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4장 거센 바람이 분다고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니다 (4)
무진이 설궁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설궁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함지평을 죽이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원래 그들의 계획은 무해와 무월 등이 무진과 함께 진무원을 제압하는 사이 설궁이 함지평 부녀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반드시 함지평 부녀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 사실은 절대로 비밀이어야 했다·
함지평을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모든 무공을 상실했고 어떠한 대항 수단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곽문정이 모녀를 지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시간을 지체했고 그사이 벽이 무너졌다·
설궁에겐 불행이었고 함지평에겐 행운이었다·
무진은 설궁이 대답하지 못하자 이번에는 함지평에게 물었다·
“무궁 사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네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이냐?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무진 사형·”
함지평이 뜨거운 눈물을 계속 흘렸다· 영문을 모르는 함소령도 덩달아 울었다·
무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사제가 바로 함지평이었다· 함지평도 무진을 친형처럼 따랐다· 그런데 그가 폐관 수련에 들어간 사이 함지평이 감쪽같이 공동파에서 사라졌다·
주화입마에 걸려 사제들을 공격했다가 파문당했다고 했다· 무진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파문을 당했다 해도 최소한 자신에겐 그 사실을 알려줘야 했다· 자신과 함지평과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말이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고 그 이후 무진은 함지평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설궁과 함지평을 보는 순간 무진은 무언가 잘못되었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설궁을 바라보는 무진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말하라· 무슨 일인지·”
“사 사형?”
“말하라 했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무해 사형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설궁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무진의 살기는 그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온몸이 마치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무해가?”
무진의 시선이 밖에 널브러져 있는 무해에게 향했다· 그때 진무원이 나섰다·
“십오 년 전 당신의 사제는 그 재능을 질투한 다른 사형제들에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무공을 잃고 공동파에서 쫓겨났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공동파는 규율이 엄격한 곳이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무진이 진무원의 말을 부인했다·
그때 함지평이 무진에게 다가왔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무진 사형·”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이냐? 장문인께서 아셨다면 절대로 가만있으셨을 리 없다·”
“장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실 겁니다· 사형이 폐관 수련하고 계실 때 오음신검을 전수해 주고 계셨을 테니까요·”
“그럼?”
“태현 사숙이 그리 결정하셨습니다·”
“태현··· 사숙이?”
무진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태현 도장이라면 그의 사부이자 장문인인 태월 도장의 사제이고 무해의 사부이다·
“제가 무공을 잃은 것은 사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무해 사형도 그런 결과가 일어날 줄 몰랐던 게지요·”
공동일수를 놓친 무해는 홧김에 함지평을 거칠게 대했고 그들의 말싸움은 결국 주먹다짐으로 번졌다· 그 자리에는 무월을 비롯한 몇몇 사제가 더 있었는데 결국 모두의 싸움으로 커졌다·
“결국 그 싸움에서 단전을 크게 다쳤습니다· 무공을 모두 잃은 거지요· 태현 사숙이 그러더군요· 너 하나만 조용히 있으면 모두가 괜찮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대로 공동산을 내려가라고·”
함지평에겐 태현의 말을 거역할 힘이 없었다· 그는 공동산을 쓸쓸히 내려와야 했고 그 후로 감히 공동파에 접근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어찌 그럴 수가! 어찌 태현 사숙이 그럴 수가···!”
