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5장 검객은 검으로 말하고, 장인은 쇠로 말한다 (3)
“요검이라뇨?”
곁에 있던 곽문정이 물었지만 늙은 장인은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안색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진무원은 그런 늙은 장인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설화가 요검이란 것을 알아보다니····’
그것만으로도 늙은 장인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생을 쇠만 주무르고 살았기에 알아차린 것이지 일반적인 무인이나 장인들은 설화의 요기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늙은 장인의 무서운 시선을 진무원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진무원의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자 늙은 장인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아무래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세·”
늙은 장인이 공방 안쪽으로 들어가자 진무원이 그 뒤를 따랐다·
“가 같이 가요·”
잠시 눈치를 보던 곽문정이 재빨리 진무원의 뒤로 따라붙었다·
늙은 장인이 들어간 곳은 철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지하실이었다· 밖에서 보면 이런 조그만 공간에 이런 지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지하실 벽에는 늙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듯한 각종 병장기가 걸려 있었다·
그 모습에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밖에 있는 무기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와!”
곽문정은 벽에 걸린 무기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늙은 장인이 진무원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게·”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진무원을 바라보는 늙은 장인의 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 검 당연히 요검이란 것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요검을 만든 것인지 알 수 있겠는가?”
“만들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럼?”
“스스로 요기를 흘리더군요·”
“믿기 힘든 말이군·”
“믿지 않아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음!”
진무원의 담담한 대답에 늙은 장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무척이나 갈등하는 표정이었다·
문득 진무원이 물었다·
“함정을 발동시킬까 갈등하고 계시는 겁니까?”
“알아차렸는가?”
늙은 장인이 놀란 얼굴로 진무원을 바라봤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들어온 그 순간 곳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음을 눈치챘다· 북천문에도 이와 비슷한 함정들이 존재했기에 더욱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노인장께서 밟고 계신 청석을 힘주어 누르는 순간 기관이 발동되고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무기들이 저를 공격하겠죠· 틀렸습니까?”
“맞네· 지금 이 자리엔 기관으로 발사되는 각종 무기가 설치되어 있네· 자네 말대로 내가 발에 힘을 주는 순간 그 모든 무기가 자네가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발사되지·”
늙은 장인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발은 청석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여차하면 함정을 발동시키겠다는 의지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 곽문정이 깜짝 놀랐다· 설마 두 사람 사이에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벽에 걸려 있는 무기에 정신이 팔려 어떤 상황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곽문정은 들떠 있던 자신을 자책했다·
그 순간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담담히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을 어지럽히려는가?”
“글쎄요·”
“무엇 때문에 그런 요검을 만든 것인가?”
“아까도 말했듯이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진 결과물이 요기를 발산한 것이죠·”
늙은 장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무릇 신병이기라 분류되는 것들에는 장인의 염(念)과 원(願)이 깃들지· 그에 따라 신병이 되기도 하고 마병이 되기도 하는 법· 인간이 만든 병기가 호풍환우(呼風喚雨)를 할 수는 없지만 병기를 든 무인의 정신에는 큰 영향을 끼치게 되네· 장인의 염원에 따라 영웅이 될 수도 마인이 될 수도 있음이라네· 그래서 무릇 병기를 만드는 장인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일세·”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진무원이 다시 한 번 힘주어 똑같이 대답했다·
늙은 장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진무원의 눈빛에 한 점의 사기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혼란스럽군· 자네의 눈빛은 이리 맑은데 어찌 이런 요검을 만들어낸 것인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군·”
“어쩌면 이 검을 만든 재료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자세히 듣고 싶군·”
진무원은 설화를 만든 검은 돌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늙은 장인이 청석에서 슬그머니 발을 뗐다·
“결국 몰살당한 부족의 염과 원이 그 검에 담긴 것이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휴!”
늙은 장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무원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설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설화가 요검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늙은 장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당서월이라고 하네· 이제 내가 왜 그토록 예민하게 굴었는지 이해가 가는가?”
“당가 분이셨군요·”
“방계이긴 하지만 당 씨 성을 쓰는 이상 당가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당가 분들은 대부분 성도의 당가타에 모여 사는 게 아니었습니까?”
