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공작의 시련 (2)
-덜컹
철창이 개방되면서 헬하운드의 전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의 목을 구속하고 있는 다량의 사슬·
저 사슬이 풀어진다면 놈은 주저할 것 없이 나에게 달려들 것이다·
“자 네 앞에 있는 괴물은 헬하운드라고 하는 마계의 생물이다· 포악하기 그지없고 오로지 살생의 본능만을 가진 놈이지· 하지만 전선엔 이보다 더한 괴수들이 넘쳐흐르고 있다·”
알고 있다·게다가 헬하운드는 레메아 골짜기에서 서식하는 마수들 중에서도 최하급 부류였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저 헬하운드를 쓰러트려 너를 증명 하거라! 그리한다면 전선으로의 동행을 허락해주마·”
이 당돌한 자식을 위해 마계의 생물을 직접 생포해오시다니·
솔직히 살짝 감동이 웃돌 정도다·
확실히 율켄의 안목은 정확했다·
대륙의 수호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아버지는 식견이 높은 사람이다·
베르트가의 자제로서 전선에 가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본 시련을 통해서 명확히 규정하려 하신다·
우리가 사는 이 대륙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계의 생물·
인간은 본디 미지의 것을 마주했을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마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오줌을 저릴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그랬고 적응하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허나 지금은 어떻겠는가?
그냥 날뛰는 개새끼에 불과하다·
단지 조금 크고 조금 더 날렵하며 조금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
하물며 전선을 지키는 상급기사들에겐 이런 강아지들이야 칼 짓 한 번에 수십 마리는 쓸어버릴 수 있다·
허나 내가 이 마수를 처음 접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상급기사 10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련이라고 할 수 있지·
그만큼 이 미지의 생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이를 넘어 서야지 만이 비로소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본 시련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스릉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기사들은 만약을 대비해 일정의 거리를 유지한 상태·
아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최후의 저지선 역할을 해줄 것이다·
설사 신변의 안전은 보장될지언정 저 기사들이 움직인다면 내 전선 행은 수포로 돌아간다·
물론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지만····
-철컹
수신호와 동시에 헬하운드를 구속하던 사슬이 풀어졌다·
“컹!”
누가 개 아니랄까봐 외마디 포효를 지르며 달려든다·
-챙!
검을 위로 젖혀 놈의 송곳니를 강하게 타격하였다·
요 며칠 근력운동을 하긴 했어도 아직 헬하운드의 힘을 버티는 건 역부족이다·
몸을 살짝 틀어 옆으로 회피하니 놈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르르····”
주변의 다른 기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시선은 이미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중에서 내가 최약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거겠지·
그게 저 하등한 생물의 한계겠지만····
고전하는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진 않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고 마수인게 무슨 상관이랴?
보여 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치를 끌어내 나를 증명하는 것이 이번 시련의 목적이다·
다음 일격에서 놈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컹!”
헬하운드보다 한발짝 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검을 아래에 내빼든 상태로 질주했으며 내가 가까워질수록 녀석의 입은 더욱 크게 벌어져만 갔다·
마침내 놈과의 거리가 1m까지 근접한 순간 한쪽 발을 옆으로 내빼 방향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검을 사선으로 치켜 올려 헬하운드의 안면을 갈랐다·
-쐐액
턱에서 코까지 놈의 안면에 굵직한 검선이 그어졌다·
“쿠에엑!”
놈은 바닥에 곤두박질쳤으며 목청 떨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럽겠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이다·
-푹
다시금 일어서려는 녀석의 목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외마디 신음과 함께 대차게 꿈틀거렸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목과 입 사이에서 다량의 피가 흘러나왔고 이내 몸이 축 늘어졌다·
숨통을 끊은 것이 확인된 순간 검을 뽑았다·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다가도 슬쩍 맛을 보았다·
역시 갓 잡은 거라 그런지 신선하네····
* * *
빛의 기사단 소속의 수호기사 율켄·
시안의 시련을 지켜보던 그는 진심으로 당황을 금치 못했다·
‘헬하운드를 쓰러트렸다?’
