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 8장 은원의 강호에서 홀로 서다 (3)
서문혜령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녀의 완패였다·
하진월은 그녀보다 더 먼 곳까지 바라보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세력의 우위를 믿고 준비를 게을리했다· 그 차이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결과였다·
천벽만로진이 깨지면서 운무가 사라지고 주위의 광경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신이 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북천문의 무인들도 많이 보였지만 무적세가와 창천문의 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천벽만로진이 깨졌지만 북천문의 무인들은 지형적인 이점을 살려 기선을 제압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놈들을 모조리 몰아내자·”
사기가 오른 북천문 무인들의 목소리가 서문혜령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심기 지략 병법 모두 그녀의 완패였다·
“내가 실수했군요· 그때 당신에게 심마를 안겨주는 게 아니라 그냥 죽였어야 했는데·”
서문혜령이 조그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자신의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사했구려·”
한 줄기 음성이 그녀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성큼성큼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수천·”
“다행이군·”
담수천은 서문혜령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하진월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하진월의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공이라곤 일초반식도 익히지 않은 그가 담수천의 살기를 감당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용케도 물러서지 않고 담수천을 바라봤다·
창천무제(蒼天武帝)라 불리는 시대의 기린아· 북천문의 문주인 진무원과 더불어 일검일제(一劍一帝)라고 불리는 초강자가 눈앞에 있었다·
북천문의 군사로 있으면서 많은 무인들을 보아온 하진월이었다· 그중에는 절대고수라고 불리는 능군휘나 경무생도 있었다· 그들도 시대를 풍미한 절대고수들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담수천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담수천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는 절대적이었다·
담수천이 하진월에게 다가왔다·
“삼뇌수사·”
“담 대협·”
“당신의 귀계에 이 담수천 크게 탄복했소·”
“과찬입니다·”
“우리가 같은 편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욕심이 많으시군요· 담 대협의 곁에는 서문 소저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그렇겠지·”
담수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하진월이 이제와 자신의 편에 서길 바라지 않았다· 그에겐 서문혜령이 있었다· 비록 이번에는 하진월과의 지략 대결에서 패했지만 그녀는 세상에 보기 드문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이번의 패배가 그녀에겐 오히려 보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삼뇌수사는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를 살려두면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담수천은 살의를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인간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본성을 드러낸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전장이란 원래 그렇고 그런 곳이기에·
담수천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하진월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담수천과 같은 절대고수를 뿌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도주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나와 창천문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어야겠소 삼뇌수사·”
“그건 곤란합니다·”
대답은 하진월의 입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담수천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하진월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진무원의 모습이 보였다·
“진 문주?”
“오랜만입니다· 담 대협·”
진무원이 하진월의 곁에 섰다· 그러자 하진월의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문주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군사·”
“모용율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북천문을 노리는 일은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을 겁니다·”
“아!”
그제야 하진월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진월은 수십 수백 가지 변수까지 단번에 계산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단 한 가지만은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모용율천의 무력이었다·
아무리 다른 전투에서 승리해도 모용율천이 건재하다면 끝이 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반대로 다른 전투에서 패배를 하더라도 모용율천만 죽인다면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전쟁이었다·
하진월이 계산했던 수많은 변수와 확률 중 가장 자신이 없던 것이 바로 모용율천의 무력이었다· 하지만 진무원이 모용율천을 제압했으니 가장 큰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
한쪽에서 진무원의 말을 듣던 서문혜령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가 정말 모용율천을 이긴 것인가? 그럴 수가····’
서문혜령의 눈에 비친 모용율천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래서 그녀조차 당장 정면 승부를 하는 대신 훗날에 승부를 내는 것으로 미뤄뒀을 정도였다· 그런 모용율천을 진무원이 이겼다는 것은 천하를 뒤흔들 일대 사건이었다·
담수천의 안색 또한 살짝 변했다·
“정말 진 문주가 모용 대협을 이겼소?”
진무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담수천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 참 아쉽구려· 모용 대협을 쓰러뜨리는 사람은 당연히 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요?”
“설마!”
담수천이 미소를 지었다· 살기 어린 그의 미소에 진무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평상시의 담수천과는 다른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위화감이 들었다·
“담 대협 이대로 돌아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모용 대협이 죽었으니 이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럴 수는 없소· 아비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어찌 돌아갈 수 있단 말이오?”
“아비의 원수? 무슨 말입니까?”
