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7장 같은 길을 걷는다고 마음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1)
새벽부터 진흥객잔은 부산했다· 백룡상단이 다시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보표들은 마차와 짐을 점검하고 말을 끌어와 연결했다·
숙수들은 새벽 일찍부터 음식을 준비했고 점소이들은 분주히 식당과 주방을 오가며 음식을 날랐다·
진무원은 자신이 모는 마차를 점검한 후 식당으로 들어왔다· 식당 안에는 이미 윤서인과 공진성이 나와 있었다· 진무원이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나오셨습니까?”
“자네도 일찍 일어났군· 먼 길을 가야 하니 든든히 먹어두게· 당분간은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할 걸게· 식사도 말 위에서 건량으로 때울 테니 이런 식사는 꿈도 꾸지 못할 걸세·”
“그리하겠습니다·”
진무원이 대답과 함께 빈자리로 걸어갈 때였다· 이제까지 침묵만 지키던 윤서인이 힘겹게 그를 불렀다·
“저 진 소협·”
“예?”
진무원이 뒤돌아봤다· 그러자 윤서인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말을 이었다·
“저번에는 죄송··· 했어요·”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그녀이다· 이렇게 사과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겐 큰 고역이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데면데면한 상태로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형들이 패퇴를 당한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진무원은 큰 전력이다· 싫어도 사과하고 풀 것은 풀어야 했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진무원의 대답에 윤서인이 그나마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공진성이 말했다·
“그럼 같이 식사나 하세·”
“하지만····”
“그러세요 진 소협·”
이렇게 되자 진무원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이 앉은 탁자 앞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이미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윤서인이 진무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진무원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진 소협의 사문을 알 수 없을까요?”
그녀의 말에 공진성이 눈을 빛냈다· 그 또한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냥 가전의 무공을 익혀 딱히 사문이라고 내세울 만한 곳은 없습니다·”
진무원의 말에 윤서인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무원이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진무원이 말을 돌렸다·
“용 당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요·”
“어젯밤 볼일이 있다고 철기당 무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네· 출발 전에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곧 오겠지·”
“그렇군요·”
진무원이 고개를 주억거릴 때였다· 갑자기 객잔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 배고프다·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은 것 같아·”
“한 게 뭐 있다고 배가 고프냐?”
“왜 한 게 없어? 밤새 그 개고생을 했는데·”
왁자지껄 떠들며 들어오는 이들은 바로 철기당의 무인들이었다·
용무성이 진무원 등을 보며 반색했다·
“우와! 그렇지 않아도 출출했는데 우리도 같이 먹읍시다·”
용무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기당의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마치 석 달을 굶은 아귀처럼 탁자 위의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윤서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밤새 뭐 하고 오신 거예요? 아유! 이 땀 냄새는 또 뭐고·”
“거 말 시키지 마시오· 아주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으니까·”
“음식 좀 더 시켜줘요· 이걸로는 모자라니까·”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결국 윤서인은 점소이를 불러 음식을 더 주문해야 했다·
진무원은 먹는 것을 포기하고 철기당 무인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금방 나온 오리구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추고 탁자 위에는 뼈만 수북이 쌓였다· 그것도 모자란지 철기당 무인들은 손가락에 묻은 기름까지 핥아 먹으며 다음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음식이 나오는 대로 바닥을 드러냈고 탁자 위에는 지저분한 흔적만 남았다·
가장 먼저 용무성이 배가 부른지 손을 떼며 윤서인을 바라보았다·
“미안하오 윤 소저· 밤새 노동을 했더니 배가 고파 죽는 줄 알았소·”
“도대체 밤새 무슨 일을 했기에 다들 이렇게 상거지 꼴을 하고 있는 건가요?”
“지인을 만나 회포를 풀었소·”
용무성의 대답에 윤서인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용무성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진무원을 바라봤다· 진무원이 코끝에 주름이 잡혔다· 철기당의 무인들 몸에서 역한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피비린내·’
윤서인은 미처 알아보지 못했지만 철기당 무인들의 옷에는 선혈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그때 채약란이 진무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 음식 내가 먹어도 돼요?”
채약란이 진무원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그릇을 채약란에게 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도대체···!”