“당 씨가 얼마나 많은데 그 좁은 당가타에 다 모여 살겠는가? 피가 옅은 방계는 나처럼 밖으로 나와 사는 경우도 많다네·”
당가(唐家)·
독과 암기를 주로 사용하기에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당가의 근원은 의(義)와 협(俠)이다· 그래서 당가의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의협당가(義俠唐家)라고 불렀다·
그들이 포악하다고 알려진 것도 알고 보면 의와 협을 지나치게 따지며 상대에게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쇠를 다루는 장인은 무조건 당가타 안에 산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요·”
“당가 비전의 암기 제작을 전수받은 장인들은 무조건 당가타 안에서만 살아야 하네· 비전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 하나 내가 쇠를 다루는 기술은 당가에서 배운 게 아니라네· 바로 이곳 공방 거리에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지·”
당서월이 장인으로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자 당가에서는 그에게 당가타로 들어올 것을 종용했다· 암기 제작술을 전수해 줄 터이니 당가 안에서 암기만 제작하라는 이야기였다·
당서월은 그런 당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평생을 당가타 안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는 자유롭게 병기를 만들며 실력을 쌓고 싶었고 결국 그렇게 지금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당가에서 나와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결국 그에게는 의협당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진무원이 들고 있는 설화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그 검을 잘 사용하길 빌겠네· 자칫하다가는 검에 정신이 먹힐 수도 있음이니 부디 조심하게·”
“항상 주의하겠습니다·”
“자네 정도의 야장술을 가진 장인이 이곳에는 웬일인가? 그 녀석이 있는데 굳이 다른 검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고·”
“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검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진무원이 곽문정을 가리켰다·
“특별히 찾는 것이 있는가?”
“중검 종류를 찾고 있습니다· 무게는 최소 네 근 이상 길이는 삼 척 정도가 좋을 듯싶습니다·”
“아직 어린아인데 너무 무거운 게 아닌가?”
“저 아이가 익힌 심법과 어울리는 게 중검을 이용한 패검술(覇劍術)입니다· 당장은 네 근에 불과하지만 익숙해지면 그보다 최소 두 배는 더 늘려야 합니다·”
“흐음! 그런가?”
당서월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 한쪽에 쌓아둔 나무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나무 상자를 여니 그 안에도 무기가 가득 들어 있다· 당서월이 그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네가 말한 내용에 가장 부합하는 녀석일세· 오 년 전에 시험적으로 만들었는데 너무 무거우니 찾는 이가 없더군· 그래서 여기 처박아놨는데 다시 이렇게 꺼내게 될 줄은 몰랐네·”
진무원은 당서월이 내민 검을 받아 들었다·
“좋군요· 은은한 붉은빛이 감도는 것을 보니 적철을 사용한 것 같고 균형감과 무게감 또한 훌륭하군요·”
“역시 적철을 알아보는군· 일반 쇠보다 단단하면서도 무게가 더 나가니 중검을 만들 때 제격이지·”
진무원이 손가락으로 검신을 튕겼다·
따앙!
검신이 맑고 청아한 울음을 토해냈다·
진무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제대로 된 녀석이군요·”
“뭐 명검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할 정도로 제대로 된 녀석이 나왔지· 거기 애송아 눈치만 보지 말고 이리 와서 검을 잡아보거라· 일단 네 녀석이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네? 네!”
곽문정이 떨리는 손으로 중검을 받아 들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무게에 곽문정의 팔이 잠시 아래로 처졌다·
“엄청 무겁네요·”
“이제부터 그 무게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말거라·”
“네! 제 몸처럼 생각할게요·”
곽문정이 검을 품에 안고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애송아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녀석이다· 내 검을 사용하는 녀석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못한다·”
“넵! 어르신 명성에 먹칠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당서월의 말에 곽문정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은 시원하니 좋구나·”
“그런데··· 이거 많이 비싼가요?”
갑자기 곽문정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에 당서월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 늙은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녀석이 가격이 얼마 안 할 거 같으냐? 제대로 셈을 치르자면 최소 은자 수 백 냥을 줘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게 많이요? 저는 그만큼 돈이 없는데····”
현재 곽문정의 수중에 있는 돈은 은자 석 냥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는 당서월의 검을 살 수가 없었다·
“네놈한테 돈 받을 일 없다·”
“그럼?”
당서월의 시선이 진무원에게 향했다·
“아까의 무례를 사과하는 의미로 선물로 주겠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대신 셈을 치르겠습니다·”
“됐네· 그냥 이 검을 받고 차후 혹시 당가와 문제가 생기면 한 번쯤 이 늙은이를 생각해서 사정을 봐주게·”
“당가가 저를 봐줘야지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흥! 이 늙은이를 속일 생각인가?”
당서월은 솔직히 무공을 모른다· 그러나 병기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부하고 있었다· 설화의 요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정신력과 공력이라면 무림에서도 능히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당서월의 시선이 곽문정을 향했다·
“이제부터 이 검은 네 것이다· 그보다 무거운 검이 필요하게 되면 다시 찾아오너라· 그때는 네 체형에 맞게 만들어줄 터이니·”
“가 감사합니다·”
곽문정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에 진무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빚이 생긴 건가?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당서월이 진무원을 보며 득의 어린 미소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