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 3장 진흙탕에 사는 용도 있다 (2)
강호의 호사가들은 무인들을 분류하고 서열을 나누길 좋아했다· 호사가들이 이야기할 때 항상 최정상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바로 운중천의 아홉 하늘이었다·
홍옥마수(紅玉魔手) 심무외·
불수불언(不手不言) 담적심·
창룡검제(蒼龍劍帝) 비사원·
마령제(魔靈帝) 현현소·
귀제갈(鬼諸葛) 서문화·
무적수사(無敵修士) 모용율천·
무당파의 적엽진인(赤葉眞人)·
소림사의 불영신승(佛影神僧)·
풍운번주(風雲旛主) 능군휘·
당금 강호를 지배하고 있는 아홉 명의 절대자·
그중에는 개인의 무력으로 명성을 떨치는 자들도 있고 강호의 초거대 세력을 이끌다 보니 절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한 명 콕 집어 천하제일인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들끼리 격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호인들은 그들 아홉 명을 뭉뚱그려 구중천이라 불렀다· 그리고 구중천과 비견할 만한 무인으로 북천사주를 뽑았다·
소수귀검(素手鬼劍) 연천화·
권마(拳魔) 조천우·
철혈무제(鐵血武帝) 제혁심·
풍제(風帝) 경무생·
북천문이라는 큰 나무에서 뻗어 나온 작은 가지에서 시작했지만 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중원의 구대문파 못지않은 성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초강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 구중천 북천사주까지 합쳐도 서른 명은 넘지 않을 것이란 것이 강호의 중론이었다·
각기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능히 강호를 지배했을 자들이 한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불행이겠지만 강호를 살아가는 평범한 무인들에겐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각각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현재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칼날 위의 아슬아슬한 평화라고 할 수 있겠지·’
당기문이 복잡한 심사가 그대로 드러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그의 앞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비상하는 용이 양각된 황금빛 태사의에 앉아 오연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년의 남자· 곰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체구임에도 전혀 둔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만인을 압도하는 듯한 기백을 발산하고 있었다·
각진 턱에 두꺼운 입술 그 위의 뭉툭한 코 그리고 사람의 심혼을 꿰뚫어 보는 듯한 호목(虎目)·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권마라고 불렀다·
권마(拳魔) 조천우·
북천사주의 일인이자 패권회의 정점에 서 있는 남자· 그것이 바로 남자의 정체였다·
조천우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운남성은 그의 영역이었다· 그의 영역 안에서 당가가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한 것이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들의 도발이 한계를 넘었군·”
마치 대호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에 당기문은 전신에 소름이 돋아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북천사주가 이 정도였던가?’
비록 무공을 익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가의 일원인 당기문이다· 수많은 무인을 만나보고 이야기해 봤기에 사람 보는 눈은 누구보다 정확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가 만난 그 누구도 지금 조천우와 같은 존재감을 갖지 못했다· 넓은 대전 안이 온통 조천우의 존재감에 장악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북천문의 곁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억울할 만도 했겠군·’
힘을 가진 자라면 그것도 천하를 논할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진 자라면 이인자의 삶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조천우는 능히 천하를 논할 만한 자격이 있는 자였다·
“그들의 정체를 파악했습니까?”
“수하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요·”
조천우의 음성엔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패권회가 운남에 자리 잡은 지 벌써 십 년· 그동안 패권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중 조천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정보를 수습하는 조직인 천안통(天眼通)이었다·
북천문의 해체를 겪으면서 그는 정보의 부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목도했다· 그 후로 그는 인재를 영입하거나 키우면서 천안통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천안통은 중원의 그 어떤 정보 조직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거라고 그는 자부하고 있었다· 지금 천안통은 전력을 다해 현재 운남성에서 일을 벌이고 있는 자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부디 빠른 시간 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냈으면 좋겠군요·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보통 주도면밀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흥! 그들이 운남성에 있는 한 언제까지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오·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 그들의 최후가 될 거라고 장담하지·”
조천우의 음성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들이 운남성에서 분탕질을 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여섯 달이 넘었다· 수많은 상단이 실종되면서 운남성의 경제가 위축되었고 그 여파는 곧바로 패권회에까지 미쳤다·
패권회가 최근 십 년 동안 급격히 세를 불렸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경제적인 기반이 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같이 운남성에 있는 점창파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파답게 수많은 전답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소작농을 부리고 있었다· 즉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자체적인 생존이 가능한 체계가 갖춰진 것이다·
반대로 패권회는 그런 기반이 없이 상단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밑바탕으로 경제적인 기반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운남성에서 상단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일정 부분의 이득을 얻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단들의 타격은 패권회에도 경제적인 큰 타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위신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운중천에서도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인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조천우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패권회의 위신이 추락한 만큼 조천우의 위신에도 금이 간 셈이다·
“그나저나 당 각주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이오·”
당가의 만독각주가 운남성에서 죽었다면 패권회가 받았을 타격은 이전의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만큼 당기문은 중요한 사람이었다·
“때마침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절대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만큼 적들은 철저하게 준비를 했고 저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의 도움이오· 당가의 은인은 곧 우리 패권회의 은인이기도 하오· 알려준다면 내 후사하겠소이다·”
“저도 아직 그의 자세한 신세 내력을 알지 못합니다· 조만간 다시 만날 터이니 그때 조 회주께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그거 기대되는구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당기문의 자신 있는 대답에 조천우의 눈이 빛났다·
진무원이 짐을 푼 곳은 태평객잔이라는 이름의 허름한 객잔이었다· 객잔 자체는 무척이나 초라했지만 그 위치가 매우 절묘해서 사통팔달의 지형 한가운데 있었다·
진무원은 태평객잔의 이 층에 짐을 풀었다· 이 인실이라고 하지만 제법 넓어서 서너 명이 자도 충분할 것 같았다·
곽문정이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야! 겉보기와 달리 괜찮은데요· 밖에서 보면 다 무너져 가는 것 같은데·”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숙수의 음식 솜씨도 괜찮은 것 같더구나· 뒤쪽의 마당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그럼 연무도 할 수 있겠네요?”