“진 문주가 내 아비를 죽였잖소· 나는 그 복수를 하려는 것이오·”
“담 대협의 아버지라면 불귀곡주?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내 눈으로 똑똑히 아비의 시신을 보았소·”
“그분이 죽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나는 그분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합니다·”
진무원의 말을 듣는 순간 담수천은 모용율천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담수천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비의 죽음을 이유로 복수를 하겠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 역시 아비의 죽음이 진무원 때문이 아니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몰랐다· 단지 진무원과 싸울 구실을 찾기 위해 모른 척했을 뿐이다·
“진 문주의 약속은 내게 중요하지 않소· 나에겐 진 문주를 쓰러뜨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오·”
담수천의 눈이 번들거렸다·
모용율천이 그의 마음에 심은 심마의 씨앗은 어느새 싹을 틔우고 만개하고 있었다· 이젠 어떤 말로도 그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다·
진무원과 마주한 그 순간부터 담수천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싸우고 싶다·
눈앞에 있는 저자를 누르고 내가 중원 최강이라는 칭호를 얻고 싶다·
그렇게 핏속에서부터 들끓는 열망이 그의 살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쿠쿠쿠!
담수천이 딛고 선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그런 담수천의 모습에 진무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는 승부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진무원은 잠시 몸 상태를 점검하다 쓴웃음을 지었다·
‘최악이군·’
심맥과 기경팔맥이 상한 데다 내공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움직일 수 있단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림자 내공이 재빨리 회복을 하고 있었지만 본신의 공력을 회복하려면 아직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담수천은 그에게 시간 따윈 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담수천이 진무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가공할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패력을 흩뿌리는 담수천의 위용 앞에 진무원은 모습은 무척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하진월은 진무원을 믿었다·
이제까지 진무원은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당당히 헤쳐 나왔다· 하진월은 당연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진무원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다· 창천무제라고 불리는 담수천을 상대하기엔 너무나 초라해 보였지만 누구도 웃지 않았다·
진무원과 같은 고수는 나뭇가지 하나만 들어도 신병이기와 같은 위력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진무원은 나뭇가지를 들어 담수천을 겨눴다·
순간 담수천은 미간을 날카로운 칼로 관통당하는 듯한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라면 섬뜩한 느낌에 몸을 떨었겠지만 담수천은 웃었다·
신경이 한없이 날카롭게 곤두서고 세상 모든 것이 붉게 보였다· 전신에서 활화산과 같은 거력이 느껴졌다· 기분 같아서는 거대한 산이라도 부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쩌저적!
담수천이 발을 디딜 때마다 대지가 쩍쩍 갈라졌다·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침잠되는 그 순간 담수천의 미간에서 심안이 열리면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성광류를 삼안류(三眼流)라는 이명으로 불리게 만든 현상이었다·
“간다·”
담수천이 진무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진무원도 지지 않고 담수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쩌어엉!
허공에서 그들이 격돌하는 순간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으음!”
서문혜령과 하진월이 옷이 바람에 격렬하게 펄럭였다·
담수천과 진무원의 움직임은 극과 극이었다·
담수천은 그야말로 거대한 폭풍 같았다· 그가 발산하는 패도적인 기운에 닿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인간의 무위가 아니었다· 담수천은 이제까지 억누르고 있던 파괴적인 본성을 마음껏 드러냈다·
패도적인 공세에 맞서는 진무원의 모습은 폭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위태해 보였다· 실제로 진무원의 상태는 꽤 좋지 않았다·
간신히 모았던 내공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내상 또한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이 이상 싸움이 길어지면 필패였다·
‘늦기 전에 승부를 건다·’
그렇게 진무원이 결심을 굳힐 때였다·
“크으!”
갑자기 담수천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붉게 충혈되었던 두 눈이 마치 핏물에 절인 것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수천!”
예상치 못한 담수천의 모습에 서문혜령이 경악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담수천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진무원에게 거친 살기를 발산했다·
담수천의 붉게 변한 두 눈에는 오직 진무원의 모습만 보였다· 다른 어떤 것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용율천이 그에게 심어놓은 혈심마령기(血心魔靈氣)가 이성을 날려 버렸다· 남은 것은 오직 파괴하고자 하는 본성뿐·
담수천은 진무원을 향해 자신의 모든 분노를 폭발시켰다· 진무원은 계류보에 의지해 간신히 그의 공격을 피했다·
쿠콰콰!
“크악!”
“살려줘!”
담수천의 공격은 북천문의 무인들뿐 아니라 창천문의 무인들까지 휩쓸어 버렸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무인이 목숨을 잃었다·
“수천 안 돼요!”
놀란 서문혜령이 소리쳤지만 이성을 잃은 담수천에겐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심마(心魔)인가?’
