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7장 검벽칠년(劍壁七年) (1)
소무상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가득 파였다· 복잡한 심사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 것이다· 거듭된 충격에 이젠 더 이상 놀랄 기력마저 없었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하루였다·
혼마의 습격 밀야의 재등장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진무원이라는 남자였다·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꿈에서도 짐작하지 못했다·
담수천과 심원의조차도 고전을 면치 못한 태무강을 상대로 보여준 그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더구나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검공은····
‘소름이 끼쳤다· 그런 검공이 존재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
북천문의 저력과 정수는 고스란히 진무원이라는 남자 한 사람에게 이어졌다· 그런 힘을 가지고도 그는 이제까지 자신을 숨기고 인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장패산과 외당 삼조원들에게 고문을 당할 때도 심원의 등에게 수모를 당할 때도 그는 참았다· 자신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천하의 누구도 그렇게 자신을 감추면서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수모를 당하면서도 익힌 무공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은밀히 익혔다· 그런 독심은 들어본 적도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런 진무원이 지금 엄청난 중상을 입고 벽에 처박혀 있다· 그는 완전 무방비 상태로 은한설이 사라진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다·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지금이라면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그를 죽일 수 있었다·
그는 운중천의 무사이다· 그리고 북천문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진무원을 죽여야 옳았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럼 그때 깨달음을 주었던 것도····’
심마에 빠지려는 그 순간 불현듯 들려와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목소리· 의심하긴 했지만 진짜 진무원인 줄은 몰랐다· 그때도 진무원이 그 정도의 무공을 익혔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진무원이 자신에게 깨달음을 유도했다는 사실을·
“휴우!”
소무상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진무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중상을 입은 데다 왼팔마저 부러져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다·
한참을 버둥거리던 진무원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극통에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지만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쓰러질 듯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겨우 균형을 잡은 그가 힘겹게 초토화가 되다시피 한 북천문을 바라보았다· 밀야의 대침공 때도 무너지지 않은 북천문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이라곤 만영탑과 일부 전각뿐이었다·
진무원은 만영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몇 번이나 넘어졌음에도 악착같이 다시 일어나 기어이 만영탑으로 들어갔다·
소무상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도 소무상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단 한 번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자존심과 고집에 소무상은 혀를 내둘렀다·
‘독종도 저런 독종이 없구나·’
이젠 진무원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었다·
진무원이 만영탑 안으로 들어간 후 소무상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그도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그의 장고는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때까지도 진무원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소무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회혼랑의 습격에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좋든 싫든 그들과 거의 삼 년을 함께했다· 그들의 시신을 보는 소무상의 가슴은 찢어지고 있었다·
원적심 유경천 노지광 등등····
하지만 그 어디서도 조장 장패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것인가?”
뿌득!
소무상이 이빨을 갈았다·
다른 사람은 모두 용서해도 그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장패산은 그들의 우두머리였다· 보호하고 이끌 책임이 있었다· 그런 자가 부하를 모두 버리고 도망간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결심이 확고히 굳어졌다·
그는 무너진 전각 폐허에서 나무를 모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 위에 동료들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눕혔다·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셨다·
소무상이 불을 붙이자 나무가 순식간에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며 타올랐다· 시뻘건 화염은 동료들의 시신마저 집어삼켰다·
소무상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늘을 집어삼킬 듯 일렁이던 거센 불길은 근 한 시진이 지나서야 꺼졌다· 소무상은 재를 뒤져 동료들의 얼마 남지 않은 뼈를 수습했다·
“꼭 중원으로 데려가마·”
그렇게 중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이들이다· 그들을 이곳에 둔 채 혼자만 중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소무상은 수습한 뼈를 곱게 갈아 조그만 가죽 주머니에 담았다·
감정이 마모되었는지 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그들을 사지에 두고 도주한 심원의와 장패산 등에 대한 적의뿐이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엽월의 시신으로 향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주군인 심원의에게 버림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원망 하나 없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너도 일개 부속물에 불과했구나·”
운중천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엽월이라는 무인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심원의라는 더 큰 부속물에 순응함으로써 원대한 야망을 키워가려 했겠지만 이렇듯 더 큰 힘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힘을 키워야 한다· 누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을 힘을·”
소무상의 눈빛이 바뀌었다· 단순히 눈빛만 바뀐 것이 아니다· 사고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겉모습만 똑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무상은 북천문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진무원이 만영탑을 나오길 기다렸다·
진무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후였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는지 여전히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닷새 전보단 한결 나은 모습이었다·
지난 닷새 동안 진무원은 필사적으로 만영결을 운용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입은 상처는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했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닷새 동안 만영결을 운용해 겨우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 그의 상태는 완벽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치료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가 무리해서 밖으로 나온 것은 지금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일들 때문이었다·
진무원은 소무상처럼 무너진 폐허를 뒤지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를 뒤진 끝에 그가 찾아낸 것은 검은색이 감도는 어린아이 몸통만 한 돌이었다·
오래전 황철이 주고 갔던 물건이다· 운남의 한 부족이 간직해 오던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신령스러운 돌을 찾아낸 것이다· 진무원은 그 후로도 몇 가지 물건을 더 찾아내기 위해 잔해를 뒤졌다·
소무상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진무원은 소무상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묘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지켜보고 한 사람은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두 사람 사이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마치 서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듯했다·
마침내 원하는 물건을 모두 찾은 후에야 진무원이 소무상에게 다가왔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데다 먼지구덩이까지 뒤지다 보니 진무원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피딱지 위에 먼지가 내려앉은 얼굴은 형체조차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딱 하나 그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진무원의 눈을 한참 바라보던 소무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떠나려는가?”
