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4장 거센 바람이 분다고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니다 (1)
“진 소협은 어떤 사람이냐?”
“그의 사문은 어디지?”
“전 아무것도 몰라요·”
임진엽과 담진홍의 물음에 곽문정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곽문정이 진실을 숨긴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곽문정은 진무원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곽문정이 아는 것이라곤 그를 유독 예뻐하던 황철의 조카라는 것뿐이다· 그의 사문이 어딘지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당연히 아는 것이 없었다·
현재 백룡상단은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무해 등은 강을 건너 공동산으로 돌아갔으며 백룡상단은 포구에 발이 묶인 상태였다·
공진성은 한시라도 빨리 출발하길 원했지만 윤서인이 공동파와의 일을 해결하기 전에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 탓이었다·
진무원이 남해객잔에서 나오자 철기당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보표들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괜히 진무원과 엮였다가 윤서인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형!”
오직 곽문정만이 진무원을 향해 달려갔다· 진무원이 그런 곽문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주위를 둘러봤다· 싸늘해진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함지평과 잠깐 대화를 하고 온 사이에 분위기가 돌변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 호의적이던 시선은 온데간데없고 한줄기 적의마저 느껴졌다·
진무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곽문정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곽문정이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해요 형· 괜히 나 때문에····”
“네 탓이 아니다·”
“하지만 제가 참견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너는 옳은 일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용기를 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하나 분명히 잘못한 것도 맞다·”
진무원이 곽문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는 네 역량을 감안하지 않았다· 일을 벌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벌인 일을 수습하는 것이다· 너는 스스로의 힘으로 수습할 수 없는 일을 벌였고 결국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했다·”
“죄송해요·”
곽문정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진무원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항상 고민하거라· 과연 나의 판단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이 일의 여파가 어디까지 커질지·”
“명심할게요·”
“그래도 네 덕분에 두 사람이 살았다· 그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네!”
곽문정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묘하게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곽문정은 아직 어린아이다· 무공의 성취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명문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갖지 못한 의기를 갖고 있었다·
나름 강자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철기당도 외면했지만 곽문정은 그러지 않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가르친다고 가질 수 없는 의기를 곽문정은 갖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장점이었다· 최소한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나 외의 다른 사람들도 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니까·
무엇보다 곽문정에겐 자신만의 신념이 존재했다· 욕망에 뒤틀린 잘못된 신념이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그런 신념이·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처럼 일만 벌이고 수습치 못해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니까·”
“네!”
곽문정이 힘차게 대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왠지 진무원과 함께 있으면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진무원은 그 누구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봐요!”
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두 사람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진무원이 고개를 돌려보니 윤서인이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몰라서 묻는 거예요? 당신들 때문에 공동파와 백룡상단 사이에 문제가 생기게 됐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포구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보표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아가씨 지금은 언성을 높일 때가 아닙니다·”
“공 단주님은 가만히 계세요·”
옆에서 공진성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윤서인이 진무원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진무원이 그런 윤서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윤서인의 분노를 더욱 크게 부채질했다·
“도대체 제정신인가요? 공동파를 건드려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 공동파가 백룡상단과 밀접한 관계이고 내 사문이란 사실은 알고 있나요? 당신 때문에 설궁 사제가 부상을 당했어요· 도대체 백룡상단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러는 건가요?”
윤서인이 무서운 속도로 진무원을 쏘아붙였다· 진무원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운남성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황송해야 할 판국에 이런 사고를 치다니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건가요? 수습할 자신은 있는 건가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윤서인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진무원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 먼저 이 사태의 발단과 사람은 괜찮으냐고 묻는 것이 우선 아닙니까?”
“뭐라구요?”
“이 아이가 한 팔이 잘릴 뻔했습니다· 어리지만 이 아이도 보표입니다· 백룡상단의 보표라면 당신이 보살펴야 할 존재이기도 합니다· 또한 객잔의 주인 부녀는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적어도 무공을 익혔다면 강호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걸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그건····”
“윤 소저의 사문이 공동파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 윤 소저는 공동파의 제자 이전에 백룡상단의 직계이고 이번 원행의 책임자입니다· 그렇다면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현명하게 판단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만·”
윤서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범벅이 되었다· 머리는 진무원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이 순순히 용납하지를 않았다·
그녀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럼 당신은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당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건가요? 흥! 당신들 때문에 곤란하게 된 백룡상단의 처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단 말이군요?”
윤서인은 진무원을 무섭게 몰아쳤다· 그녀의 말에는 어떠한 논리도 이성도 담겨 있지 않았다· 단지 마비된 이성과 분노만이 표출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일은 내가 책임질 겁니다· 그럴 각오가 없었다면 애당초 나서지도 않았을 겁니다·”
“흥!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가요? 그 알량한 무공으로요? 상대가 누군지 명확히 인지는 하고 있는 건가요? 공동파예요! 구대문파의 하나인 공동파!”
그녀의 목소리엔 사문인 공동파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아마 진무원이 어떤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라구요?”
“공동파가 비록 대단하긴 하지만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을 거란 말입니다·”
그 강대하던 북천문이 무너진 것도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렇다고 공동파가 북천문보다 더 강대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다·
무림의 역사란 그렇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급격한 변곡점을 드러내고 시류에 합류하지 못한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거기에 공동파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윤서인은 진무원의 말을 또 오해했다·
“감히 지금 공동파를 모욕하는 건가요? 당신 따위가····”
“내 이름은 진무원입니다·”
“그게 뭐····”
“당신 따위로 부르지 마십시오·”
그리 큰 목소리도 아니었고 공력을 실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진무원의 음성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윤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윤서인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났다가 실태를 깨닫고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뭐라 더 쏘아붙이려 했지만 진무원의 깊이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분노에 이성을 잃었다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진무원은 백룡상단에 속한 보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는 사형 무해 등을 한꺼번에 물리친 고수이다· 자신의 일시적인 기분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전신이 싸늘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나는····”
“말했듯이 이번 일은 제가 책임집니다· 정 껄끄러우면 이제부터 저와 문정은 백룡상단과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이런 일을 벌이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지나갈 생각은 없었다·
너무나 당당한 진무원의 태도에 윤서인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기만 했지 이렇게 쏘아붙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공진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군· 일단 이곳에서 일박을 하면서 해결책을 의논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러시지요 아가씨·”
“네? 네!”
윤서인이 얼떨결에 대답하고 나서는 수치스러운지 진무원을 잠시 노려보았다· 그리곤 백룡상단의 보표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공진성이 물었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아가씨 말처럼 공동파에서는 가만있지 않을 텐데·”
“기다리렵니다·”
“기다린단 말인가? 그들을?”
“예·”
진무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기 위해서 무해를 놓아준 것이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보이는 공동산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