곽문정의 눈이 반짝였다·
적귀병단의 습격을 받은 후 자신의 무공이 얼마나 부족한지 절감한 곽문정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무공을 연마했지만 그래도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며칠 정도 여유가 있으니 너는 무공을 연마하는 데만 집중하거라· 나는 잠시 밖에 다녀오겠다·”
“네!”
곽문정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욕에 찬 곽문정을 뒤로하고 진무원은 방을 나왔다· 일 층으로 내려오자 탁자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는 어린 점소이가 보였다·
진무원이 점소이를 불렀다·
“애야·”
“예 손님·”
점소이가 대답과 함께 즉각 쪼르르 달려왔다·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데 혹시 네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누군데요?”
“삼뇌서생 하····”
“아! 그 미치광이 아저씨요?”
“미치광이?”
점소이의 즉각적인 대답에 진무원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여기선 다들 그렇게 불러요· 천재라고 곤명에 소문이 자자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래요· 그래서 광서생(狂書生)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갑자기 미쳤다고?”
“예!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날뛰었다고 하더라구요·”
“어디를 가면 그를 볼 수 있느냐?”
“그게····”
점소이가 왠지 말을 잇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그 모습에 진무원이 피식 웃으며 동전 한 문을 건네주었다· 그제야 점소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남쪽으로 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빈민가가 나올 거예요· 빈민가 중심에 서풍객점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 가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객점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이지?”
“간판은 객점이지만 실은 도박장이에요· 그곳에 가면 조심하셔야 해요· 보통 살벌한 곳이 아니에요·”
“고맙구나· 각별히 조심하마·”
“헤헤!”
진무원은 점소이를 뒤로하고 객잔을 나왔다· 문득 그의 시야에 패권회의 거대한 전각군이 들어왔다·
진무원의 표정이 절로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한때 숙부라고 부르던 자가 있는 곳이다· 십 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의 얼굴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진무원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괜스레 마음이 복잡하기만 할 뿐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우선은 황숙을 구하는 데만 집중하자·”
진무원은 점소이가 알려준 빈민가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반드시 형성되는 곳이 바로 빈민가였다·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은 그들만의 세상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빈민가로 들어서자 주위의 공기가 달라졌다· 같은 곤명에 있는데도 이곳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기온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변방으로 밀려난 자들의 마음은 빈곤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현실에 대한 절망이 버무려져서 음울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기운과 분위기는 고스란히 거리의 모습에 투영되고 있었다·
진무원이 들어서자 거리의 분위기가 변했다·
문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던 노인이 경계 어린 시선으로 진무원을 바라보고 골목을 뛰어놀던 아이들이 진무원을 발견하곤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갔다·
진무원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은밀한 시선이 달라붙었다· 사람들이 거리 전체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진무원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었다· 유대감과 동질감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집에 옷이 몇 개 있는 것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당연히 어느 집에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지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진무원 같은 낯선 이의 등장은 자연 그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진무원도 그런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빈민가의 중심가에 있는 서풍객점이었다·
그가 객점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이 사뭇 위압적인 표정으로 진무원의 전신을 훑어봤다·
“어떻게 오셨소?”
“삼뇌서생 하진월을 찾아왔습니다·”
순간 남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사기꾼 새끼!”
“사기꾼?”
“네놈 그 사기꾼과 한패냐?”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지며 객점 안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