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2장 동행(同行),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 (4)
삼원심법(三元心法)은 본래 청양검문(靑洋劍門)이라는 중소 문파의 독문 심법이었다· 청양검문은 산서의 항산(恒山)에서 태동한 도가 계열의 문파로 장중하면서도 웅혼한 무공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가 계열의 무공이 그렇듯 청양검문의 무공도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기가 매우 힘들었다· 거기에 독문 내공 심법이라 할 수 있는 삼원심법은 내공 쌓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무공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은 청양검문에 들어가길 꺼렸고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삼원심법에는 남들이 모르는 몇 가지 장점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심법 자체가 어렵지 않아서 머리가 둔한 사람도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삼원심법에 필요한 것은 총명함보다는 쉽게 지치지 않는 인내심이었다·
누구나 인내심만 있다면 삼원심법을 익힐 수 있지만 대부분의 총명한 사람은 삼원심법을 익히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 더 어렵더라도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심법을 선호했다·
두 번째는 심법 자체가 안정적이었다· 삼원심법은 마치 화강암 위에 세워진 전각처럼 굳건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어느 경지까지 익히기만 하면 그 후부터는 내공이 무척 빠른 속도로 쌓였다· 삼원심법으로 쌓은 내공은 무척이나 밀도가 높아 일반적인 심법으로 쌓은 내공보다 무거운 성질을 가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공은 중검(重劍)을 익히기에 무척 적합했다· 내공과 검의 상성이 딱 맞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삼원심법이 바로 항마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마공(魔功)이나 사공(邪功)에 홀리지 않을 굳건한 정신력을 키워주었다·
그렇게 세 가지가 으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삼원심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세 가지를 그리 크게 쳐주지 않았고 결국 삼원심법은 사장되기에 이르렀다·
청양검문이 몰락한 이후 삼원심법은 북천문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북천문 안에서도 삼원심법을 익히려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상황이고 목숨이 오가는 위기가 중첩되는데 먼 훗날을 바라보고 성취가 더딘 내공 심법을 익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이후로 삼원심법은 무고 한쪽에 처박힌 채 먼지를 뒤집어쓰며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갔다· 그런 삼원심법을 다시 세상에 끄집어낸 이가 바로 진무원의 아비인 진관호였다·
진관호가 삼원심법을 익힐 이유가 없었다· 그는 둔재인 황철을 위해 삼원심법을 꺼냈고 그의 체질에 적합하게 다듬었다·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잘라내서 나름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황철은 전심전력으로 삼원심법을 익혔다· 성취가 느리다고 진관호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삼원심법을 익혔고 그 결과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언젠가 황철은 그랬다·
‘삼원심법은 천재들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저같이 둔한 놈한테 어울리죠· 저 같은 놈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 허허!’
그래서 삼원심법은 혼자만 알고 가겠다고 했다· 남들한테 가르치기도 부끄럽다면서·
언젠가 삼원심법을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면 바로 자신 같은 사람일 거라고 자신처럼 재능이 없으면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런 사람·
‘황숙은 이 아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인가? 그래서····’
곽문정을 향한 황철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곽문정은 또 다른 황철이었다· 그래서 황철이 그토록 애정을 쏟아부은 것인지도 몰랐다·
“휴!”