진무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담수천과 같은 경지에 이른 절대의 고수가 심마에 빠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절대의 경지라는 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 또한 극한으로 단련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절대고수 역시 심마에 빠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세상에는 큰 재앙이 닥친다·
절대고수가 미쳐서 날뛰는데 누가 있어 막을 수 있을까? 스스로 기력이 소모되어 지쳐 쓰러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안 돼!”
담수천의 상태를 눈치챈 서문혜령이 절규를 했다·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진무원만 쓰러뜨리면 그렇게 원하던 강호의 정상에 설 수 있는데 하필 지금 심마에 빠지다니· 서문혜령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심마에 빠졌지만 담수천의 무위는 오히려 더 상승했다· 체력과 내공의 배분을 생각하지 않고 단 한순간에 전력으로 무공을 펼치기 때문이다·
쿠콰콰!
담수천이 발산하는 가공할 패력에 주위의 모든 것이 초토화되었다 그가 발산한 패력에 휘말린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진무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담수천은 오랜 시간 동안 그와 성장해 온 경쟁자였다· 그가 있었기에 자신 역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진무원은 담수천에게 존경의 염까지 가지고 있었다·
진무원은 이 이상 담수천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다· 이것은 그가 기대하는 담수천의 모습이 아니었다·
진무원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담수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진무원은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도 버렸다·
몸 안에 내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진무원 또한 내공에 기댈 생각을 버렸다·
이 순간 그가 떠올린 것은 바로 검(劍)이었다·
칠흑처럼 검고 날카로운 상상 속의 검·
‘설화야·’
마음속의 검이 담수천을 갈랐다·
“크헉!”
무서운 기세로 쇄도하던 담수천이 갑자기 피를 토했다· 그가 토한 피가 진무원의 가슴을 적셨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담수천이었다· 하지만 그의 심맥은 심검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가 걸레쪽처럼 변해 있었다·
담수천의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진무원이 그의 몸을 받치려 했다· 하지만 진무원도 힘이 없기에 담수천과 함께 무너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으!”
담수천이 신음성을 흘렸다· 핏물에 젖은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던 동공이 그제야 정상을 돌아왔다· 심마를 촉발시켰던 혈심마령기가 심검에 의해 깨진 것이다· 그와 함께 담수천의 이지도 돌아왔다·
“진··· 문주·”
“담 대협·”
“한바탕 꿈을 꾼 것 같구려· 봄이 지나면 사라질 그런 긴 꿈을····”
담수천이 눈을 감았다·
그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불귀곡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일생에 후회 따윈 없었다· 단 한 가지만 빼놓고·
“나도 당신 같았다면 당신처럼 시류에 야합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했었다면 어땠을까? 내 인생에 유일하게 후회가 되는 것이 있다면 모용율천과 손을 잡았다는 것· 내가 거대악(巨大惡)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를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겠다고 마음먹은 것· 그로 인해 나 역시 어느 순간 악(惡)에 물들어 버린 것이 후회되는구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먼 길을 걸어온 후였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기에 잘못된 길이란 것을 알아도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담 대협?”
“그래도 진 문주와 같은 시대에 살아서 즐거웠소· 다음 생애에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나 역시 당신처럼 후회··· 없는 길을 걸어서 도전하겠소· 그때 신명··· 나게 놀아봅시다·”
담수천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진무원은 고개를 떨군 담수천의 몸을 꼭 껴안았다·
“안 돼!”
그 순간 서문혜령의 뾰족한 교성이 울려 퍼졌다·
그녀가 미친 듯이 담수천을 향해 달려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안 돼요 수천· 나를 두고 가다니· 그럴 수는 없어요· 눈을 떠요 수천·”
서문혜령이 미친 듯이 담수천의 시신을 흔들었다· 하지만 한번 감긴 담수천의 눈은 두 번 다시 떠지지 않았다·
“으허헝!”
서문혜령이 담수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을 했다· 겨우 몸을 일으킨 진무원은 그런 서문혜령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문혜령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상함을 느낀 진무원이 급히 서문혜령의 몸을 뒤집었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 한복판에 박힌 비수가 보였다· 비수는 손잡이만 남긴 채 박혀 있었다·
“서문··· 소저·”
“나도 그··· 를 따라갈 거야· 그는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거든·”
서문혜령이 피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죽음의 사신은 이미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어떤 방법을 써도 그녀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진무원은 말없이 서문혜령을 내려다보았다· 서문혜령은 담수천의 손을 꼭 잡은 채 숨이 끊어졌다·
“휴!”
진무원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찌푸리기만 했던 하늘에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