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5장 검객은 검으로 말하고, 장인은 쇠로 말한다 (1)
푸욱!
부러진 검편이 바닥에 박혔다·
“허!”
누군가의 탄식과 절망이 바람에 흩어졌다· 그가 자신의 부러진 검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무진이었다·
죽문검이 두 동강이 났다·
“어찌··· 검강까지 펼쳤건만····”
분명 진무원의 검에서는 그 어떤 예기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검강을 펼친 검이 두 동강이 났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진무원이 설화를 그의 목에 대고 있다· 완벽한 패배였다·
“어떻게 된 건가? 어찌 검강이····”
“검강은 기를 외부로 발출해 응축하는 기법· 저는 반대로 기운을 갈무리해 밀도를 극한으로 높였습니다·”
“밀도의 차이라는 건가?”
“제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가? 납득할 수는 없지만 패배는 인정하겠다·”
무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어깨가 안쓰럽게 떨리고 있다·
진무원이 설화를 거둬들였다· 그러자 설화가 아쉽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무진이 하늘을 향해 탄식을 터뜨렸다·
“겨우 이런 실력으로 기고만장했단 말인가? 부끄럽구나 무진아· 상대의 일 초도 버티지 못하다니·”
진무원은 그런 무진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런 때는 섣부른 위로보다는 차라리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진이 다시 진무원을 바라봤다·
“하나 명심하게· 이것은 오로지 나의 패배일 뿐 공동파의 패배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자네와의 은원은 모두 끝내겠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해결한 후 폐관에 들 것이다· 그 후 다시 자네에게 도전할 것이다· 그러니 북쪽에서 온 검객이여 훗날 나의 도전을 받아주겠는가?”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맙군·”
무진이 착잡한 시선으로 진무원을 바라봤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천하에 이런 검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자신은 마흔을 훌쩍 넘은 것에 반해 상대는 아무리 잘 봐줘도 겨우 이십 대 중반이었다· 그 나이에 이 정도 성취라니·
‘천재라는 건가? 하늘은 정말 불공평하군· 칠소천에 이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존재를 또 내보내다니·’
칠소천은 현 강호 최고의 기재들이다· 그들은 겨우 이십 대 초중반에 무진을 능가하는 성취를 이뤘다·
천품(天品) 즉 하늘이 내린 재능을 타고난 존재들·
그들은 출신 배경 또한 남다르다· 하늘이 내린 재능과 최상의 환경이 결합해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이뤘다·
공동파 최고의 기재라는 무진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엄청난 재능과 그를 뒷받침하는 환경· 그래서 질투는 했을지언정 좌절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는 무진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아무리 천품을 타고 태어났어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칠소천은 환상 속의 존재들 같았지만 어쨌거나 손만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진무원은 그들과 또 달랐다· 마치 손이 닿지 않는 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창천의 고성에 비견될 만한 재능일지도····’
무진은 아주 오래전에 만난 한 남자를 떠올렸다· 너무나 뛰어나 질투조차 나지 않던 시대를 움직인 젊은 무인을·
“휴!”
한숨을 내쉰 무진은 오늘의 패배를 발전의 계기로 삼으리라 다짐했다· 그가 부러진 검편을 집어 들었다·
무진의 눈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진무원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힘든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공동파 집법당의 고수들이 내려왔다· 그들은 무해와 무월 등을 포박해 공동산으로 압송해 갔다·
무진이 그들을 따라가기 전에 진무원에게 말했다·
“자네의 사정은 모두 들었네· 운남으로 친인을 찾아간다고?”
“그렇습니다·”
“우리 때문에 소중한 하루를 여기서 소모했군· 그 대가라고 하긴 뭐하지만 한 사람을 소개해 주지· 운남성 곤명에 도착하면 삼뇌서생(三腦書生) 하진월을 찾게· 나하고는 오래된 친구 사이지· 워낙 튀는 사내라서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그에게 내 이름을 대면 분명 자넬 도와줄 거야·”
“감사합니다·”
무진이 진무원 곁에 서 있는 곽문정을 바라보았다·
“우리 공동파가 너에게 큰 빚을 지었다·”
“아니 저는 아무것도····”
“내가 있는 한 공동파는 너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너를 환영할 것이다·”
무진의 곁에 있던 함소령이 손을 흔들었다·
“오빠 꼭 공동파에 들를 거지?”