“이제 떠나야 할 때니까요·”
“역시!”
진무원의 대답에 소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폐허가 된 북천문에 진무원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운중천에서 사람을 보내올 것이다·
태무강이 밀야가 만들어낸 괴물이란 사실이 알려진 이상 운중천에서는 이 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무원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진무원이 관련이 있든 없든 그들은 어떻게든 이번 사태와 엮을 테니까·
이번엔 진무원이 물었다·
“어떡하실 겁니까?”
“운중천으로 돌아가야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고초가 심할 텐데요·”
“그렇겠지·”
소무상이 마치 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히 대답했다·
진무원마저 이곳을 떠나면 그는 유일한 생존자가 될 것이다· 자연 운중천은 그에게서 최대한의 정보를 뽑아내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무상이 어떤 일을 당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소무상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운중천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진무원은 그의 눈빛에서 의지를 읽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소무상은 결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자네에 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겠네· 내 목숨과 신의를 걸고 약속하지·”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무상을 믿었기에 깨달음의 단초를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태무강에게 습격당한 날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었더라도 그를 죽였을 것이다·
“내 예전의 무례를 사과하겠네· 자네 부친을 너무나 존경했기에 자네를 용서할 수 없었네· 변명 같지만 내가 존경하는 분의 아들이 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네·”
말투마저 바뀌었다· 극존칭까지는 아니지만 그는 진무원에게 예를 다하고 있었다·
진무원이 담담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해합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고맙네· 용서해 줘서 깨달음으로 인도해 줘서·”
“일어나십시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아니 나에겐 중요한 일일세·”
잠시 진무원을 바라보던 소무상이 남쪽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소무상이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소무상 오늘부터 진 무 자 원 자 쓰는 분을 주군으로 모시려 합니다! 천지신명께 맹세하건대 당신을 위해 살아가고 당신을 위해 죽겠습니다! 이제부터 저의 주군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소무상이 진무원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지난 닷새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수없이 고민하고 번뇌했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북천문은 이 남자를 통해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강호에 오직 그만이 진실된 심장과 굴하지 않는 웅지를 가졌다· 그런 자를 주군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누구를 주군으로 모신단 말인가?
이 혼탁한 강호에 오직 그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소무상의 가슴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퍽!
소무상이 이마를 바닥에 힘껏 찧었다· 이마가 깨지고 피가 튀었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주군 제발 저를 받아주십시오! 주군의 검이 되어 당신의 적을 베개 해주십시오!”
심장이 요동치고 웅지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런 그의 심정과 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진무원이 소무상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어나십시오·”
“주군!”
진무원의 말을 오해한 소무상이 다시 한 번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자 진무원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이 나의 첫 번째 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주군· 정말 감사합니다·”
“일어나십시오·”
“예!”
그제야 소무상이 몸을 일으켰다·
진무원의 시선이 천하를 향했다· 북천문의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다· 백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오던 기반을 모두 잃었지만 진무원은 하나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얻은 첫 번째 검이다·
한 사람이 떠나고 한 사람을 얻었다·
☆ ☆ ☆
하늘을 집어삼킬 듯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넘실대는 화마가 그나마 남아 있던 북천문의 모든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쿠쿠쿠!
