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7장 같은 길을 걷는다고 마음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4)
길가에 보이는 시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붉은 갑주를 입은 무인들과 연녹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의 시체가 곳곳에 뒤엉켜 있었다·
철기당의 무인들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연녹색의 무복은 당가를 상징한다· 당가타에서 생활할 때는 자유로운 복장을 하지만 공적인 일로 당가타를 나올 때 그들은 항상 연녹색의 무복을 입었다·
당가가 연관되었다는 추측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백룡상단의 보표들은 물론이고 철기당의 무인들도 표정이 얼어붙었다·
세상에 수많은 문파가 존재하지만 당가만큼 은원이 확실한 곳은 없었다· 은혜는 열 배로 갚지만 원한은 백 배로 갚았다· 특히 공적인 일로 나온 당가의 무인들을 건드린다는 것은 당가 전체와 원한을 맺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잘못 판단했다· 아예 처음 시신을 발견했을 때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는데·’
공진성과 종리무환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다·
지금까지 본 시신의 수만 십여 명이 넘었다· 이 정도라면 일대에서 이들의 광범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종리무환이 용무성에게 말했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겠습니다·”
“쯧! 지랄 같군· 이제 겨우 운남성 초입인데 이런 난관이라니· 아무래도 이번 의뢰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군·”
“제 잘못입니다· 소제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종리무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가올 위협은 최대한 피하고 어쩔 수 없는 위험 요소는 선제공격으로 제거하는 것이 철기당의 방식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의뢰는 교묘히 피하면서 지금의 명성을 쌓았는데 자칫하다간 그간 힘들게 쌓아온 모든 것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모두 언제든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지금부터는 종리 부당주가 지휘한다·”
“옛!”
철기당 무인들이 대답과 함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종리무환이 임진엽을 바라봤다·
“진엽 형님이 선두에 섭니다·”
“음!”
임진엽은 사냥꾼 출신으로 진퇴로를 확보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그 뒤를 당주와 채 부당주가 맡아주셔야 합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홍 형님은 언제든 화살을 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알았다·”
“공손 형님은 중간을 지켜주시고 만형과 지형은 언제든 지원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으세요·”
“음!”
종리무환은 일사천리로 지시를 내렸다·
그는 철기당의 두뇌였다· 용무성부터 지성율까지 그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종리무환의 시선이 공진성을 향했다·
“공 단주님께서는 보표들을 이끌고 언제든 전열을 이탈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혹시라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물건은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이 우선입니다·”
“알겠네·”
결국 공진성도 종리무환의 말을 수긍했다·
마지막으로 종리무환의 시선이 향한 이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그의 입술이 들썩였다· 그는 진무원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용무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에겐 지시를 하지 않느냐?”
“어차피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통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제가 구상하는 그림에서 제외하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은 한 명이라도····”
“당주 저도 부당주와 같은 생각입니다·”
이제껏 가만히 있던 공손창까지 종리무환의 의견에 동조했다· 공손창까지 이렇게 나오자 용무성도 인상만 찌푸릴 뿐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종리무환이 결정했다면 그걸로 끝이다· 이제까지 그들은 늘 그렇게 위기를 헤쳐 왔으니까·
‘쯧! 이것들이 빈정이 단단히 상한 모양이구나·’
자신 역시 능가장 사건이 있은 후 진무원에게 마음이 어느 정도 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진무원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거두기에는 버겁고 그렇다고 마냥 멀리하기엔 그가 소유한 무력이 아쉬웠다· 그 때문에 용무성조차 진무원과의 관계를 어찌할지 확실히 정립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정해야 했다·
‘내 밑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면 확실히 선을 긋는다·’
진무원의 무력이 아쉽긴 하지만 철기당의 의기까지 해치면서까지 그와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철기당의 존립이었다·
무엇보다 그 역시 당가와 연관된 사건에 관련되고 싶지 않았다· 당가와 관련된 일치고 뒤끝이 좋은 일은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알았다· 네 뜻대로 하거라·”
“고맙습니다·”
종리무환이 진무원을 흘깃 바라봤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무원은 마차 지붕 위에 우두커니 서서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종리무환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진무원을 배척하는 것이 그다지 옳은 판단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진무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진무원을 인정하면 자신과 철기당을 부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이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호는 만만한 곳이 아니야· 당신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해·’
종리무환이 입술을 질근 깨물며 일행에게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진무원도 그들을 따라 마차를 움직였다·
진무원이 종리무환을 바라보았다· 종리무환은 선두에 서서 철기당 무인들과 백룡상단의 진용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꺼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자신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벽은 지금까지 살아온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자신만의 정의가 복합되어 만들어진 결정체였다· 결코 쉽게 바뀔 수도 타인에 의해 변화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쉬익!