태현도장은 장문인과 다른 장로들에게 함지평이 주화입마를 당한 후 사제들을 공격해 어쩔 수 없이 축출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벌써 십오 년 전의 일이다·
지난 세월 함지평은 공동산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혹여나 후환을 두려워한 태현 도장과 무해 등의 위협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함지평은 공동산 근처인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젠 억울함을 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서 객잔을 하면서 무진을 만날 기회만 노렸다· 하지만 무진보다 무해가 먼저 그를 발견했고 이 사달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설궁이 무진 앞에 급히 무릎을 꿇었다·
“사형 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무해 사형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자신의 무고함을 고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무진의 눈빛은 서늘하기만 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무해와 너희가 살인멸구하기 위해 벌인 일이란 말이구나·”
“사형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설궁이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지금은 대항하기보다는 변명을 하는 것이 옳았다· 자신은 십오 년 전의 사건과 관련이 없으니 잘만 변명하면 별 탈 없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만 넘기면 된다· 태사숙께서 나를 점찍은 이상 더 큰 추궁은 하지 못하리라·’
설궁의 눈동자가 교활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설궁은 몰랐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무진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무진이 허탈하게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허허! 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구나· 눈과 귀가 가려진 것도 모른 채 무공만 익힌 바보였어·”
그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사제들이란 놈들이 작심해서 이런 일을 벌였을 것이고 십오 년이란 긴 세월을 은폐해 왔을 것인가·
무진의 시선이 함지평에게 향했다·
“고생이 많았겠구나·”
“사형·”
무진의 그 한마디에 함지평은 십오 년 동안 가슴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을 느끼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으앙! 아빠 울지 마·”
함소령이 덩달아 눈물을 흘렸고 부녀는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진무원과 무진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무해와 무월이 제정신을 차렸을 때 제일 먼저 본 광경은 자신을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무진과 그 곁에 서 있는 함지평 부녀의 모습이었다·
‘아뿔싸! 일이 틀어졌구나·’
그들은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무해와 무월이 급히 일어나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사형 오햅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말을 들으셨건 그들의 말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무진에게는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뿐이었다·
“내 너희가 이리도 잔악무도한 줄 이제야 알았구나·”
“사 사형·”
무해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이가 바로 사형 무진이었다· 이제까지도 그가 알까 봐 노심초사했고 결국 이 사달을 벌인 것도 무진이 알까 두려워서였다·
대사형 무진은 공과 사의 구별이 철저했고 자신의 사형제들일지라도 잘못을 하면 추호의 용서도 없었다· 그래서 무진이 이곳에 따라온다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오죽 두려웠으면 자신들이 시선을 끄는 사이 설궁에게 함지평 부녀를 암살하라 지시했을까·
“공동산으로 돌아가면 네놈들은 처벌을 받을 것을 각오하거라· 감히 나를 기만하고 장문인을 기만했으며 공동파 전체를 기만했으니까·”
“사형 제발 용서를····”
무해와 무월은 무진의 자비를 구했지만 소용없었다· 무진은 이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환상이 보였다· 공동파의 일대제자라는 명예도 몇 년 후면 당연히 그들의 것이 될 거라 믿고 있던 장로직도 그리고 이대제자들의 존경마저도····
무해와 무월이 순간적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마음이 통했다·
“제길!”
“죽어랏!”
두 사람이 벼락처럼 무진을 기습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뤄진 기습이었다·
복마장(伏魔掌)과 칠상권(七傷拳)· 모두 공동파의 진신 절학으로 무해와 무월의 비장의 수법이기도 했다·
“결국!”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지만 무진은 놀라지 않았다· 진실을 모두 알게 된 그 순간 어쩌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쉬가악!
그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죽문검이 섬전처럼 뽑혀 나와 허공에 한줄기 선을 그었다·
“크악!”
“컥!”
무해와 무월의 공격은 무진의 몸에 닿지도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그들의 어깨에는 긴 자상과 함께 피분수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무진의 검이 먼저 상처를 남긴 것이다·
“감히 너희 정도의 실력으로 내 몸에 상처라도 낼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독할 뿐 아니라 미련하기까지 하구나!”
무해가 어깨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원독 어린 눈으로 무진을 노려보았다·
“흐흐! 그러는 사형은 뭐가 그리 똑똑하시오? 그 잘난 무공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지 않소·”
“그래서 나를 기만한 것이냐?”
“그렇소! 무공이야 사형을 따를 수 없으니 장문인 자리는 물 건너간 것! 그러니 다른 영광이라도 얻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저놈 무궁이 방해가 되었지!”
