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 3장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4)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이 장내를 지배하고 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
결코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목도한 기분이다·
상대는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다· 무려 공동파의 일대제자들이다· 강호에 나가면 개개인이 절정의 고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무인들이다· 그런 이들이 합공을 하고서도 패배했다·
더구나 그들 세 명을 상대로 진무원은 검조차 뽑지 않았다· 그저 병기를 파괴하는 괴상한 지법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수공(手功)을 펼쳤을 뿐이다·
공동파의 굴욕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종리무환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잘못됐다·’
진무원이 공동파의 무인들을 이긴 것도 충격이지만 그에게 더 큰 걱정거리를 안긴 것은 하필 그 자리에 철기당의 무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공동파는 이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조그만 원한이라도 결코 그냥 넘기는 법이 없으니까· 더군다나 공동파의 현재와 미래라 할 수 있는 일대제자 세 명이 비겁한 수를 쓰고서도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공동파에서는 이 사건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공동파는 진상을 조사할 것이고 그 사건의 중심에 진무원과 곽문정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응징할 것이다·
문제는 이 일에 철기당이 엮였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공동파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문파의 존립이 갈릴 수가 있었다·
‘자칫하면 공동파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증인을 말살하겠다는 마음먹는 그 순간 추적대가 구성될 것이고 철기당은 끝없는 도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처신을 잘해야 했다·
“으아아!”
그때 설궁의 노성이 담긴 절규가 울려 퍼졌다· 팔목이 부러진 고통보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굴욕감이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감히! 감히!”
설궁은 진무원을 노려보며 그 말만 되풀이했다· 눈빛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의 눈빛은 진무원을 갈가리 찢어버릴 정도로 원독에 가득 차 있었다·
“사제!”
무해와 무월이 설궁의 양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들의 눈빛 역시 설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원독 어린 시선을 받으면서도 진무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진무원은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곽문정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냐?”
“네? 네!”
곽문정이 놀라 힘차게 대답했다· 설마 진무원이 이렇게 강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을 줄 몰랐기에 그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무해가 진무원을 보며 이빨을 뿌득 갈았다·
“감히 공동파의 제자에게 상해를 가하다니 그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아느냐?”
“무사하지 않으면 어찌하겠단 말입니까?”
“공동파에서는 결코 이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공동파는 결코 원한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공동파에 알려지지 않게 하면 되겠군요·”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순간 무해 등은 온몸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살기도 담겨 있지 않은 웃음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처음 알았다·
“감히 우리를 협박하는 것이냐?”
“왜요? 저는 하면 안 됩니까?”
“이익!”
진무원의 목소리는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조곤조곤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진무원이 아직 진신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진무원이 들고 있는 검도 뽑지 않았으니까· 상대가 되지 않는단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도 없었다·
진무원이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자 그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진무원의 보이지 않는 기세에 완전히 밀린 것이다·
진무원의 기세는 그들을 객잔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그들이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갑자기 누군가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해 사형 이곳에 오셨다면서요?”
발랄한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백룡상단의 여식인 윤서인이었다·
환한 미소를 짓고 들어오던 그녀는 객잔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일인가요?”
그러나 공동파의 도사 중 누구도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살기 어린 시선으로 진무원을 노려볼 뿐이었다·
윤서인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요?”
“별일 아닙니다· 그저 의견 충돌이 조금 있었을 뿐입니다·”
“정말인가요?”
윤서인의 공격적인 물음에 진무원이 양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공동파의 도사들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적개심이 담긴 시선으로 진무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해가 물었다·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진무원입니다·”
“공동파는 그 이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무해가 무월 설궁과 함께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윤서인이 급히 따랐다·
“사형!”
그들이 모두 나가자 진무원이 쓰러져 있는 함지평을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혔다·
“쿨럭쿨럭!”
함지평이 기침을 했다· 가슴뼈가 골절되어 폐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우두둑!
진무원이 함지평의 가슴을 몇 번 누르자 어긋났던 뼈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제야 함지평의 얼굴이 제 혈색을 되찾았다·
“괜찮습니까?”
