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 8장 검을 지배하는 자 (1)
강주명은 설풍대의 부대주였다· 율경천의 심복일 뿐만 아니라 패권회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였다· 그는 특히 두 자루의 단창을 잘 썼는데 성격이 잔혹하고 편협해서 모두가 두려워했다·
“감히 패권회에 반기를 들다니·”
그의 단창이 발산하는 창기에 두 무인의 가슴이 한꺼번에 뻥 뚫렸다· 강주명은 단창에 꼬치처럼 꿰인 무인들을 크게 휘둘러 내던졌다·
바닥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강주명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와 설풍대에게 내린 명령은 단 하나였다·
적들을 추적해 말살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죽든 또 어떤 사람이 휘말리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분이 좋았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무공을 익힌 자의 본능이었다· 특히 강주명처럼 고강한 무공을 익힌 자일수록 그런 본능은 더욱 강했다·
“아악!
그의 창기에 휘말려 또 몇 사람이 덧없이 죽어갔다· 윤문천을 구하려는 무인도 있었지만 재수없이 근처에 있다가 횡액을 당한 백성도 있었다·
“아아!”
그 광경을 본 몇몇 사람이 제자리에 주저앉아 똥오줌을 지렸다· 생전 처음 보는 공포스러운 광경에 그들은 감히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강주명이 그들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남들과 다른 힘을 가지고 똑같이 산다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의 공포 섞인 시선이 그의 우월감을 증폭하게 했다·
“그래 그렇게 바라보거라· 너희 같은 하잘것없는 족속에게는 그런 모습이 어울린다· 흐흐흐!”
“미친놈!”
그런 강주명의 광기 어린 모습에 윤문천을 구하기 위해 나선 무인들마저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릴 정도였다· 설마하니 패권회의 무인들이 일반 백성의 피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줄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설풍대는 강했다· 무엇보다 집요하면서도 잔인했다·
패권회가 왜 그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적군뿐 아니라 아군에게도 공포의 존재였다·
“흐흐! 본격적으로 해보자구·”
그가 단창을 돌려 끼웠다·
철컥!
쇠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단창이 합쳐져 장창으로 변했다·
강주명이 장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의 장창에서 폭출된 창기에 기물이 부서지고 벌벌 떨던 사람들이 두 동강이 났다· 핏물이 비산하고 사람들의 비명성이 저잣거리에 울려 퍼졌다·
쉬이익!
그때 갑자기 천막을 찢고 거대한 방천화극이 강주명을 향해 날아왔다· 강주명은 장창을 세로로 들어 자신의 전면을 막았다·
쾅!
“컥!”
엄청난 충격과 함께 강주명의 몸이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강주명의 입가에 한줄기 선혈이 내비치고 있다· 그가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새로이 나타난 남자를 노려봤다·
“누구냐?”
“크큭! 네놈도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가래 섞인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타난 남자는 남군위였다· 그의 손에는 거대한 방천화극이 들려 있었다· 급하게 이어 붙였는지 방천화극 중간에는 진무원에게 두 동강이 났던 흔적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강주명이 신중한 눈빛으로 남군위를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남군위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누구냐고 물었다·”
“그게 중요한가? 흐흐!”
“그렇군·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지·”
강주명이 남군위를 향해 장창을 겨눴다·
그들이 만든 아수라장이었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수라 하나가 뛰쳐나왔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었다· 어차피 목숨을 건 싸움이었으니까·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서 자신의 정의를 증명할 뿐이었다·
“챠핫!”
강주명이 장창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그의 창이 허공을 수놓았다· 푸른 창기가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으하하! 좋구나!”
남군위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의 방천화극이 부르르 떨렸다·
이곳에 오기 전 금단엽이 한 말이 떠올랐다·
“군위 더 크게 판을 벌여주게· 잔혹할수록 좋아·”
남군위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자네 말대로 이곳을 피로 물들여주지· 흐흐흐!”
츄화학!
그가 방천화극 휘둘렀다· 순간 그의 방천화극을 타고 화룡 모양의 강기가 발현됐다·
화룡진염극(火龍眞炎戟)·
그 궁극의 극법이 펼쳐졌다·
파삭!
화룡의 강기는 강주명의 육신을 휩쓴 것으로 모자라 근처의 민가까지 통째로 무너뜨렸다·
“으아악!”
강주명의 처절한 비명이 야공에 울려 퍼졌다·
“흐흐!”
