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신념과 의문 (2)
‘이게 사람의 힘이라고?!’
성검의 힘을 처음 경험한 슈르츠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이 정녕 신의 무구가 가진 힘이란 말인가?
여태껏 싸워왔던 상대들과는 정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이었다·
물론 그 강함이 성검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슈르츠가 상대하는 기사들은 제국에서 가히 내로라하는 상급 기사들이기에
고작 용병 출신의 젊은 검사가 그들을 상대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공격 자체는 어찌어찌 막는다 쳐도
-후웅!
이건 뭐 반격의 여지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방금도 반사신경으로 몸을 숙이지 않았다면 목이 두 동강 났을 터·
정신줄 꽉 잡고 있지 않으면 자신은 어느 순간 저승의 문 앞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일단 자세라도 다시 잡고자 황급히 거리를 벌렸지만
“놓치지 않는다!”
성검의 기사는 그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바로 따라붙었다·
-챙!
이를 브라이언이 나서서 막아주었다·
브라이언은 상급 기사 못지않은 빠른 검술로 기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에 기사는 한숨 돌리고자 잠시 물러났다·
“괜찮으십니까?”
“아 아직은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도련님께서 금방 상황을 정리해주실 겁니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슈르츠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못하겠다며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
슈르츠는 울며 겨자 먹는단 심정으로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브라이언 역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임을 모르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고 몰아붙이는 성검의 기사들
미스트의 대원들은 그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점점 밀리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향한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언뜻 시안에게 지원 요청이라도 해야 하는가 싶었지만
브라이언은 바로 생각을 접었다·
자신은 엄연한 시안의 기사·
기사된 도리로서 주군에게 지원을 가도 모자랄 판에 요청을 한다는 건 옳지 않았다·
시안이 이쪽에 신경을 돌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일 터·
다시금 주군을 향한 마음을 굳히며 검을 움켜쥔 순간
“···?”
대뜸 브라이언의 앞으로 한 무리의 기사들이 나섰다·
일단 무장을 봐선 황군인데 소속이 불분명한 용병 같은 이들도 일부 보였다·
난데없는 등장에 뭔가 싶던 것도 잠시
그들은 머지않아 마주 선 기사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암살자들을 엄호하라!”
마치 암살자들을 지원하러 온 증원군처럼 보였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동자를 굴리는 브라이언과 슈르츠의 곁으로 곧 제레온이 다가왔다·
“행색을 보아하니 자네들은 저 시꺼먼 친구들과 식솔은 아닌 것 같군·”
“어 어째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그냥 지금은 자네들을 도와주기 위해 온 지원군이라고 생각해 주게나·”
제레온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새로운 질서에 반하는 이들은 전부 척결한다!”
반면 성검의 기사들은 같은 소속의 동료들이 적으로 마주 섰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그들 역시 악으로 간주하겠다며 검을 휘두르니 상대하는 이들로선 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는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제국과 대륙을 지키는 기사들이다· 네놈들이야말로 왜 황제 폐하의 명령을···!”
“황제 폐하께서 쓰러지셨다!”
곧 혼란스러운 상황을 환기하는 급보가 울려 퍼졌다·
이에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돌아갔다·
기품있고 위엄있는 자세로 명령을 내렸던 황제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눈조차 뜨지 못하고 축 늘어진 상태로 아린 황녀의 품 안에 안긴 병약자만 존재할 뿐·
“아바마마를 모셔주세요! 어서요!”
아린은 그런 황제를 부축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황제는 곧 다른 기사와 시종의 보호를 받으며 현장을 이탈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허나 성검의 기사들은 일말의 동요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새로운 질서에 반하는 반동분자들의 처단·
“저 모습을 보고 어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있겠나?”
제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도 다시 기사들과의 전투를 재개했다·
* * *
그 잠깐 사이에 상황이 여러모로 급변했다·
허나 이런 흐름은 이 성검의 주인에게 있어 절대 호전적이지 않았다·
눈에 띄게 어두워진 그의 안색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안색이 많이 어두워지셨습니다·”
“···!”
“뭔가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신 모양이죠?”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참으로 난해한 일이구나· 분명 나와 보리스가 본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보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 펼쳐지고 있어····”
황군과 소속 모를 용병들의 지원 황제의 이탈 등·
이건 네놈에게 있어 절대 계획된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어떻게 흘러가든 끝은 정해져 있는 법· 결국 모든 일은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럼 최후의 웃게 될 이는 결국 내가 되겠지!”
정해져 있는 끝·
변하지 않는 미래·
그는 끝끝내 미소를 지을 이는 어차피 자신이 될 거라며 호언장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
입에서 자연스럽게 탄식이 튀어나왔다·
어찌 이리 한결같을까?
이제는 안타깝다 못해 연민의 감정까지 느낄 판이다·
“어찌 주어진 미래가 그대로 이어지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어질 수밖에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먼바다에 폭풍우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사소한 변화 하나가 큰 미래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형님은 정녕 모르시는 겁니까?”