만영탑이 무너져 내리고 만영벽이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백수십 년 동안 굳건하게 북방의 벽이 되었던 북천문의 모든 것이 거센 불길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진무원과 소무상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백 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가공할 열기가 느껴졌다·
소무상이 문득 진무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무원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북천문의 마지막 모습을 망막에 담고 있었다· 비록 건물은 불에 타지만 그 모습만큼은 그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북천문에 불을 지른 사람은 진무원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북천문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것이다·
화마는 장장 이틀이나 타오르다 사그라졌다· 불길이 꺼진 후 남은 것은 오직 검은 잿더미뿐이었다· 이제 백수십 년 동안이나 밀야를 상대로 투쟁하던 북천문의 흔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무원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미련 따윈 북천문과 함께 거센 불길에 모두 태워 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미래에 대한 도전과 독기뿐이었다·
멀리 황철이 말 두 필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원의 등이 북천문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진무원에게 위해를 끼칠까 싶어 달려온 것이다·
“공자님·”
황철이 진무원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진무원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함께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진무원이 황철에게 담담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철은 잿더미로 변한 북천문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겠지만 그에게는 구속하던 족쇄가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진무원이 황철이 준비한 말에 올라탔다· 소무상이 그런 진무원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주군 다시 뵐 때까지 부디 몸 보중하십시오·”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세요·”
“저는 걱정 마십시오·”
소무상이 자신의 가슴을 힘껏 두들겼다· 그런 그의 얼굴에 단호함이 엿보인다·
“그럼····”
진무원이 마지막 인사를 한 후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그가 탄 말이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소 무사님·”
“부디 주군을 잘 보필해 주십시오 황숙·”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무상에게 인사를 한 황철이 진무원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소무상이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그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주군·”
잠룡이 진정한 날개를 얻기 위해 떠났다·
진무원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그것이 소무상의 역할이었다·
소무상이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그가 진무원을 따르기로 결정한 날 그들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이 미래에 관한 것이었지만 현재의 소무상에 관한 것도 있었다·
진무원은 소무상에게 만영벽에 남아 있는 절학 중 하나를 전수해 주었다· 계류보(溪流步)라는 이름의 보법을·
계류보는 북천문의 이대문주이던 남운산이 어느 날 계곡물에 영감을 받아 창안한 보법이다· 흐르는 계곡물처럼 막힘없이 굽이굽이 치는 움직임이 특징인 계류보는 소무상이 익힌 청운검법의 위력을 배가시켜 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청운검법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인 것처럼 말이다·
소무상은 계류보의 구결을 되뇌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그가 눈을 떴다·
두두두!
대지의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기마를 탄 일단의 무리가 잿더미가 된 북천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자가 커다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깃발에는 운중천을 뜻하는 구름 문양에 천(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왔는가?”
그가 몸을 일으켰다·
운중천에서 파견 나온 조사대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때쯤 도착할 거라고 짐작했다· 북천문에서 가장 가까운 지부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닷새 거리였다· 담수천 등이 지부에 도착해서 사태를 알리고 조사대를 조직해 파견해도 열흘의 시간이 걸린다·
조사대가 소무상을 발견했는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
모두 백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대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기도를 뿌리고 있었다· 특히 조사대의 우두머리인 듯한 남자는 발군의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 중후반 얼굴은 각이 지고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강렬했다· 등 뒤에는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커다란 도를 차고 있어 위압적이었다·
소무상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운중천 서녕(西寧) 지부장 양만척·’
청해패도(靑海覇刀) 양만척·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듯 강렬한 외모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때문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소무상은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패도 한 자루만 들면 청해 일대에 적수를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 극강의 무인이 바로 양만척이었다· 북천문을 빠져나간 심원의와 서문혜령이 향한 곳이 바로 양만척이 지부장으로 있는 운중천 서녕지부였다·
심원의가 밀야의 잔존 세력이 출현했음을 알리자마자 양만척은 서녕지부와 인근의 고수들을 규합해 조사대를 꾸려 출발했다·
양만척이 패도를 꺼내 소무상에게 겨눴다·
“네놈은 누구냐? 소속을 밝혀라!”
“내 이름은 소무상 이곳에 파견 나와 있던 운중천 외당 삼조 소속의 무인이오·”
“외당?”
양만척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의 의심하는 눈초리에 소무상이 운중천의 무인임을 증명하는 명패를 그에게 던졌다·
명패를 받은 양만척은 여전히 경계의 빛을 풀지 않았다· 명패는 진짜였지만 주인도 진짜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생존자는?”
“내가 유일하오·”
“혼자 살아남았단 말인가?”
“그렇소!”
“북천문주는?”
“죽었을 거요·”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했나?”
“불길에 갇힌 것을 보았소· 하지만 빠져나오는 것은 확인하지 못했소·”
양만척이 소무상을 무섭게 노려봤다· 하지만 소무상은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흥! 조사하면 알게 되겠지· 일단 놈을 포박하라! 서녕지부로 압송해 취조한다!”
“존명!”
무인 두 명이 소무상에게 다가와 혈도를 제압하고 포박했다· 소무상은 반항하지 않고 그들에게 순순히 제압됐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녕지부에 압송되면 밀야와 연관이 있는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지 정말 진무원이 목숨을 잃은 것인지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다· 결백이 입증되면 다시 운중천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뇌옥에 갇힐 것이다·
양만척이 외쳤다·
“지금부터 두 패로 나눈다! 유상춘이 첫 번째 조를 이끌고 장소가 두 번째 조를 이끌어라! 유상춘은 주위에 저지선을 확보하고 철저히 경계하라!”
“존명!”
“장소는 나머지를 데리고 폐허를 뒤져라! 불탄 시신을 모조리 찾아내고 밀야의 흔적을 반드시 찾아내라!”
“존명!”
유상춘과 장소가 힘찬 대답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흩어졌다·
소무상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어떤 흔적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모두 타서 재가 된 시신에서 무슨 흔적을 찾아낼 것인가? 그만 입을 다문다면 그 누구도 진무원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소무상이 진무원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주군 부디 대공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