그때였다· 풀숲을 뚫고 누군가 백룡상단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 피투성이가 된 남녀이다·
용무성이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멈춰라!”
촤앙!
철기당과 보표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피투성이 여인이 급히 말했다·
“저희는 당가의 무인이에요! 지금 악적들에게 쫓기고 있어서 그러니 저희 좀 도와주세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여인은 바로 당미려였다· 그녀는 당기문을 부축하고 있었는데 축 늘어진 것이 의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당미려도 엄중한 상처를 입었는지 옷 사이로 혈흔이 내비치고 있었다·
용무성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 당가라고 하셨소?”
“그래요! 저는 당미려고 이분은 제 숙부이신 당기문 대협이세요! 기습을 받아서 숙부의 상세가 위중하니 저희 좀 도와주세요!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큭!”
용무성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당가에게 은혜를 베풀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는 손을 내미는 것을 주저했다· 그가 슬쩍 종리무환을 쳐다봤다· 그러자 종리무환이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명백한 거절의 표시이다·
당미려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용무성과 백룡상단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제발 부탁할게요· 이번에 도와주시면 당가에서 큰 보답을 할 거예요·”
“미안합니다 소저· 우리는 강호의 평범한 상단에 불과합니다· 정중히 부탁하건대 우리는 강호의 은원에 휩쓸리고 싶지 않군요·”
대답한 이는 종리무환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그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하의 당가조차 당해내지 못한 자들이다· 결코 이들과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
종리무환의 단호한 대답에 당미려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다급한 처지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체불명의 적들은 철저한 함정을 판 채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제일 먼저 노린 이는 바로 당기문이었다· 당기문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독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당가의 무인들은 암기로 반격을 꾀했지만 적들이 입고 있는 붉은 갑주를 뚫기는 역부족이었다· 무슨 재질로 만들었는지 붉은 갑주는 당가의 암기가 통하지 않았다·
적을 향해 용맹하게 달려들던 당윤후는 단 일 도에 몸이 두 동강이 나서 죽었다· 붉은 갑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부위에 암기를 날려 적 몇 명을 쓰러뜨렸지만 그사이 당가의 젊은 무인들은 몰살당하고 말았다·
젊은 무인들은 사적으로는 당미려의 친척이다· 만일 당기문이 아니었다면 당미려도 장렬히 그들과 함께 산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기문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그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도주했다·
적들은 무서울 정도로 당가의 약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증거였다·
더군다나 그들을 이끄는 거한은····
부르르!
당미려는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제발····”
“미안하오 소저·”
용무성이 출발하라는 손짓을 했다·
이제까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철기당과 백룡상단의 무인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마차를 출발시켰다· 마음으로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종리무환의 말에 토를 달거나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당미려는 당기문을 부축한 채 절망 어린 표정으로 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더 이상 부탁할 염치도 없었다· 그들의 결정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마 자신이 반대의 입장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천하의 당가가 이렇듯 외진 곳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게 세상의 인심인가?’
의기가 사라진 세상 그녀는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마차 한 대 한 대가 지나쳐 갈 때마다 그녀의 절망이 깊어졌다· 그렇게 거의 모든 마차가 지나갔다고 느꼈을 때 검은 그림자가 그녀 앞에 드리워졌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그녀의 앞에 마차 한 대가 서 있다· 그리고 마부석에 앉은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타시오·”
“아!”
당미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