영문을 알지 못하는 윤서인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울려 퍼졌다·
진무원과 용무성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순간 용무성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식사를 모두 끝낸 백룡상단은 아침 일찍 객잔을 나섰다· 백룡상단은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관도로 향했다·
무엇이 그리 피곤한지 철기당 무인들은 각자 마차 지붕 위에 올라가 잠이 들었다· 진무원이 모는 마차 지붕에는 용무성이 올라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곽문정이 말을 몰아 진무원 곁으로 다가왔다·
“밤새 무슨 짓을 하고 이런 데서 잠을 잔대요?”
곽문정이 가자미눈으로 마차 지붕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용무성을 흘겨보았다·
“너는 아직 이 냄새를 맡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냄새? 무슨 냄새요?”
곽문정이 자신한테 하는 이야긴 줄 알고 자신의 옷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그때 갑자기 마차 행렬 앞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불이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보표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진무원과 곽문정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진무원과 곽문정이 보표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 큰 불길이 일어나 하늘을 꿰뚫을 듯 넘실거리며 무시무시한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진무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공진성이 보표 한 명을 불렀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게·”
“옛!”
보표가 급히 불길이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달려갔고 백룡상단은 멈춰 서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때였다· 언제 일어났는지 용무성이 마차 지붕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놈 참 시원하게 타오른다· 보는 내가 다 속이 후련해지네· 하하하!”
“그러게 말이우· 거 무지 멋있네· 흐흐!”
용무성처럼 마차 지붕 위에 퍼져 잠을 자던 철기당 무인들이 어느새 하나둘 일어나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곽문정은 자신도 모르게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보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알 수 없는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잠시 후 헐레벌떡거리며 보표가 달려왔다· 공진성이 그에게 급히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능가장(陵家將)이라는 곳에서 큰 화를 당했답니다·”
“능가장?”
“예! 이곳 도강언에서 가장 큰 유력자인 능 씨 집안의 저택인데 간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답니다· 그 때문에 저택을 지키던 무인 수십 명과 능 씨 일가가 모조리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인가?”
“며칠 후면 능대인의 환갑이라 출가한 자식들까지 모조리 들어와 있던 터라 피해가 더욱 컸다고 관군들이 그러더군요· 여자고 젖먹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는데 그 광경이 말도 못하게 참혹하답니다·”
공진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필 자신들이 도강언에 머물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윤서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지금 관군이 범인을 색출하겠다고 사방에 쫙 깔렸습니다·”
“범인은 밝혀졌는가?”
“그게 워낙 깊은 밤에 일어난 일이라서 목격자가 없답니다·”
“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공진성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때 종리무환이 공진성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범인을 잡는 일은 관군에게 맡기고 우리는 어서 출발하시죠· 괜히 이곳에 있다가 우리까지 엮일 수 있습니다·”
종리무환의 채근에 공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모두 출발한다! 서둘러라!”
능가장이 횡액을 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차피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강호의 인심이라는 것이 무정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면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공진성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진무원이 문득 입을 열었다·
“혹시 능가장의 주인 이름이 능원평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에는 지독한 한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런가? 나는 모르겠군·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그래서 강호인들은 함부로 은원을 맺지 말라고 하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맺은 은원이 비수가 되어 뒤통수에 꽂힐 수가 있거든·”
대답을 한 이는 마차 지붕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용무성이었다·
“그럼 필시 능가장의 주인은 은원을 잘못 맺은 것이겠군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냥 짐작만 할 뿐이지· 그나저나 안타깝구먼· 저런 큰 장원이라면 엄청난 재화가 보관되어 있을 텐데 모두 불에 타서 사라지다니·”
“모르죠· 누군가 그 엄청난 재화를 다 빼돌렸을지·”
“그럼 그 친구는 정말 엄청난 재신을 잡은 것이군· 부럽다 부러워·”
“능가장을 몰살시킨 이들은 필시 겁쟁일 겁니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대범한 척하지만 자신에게 가해진 조그만 위협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래서 겁을 이기지 못해 이런 짓을 저지른 걸 겁니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철기당의 무인들이 잡아먹을 듯 진무원을 노려보고 있다· 진무원은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