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거짓된 모습 (3)
타깃과 눈을 마주친 용병들은 부리나케 아카데미를 벗어났다·
인적이 드문 숲속 한복판에서 잠시 멈춘 순간 참아왔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헉 헉!”
그들은 풋내기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못해도 10년 이상은 피를 묻혀왔던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이 있는 베테랑 용병들이었다·
허나 지금 같은 상황은 그들에게서도 무척 낯설었다·
그동안 의뢰를 수행하면서 위험을 느끼고 후퇴한 적은 있어도 무언가에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느껴 달아난 적은 없었다·
지금의 행동은 분명 후퇴가 아닌 도주·
좀처럼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기분에 전부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예감이 안 좋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고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도록 한다! 이번 의뢰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군·”
리더 게릭은 본 의뢰에 위험성을 느꼈는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이에 제이슨이 묘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왜? 우리 어차피 들킨 거 아니야? 그럼 고민할 게 뭐 있어? 쇠뿔도 단김에 빼랬잖아? 지금 가서 덮쳐버리자고!”
“정신 차려라 제이슨! 아직도 상황 파악을····”
“···!”
무언가 낯선 기운을 감지한 용병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반쯤 가리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 소년의 정체가 누구인지 인지한 순간
용병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굳어버렸다·
“뭐 뭐야? 어느 틈에?”
의뢰 대상이었던 베르트 공작가의 막내 시안 베르트가 붉은빛의 기묘한 기운을 내뿜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허나 묵묵히 보기만 할 뿐 입은 열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지켜보기를 1분 정도·
“하하····”
용병 중 한 명인 제이슨이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촉이 좋으신 공자님이네? 그 먼 거리에서 우릴 본 것도 모자라 이렇게 몸소 와주시기까지 하다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제 제이슨!”
리더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이슨은 소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희 정체가 궁금하시죠? 그냥 돌리지 않고 딱 말할게요· 우린 당신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고 온 용병 즉 암살자들이에요· 이유는 모르지만 어느 귀한 집의 자제분들께서 아카데미에 있는 베르트 가의 막내를 죽여 달라 부탁했거든요·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정체를 드러냄과 동시에 살벌한 말들을 내뱉었지만 소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에 더욱 흥미가 생긴 제이슨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조금 뜬금없지만 제 취미 하나 알려드릴까요? 전 사람을 죽이기 전에 몸을 발가벗겨서 살을 발라내요· 그러곤 그 안에 있는 속살을 확인하죠·”
“····”
“왜냐고요? 사람은 원래 외면보단 내면이 더 아름다운 법이랬어요·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남들은 해괴하고 망측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 사람이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항상 보고 싶어 해요· 그렇다고 아무나 확인한다는 건 아니에요· 전 어디까지나 남자에게만 관심이 있거든요·”
마침내 소년의 코앞까지 다가선 제이슨은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하물며 겉모습도 완벽한 당신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속살을 가지고 있을지··· 정말 기대가 돼서 참을 수가 없어요·”
-할짝
급기야 혀를 내밀며 입맛까지 적시니 이미 눈만 봐선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런데
“헤에····”
웃었다·
인형처럼 멍하니 있던 소년이 마침내 입을 헤벌쭉 벌리며 웃었다·
무심하면서도 날카로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굉장히 아이 같은 미소였다·
“웃네? 웃으시네? 우와? 이런 건 또 처음이다! 내가 이런 말 해도 안 무섭나 봐요?”
난생처음 접하는 호의적인 반응에 제이슨은 반색을 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뾰족한 코를 내밀며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냄새····”
용병들은 귀를 의심했다·
언제 따라왔는지도 모르는 소년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냄새라니·
무슨 의도로 뱉은 말인지 그들로선 아직 이해할 수 없었다·
“냄새! 냄새! 나쁜 냄새! 사악하고 악독한 냄새! 그러면서····”
소년은 기어이 혀를 내밀며 입술을 적셨다·
“굉장히 맛있는 냄새····”
-펑!
그 순간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연기가 걷히며 잠시 가려져 있던 소년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지만
“···?!”
연기 속에서 나타난 이는 그들이 알고 있던 소년이 아니었다·
소년이 아닌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름 모를 소녀·
첫눈에 봐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 만큼 굉장히 아담한 소녀였지만
“뿌 뿔?”
사람으로선 가질 수 없는 낯설고 생소한 신체 부위를 가지고 있었다·
일부 용병들은 기겁한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거나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 먹을까? 한 번에 삼켜서? 꼭꼭 씹어서? 아님 사탕처럼 빨아서?”
마치 눈앞에 둔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순진무구한 아이 같은 모습·
이를 바로 앞에서 지켜본 제이슨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어 애먼 입술만 움찔거렸다·
땅에 붙은 두 발 역시 움직이지 못해 떨림만 일고 있었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을 거야····”
접해보지 못한 두려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이고 농락해왔던 그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의문만 가질 뿐·
그동안 자신이 유린했었던 수많은 인간들이 죽기 직전 마지막에 지은 표정이 지금 스스로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콰직!
육신을 가르는 무자비한 소리와 함께 제이슨의 몸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히이이익!”
이에 나머지 용병들이 발작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으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아카데미에 왜 저런 괴물이 있는 거냐고?”
“의뢰 중지다! 딴생각하지 말고 지금 전부 여길 떠! 당분간 다른 의뢰는 없어! 잠수라고!”
게릭은 앞서가는 용병들을 보며 소리쳤지만 그 소리마저 그들은 듣지 못했다·
“대체 저 공자 정체가 뭐야? 저건 사람이 아니라 마치 드래곤 같은···!”
