대신 케이람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물었다·
(나보고 데려가란 것이냐?)
[당연한 거 아니야? 얜 지금 혼자 빠져나갈 수 있는 상태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돌아온 것은 매정한 대답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 세상에 더 이상 신이란 존재는 없다· 없는 존재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화를 참지 못한 케이람은 기어이 루멘델의 멱살을 붙들었다·
[네놈의 그 같잖은 뜻을 위해 지 한 몸 아끼지 않고 구른 놈이야! 그랬는데! 이제 와서 일 끝냈으니 버리겠다고? 네가 그러고도 주인이야!?]
(내 뜻을 위해? 글쎄 잘 모르겠구나· 난 내 계승자가 지금껏 본인이 원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만?)
[개소리 작작해! 그 입 찢어버리기 전···!]
“그만 케이람· 귀 울리니까 그만 소리 질러·”
보다 못한 내가 그녀를 만류했다·
“저 머저리 신 말이 맞아· 이미 없어진 존재한테 도움을 요청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내가 원해서 여기까지 온 것도 맞고·”
케이람은 진심이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 원하는 걸 얻었겠다 이제 미련 없이 헤어져야 하지 않겠어? 물론 너도 포함해서····”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케이람의 본체를 아에르를 향해 던졌다·
아에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받았다·
[너 뭐 하는 거야?]
“너 보내주는 건데? 너 할 일 끝났어· 이제 가·”
[너 진짜 나한테 죽고 싶어!!]
케이람은 급기야 이번에 내 멱살을 붙잡았다·
얼굴을 보니 이제껏 봐왔던 그녀의 모습 중 가장 분노한 상태이지 않을까 싶었다·
[너를 위해 살겠다며! 너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살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남 좋은 일만 다 시켜주고! 이건 완전 의미 없는 개죽음이잖아!]
“누가 그래? 내가 죽는다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살아서 나갈 거야· 네 도움 없이도 탈출할 수 있으니까· 걱정 그만하고 가·”
[···!]
케이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감정에 요동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만 볼 뿐·
“너 울어?”
[····]
“진짜 우는 거야? 나랑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세상에 살다 보니 정말 별걸 다 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매정하고 드셌던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란 거겠지·
[내가 왜 너란 주인을 만나서····]
케이람은 나를 향한 그 슬픔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준다는 게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새삼 한 번 더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 눈물을 흘려줄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최고의 파트너에게
“잘 가· 케이람·”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 인사를 전함과 동시에 케이람 안개가 되어 아에르와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모두를 떠나보낸 난
이 널찍하고 허전한 공간에 홀로 남게 되었다·
-쿠구구궁!
그 적막한 공간 속에 들리는 거라곤 굉음뿐·
마침내 한계에 이른 아공간이 깨진 유리창처럼 무너지면서 무릎을 대고 있는 지면도 함께 무너져내렸다·
나는 그렇게 빛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영역으로 외로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 탈출할 수 있겠냐고?
그럴 리가 있겠는가?
케이람과 함께 루멘델을 찔렀던 그 순간이 내 힘의 마지막이었다·
바닥의 바닥까지 긁어모아 최후의 일격을 날린 마당에 아공간을 탈출할 힘이 어디 있겠는가?
거짓말 안 하고 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는 상태다·
뭐 뒤통수친 악마에게 복수도 했고 신들도 죄다 떠난 데다가 지킬 사람들도 다 지켰으니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은 이제 없다고 봐야겠지·
생각해보니 케이람의 말이 틀린 건 아니네?
나를 위해 살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선
정작 나는 제치고 남 좋은 일만 시켜주다가 이렇게 또 허무하게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전생과 다를 게 있다면
이번 생엔 미련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고 내가 이룰 수 있는 전부를 이루었다·
나름 괜찮게 살았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의 난 분명 웃고 있을 것이다·
거울로 확인할 필요도 없다·
난 지금 삶에 대한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며 아주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지·
부디 내가 지킨 세상과 그 세상의 남은 사람들이
아무런 탈 없이 편히 살기를
마지막으로 바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
“···안!”
“····”
“···련님!”
“····”
“···파파!”
미련 없이 눈을 감은 것이 무색하게 대뜸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 명이 아닌 익숙한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뭐지? 환청이라기엔 너무 선명한데?
“···시안!!”
이번엔 아까보다 더 확실하게 들렸다·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이건 분명 아린 황녀의 목소리인데?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왜 들리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에 휩싸인 나는 감은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
꿈이라고 하면 차라리 현실성이 있을까?
하지만 내 정신은 아직 끊기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광경은 꿈이 아니라 명백한 현실이란 뜻이겠지·
하하····
순간 눈에서 뜨거운 물이 흘러 내렸다·
원한에 사무친 비통한 피눈물 같은 게 아니었다·
굳이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동의 눈물이라고 봐야겠지·
나를 구원하겠답시고 이곳까지 와준 저 수많은 이들을 향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