지난 한 달의 시간동안 그는 공작으로부터 시안을 보위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별안간 특별한 움직임이 있으면 추가적으로 보고하는 업무도 있었지만 사실 그가 시안을 관찰 하면서 공작에게 보고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끽해야 저택으로 찾아온 엘리스와 검술대련을 했다는 것 정도·
정확힌 안한 것이 아니라 할 게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관찰하는 동안 시안이 한 것이라곤 꾸준한 근력운동과 검술훈련이 다였으니·
그나마 보고할게 있었다면 3일전 잠깐의 대련 상대를 해줬다는 것 정도·
허나 그마저도 시안의 명으로 인해 발설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시안의 시련이 헬하운드를 상대하는 것이란 걸 알았을 때 율켄은 그가 별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과의 대련에서 보여준 예사롭지 않은 검술과 자신감·
마계의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자신감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혹여 다소 고전은 할지언정 주눅 들지 않고 계속 싸움에 임하기만 한다면 필시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보았다·
근데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시안이 헬하운드의 숨통을 끊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그 시간동안 시안의 눈에서 공포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존재를 적으로 인식하고 죽였을 뿐·
속된말로 정말 개처럼 갖고 놀았다·
율켄은 조용히 검을 뽑는 시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첫째에 견주는 아니 첫째와 둘째를 뛰어넘을 자식이 등장했다고····
* * *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핏물을 보고 있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못해도 5리터 이상은 뽑아먹을 수 있는데····
마수의 시체를 두고 입을 적시는 인간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거다·
기사들이 시체를 치우는 와중에 공작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훌륭하다 시안!”
좀처럼 박수를 치지 않는 공작이 깊은 탄성과 함께 나를 칭찬했다·
“헬하운드가 두렵진 않았느냐?”
“그저 제가 쓰러트려야 할 적이라고 생각했을 뿐 두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마계에 널리고 널린 똥개를 무서워하는 게 이상하지·
“그래 약속대로 너를 전선으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마· 너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달리 바라는 것은 없느냐? 원한다면 너를 위한 새로운 무구를 내려주도록 하마·”
“소자는 아직 무구에 대해 잘 모르니· 아버지께서 맞춰주신다면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 필시 네 마음에 꼭 드는 걸로 준비해 주겠다·”
지금 와서 다른 무구가 무슨 쓸모가 있으랴?
이미 내 품속엔 신의 마검이 편한 숙면을 취하고 계신데····
쓸 일은 없겠다만 받는다 해서 나쁠 일은 없을 것이다·
시련도 끝난 마당에 이 메마른 땅에 더 있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타고 온 마차를 통해 저택으로 복귀했으며 공작은 나머지 기사들과 함께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저택에서 간단한 준비를 끝마치면 나 역시 전선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딱히 그리운 곳은 아니었어도 나름 추억의 장소라면 추억의 장소라고나 할까?
왠지 모르게 아련해지려 한다·
[잠든 사이 꽤 재밌는 일이 있었네?]
어느덧 잠에서 깬 케이람이 실체화 하여 나타났다·
[피 냄새를 보아하니 헬하운드를 잡은 모양인데 생각보다 고전했나봐?]
“뭐 나름 힘을 숨기면서 싸워야하다 보니 고전하긴 했지·”
[쇼를 한다 아주· 그래서 전선인지 뭔지 거기로 확정된 거지? 나 이제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거야?]
“흠··· 그러지 않을까?”
반쯤 불확실한 반문을 던졌지만 케이람은 이미 기대감에 잠식되어 있었다·
사실 거기서도 상황을 봐야하기에 생각만큼 날 뛸 수 있을지 없을진 확신할 순 없었다·
[야 근데 주인아· 내가 자면서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뭘?”
[너 전생에 죽었을 때 난 어쩌고 있었어?]
“어쩌긴 내 손에 떡하니 붙들려 있었지·”
뭐 마지막엔 그 손이 댕겅 하고 잘리긴 했지만···
[그럼 전생의 난 대체 뭐하고 있던 거야? 게다가 널 죽인 놈은 성검의 소유자였다며? 그랬으면 내가 그놈들의 악의를 눈치 못 챘을 리도 없는데?]