진무원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운공을 하고 있는 곽문정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을 앞에 두고 곽문정은 전심전력으로 운공을 하고 있었다·
소의 걸음으로 천 리를 가는 삼원심법· 하지만 그 천 리를 가는 길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대부분의 사람은 감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 어려운 길을 곽문정은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너는 분명 그렇게 원하는 진정한 무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진무원은 진심으로 곽문정이 포기하지 않길 바랐다· 그것이 황철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니까·
진무원은 오래도록 곽문정이 운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그를 지켜주기라도 하듯이·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일찍 짐을 챙겨 야영지를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밤새 피운 모닥불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노숙을 했음에도 일행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거의 없었다· 이제 원행 초반이기도 할뿐더러 개개인 내공을 익힌 무인들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피로 정도는 운공 한 번으로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무원도 마찬가지였다· 노숙을 했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찌뿌드드한 곳 하나도 없었다· 적암산에서 칠 년을 보낸 그였다· 이런 노숙 정도는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힘든 것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마차를 모는 것이었다· 주변 경계야 보표들이 알아서 했고 그는 앞서 가는 마차들의 속도에 맞춰 말을 몰기만 했다·
그나마 진무원은 상황이 좀 나았다· 전방위 감각을 펼친 채 만영결을 익히고 있으면 시간이 잘 흘러갔으니까· 그러나 다른 보표들은 달랐다· 제아무리 원행에 단련이 된 보표들이라지만 지루함을 견디기가 힘든지 간혹 대열을 흐트러뜨리곤 했다·
그럴 때면 공진성이 나섰다· 이런 대규모 원행에서 규율이나 대열이 흔들리면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진무원은 그 모습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보표(保票)는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대방파에 소속된 무인은 돈을 받고 타인이나 물건을 지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문파와 자신의 명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표를 평가절하하기 일쑤였다·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같은 대방파는 워낙 경제적인 기반이 탄탄한 까닭에 굳이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지만 그에 속하지 않은 무인들은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중소 문파가 악착같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것 역시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돼야만 문파의 명맥을 잇거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방파나 문파에 소속된 무인이 얼마나 될까? 강호 전체를 통틀어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한 대부분의 무인은 스스로 호구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무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바로 상단에 소속된 보표나 표국에 소속된 표사였다· 매달 안정적인 봉급을 받을 수 있을뿐더러 혜택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예나 정의를 위해 검을 들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사람과 물건을 위해서 검을 든다·
정의나 가치관에 기치를 든 무인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무인이 바로 보표였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검을 들고 싸웠다· 그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들의 모습은 진무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은 오직 황철과 은한설을 찾는 일에만 온 신경을 몰두하고 있지만 그들을 찾은 후에는 어떡해야 하는가?
진무원의 근원은 북천문이다·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도 밀야를 당당히 막아낸 자부심이 아직 그의 핏속에서 꿈틀거렸다· 자신의 근본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것도 버릴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운중천을 상대로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그렇게 지내야 하는 것인가?
진무원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강호에서 그가 존재할 의미가 달린 것이니까·
아버지 진관호는 그가 모든 은원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진무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가슴에 이렇게 피가 뜨겁게 끓고 있는데·’
심장이 뜨겁게 고동치고 있다·
단순히 하루하루 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힘차게 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 있는 그 무언가가 심장을 힘차게 고동치게 만들고 있었다·
진무원이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봤다·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황야와 도도히 흘러가는 강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산의 희미한 그림자뿐· 그 위로 구름이 진무원이 향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난 정말 모르겠어· 아버지 말대로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지· 하지만 노력은 해볼게· 설령 그렇게 살지 못해도 욕은 하지 마·’
진무원이 중얼거릴 때 갑자기 전방의 마차가 속도를 줄이는 것이 느껴졌다· 진무원도 그에 맞춰 마차의 속도를 조금씩 늦췄다·
‘강 때문인가?’
방금 전에 본 강이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조그만 선착장과 마을도 보였다· 아마도 저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모양이다·
진무원의 예상대로 일행은 선착장 앞에 멈춰 서고 공진성이 앞으로 나섰다·
“운마도강선은 앞으로 두 시진 후에나 돌아온다· 그때까지 인원을 반으로 나눠 돌아가면서 쉰다· 일조가 먼저 식사를 하고 이조는 마차를 지키도록· 이조는 일조가 돌아오는 대로 교대한다·”
“옛!”
공진성은 일조와 이조로 나눴고 진무원은 일조에 배속됐다· 곽문정도 진무원과 같은 일조에 배정되어 같이 움직였다·
두 사람은 근처의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남해객잔(南海客棧)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무척이나 초라한 곳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보표들도 이곳엔 잘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어서 오세요·”
그래도 그들을 반겨주는 예쁜 어린 소녀의 목소리는 씩씩하기만 했다· 나이는 곽문정보다 두어 살 어려 보이는데 보통 싹싹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주인의 딸인 듯싶었다·
“창가 자리가 있느냐?”
“물론이지요· 여기에 앉으세요· 보기엔 이래도 선착장과 강이 한눈에 들어온답니다·”
“고맙다·”
진무원과 곽문정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무얼 드릴까요?”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것으로 부탁하마·”
“그럼 돼지고기볶음이 좋을 것 같은데요· 마침 어제 좋은 물건이 들어와서·”
“부탁하마·”
“헤헤 잠시만 기다리세요·”
소녀가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주방으로 달려갔다· 진무원은 곽문정이 소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왜 관심 있느냐?”
“아 아니에요·”
곽문정이 얼굴이 붉어지며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객잔 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몇 명은 진무원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또 보는군요·”
진무원을 향해 미소를 짓는 남자 종리무환이었다· 그 뒤로 채약란을 비롯해 철기당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 뒤를 따라온 이들은 다른 일행인 듯 반대편 탁자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