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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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나아갈 방향

검은 안개에 휩싸인 아공간·

-또각또각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지고의 공간 안으로 한 여인의 낯선 구두 소리가 들렸다·

제단에 앉아있던 아에르는 통로 저편에서 다가오는 여인을 발견하고선 미소를 지었다·

(이거 신계에서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군·)

윤이 흐르는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도도하게 걸어오는 장신의 여성·

그녀 또한 공간의 주인을 발견하고선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오기엔 뭔가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아쿠아니스?)

“나라고 뭐 오고 싶어서 왔나요? 그래도 당신을 어느 정도 경계한다는 뜻에서 그 남자가 나를 보낸 거겠죠?”

여인은 여유로운 눈웃음과 함께 아에르의 곁으로 다가갔다·

“추방자치곤 얼굴이 꽤 좋아 보이는데요? 인계에 많이 익숙해졌나 봐요?”

(사적인 안부나 묻자고 온 건 아닐 텐데요?)

“이럴 때 보면 또 딱딱하다니까? 그럼 본래 용건대로 이거나 전해줄게요·”

여인은 백색의 서신 봉투를 꺼내 아에르에게 건네주었다·

(신계에선 아직도 이런 구닥다리 방법을 쓰는 겁니까?)

“변화를 싫어하는 남자인데 뭐 어쩌겠어요?”

아에르는 바로 봉투를 뜯어 서신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무표정으로 천천히 읽어나가던 그의 입가엔 곧 묘한 미소가 지어졌다·

(인계에 본격적으로 위세를 떨치겠다는 건가요?)

“바꿔말하면 당신들의 흔적을 더 과감하게 지우겠다는 뜻이겠죠·”

(추방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다른 신들이 그리 달갑게 보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달갑지 않기보단 귀찮아하겠죠· 애초에 우리는 당신이나 루멘델처럼 피조물들에게 그리 큰 관심을 두고 있진 않으니까요·”

슬그머니 제단 위에 몸을 앉힌 여인은 자연스럽게 다리를 꼬았다·

그러곤 턱을 괸채 얼굴을 쭉 내밀며 아에르를 은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요즘 신들 사이에서도 추세가 변하고 있어요· 그 딱딱한 쪽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불롬님도 어린 피조물 한 명에게 여러 번 빙의하고 있으니 그 정도면 말 다 했죠· 뭐·”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적잖은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에 여성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역시 여자 마음 알아주는 데엔 당신을 못 따라간다니까요? 사실 저도 이제는 재미 좀 붙여볼까 생각 중이에요· 요즘 관심 있는 아이가 한 명 생겼거든요·”

(관조자처럼 항상 지켜만 보던 당신치곤 의외로군요·)

“남들 노는 걸 언제까지 구경만 할 수 없으니까요· 직접 참여해야 더 재미있지 않겠어요?”

새로운 호기심이 생긴 어린아이처럼 여인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가 하나만 충고해드리죠·)

새삼 주변 공기를 가라앉히는 무거운 어조로 아에르가 입을 열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진지한 모습에 그녀의 입꼬리 또한 다소 내려앉았다·

(당신이 택한 피조물이라 해서 당신의 말을 온전히 따를 거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여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모습을 본떠 만든 피조물들 아니겠습니까? 언제 어디서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죠· 그러니 항상 주의를 가지고 지켜봐 주십시오·)

“····”

(제 말 명심하셔야 할 겁니다· 푸른 물의 여신이여····)

-터벅터벅

두 남녀의 심상치 않은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 복도 저 끝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딱히 제 얼굴을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전 이만 물러나도록 할게요·”

제단에서 일어난 그녀는 바로 몸을 돌렸다·

“부디 소멸하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서 다음에 또 봐요· 아에르~!”

그러곤 의미 모를 윙크와 함께 그대로 공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에르는 질린다는 듯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 * *

별생각 없이 걸어가던 와중 제단 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머저리 신에게 딱히 찾아올 손님은 없던 거로 아는데?

조금은 의아한 마음을 품으며 제단으로 나아갔지만 보이는 이라곤 날 기다렸다는 듯 제단에 홀로 있는 아에르뿐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냐? 누가 보면 여자랑 있던 것 아니냐고 캐물을 줄 알겠구나?)

[놀고 있네····]

농담으로도 못 써먹을 말에 케이람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시원하게 끝낼 것처럼 당찬 기세로 가더니 얼굴은 그리 쾌활해 보이진 않는구나· 결과가 맘에 안 들었던 것이냐?)

“결과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지·”

그 과정이 좀 시원찮아서 문제였지만·

(내 말하지 않았느냐? 너의 손길을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이 다시 돌아와 너의 손을 잡아줄지도 모른다고· 네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넌 그들로부터 온정을 입은 것이다·)

“왠지 의도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어디까지나 경험담에 근거해서 말했을 뿐이다·)

아에르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여유롭게 받아쳤다·

(그래서 이제 어쩔 것이냐? 너를 지켜주던 울타리를 벗어나 언제 몸에 닿을지 모를 불길 속으로 나온 마당에 이제 이 땅에 네가 마음 편히 발붙이고 서 있을 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야?”

(네놈 또한 나처럼 아공간에 숨어 살건 아니지 않느냐?)

뭐 그건 그렇지·

어깨를 들썩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네가 있었다는 이전 생의 나도 이런 기분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똑같은 말을 해주었을 거다·)

어울리지 않게 그가 진지한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그리 권하고 싶진 않다· 그 길을 나아감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됐으니 말이다· 허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설사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난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

안다·

당신이라면 백 번을 회귀 한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결국 너에겐 또다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그 순간이 왔을 때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말이지·)

해피 엔딩이든 배드 엔딩이든 네가 선택한 길을 후회하지 마라·

지극히 당연한 말이면서도 쉽사리 지킬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나아가는 길이 이 세계의 흐름을 거부하는 길이라 해도 상관없어·”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쓸 내가 아니니까·

“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진리라고 생각하니까·”

* * *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비올렛!!”