무해의 시선이 함지평을 향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뛰어난 재능과 넉넉한 마음가짐을 가졌다· 가만 놔두면 자신의 자리까지 위협할 재목이었다· 공동일수를 뽑는 비무대회에서 패배한 뒤 그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허! 그래서 일부러 시비를 걸고 무공까지 폐한 것이냐?”
“그랬소· 어쩔 것이오? 나를 죽이기라도 할 것이오?”
“아니·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산으로 데려가서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그러면 사부께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제발 이쯤에서 덮읍시다· 내 성심을 다해 사형을 보필하겠소· 일대제자 중에 나를 지지하는 이가 상당수요· 사형도 장문인이 되어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소·”
“그러니까 너와 거래를 하자 그 말이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오· 사형에게도 이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무해의 말이 무진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아! 공동파가 이리도 썩었다니 난 정말 무공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구나·’
무진의 가슴에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내 명예와 무궁의 명예를 걸고 말하겠다· 나 무진은 십오 년 전의 사건에 관한 진실을 모두 파헤쳐 무궁의 명예를 회복할 것이며 그에 연루된 모든 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릴 것이다·”
그의 선언에 무해와 무월 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무해와 무월 등의 혈도를 제압해 남해객잔의 지하실에 가두었다· 설궁이 억울하다고 절규했지만 무진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전서구를 띄웠으니 내일 아침이면 공동파의 집법당에서 무인들이 내려와 그들을 압송해 갈 것이다·
무진은 함지평 부녀와 함께 밤을 새우며 그간 있던 일을 이야기했다· 무진은 함지평 부녀가 겪은 일을 들으며 같이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함소령은 함지평의 곁에서 보조를 맞춰 설명하며 재잘거렸는데 그 모습이 보통 영특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소령이는 몇 살이냐?”
“올해 열두 살이에요·”
“그래?”
무진의 눈이 빛났다·
명문에서 열두 살이라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무공을 익히기엔 적합한 나이였다· 무재야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만 눈빛이 또랑또랑한 것이 여간 똑똑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가 유독 아끼던 함지평의 딸이라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무공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제껏 제자 한 명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자라서 기명제자는 힘들지 몰라도 무기명제자로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무진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우선은 공동파로 돌아가 시시비비를 가려야 했다·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힘들겠지· 쉽지 않을 거야·’
사숙인 태현 도장을 비롯한 장로들의 반발도 적지 않을 것이고 무해를 따르는 다른 사형제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동파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부터는 나에겐 맡겨두고 너흰 푹 쉬거라· 내일 공동산에 올라야 하니 많이 힘들게다·”
무진이 함소령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지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어나시렵니까?”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사형?”
“은과 원은 확실히 해야 하는 법·”
함지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제야 무진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문검은 공동파의 상징이다· 죽문검을 부러뜨린 것은 공동파의 자존심은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다·”
무진은 공동파의 자존심이라 불렸다· 공동파라는 이름 역시 무진에겐 무한한 자부심이었다· 그의 모든 것은 공동파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공동파의 명예에 조그만 흠집이라도 가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쉬고 있거라·”
함지평은 무진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무진은 함지평 부녀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남해객잔 주위는 어두웠다· 간밤의 소란이 있었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보표들조차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윤서인과 공진성이 모두의 출입을 엄금한 탓이다· 덕분에 보표들은 공동파 내부에서 어떤 분란이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아이에게 감사해야겠군·’
어쨌거나 공동파 내부의 알력과 그로 인한 치부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무진이 기감을 끌어올렸다·
문득 그의 입매가 뒤틀렸다·
저 어둠 너머 그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곳을 향해 무진이 걸음을 옮겼다· 선착장 반대쪽 공터 쪽이다·
남해객잔으로부터 백여 장 떨어진 그곳에 진무원이 서 있었다· 마치 무진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무진이 물었다·
“기다리고 있었던가?”