-서걱
살점이 썰리는 섬뜩한 소리가 울리자 그들의 발이 뚝 하고 멈췄다·
선두에서 달리던 용병의 몸이 고꾸라지면서 그 앞으로 목이 나뒹굴었다·
“····”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낯선 검은 안개가 그들의 살결을 스치며 가슴과 등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용병들은 분출되는 두려움을 간신히 누르며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서거걱
등에서 흐른 땀이 엉덩이골로 내려간 그 짧은 순간
연이어 들려온 참격 소리와 함께 앞서 있던 용병들의 목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느샌가 혼자 남겨진 용병단의 리더 게릭·
힘이 풀려 무릎을 꿇은 그에게 검은 복면의 여인은 나직이 말했다·
“끌고 가·”
-퍽!
이윽고 둔탁한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가격하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 * *
“다 당주님! 이걸 대체 어찌 봐야 할지···?”
숱한 경험을 해온 암살자들조차 도저히 입을 다물곤 볼 수 없는 광경·
그나마 일반인이었다면 두 눈 온전히 뜨고 지켜보는 것조차 못 볼 광경이었다·
“내가 안일했던 걸까? 아니면 무지했던 걸까?”
시리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굉장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용병의 시체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태·
대신 시체의 잔해로 추정되는 살점과 뼛조각들만이 곳곳에 피와 함께 흩뿌려져 있었다·
그 중심엔 포만감을 느낀 듯 헤벌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헤헤····”
붉게 충혈된 안구와 부들부들 떨리는 눈동자·
한눈에 봐도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리숙하고 귀여웠던 인간 소녀가 아닌 잠들어있던 식욕 본능이 일깨워진 포악한 드래곤·
보는 것만으로도 원치 않는 거부감이 생길 정도였다·
“일단 사체들 처리하고 주변의 흔적들은 모두 지워· 핏방울 하나도 안 남게·”
“저 용인은 어찌할까요?”
시리카는 행복에 겨운 나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저 여리고 여린 꼬맹이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가만뒀다간 앞으로 무슨 사고를 터트릴지 모를 굉장히 위험한
그렇기에 더더욱 시안의 곁에 둬선 안 될 존재였다·
“내가 처리한다· 신경 끄고 흔적 처리하는 것에 전념해·”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아들은 대원들은 바로 뒤처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결의를 다진 시리카가 나나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거기 누구 있어요?”
“···!”
낯선 인기척과 함께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린님 혼자 가시면 위험해요!”
혼자가 아니었다·
학생으로 추정되는 소녀의 인기척이 둘 그 뒤엔 다수의 수호 기사로 추정되는 묵직한 발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다 당주님!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하던 일 중지하고 전부 후퇴해!”
대원들은 아무런 반문 없이 일제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시리카는 바닥에 앉은 나나를 들쳐 업으며 작게 읊조렸다·
“일이 더럽게 꼬이는군·”
그렇게 모든 암살자들이 사라지고 빈 적막만 흐르는 숲속·
이윽고 수풀이 헤쳐지는 소리와 함께 아린과 레시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못 들으신 거 아닐까요? 이런 숲속에 뭔가가 있을 리가?”
“그 그런 것 같긴 한데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무심코 기척 같은 게 느껴져서····”
나나와 급작스럽게 헤어진 뒤 기숙사로 돌아가던 아린은 문득 숲속 한가운데에 이상한 기척을 감지하였다·
뭔가 호기심이 생긴 나머지 기사들을 이끌고 무작정 찾아왔지만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서려 하자
“···!”
진득한 액체 같은 것이 발에 닿으며 시선이 자연스레 돌아갔다·
액체의 정체가 무엇인진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감에 아린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이윽고 액체를 따라 이어진 참혹한 무언가를 목격한 순간
“꺄아아악!!”
숲속 전체에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현재까지 발견된 사체는 총 네 구· 그마저도 하나는 차마 사체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만큼 조각에 가까운 수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전날 루웬에 입성했던 제국 출신의 상인단으로 신원조사 결과 대륙 용병단 길드에 등록되어있던 용병들인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보고를 받은 교관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 용병들이 아카데미엔 왜 잠입한 것입니까?”
“굳이 추측해보자면 누군가로부터 특정 대상을 감시하거나 혹은 암살해달란 의뢰를 받고 왔겠지요· 그 대상이 학생인지 교직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 됐든 참으로 간 큰 계획을 벌였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동의한 듯 교관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생사가 파악되지 않은 한 명을 찾기 위해 현재 루웬 경비단과 협력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긴 하나 일단 가장 주목해야 할 건····”
“그 용병들을 누가 죽였냐 이겠군요·”
비상 회의가 소집된 이후 줄곧 침묵을 유지하던 시리카가 입을 열고 답했다·
“사건이 처음 보고된 이후 행정부에선 해당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바로 총장님께 보고했으며 이에 대한 총장님의 답신이 조금 전 도착했습니다·”
부총장 사트웰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총장의 답신을 꺼내 교관들에게 공표하였다·
“지금 이 시간부로 모든 수업은 중지하며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모든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대기한다· 운동 대련 등 모든 외부 활동은 일절 금지하며 다른 학생 및 교관들과 일체 접촉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생각보다 강력한 조치에 모두들 놀란 듯했다·
시리카는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총장님께선 지금 돌아오고 계신 겁니까?”
“최근 아카데미에 불미스러운 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매우 분개하신 듯합니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에 대한 유력 용의자로 총장님께선 아카데미 관계자로 추정하고 계신 것 같더군요·”
“아 아카데미에서 말입니까?”
“예 특히나····”
순간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시리카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왕족 학생들이 머물러 있는 로열관 쪽을 주시하라 하셨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