남군위가 번들거리는 두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칠 것 없이 윤문천을 추격하던 설풍대가 곳곳에서 붉은 갑주의 무인들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남군위가 이끄는 적귀병단이 그들을 막아선 것이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민가가 무너지거나 불타고 힘없는 백성들은 강호인들의 싸움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애꿎은 백성들이 싸움에 휩쓸려 죽어가고 있었지만 무인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광기와 광기의 격돌이 지옥을 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청인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흑월의 비월로 천하에 안 가본 곳이 없는 청인이지만 이런 지옥도는 처음이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가 울고 있고 검기에 휩쓸린 애꿎은 사람의 처참한 시신이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곽문정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정한 무인이 되겠다고 진무원을 따라나선 곽문정이다· 마음을 굳게 잡고 있었지만 충격적인 광경 앞에서 그의 여린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진무원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고요하기만 하던 그의 가슴에 격랑이 일고 있었다·
옥계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은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다· 비록 강호라는 세상에 부대껴 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었다·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고 살아갈 의지를 잃고 있었다·
당장 강호인들의 싸움에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터전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진무원의 가슴에 큰 울림을 전하고 있었다·
진무원이 격전의 흔적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고인 피가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는 것처럼 걸음이 무거웠다·
‘이것이 이들의 강호인가?’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밀야와의 전쟁 때도 백성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피해 싸웠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지만 그들 대부분은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무인들이었다·
자신의 이상과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었기에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무원의 강호였다· 하지만 진무원이 알고 있는 강호와 이들의 강호는 다른 모양이었다·
저들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파괴의 흔적은 커져만 갔다· 그 목불인견의 참상에 청인과 곽문정은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일단의 남자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네놈들은 누구냐?”
살기를 풀풀 날리며 진무원을 바라보는 남자들은 패권회 소속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의 두 주먹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선혈이 찐득하게 묻어 있었다·
진무원의 시선이 그들의 얼굴을 향했다·
“그러는 당신들은 누굽니까?”
“····”
“대답을 하지 않는군요· 못하는 겁니까 안 하는 겁니까?”
“질문은 이쪽에서 했다·”
“스스로를 밝히지 못할 만큼 떳떳하지 못한 겁니까?”
“감히 패권회를 모욕하다니·”
순간 남자들이 발끈했다· 그에 진무원의 눈빛이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
“역시 패권회군요·”
정곡을 찌르는 진무원의 말에 남자들이 잠시 움찔했다· 어차피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 할지라도 패권회라는 단어가 언급되어서는 안 됐다·
“그 입이 화를 부르는구나·”
그들이 진무원을 향해 다가왔다·
무기도 들지 않은 맨주먹이었지만 그들에게서는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진무원의 시선이 그들의 주먹을 향했다·
마치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 갈라진 주먹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고 손톱은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청문일월권(靑文日月拳)·’
옛 북천문의 절기인 청문일월권을 극성으로 익히면 손톱이 파랗게 물든다· 천하에 수많은 무공이 존재하지만 손톱이 파랗게 물드는 무공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청문일월권은 밀야와의 전쟁이 한창일 때 효율적인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권이었다·
수십 가지의 독물을 혼합해 특수 약물을 만들고 그 속에 주먹을 담가 독기를 흡수시킨다· 그런 후에 독문의 심공을 익히게 되면 두 주먹은 강철보다 단단해지면서 그 자체로 무서운 흉기가 된다·
전장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청문일월권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먹의 독기가 뇌를 침범해 점차 광기에 물들어간다는 것이다·
청문일월권을 익힌 자에겐 오직 두 가지의 최후밖에 없다고 했다·
전장에서 죽거나 혹은 미쳐 죽거나·
실제로 광증이 발동해 북천문에서 동료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다가 죽은 무인이 부지기수였다·
그 때문에 북천문에선 청문일월권을 보완하려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금기 무공으로 정해 봉인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잊혀 있던 무공이 바로 청문일월권이다·
‘숙부 기어이 끝까지 가보려는 겁니까?’
청문일월권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부하들에게 익히게 했다는 것은 조천우의 야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천우는 광천대의 무인 전원에게 청문일월권을 익히게 했다· 비록 부작용은 있지만 그만큼 속성으로 강해지는 것이 가능했고 사람을 죽이는 데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놈 죽어랏!”
광천대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몇 명은 진무원에게 또 몇 명은 청인과 곽문정에게 달려들었다·
“젠장할!”
청인이 급한 대로 비수를 꺼내 들고 광천대의 무인들을 상대했다· 곽문정 또한 적아를 꺼내 스스로를 보호했다·
카카캉!
맨주먹과 무기가 부딪치는데 불꽃이 튀고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무원에게도 세 명의 남자가 공격해 왔다·
쉬쉬쉭!
그들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진무원의 전신 요혈을 노렸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살인적인 공격이다· 그들은 청문일월권 중에서도 가장 극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살초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진무원의 눈에 처음으로 살기가 떠올랐다·
과거의 악연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아무리 외면하고 모른 척 지나치려 해도 족쇄가 되어 그를 벗어날 수 없는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것도 운명인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놈?”
광천대 무인들이 진무원을 비웃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선 무인의 긍지나 명예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진무원이 설화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광천대 무인들이 발산하는 권기가 그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왔다·
순간 설화가 허공을 그었다·
쉬가악!
“····”
소름 끼치는 파공성이 흘러간 후 거짓말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청인과 곽문정을 공격하던 광천대 무인들조차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이 굳어 두 눈만 끔뻑거렸다·
스릉!
진무원이 설화를 검집에 집어넣으며 자신을 공격하던 광천대 무인들 사이를 걸어갔다·
후두둑!
광천대 무인들의 몸이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청인과 곽문정을 공격하던 광천대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전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진무원이라는 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