“반드시 갈게·”
“기다릴게·”
함소령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진무원은 말없이 그들의 이별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모습은 진무원에게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가슴이 시려왔다·
***
운마도강선으로 강을 건넌 백룡상단은 관도를 따라 남하했다·
강을 건넜으면 활기찰 법도 하건만 백룡상단의 분위기는 매우 묘했다· 선두에서 말을 모는 철기당은 물론이고 보표들의 분위기까지 침체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지금 단 한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이 눈치를 보는 대상은 후미에서 마차를 몰고 있는 진무원이었다· 간밤의 사건은 보표들뿐만 아니라 철기당의 무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줬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진무원은 별반 존재감이 없는 식객에 불과했지만 하룻밤 만에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공동파의 일대제자 여섯 명과 차기 장문인이라 할 수 있는 무진을 제압했다· 공동파에서는 그 사실을 쉬쉬했지만 워낙 조그만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보표들이 그 사실을 못 알아차린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비록 말석이긴 하지만 공동파는 구대문파 중 하나였다· 강호를 질타할 수 있는 무인을 수백 명이나 보유한 거대 세력인 것이다· 진무원이 제압한 무진과 무해 등은 그 수백 명의 무인 중에서도 단연 발군이라 할 수 있는 무력과 재능을 소유했다·
진무원은 그런 자들을 상처 하나 없이 제압했다· 그 말은 곧 그의 무력이 최소 초절정 이상이라는 뜻이다· 보표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천외천의 경지였다·
당연히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마치 무형의 막이 가로막고 있는 듯 보표들은 진무원의 곁에 다가가길 꺼렸다·
누구보다 충격을 크게 받은 사람은 철기당의 부당주 종리무환과 이번 원행의 책임자인 윤서인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종리무환은 진무원이 공동파와 큰 척을 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진무원과 공동파의 사이는 그리 나빠지지 않았다·
모양새야 어떻든 그런대로 잘 봉합된 형국이다·
‘그는 번번이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어떤 책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종리무환 역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번번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진무원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윤서인은 종리무환보다 더했다· 그렇게 폭언까지 쏟아부었는데 결국 공동파와의 갈등이 아무런 문제 없이 해결됐다·
더구나 그녀로서는 어려워 말을 붙이기조차 힘든 대사형 무진이 진무원을 인정했다· 그 말은 곧 공동파가 진무원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윤서인의 시선이 진무원의 곁에서 따라가는 곽문정에게 향했다· 그저 어린 보표라고 우습게봤건만 무진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곧 곽문정이 공동파의 비호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이 너무 커졌어· 내 선에선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윤서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사과하기에도 늦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이번 원행의 책임자였다· 모두의 앞에서 사과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수많은 갈등과 고민거리를 안긴 당사자인 진무원은 정작 편한 표정으로 말을 몰고 있었다· 공동파와의 갈등을 기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정했다· 앞으로도 수많은 갈등과 갈림길을 마주하겠지만 방향이 확실한 이상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무원이 빙그레 미소를 지을 때 곽문정이 말을 몰아 옆으로 다가왔다·
“형!”
“왜 그러냐?”
“아니 그냥요·”
곽문정이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그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다·
간밤의 일은 곽문정이란 소년에게 큰 변곡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곽문정도 본능적으로 그런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곽문정이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진무원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존경의 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진무원은 그런 곽문정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왜?”
“존경스러워서요·”
“내가?”
“예! 어떻게 무공이 그리 강하세요? 전 정말 형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황철이 진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만 해도 그리 실감하지 못한 곽문정이다· 허풍도 어느 정도 섞여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황철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진무원은 공동파를 오시할 정도로 강한 무공을 갖고 있었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강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런 사람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처지에 생각이 미치자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저는 언제쯤 형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요?”
공동파의 일이 해결된 것은 잘된 일이지만 자신의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무원의 짐에 불과했다· 비록 진무원만큼 강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도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당당한 보표가 되고 싶었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곽문정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문정아·”
“예?”
“황숙이 네가 전해준 삼원심법은 보통의 심법이 아니다· 처음엔 익히는 속도가 매우 늦지만 일단 어느 경지에 이르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착실히 익히거라·”
“예!”
“그리고 한 가지 조언을 해주자면 지금 네가 쓰고 있는 검보다 더 무거운 검을 사용하거라·”
“얼마나요?”
“최소 두 배 차후 익숙해지면 네 배까지 무거운 중검을 사용하거라· 너의 삼원심법에는 무거운 중검이 더 잘 어울린다·”
“네!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곽문정은 진무원의 조언에 어떠한 의문도 표하지 않았다· 그는 맹목적일 만큼 진무원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