흠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확실히 그 당시 케이람의 인격이 존재했었다면 그리 쉽게 죽진 않았을 것이다·
어서 정신 차리라며 뺨을 때려서라도 싸우게 했겠지·“일단 전생의 넌 나랑 무지막지 하게 싸웠어·”
[왜?]
“왜긴? 네가 시도 때도 없이 날 집어 삼키려 하니까 그거 억제하려고 투닥 거린 거지· 그때만 해도 널 용암구덩이에 던져버리려고 수십 번은 고민 했을 걸?”
[어디 나 같은 매력적인 마검을 다루는 게 쉬운 줄 아니? 그래서 어쨌는데?]
“널 찾았을 당시는 마족과의 전쟁이 한창 지속되던 때야· 난 거의 생사의 갈림길을 넘어들면서 너를 길들였었지· 네가 하도 날뛰어주는 덕에 오히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지만····”
진짜 거짓말안하고 그때 케이람이 베어낸 마족의 수를 따지자면 족히 수십만은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케이람한테 안 먹히려고 그들이 희생됐다고 볼 수 있지·
“참고로 그 때 마왕을 죽을 때까지 몰아붙인 것도 너랑 나였어· 뭐 마지막에 목을 벤 건 결국 성검이었지만····”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는 거야? 마지막은 왜 뺏겼는데?]
“뺏겼다기 보단 그냥 내가 준거였지· 당시엔 그러는 편이 더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와선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참 미련한 짓이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사냥감 뺐기는 거야! 근데 그걸 허용했다고? 내가?]
“허용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어· 넌 그때 마왕의 사검(死劍)이랑 동귀어진 하면서 사라졌으니까·”
[뭐?!]
갑작스런 외침에 절로 두 귀를 틀어막았다·
물론 바깥의 기사들에겐 전혀 안 들린다·
[그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내가 왜 사라져?]
당시 마왕은 통칭 사검(死劍)이라 불렸던 최악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서 죽은 인간과 마족들의 영혼 사념체들을 끌어 모아 자신의 힘을 증강시켰으며 아직 성검의 힘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 에쉘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한 셈이었다·
케이람은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놈은 꼭 데려가야겠다며 사검의 영혼과 직접 부딪혔고 결과적으론 사검의 힘을 반 토막 내는데 성공했다·
본인의 인격을 바쳐서라도 죽이고 말겠다는 그녀의 굳센 의지가 이루어낸 결과였다·
결국 마왕을 죽이는 덴 성공했지만 난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최고의 동반자를 잃어버렸기에 결코 성공이라곤 할 수 없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케이람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어쨌든 내가 진건 아니었다는 거지?]
“그렇지 결과적으로 마왕은 죽고 사검은 파괴되었으니까·”
[그럼 됐어· 지면 못 사는 내 성격상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해는 되네····하지만!]
수긍하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내 앞으로 얼굴을 쑥 들이 밀었다·
[한 번 더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땐 결코 날 희생시키지 마· 내가 없는 곳에서 주인이 죽는 꼴은 나 역시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녀의 눈가엔 진심어린 분노가 서려있었다·
“호? 나를 그렇게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이신 분이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실 줄은 몰랐는걸?”
[착각하지 마· 내 먹잇감이 남한테 뺏기는 꼴을 보기 싫어서 그런 거니까·]
어련하실까·
뭐 나 역시 그녀가 또 다시 희생하는 일은 원치 않는다·
“설사 지금 내 앞에 마왕이 나타난다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허풍 떨기는 너 말 조심해야 된다· 그러다 그 마왕이란 놈이 진짜 나타나면 어쩌려고?]
“글쎄? 그럼 그거 나름대로 재밌지 않을까?”
대책 없이 웃는 내 얼굴을 보며 케이람은 고개를 저었다·
허나 사람은 세상 살면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씨를 뿌려 열매를 맺게 되니
이때의 난 그 중요한 이치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