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6장 철기당주(鐵技黨主) 용무성 (3)
진무원과 용무성이 나간 후 방 안에는 매월령 홀로 남았다·
“흑노·”
“예 아가씨·”
대답과 함께 방 한쪽의 벽이 열리더니 검은 무복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의 얼굴에는 십여 개의 검상이 종횡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무척이나 끔찍해 보였다·
흑노라고 불린 노인이 매월령에게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진 소협 보셨죠?”
“예·”
“흑노가 보기엔 어떻든가요?”
“저의 짧은 식견으로는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군요·”
“그런가요?”
“아가씨가 보기엔 특별한가 봅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매월령이 한숨을 내쉬며 얼굴에 쓰고 있던 면사를 벗었다· 그러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외모가 드러났다·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청춘의 싱그러움과 성숙한 여인의 농염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매력적인 외모를 매월령은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가 사천지부를 맡아 운영한 것이 벌써 오 년째이다· 그동안 수많은 이를 만나왔다· 용무성과 같은 일방의 종주도 있고 대문파의 장로도 다수 있다·
그들과의 치열한 신경전에도 그녀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람 보는 안목을 키우고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오늘 본 진무원은 모든 것이 모호했다·
용무성과 함께 왔다는 것만 빼면 딱히 주목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진무원의 무언가가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는데 원인을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진무원보다 잘생긴 남자도 많이 보았고 강호에서 위명을 떨치는 후기지수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진무원만큼 그녀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분명히 무언가 있는데····’
그녀는 곰곰이 진무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퍼뜩 깨달았다·
‘그래 그 눈 때문이야·’
그녀의 기억에 남은 진무원의 눈은 매우 특이했다· 보통 그 나이 또래의 청년들처럼 꿈과 야망으로 들떠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색투명하지도 않았다·
마치 깊은 바다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는 분명 그 나이 대의 젊은 무인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수많은 풍파를 겪은 노강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을 진무원은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경험을 해야 그 나이에 그런 눈빛을 가질 수 있는 거지?’
매월령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톡톡 두드렸고 흑노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각에 몰두할 때 나오는 그녀만의 독특한 버릇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잠시 후 매월령이 입을 열었다·
“흑노·”
“말씀하십시오 아가씨·”
“그가 운남으로 들어가는 순간 비월(秘月)을 붙이세요·”
“등급은 어떻게 할까요?”
“천(天) 자 조에서 차출하세요·”
순간 흑노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흑월에서는 감시 대상의 등급에 따라 천(天) 지(地) 인(人)으로 분류해 인원을 파견했다· 그들을 비월이라 부르는데 천 자 등급이 가장 뛰어난 실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흑월 내에서도 천 자 등급의 비월은 겨우 스무 명 남짓이다· 그런 소중한 인력을 이제 강호에 갓 출도한 초출에게 붙이다니· 흑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다·
“그 정도입니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거예요· 어차피 운남성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천 자 등급의 비월을 파견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천 자 조에서 인원을 차출하겠습니다· 그런데····”
흑노가 말을 망설이자 매월령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말씀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세요·”
“굳이 무영살막이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었습니까?”
흑월은 결코 자선 단체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절대로 공급하지 않는 곳이 바로 흑월이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매월령이 굳이 용무성에게 무영살막이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유가 궁금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랬어요·”
“확인할 것이라면?”
“흑노는 철기당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의뢰를 실패한 적이 없는 소수 정예 정도라는 것밖에는····”
“맞아요· 그런 명성 덕분에 철기당은 강호에서 나름의 영역을 확보했어요·”
강호에서 명성은 곧 힘이 된다· 그리고 철기당은 그런 명성을 무척이나 잘 이용하고 있었다· 많은 젊은 무인들이 철기당에 열광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매월령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서 궁금했어요· 과연 그들의 전설이 정말 정정당당하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들이 정말 강호의 일각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자인지·”
“아가씨께서는 철기당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그들의 전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혹은 과대포장된 것이 아닌지· 만일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다면 그들은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이용할 가치가 있죠·”
“으음!”
“운남에서 풍운이 일 거예요· 그것이 과연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천하를 뒤집어 삼킬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해요·”
매월령의 눈은 천하를 향하고 있었다·
흑월을 나온 진무원과 용무성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용무성의 표정은 아까에 비할 수 없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제삼의 세력이 있단 말이지· 골치 아프군·”
“객잔에서 회의할 때도 혹시 있을지 모른다고 짐작하지 않으셨습니까?”
“짐작과 확인은 다르지· 잠재적인 위협과 현실적인 위협이 다른 것처럼·”
겨우 그런 사실 하나를 확인하는 데 금원보 두 개나 날렸지만 용무성은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지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능운평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무영살막은 또 뭐구요?”
“아 그 늙은이?”
갑자기 용무성이 멈춰 서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진무원은 그런 용무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뢰를 맡긴 늙은이야· 청해성의 시달목분지(柴達木盆地)에서부터 이곳까지 호위해 왔지·”
“그런데 왜?”
“그곳에서 꽤 귀한 물건을 구했는데 그게 세상에 알려지면 골치 아파지거든· 비밀 서약까지 했는데 결국은 우리를 믿지 못한 모양이군· 무영살막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그럼?”
“뻔하지· 살인멸구(殺人滅口)·”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비밀은 새어 나가지 않는다·
용무성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의 눈은 마치 무저갱처럼 깊이 가라앉아 있어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진무원은 놀라지 않았다· 진무원은 이것이 용무성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갑자기 용무성이 씨익 웃으며 진무원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하하! 걱정하지 말게· 이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운남성으로 가는 우리의 여정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야·”
“뭐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그럼 고맙고·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돌아다녀야 할 것 같군· 미안하지만 진흥객잔에는 자네 혼자 돌아가게·”
“그렇게 하죠·”
“내 나중에 술 한잔 사지· 그때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세·”
진무원이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용무성이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진무원은 멀어지는 용무성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진흥객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용무성의 은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그가 해결해야 할 일이고 자신이 끼어들 여지 따윈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황철이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
진흥객잔으로 돌아온 진무원은 자리에 앉아 곽문정이 운공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루할 만도 하건만 곽문정은 하루도 빠짐없이 삼원심법을 운공하고 있었다·
곽문정의 옆에는 오늘 마련한 적아가 곱게 놓여 있었다· 적아의 손잡이에 벌써 손때가 묻은 것이 오늘 얼마나 열심히 검을 수련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천천히 가면 어떠한가? 종극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지점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진무원도 알지 못했다·
문득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진무원이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봤다· 그러자 용무성을 비롯한 철기당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무원의 시선을 느꼈는지 용무성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진무원은 용무성의 입가에 걸려 있는 한줄기 차가운 미소를 보았다·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진무원은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용무성이 진무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곧장 밖으로 향했다· 종리무환 채약란 등 철기당 무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진무원은 알 수 없는 예감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