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 5장 검객은 검으로 말하고, 장인은 쇠로 말한다 (2)
“여기가 도강언(都江堰)인가?”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보표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 흐르고 있었다· 비취색이 선명한 강의 이름은 민강(岷江)이었다·
성도평원 서부를 흐르는 민강은 본래 하나의 큰 줄기로 이어져 있었는데 한겨울 서쪽의 높은 산들에 쌓인 눈과 얼음이 녹는 봄이 오면 엄청난 양의 물이 유입되어 홍수를 일으키곤 했다·
그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진나라 촉군의 태수 이빙이 아들 이랑과 함께 강줄기를 둘로 나누는 대역사를 일으켰다· 일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고 무려 팔 년이란 시간이 걸려 수로가 완성되었다·
본래 하나이던 강줄기가 외강과 내강으로 나뉘자 비로소 물길이 안정되어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었다·
인간의 힘으로 대자연의 흐름을 바꾼 곳 그래서 사천의 많은 사람이 이곳 도강언을 신성시했다·
공진성이 윤서인에게 말했다·
“도강언에서 성도까지는 이틀이면 충분하니 오늘은 여기에서 쉬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공 단주님·”
윤서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공진성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윤서인을 바라봤다·
공동파의 제자들과 진무원의 사건이 있은 후 윤서인은 풀이 많이 죽은 상태였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나 다름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많은 것이 변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진무원과 수뇌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골이 생겼다는 것이다· 공진성이나 윤서인 철기당의 입장에서는 진무원과 동행하는 것이 껄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정작 갈등의 주체인 진무원의 태도엔 변함이 없었다· 공동파의 일대제자들을 물리쳤다면 오만해질 만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똑같이 말을 몰고 노숙을 할 때면 화과를 만들었다· 그에 몇몇 보표가 다시 다가갔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보표는 진무원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는 모두 아가씨가 결정해야 할 일· 휴! 힘들구나·’
공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윤서인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그녀의 자존심이 진무원에게 사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이다·
공진성은 일단 윤서인에게서 신경을 껐다· 언제까지나 그녀에게 신경이 분산되어 있을 수는 없었다·
공진성은 도강언에서 가장 큰 객잔에 짐을 풀게 했다· 아직 시간이 이르긴 했지만 워낙 먼 길을 달려왔기에 보표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주기로 결정했다·
진흥객잔· 백룡상단이 짐을 푼 객잔의 이름이다· 백룡상단은 진흥객잔의 별채 두 개와 객실 열두 개를 모두 빌렸다· 진흥객잔 입장에서는 대박이 난 셈이었다·
보통 보표 서너 명이 방 하나를 사용하는 것에 반해 진무원과 곽문정은 둘만 사용할 수 있는 조그만 방 하나를 배정 받았다· 공진성이 최소한의 배려를 해준 것이다·
별채 한 개는 철기당의 무인들에게 배정하고 나머지 한 개는 윤서인과 공진성 등 백룡상단의 수뇌부들이 사용했다·
공진성은 수레에 실린 물건을 지킬 최소한의 인력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인원에게 반나절의 휴식을 주었다· 지난 보름 동안 먼 길을 오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보표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간의 휴가를 받은 보표들은 삼삼오오 모여 근처의 환락가를 찾아갔다· 백룡상단이 들어온 그 순간부터 벌써 인근의 기루들은 보표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무원도 곽문정과 함께 진흥객잔을 나섰다· 마음은 벌써 운남에 가 있었지만 상황이 이런데 혼자만 채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도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 편히 즐기고자 마음먹었다·
두 사람은 도강언의 저잣거리를 걸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노점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상인들은 목소리를 높여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고 사람들은 물건을 구경하면서 가격 흥정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고함 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흥겨운 놀이판을 보는 것 같았다·
도강언에는 유달리 도사 복장을 한 이가 많이 보였다· 곽문정은 그 이유가 청성파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줬다· 도강언에서 남쪽을 보면 유난히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청성산이었다·
청성산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에는 여든 개가 넘는 도관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뭉뚱그려 청성파라고 일컬었다· 각 도관은 필요에 따라 협력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청성파라는 이름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도강언의 사람들은 청성파의 도사들을 극진하게 대접했고 도사들은 그런 환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황숙이 도강언은 청성파의 영역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구나·’
사천성에 자리한 대문파는 모두 세 개· 청성파와 아미파 당가였다·
청성파와 아미파는 구대문파에 속하는 거대 문파이고 당가는 오대세가에 속하는 혈족의 집합체이다· 이들 세 문파는 절묘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며 사천 땅을 사이좋게 지배하고 있었다·
비록 운중천이 출범하면서 중원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사천 땅에서 만큼은 그들을 무시할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사천 땅 내에서만큼은 그들은 제왕이나 마찬가지였다·
‘청성파가 그래도 세 세력 중 가장 온건하며 중도의 길을 걷는다고 했지·’
흔히 무림에 알려지길 당가(唐家)는 포악하며 아미(峨嵋)는 과격하고 청성파(靑城派)가 그나마 세 세력 중 가장 온건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세간의 평가가 말해주듯 청성파의 도사들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곽문정이 진무원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형 우리 저기로 가요·”
곽문정이 망치 소리가 흘러나오는 거리를 가리켰다· 공방과 대장간이 가득한 골목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흥분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진무원이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웃었다·
“검을 사려고?”
