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가짜 추종자 (1)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 같으니!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설치는 거야?”
“이래서 귀족들은 못 믿는다니까! 그 신망 있는 베르트가의 막내가 그럴 줄 누가 알았겠어?”
“빛의 기사단들은 그런 놈들 빨리 안 잡고 뭐 하는지 몰라?”
어떤가?
그냥 들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참으로 속된 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사람 많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들려왔던 말이기도 하지·
추악한 안개의 추종자 시안 베르트를 향한 사람들의 생각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허나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이 말들은 무엇일까?
“세상이 변했군· 살다 살다 검은 안개를 추종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근데 가만 보면 그놈들도 그리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 않아? 여러 번 죽여 마땅한 부패 귀족들을 시원하게 죽여준 데다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딱히 해를 끼친 것도 아니잖아?”
“뭐 그 누구도 못 할 일을 하고 다녔다는 건 확실하지····”
부정을 넘어선 의심 의심을 넘어선 의문·
자고로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라 했다·
어떤 것이든 생각에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
저들도 마찬가지겠지·
빛의 질서라고 하는 오랜 관념으로부터 정립된 부정적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의심과 의문으로 변모한 것이라 본다·
그 이치를 여태 모르고 살았던 건 아니었다만
나로선 쉽사리 적응이 안 될 낯선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근 10년 만에 돌아온 우시프 제국의 중부도시 사페른·
설마 조직에서 거짓 정보를 보내줄 리는 없겠다만 정말로 안개의 신도를 자청하는 세력이 제국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자는 마음에 와봤다·
확실히 분위기만큼은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전 현생을 통틀어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 미스트는 그저 부정의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이렇게나마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름 흥미롭다면 흥미롭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거리를 계속해서 나아가던 순간
“····”
웬 후드를 뒤집어쓴 쭉정이 같은 놈이 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놈은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눈빛 꼬락서니를 보니 뭔가 요구하는 것이 있어 보였다·
딱히 악의 같은 건 안 느껴지기에 일단은 놈의 시선을 무심하게 받아 주었다·
-휘익
그러다 대뜸 홀랑 가버렸다·
뭐 하는 머저리인가 싶어 그냥 갈까 하다가도 뭔가 묘한 느낌이 있어 한 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놈은 얼마 안 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여성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곤 나 때와 마찬가지로 뭔가 의도가 담긴 듯한 불온한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
“····”
그러자 이에 반응한 여성이 알 수 없는 제스쳐를 취했다·
두 손으로 허공의 무언가를 감싸 쥐는 것 같은 동작을 취하더니 급기야 허공을 쥐고선 입으로 후 불어버렸다·
저게 무슨 정신 나간 행위인가 싶다가도 쭉정이 같은 남성은 그 동작을 이해했다는 듯 그녀를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뭐니 쟤네?]
같이 보던 케이람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방금 여성이 보여준 행위가 어떤 일을 진행하기 위한 수신호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니는 동안 미스트의 새로운 수신호라도 생겼나 싶었지만
그럴 리 없지·
일단 뭘 의미하는진 몰라도 동작은 확실하게 캐치했다·
나는 곧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비슷한 쭉정이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여성이 했던 것과 똑같은 동작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쭉정이의 얼굴에 급 화색이 돌았으며 이내 주변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내게 따라오라는 시선을 보냈다·
나는 가릴 것 없이 바로 그를 따라갔다·
잠시 후 도착한 어딘가·
솔직히 음침한 지하 공간이나 혹은 인적 드문 골목 같은 곳을 생각했는데
이건 좀 많이 의외다·
내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수도원·
그것도 빛의 신 루멘델을 찬양하는 수도원이다·
순간 잘못 왔나 싶어 잠시 동안 그 앞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겉으로 보나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나 그냥 지극히 평범한 수도원이다·
미소를 한껏 머금은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수도사와 수녀들·
아까 봤던 쭉정이와 그가 데리고 갔던 여자도 보였다·
당연하겠지만 나에겐 별로 좋은 곳이 아니다·
그냥 다시 돌아갈까 싶다가도 이왕 온 거 발이라도 담가보자 싶어 일단은 들어가 보았다·
“전능하신 빛의 신 루멘델님께서 이 땅에 새로이 빛을 내려 주시니 그 은총을 받아 지금의 평화 시대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교리에 따라 우리는····”
자장가로 쓰면 좋을 법한 수도원장의 설교가 이어진다·
일반적인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럴 거면 뭐하러 괴상한 수신호까지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은 걸까?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마음과 함께 내 시선은 그들이 나누어준 교전(敎典)에 향했다·
<빛은 해이며 해가 곧 빛이다· 해는 항상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지만 이따금 안개가 드리워지면 우린 해를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해와 안개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음?
뭐지?
이거 루멘델을 찬양하는 교전 아니었던가?
왜 여기서 안개가 언급되는 거지?
빛의 중요성을 언급하려는 내용이 아니겠냐 싶을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내가 아는 빛의 찬양론자들은 굳이 안개를 비교하면서까지 본인들을 우상화하진 않는다·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의 상상력은 무척이나 풍부하기에 생각의 여지를 주면 다양한 방식으로 변하게 된다고·
빛의 가치를 철저하게 신격화하면 신격화했지 이런 여지를 남길 놈들이 아니란 거다·
그럼 이 교전은 뭐지?