갓 분화한 화산처럼 맹렬히 화를 내고 있는 루이넬·

그의 앞엔 손가락으로 입술을 쓰다듬으며 웃고 있는 비올렛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이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고····”

그녀의 뒤엔 순백의 갑옷으로 무장한 다수의 상급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루이넬은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람 학회로부터 받을 배상금을 중간에서 가로채기 위해 아직 황성으로 복귀하지 않고 있던 때에 그녀의 여동생이 난데없이 상급 기사들과 함께 찾아와 자신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번에 가람 학회로부터 꽤 많은 배상금을 받기로 했던데 역시 오라버니는 참 능력도 좋네요? 얼마나 많이 받았으면 중간에 가로챌 생각까지 하고 계셨겠어요·”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황실의 재산을 횡령하는 일은 설사 그 사람이 황실의 일원이라 해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중죄죠? 뭐 이전에도 꽤 비슷한 짓을 많이 하신 것 같긴 해도· 이번엔 아바마마께서도 그냥 넘어가진 않으실 것 같은데?”

비올렛은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고개를 쭉 내밀었다·

루이넬은 기괴한 마수의 얼굴을 본 것처럼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나 날 어찌할 생각이냐?”

“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오라버니께선 그냥 이대로 황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시면 돼요·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아주 조용한 곳으로····”

루이넬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펄쩍 뛰며 소리쳤다·

“네 네년이 결국 선을 넘는구나! 이러고도 정녕 무사할 듯싶으냐? 지금은 날 어찌할 수 있을 진 몰라도 내 가신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 장담하는데 3일도 채 못 갈 것이야!”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마당에도 호언장담하는 모습에 비올렛은 안쓰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에쉘 공 말대로네요·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상황을 못 보시는 분이었을 줄이야· 동생으로서 차마 웃지 못 할 일이네요·”

“누 누구 말대로? 네년의 입에서 왜 에쉘이?”

남매간의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대화가 오가는 와중 끼익하는 문소리와 함께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에쉘!”

그를 발견한 루이넬의 얼굴이 급 환하게 돌변했다·

“마침 잘 왔다! 지금 이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날 해하려 하고 있어! 어서 우리의 본때를···!”

구세주라도 온 듯 눈을 밝히던 것도 잠시 루이넬의 얼굴이 급 돌처럼 굳어버렸다·

자신을 해하기 위해 기사들을 몰고 온 비올렛과 그 중심에 서 있는 에쉘·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기사들은 어떠한 적의도 드러내지 않았다·

“에 에쉘? 이게 무슨 짓이냐?”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루이넬은 모르지 않았다·

“그리 충격에 빠진 눈으로 절 보실 필요 없습니다· 황자님·”

“닥치고 설명해! 네놈이 왜 내가 아닌 비올렛의 곁에 있는 거야!”

이미 이성을 잃은 루이넬을 보며 에쉘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이 진정 큰 성장을 이룰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뭐?”

“바로 나락이라고 하는 절망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황자님께서 진정 빛의 중심으로 군림하시길 원한다면 빛이 닿지 않은 나락의 어두움 또한 몸소 경험하셔야겠죠·”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왜 나락에 떨어져! 난 루이넬 황자다! 항상 최상위에 군림해서 너희를···!”

“바로 그겁니다·”

에쉘은 만족스럽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이미 지나간 영광을 들춰내는 모습···· 제가 원했던 황자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루이넬의 얼굴은 머지않아 종이 구겨지듯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두려워하고 절망하십시오· 그다음엔 이겨내시면 됩니다· 황자님이라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으실 겁니다·”

-털썩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인생을 살며 닿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절망의 밑바닥·

너무나도 차갑고도 끔찍한 곳에 이른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이었다·

루이넬은 축 늘어진 얼굴로 기사들의 호송을 받으며 방을 나갔다·

“나락의 어두움을 경험해야 성장할 수 있다라··· 좋은 말이네요· 에쉘 공께선 이번 일을 통해 그 어두움을 경험하고 오셨나요?”

다소 짓궂은 질문에도 에쉘은 변함없는 미소를 유지했다·

“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바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보이게 되죠·”

이윽고 창문으로 다가간 에쉘은 초연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밝게 빛나는 별들과 그 사이로 드리워지는 무심한 검은 안개·

저 안개를 걷어내지 않는다면 찬란하게 빛나는 별도 결국 보이지 않는 허상에 불과했다·

“시안이 그러더군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라고· 그래서 해볼 생각입니다·”

“무얼 말인가요?”

“그 누구도 해본 적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런 일을 말입니다· 시안은 저의 진면을 알고 있다고 했는데 과연 저도 모르는 제 진면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 흥미와 더불어 기대가 차오르는군요·”

에쉘은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굉장히 들뜬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훗날 사람들은 브레누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안개가 빛을 걷어낸 날’이라 불렀다·

누구도 바라지 않았고 올 거라 예상조차 못 했던 최악의 날·

그 최악의 날로부터

7년이 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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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Cyan Vert, the best assassin of the continent, meets a pitiful death after having been betrayed by his own brother, whom he had trusted all his life. If I were given another chance at life, I would live it differently. I would only trust myself, and achieve all the things I want on my own without serving anyone else but myself. That is how I was given a second chance at life. The Cyan Vert, a shadow who lived for others, is no more. I will now pave a path on my own, for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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