“고 고맙습니다 은공·”
그나마 숨을 쉬기 편해지자 함지평이 진무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당분간은 무리하지 마십시오· 충분히 정양해야만 후유증도 없을 겁니다·”
“내 상처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은공은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공동파 때문인가요?”
“정확히는 무해 사형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원한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함지평은 진무원을 걱정했다· 자신을 위해 나서준 것은 고맙지만 그로 인해 해를 입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가 아는 공동파는 결코 이런 일을 그냥 넘기는 허술한 곳이 아니었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겠지요·”
“아시면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은공이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진무원이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은공 어쩌려고 그럽니까?”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좀 쉬십시오·”
진무원이 함지평의 수혈을 짚었다· 그러자 함지평이 깊은 수마에 빠졌다·
“우리 아빠는 괜찮은가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함소령이 달려왔다·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게다·”
진무원의 말에 함소령이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무원은 곽문정에게 함소령과 함지평을 돌봐주라고 말한 후 물러났다·
진무원의 곁으로 종리무환이 다가왔다·
그는 진무원의 무공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우려 섞인 눈빛이다·
“공동파에서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그랬단 말입니까?”
“그럼 저 아이의 팔이 잘리는 것을 두고 봐야 했단 말입니까? 아니면 저 부녀가 목숨을 잃는 모습을 그냥 봐야 했단 말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좀 더 합리적으로 대응했으면 이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종리무환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고 독불장군에게 견제가 들어가는 법이다· 그것이 강호의 현실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공동파다· 그들은 구대문파의 일원이다· 그 말은 곧 천하를 구 등분해서 지배할 힘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진무원이 종리무환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종리무환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항상 그렇게 머리로 모든 것을 계산하십니까?”
“그래야 이 험한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역량을 알고 그에 걸맞게 처신한다· 그것이 나와 철기당이 이제껏 강호에서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진무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저도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그리 사니까요·”
“그런데 왜?”
“하지만 때로는 가슴이 머리보다 더 앞설 때가 있습니다· 저에겐 지금이 그렇습니다·”
진무원의 말은 종리무환과 철기당 무인들의 가슴에 묘한 울림을 안겨주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모두 정의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가진 자는 없는 자의 손에 쥔 쌀 한 줌마저 빼앗아 곳간을 채우려 하고 억울하게 당한 자는 부당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이런 때에 무공을 익힌 자들마저 이들을 외면한다면 무인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북천문이 무너지자 수많은 무인이 조그만 이권 하나라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진실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당장의 이득뿐이었다·
만일 황철이란 사람이 없었다면 진무원 역시 세상을 비관하며 증오했을지 모른다·
황철은 진무원에게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한 곳이란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세상 모두가 그런 아귀 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과연 이들을 외면했다면 차후 황철을 만났을 때 그가 과연 잘했다고 말할까?
진무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무원은 자신 안에서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또 다른 사람이었다·
종리무환이 목소리를 높였다·
“일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호락한 곳은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고 종리무환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의 눈을 보는 순간 납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진무원을 인정하는 순간 이제껏 자신과 철기당이 쌓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너무나 위험해· 그의 사상은 현 강호에 큰 위협이 된다·’
모난 돌 옆에 있다가는 같이 정을 맞는다·
강호에는 간혹 그런 자들이 나오곤 한다· 그 존재감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슴까지 뛰게 만드는 자들이· 그러나 그런 자들의 최후는 하나같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종리무환은 알고 있었다·
강호를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무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다른 누군가가 어지럽히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변혁과 변화를 꿈꾸는 자들은 기득권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리무환은 어느새 다시 진무원을 보고 있었다·
진무원에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힘이 있었다· 언뜻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만의 단단한 분위기와 고집스런 눈빛은 사람들을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든다·
왠지 그가 그렇다고 말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위화감 때문에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눈길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무원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망막에 창공이 담겨 있다·
“그래도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 하나 정도는 될 수 있을 겁니다· 최소한 다른 사람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는 있겠지요·”
어리기만 하던 소년은 어느새 가슴에 하늘을 담은 무인이 되었고 무인은 이제 자신이 향해야 할 미래를 정했다·
“그게··· 내가 무공을 익힌 이유이고 가야 할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