“형이 무거운 검으로 바꾸라고 했잖아요·”
곽문정의 대답에 진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 기회에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어서 가요·”
곽문정이 신이 나서 앞서 걸었다·
공방이 가득한 거리에 들어서자 그리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바로 쇠가 타는 냄새였다· 공방의 화로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열기가 거리에 가득했다·
진무원에겐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무원 역시 화로에서 검을 만들었기에·
각 공방은 화려한 현판을 걸고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기공방(天器工房) 신기병점(神器兵店)이라니····’
진무원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름이 거창해도 너무나 거창했다· 그는 진정으로 실력 있는 장인들은 저런 현판을 거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곽문정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공방들이 좌판에 늘어놓은 검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형 이 검은 어때요?”
진무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검은요?”
진무원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곽문정은 지칠 줄 모르고 이 공방 저 공방 돌아다니면서 검을 구경했고 진무원은 그 뒤를 따랐다·
공방의 이름은 거창했지만 제대로 된 공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검은 화려하긴 했지만 실전에는 그리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공방 거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은 제대로 된 무인들이라기보다는 호신을 위해 검을 찾는 일반인들이었다·
진무원은 곽문정과 함께 공방 거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깥쪽과 달리 안쪽은 공방의 규모가 작고 초라한 곳이 많았다· 이곳에는 제대로 된 현판을 단 곳이 거의 없었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진무원은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무기를 만드는 곳임을 알아차렸다· 유달리 강렬하게 느껴지는 열기에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망치질 소리가 제대로 된 장인이 검을 만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진무원은 그중 가장 깊은 울림이 담긴 망치 소리가 흘러나오는 공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형?”
곽문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진무원의 뒤를 따랐다·
공방 안에서는 부자로 보이는 두 명의 장인이 번갈아 가며 망치질에 전념하고 있었다· 곽문정은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가 점차 모양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의 망치질에는 일정한 박자가 담겨 있었다· 진무원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박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들겼다·
망치질을 하던 장인 중 늙은 장인이 문득 그 광경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망치질이 모두 끝나고 장인들은 쇳덩이를 미리 준비한 황톳물에 집어넣었다·
치이익!
수증기가 피어올라 실내를 가득 채우며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가 차갑게 식었다·
“휴!”
그제야 늙은 장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어 상체의 땀을 닦았다·
“잘된 것 같으니 마무리는 네가 하거라·”
“예 아버지·”
늙은 장인이 진무원과 곽문정을 향해 다가왔다·
“여긴 어떻게 오셨는가?”
“이 아이가 쓸 검을 사러 왔습니다·”
“본인이 아니고?”
“저는 이 녀석이 있어서요·”
진무원이 손에 들고 있는 설화를 슬쩍 내보였다· 그러자 나이든 장인의 눈이 빛났다·
“직접 만든 것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까 자네 손짓을 봤네· 장인이 아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운률과 박자를 따라 하더군·”
늙은 장인의 말에 진무원이 감탄했다· 망치질에 열중하면서도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손짓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다니·
“잠시 검을 볼 수 있겠는가?”
늙은 장인의 말에 진무원이 잠시 망설이다 설화를 넘겨줬다· 늙은 장인이 설화를 뽑으려고 힘을 줬다· 하지만 늙은 장인의 얼굴만 붉게 달아오를 뿐 설화는 요지부동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응! 이거 설마 봉인해 둔 것은 아니겠지?”
늙은 장인이 결국 설화를 뽑는 것을 포기하고 진무원에게 넘겨줬다· 그러자 진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설화를 뽑았다·
스릉!
사람을 가리는 것처럼 늙은 장인과 달리 너무나 쉽게 설화가 뽑혀 나왔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홀릴 듯 일렁이는 묵 빛 검신을 본 순간 늙은 장인의 낯빛이 싹 변했다·
“요 요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