진무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진이 다시 물었다·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도장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
“도장처럼 자신의 이름보다 문파의 이름을 더 앞에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 특징이 자신이 모욕당한 것은 참아도 문파가 모욕당한 것을 참지 못하더군요·”
“잘 알고 있군· 맞네· 내가 그런 사람일세· 고지식하고 완고하지· 그래서 남들처럼 적당히 타협할 줄도 모른다네·”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죽문검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유야 어쨌거나 자네는 공동파의 일대제자들에게 상해를 가하고 신물인 죽문검을 부러뜨렸네· 나는 그것을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네·”
“그로 인해 문파 내부의 비리를 처단할 수 있게 되었어도 말입니까?”
“그것은 공동파 내부의 일일세· 외인인 자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지·”
“역시!”
진무원이 피식 웃었다· 이미 예상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무진이 갑자기 진무원에게 포권을 취했다·
“공동파의 일대제자 무진이 검객 진무원에게 대결을 청한다· 승부가 어떻게 나든 우리의 은원은 이것으로 잊을 것이다· 나의 도전을 받아주겠는가?”
무진도 그를 향해 마주 포권을 취했다·
“소생 진무원 무진 도장의 청을 받아들여 검객 대 검객으로 승부를 겨루겠습니다· 승부가 어찌 되든 더 이상 원한을 갖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음!”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죽문검을 꺼냈다·
스릉!
어둠 속에서 죽문검이 시퍼런 몸신을 드러냈다·
진무원의 손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마치 설화가 자신을 왜 뽑지 않느냐고 앙탈하는 것 같았다·
진무원이 설화의 부름에 응했다·
먹물처럼 새까만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무진은 가슴이 진탕되는 것을 느꼈다· 설화가 그의 심령을 온통 뒤흔들어놓은 것이다·
“그 검 일반적인 검이 아니군·”
“설화라고 합니다· 제가 만들었지요·”
“그런가? 대단하군·”
무진이 감탄하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죽문검이 검명을 터뜨렸다·
오음신검(五陰神劍)·
공동파의 장문인에게만 전해져 오는 공동파의 비전 검공이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럼 가지·”
팍!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진이 진무원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극성에 이른 비봉신법이었다·
쉬아앙!
그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 홍선이 생겨났다·
오음신검 제일초 음월단천(陰月斷天)이었다·
그의 일 초에 진무원의 몸이 상하로 잘려 나갔다· 아니 잘려 나간 것처럼 보였다·
무진의 표정은 더욱 차갑게 변했다· 손에 걸리는 느낌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가 벤 것은 진무원의 환영이었다· 그가 움직이는 순간 진무원도 움직인 것이다· 단지 너무 빨리 움직여 그 환영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어디냐?’
무진의 기감이 진무원을 추적했다· 그가 왼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반대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다섯 줄기의 검기가 일어나 날아갔다·
오음신검 제삼초인 오음홍화(五陰紅花)였다·
그 모습이 허공에 마치 다섯 개의 붉은 꽃이 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진이 피워낸 꽃은 진무원이 설화를 흔드는 순간 허무하게 사그라졌다·
진무원은 이 싸움을 길게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
‘속전속결·’
쉬악!
마치 수면을 스쳐 나는 제비처럼 진무원이 허리를 바싹 숙인 채 무진을 향해 달려왔다·
설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에 반응해 설화가 나직이 몸을 떨었다· 그러자 진무원 주변의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그 모습에 무진이 눈을 빛냈다·
‘피하지 않겠다·’
어둠 너머 달려오는 진무원의 기파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무원이 무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줄기 유성이 피어올랐다·
멸천마영검 제일초식인 유성혼이 검을 빌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무진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천검일조(天劍一照)·”
오음신검은 모두 칠 초식· 그중 오초식이었다· 현재 무진이 익힌 최고의 초식이며 가장 극강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바로 천검일조였다·
우웅!
공기가 공명하는가 싶더니 죽문검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와 검의 형체를 이뤘다·
검을 익힌 무인이라면 꿈에서도 성취하길 바라 마지않는 검강(劍罡)이었다·
“챠핫!”
무진의 기합성이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쩌엉!
그들이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