“서 성서의 미래는 그런 작은 변화 하나에 바뀔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는 답을 하면서도 본인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나는 측은한 마음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기야 형님은 늘 그러셨죠· 주어진 난관을 스스로 해결하기보단 항상 남이나 외부에 의지하셨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부정하지 마십시오· 형님께선 한 번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항상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으며 그 자리에 오르셨죠· 무엇 하나 혼자 이루신 것이 없습니다·”
에쉘은 차마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엔 남이 아닌 본인 스스로를 의지해보시지요· 혹시 또 모르지 않습니까? 형님의 그런 변화가 주어진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
허나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앞에 이르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니·
그 잠깐 사이에 그의 본성이 바뀔 거란 기대는 전혀 들지 않았다·
에쉘은 뭐라 반문하지 못해 애먼 입술만 꿈틀거렸다·
-기이잉
그 순간 케이람과 맞닿은 성검의 도신에서 이전보다 더 밝은 금빛이 일었다·
“···?”
나와 에쉘은 동시에 당황하였고 잠시 그 빛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래! 이런 것이지!”
에쉘이 먼저 반응했다·
“중간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 결국 끝에 있는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케이람을 쳐내는 동시에 성검을 하늘 위로 높게 들어 올렸다·
-화악!
또 한 번 공중으로 치솟은 성검의 광채·
그 빛을 내려받은 기사들의 검에서도 더욱 밝은 빛이 일었다·
“우워워어!”
힘이 증대한 것을 느낀 기사들은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기세에 밀린 암살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했으며 기사들은 더욱 거센 기세로 암살자들을 몰아붙였다·
-챙!
그 또한 내게 보란 듯이 검을 휘둘렀다·
“···!”
검을 맞받아친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힘·
어떤 능구렁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보내줬는지 모르겠지만 성검의 힘은 이전보다 한층 더 막강해져 있었다·
“보이느냐 시안!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 사소한 의문 따위로 이겨낼수 있는 힘이 아니다!”
어이가 없다·
정작 남에겐 일말의 신뢰조차 주지 않는 자가 믿음을 운운하다니·
하기야 자기는 믿지 않아도 남들이 믿으니 괜찮다고 하면 또 모르겠지·
허나 그렇게 얻은 힘마저도 내겐 같잖게 느껴질 뿐이다·
다만
“크윽!”
“조심하세요 슈르츠!”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한 듯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성검의 기사들을 저지할 힘이 대원들에겐 부족했다·
저래 봐야 그냥 진용을 유지하기에만 급급할 뿐·
뭔가를 더 하기엔 무리일 것이다·
이에 그들을 잠시 돕고자 빠르게 몸을 돌렸지만
“어딜 가느냐 시안!”
-챙!
그런 나를 되바라진 성검의 주인이 가로막았다·
“네가 지켜야 할 것은 저들이 아니다· 바로 너 자신이지!”
불쾌함을 느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치켜올렸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설사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라 해도! 나를 위한 삶을 이룩한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참으로 역겹기 그지없다·
하기야 이제 와 논하는 것도 우습지·
본인의 성공을 위해서 남을 철저하게 이용하다가도 매정하게 버리는 이가 바로 당신·
나 또한 나를 위한 삶을 이룩하기 위해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곤 해도
난 네놈과 다르다·
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나머지 속에서 제어할 수 없는 힘이 치밀어 오르려는 순간
‘들리세요 시안님?’
다짜고짜 머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건 틀림없는 하스티아의 목소리·
나는 얼떨결에 똑같이 정신감응으로 화답했다·
‘뭐야 갑자기?’
‘급박한 상황이실 텐데 정말 죄송해요! 다만 간곡히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서!’
급박한 상황?
뭐야 지금 어디서 날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거야?
얘 지금 내 아공간에 있는 거 아니었나?
하기야 지금 브라이언도 여기 있는 판에 그녀가 다른 곳에 있지 않을 이유도····
‘곧 루나브님께서 힘을 지원해주실 거예요!’
뭐? 누구?
나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지금 설마 루나브랑 같이 있어?’
‘네! 하지만 지금 루나브님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여서···!’
이 못 말리는 후배님이 또 어디선가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분명 내가 황성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거늘·
웬일로 말을 순순히 잘 듣는다 싶더니만 기어이 또 오지랖을····
-스스스
돌연 손에 쥐고 있는 케이람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내 의지에 반응해 나타난 안개가 아니다·
“뭐 하는 거야 케이람?”
[내가 한 거 아니다·]
케이람은 자신이 한 짓도 아니라며 딱 잘라 반응했다·
설마하니 그 머저리 신이 어디서 수작질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렇다면 최소 기운이라도 느껴져야 했다·
하지만 현재 주변에는 아에르의 기운은커녕 유사한 기운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운이···!
-챙! 챙! 챙!
바람을 타고 귀에 전해진 경쾌한 검무 소리·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불과 몇초 전까지 반격은커녕 방어에만 급급했던 암살자들이 어느샌가 기세를 되찾고 성검의 기사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대원들뿐만이 아니었다·
“하압!”
브라이언과 이름 모를 남자도 돌연 힘을 내기 시작하더니 각자의 힘으로 기사들을 몰아냈다·
그들의 검엔 안개의 힘 대신 마력이 거의 최상에 가까울 정도로 솟구치고 있었다·
[우리 주인은 참 복도 많아?]
“뭐?”
[하다 하다 그 얼간이의 도움까지 받네?]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해!”
나는 조바심이 난 나머지 케이람을 재촉했다·
[마서 레미하람·]
“···?”
[그 녀석이 이 근처에 있어·]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사고가 1초 정도 정지했다·
뭐가 이 근처에 있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