“허나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 있어 우리에겐 정녕 빛만 존재했는지? 모든 만물은 다 각자의 필요성이 있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그토록 부정하는 안개도 다르진 않겠죠·”
수도원장은 한술 더 떠 안개의 존재를 향한 의문마저 표하고 있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빛의 찬양론자들 앞에서 저 말을 지껄이면 저 수도원장은 그 즉시 이단자로 몰려 바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루멘델에 대한 찬양을 몇 시간 동안 읊어도 모자랄 판에 저런 영양가 없는 발언이나 하고 있다니·
이상함을 느끼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웃긴 건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미소를 잔뜩 머금은 쓴 수도사들이 다가오더니 영양가 없는 말들로 그들의 반응을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얌전히 입을 다문 채 다시금 수도원장의 설교에 집중하였다·
거기에 확신이 들었다·
이놈들 간이 커도 여간 큰 게 아니다·
지금 당장은 저렇게 넘어갈 수 있을지언정 그래봤자 잠시에 불과하거늘·
결국은 어떻게든 새어나가 본인들의 불순행위가 드러날 수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건가?
의문이 들다 못해 어이가 없어 하는 내 곁으로 날 끌고 온 쭉정이가 다가왔다·
“····”
그는 말없이 눈짓을 통한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따라오라는 의미였다·
나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쭉정이가 이끈 곳은 수도원 성당으로부터 바로 뒤에 위치한 작은 별관이었다·
그가 낡은 나무 문을 열어젖히니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하 계단이 나타났다·
나는 아무런 물음 없이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래 이 정도는 되야 좀 음흉한 짓거리를 꾸미고 있다 볼 수 있지·
빛이 들지 않는 음침한 암흑 공간·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괴상한 교인들이 복도에 쭉 늘어서 있다·
그 길을 덤덤히 나아가다가도 머지않아 큰 교단이 나타났다·
그 주위엔 나와 비슷하게 온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젊은 남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뭐 미스트의 아공간이랑 얼추 비슷하게 생기긴 했네·
[야 주인아·]
잠자코 나를 따라오던 케이람이 의문이 담긴 어조로 물었다·
[여기가 정말 그 머저리 신을 추종하는 공간 맞니?]
“아니·”
나는 세상 단호하게 답했다·
나도 이쯤 오면 뭔가 안개의 힘 비슷한 거라도 느낄 줄 알았는데 전혀 없다·
안개의 힘은커녕 아주 작은 마나의 흐름조차 안 느껴진다·
뭐 이런 웃긴 공간이 있을까 싶다가도 일단은 아무 자리에 앉아보았다·
한 5분 정도 기다렸을까?
아까 성당에서 이상한 설교를 하던 그 수도원장이 다시 나타났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는 거?
웃음이 만연해 있던 이전과 다르게 얼굴엔 사뭇 진지함이 가득했다·
“우선 설교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땅의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찾아오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신 나간 놈들이 정신 나간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는 행동과 딱 비슷하다·
경험담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동안 내가 처리했던 정화 작업 대상 중에 저런 놈들이 꽤 많았거든·
“우린 자그마치 수백 년 동안 빛의 질서라고 하는 잘못된 관념을 강요받아왔습니다! 검은 안개가 이 땅에서 배척해야 할 부정의 존재라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검은 안개의 신 아에르님이야말로 이 땅의 새로운 질서를 가져와 주실 전능한 존재이시자 개척자입니다!”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누가 뭘 가져와?
당사자가 들으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물음표를 띄웠을 것이다·
나와 미스트가 하는 일이 떳떳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저런 식으로 찬양받을 일은 아니다·
찬양받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지·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저딴 말도 안 되는 사상을 주입한 건지 이제는 얼굴마저 궁금할 지경이다·
저러다 진짜 안개의 추종자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할····
잠깐만·
불현듯 머릿속을 스친 기발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봐· 케이람·”
[왜?]
“우리 재밌는 일 한 번 해볼까?”
[···?]
케이람은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 * *
허리는 꼿꼿이 시선은 올바르게 목소리는 또박또박·
사람들을 설교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수도원장은 한 치의 망설임이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교리를 사람들에게 전했다·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만연해 있던 빛에 안개로 걷어냈던 그 날처럼! 안개의 존재는 우리에게 다시 나타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린···!”
-터벅
작지만 강한 울림·
소리에 이끌린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곳으로 향했다·
수도원장이 있는 교탁으로부터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것·
웬 낯선 남성 한 명이 제단 위로 올라와 광장에 있는 교인들을 무심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일단 수도원장의 연설에 감복한 나머지 뛰쳐나온 광인은 아닌 듯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던 것도 잠시
곧 남성의 주위로부터 낯선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수도원장이었다·
비교적 어리둥절한 다른 교인들과 다르게 그 기운이 뭔지 아는 듯 보였다·
“서 설마 진짜로?”
사람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 기존의 사고가 정지하기 마련이다·
그 돌발 상황을 잘 극복하면 모르겠지만 대개는 그러지 못한다·
수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리라 생각조차 안 했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
진짜 안개의 추종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상황에 그가 할 수 있는 행위라곤
그저 두 눈을 번뜩 뜬 채 입을 뻥긋거리는 일뿐이었다·
“왜 말이 없지?”
남성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도원장 바로 앞까지 이동해 있었다·
“네놈들이 그토록 원하던 안개의 존재가 나타나 줬는데 기뻐해야 할 일 아닌가?”
수도원장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두려움에 잠식된 나머지 성대의 기능이 정지해 버렸다·
“더 얘기해봐· 내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지····”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성의 눈엔 약간의 흥미와 기대심이 서려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