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 4장 타인을 짓밟은 자, 언제든 짓밟힐 수도 있음이다 (3)
갑자기 일단의 무리가 전장에 난입했다· 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천여 명의 무인이었다·
쉬가악!
사방으로 검기를 흩뿌리는 천여 명의 검객· 그 선두에 소무상이 있었다·
소무상이 무영사태를 들쳐 업으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시주가 어떻게?”
“조금만 참으십시오·”
무영사태와 대답을 하면서도 소무상은 노수전과 관철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미파와 청성파가 무적세가를 막아선 것은 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들의 의기는 가상했지만 그들만으로 무적세가와 운중천의 무인들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을 반드시 구해야 한다·’
단순히 북천문의 우군이기 때문이 아니다· 청성파와 아미파는 사천무림을 지탱해 온 기둥· 그들이 무너지면 사천성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질 것이다·
“네놈들은 북천문의 버러지들이구나·”
노수전과 관철산이 섬뜩한 광망을 토해냈다·
예상치 못한 북천문의 기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내 그들이 소무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쾌검과 중도가 소무상을 향해 날아왔다·
소무상이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예의 청운검법이었다·
운중천의 외당 무사들이나 익히는 별 볼 일 없는 검공· 하지만 그의 손에 의해 펼쳐지는 청운검법은 더 이상 삼류라는 틀로 묶어둘 수 없을 만큼 진보를 했다·
씨이이익!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노수전과 관철산의 무기가 튕겨 나갔다· 단 일검에 두 사람을 압도한 것이다·
“챠아앗!”
놀라는 두 사람에게 소무상의 검초가 다시 펼쳐졌다· 독사처럼 요혈을 파고드는 소무상의 검· 놀란 노수전과 관철산이 허둥지둥 수비식을 펼쳐 전신을 보호했다·
따다다당!
검명이 연이어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의 몸이 여러 번 들썩였다·
“제기랄!”
“크윽!”
두 사람의 입술을 비집고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소무상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소무상은 무영사태를 등에 업은 채 훌쩍 뒤로 물러났고 그 뒤를 검혈대의 무인들이 따랐다·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수백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대부분이 운중천과 무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소무상과 검혈대· 예상치 못한 그들의 행동에 무적세가와 운중천의 무인들은 일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뒤늦게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무상과 검혈대가 상당히 멀어진 후였다·
“놈들을 추적하라·”
관철산이 추적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소무상과 검혈대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개 같은····”
졸지에 닭 쫓던 개꼴이 된 관철산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그는 부하들을 독려해 쫓아가려 했지만 노수전이 만류했다·
“그만 늦었네·”
“하지만····”
“서두를 필요 없네· 어차피 이대로 가다 보면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크윽!”
“그보다····”
노수전의 시선이 소무상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손이 쩌릿쩌릿했다· 하마터면 소무상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검을 놓칠 뻔했다·
‘어디서 저런 자가····’
그는 본능적으로 소무상의 무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소름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뒤늦게 모용현이 나타났다·
모용율천과 후방으로 빠졌던 모용현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다시 전방으로 왔다· 하지만 그가 전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소무상이 검혈대를 이끌고 사라진 후였다·
“사실은····”
노수전은 소무상과 검혈대가 나타났었단 사실을 말했다· 그에 모용현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감히 놈들이 겁도 없이 여기 나타났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대공자·”
노수전이 고개를 숙였다·
기습을 받았더라도 그들의 전력이라면 소무상과 검혈대를 능히 제압했어야 했다· 헌데 그들을 제압하지도 못했을뿐더러 아미파와 청성파의 생존자들까지 빼앗겼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모용현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북천문·”
그의 목소리에 담긴 스산한 살기에 노수전과 관철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휴!”
소무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등에 업고 있던 무영사태를 바닥에 내려놨다· 무영사태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원이 급히 달려와 무영사태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급히 무영사태에게 속명단을 복용시키고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속명단을 복용하자 무영사태가 안정을 찾아갔다·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어서 본문으로 보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음!”
아미파와 청성파의 생존자라고 해봐야 오십여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부상을 입었기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나았을 것을·’
아미파와 청성파의 마음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북천문과 더욱 기민하게 협조했으면 이렇게 처참한 결과를 얻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게 느껴졌다·
소무상은 아미파와 청성파의 무인들을 우선 북천문으로 돌려보내고 휘하의 조장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모두 열 명 검혈대에서도 최고의 성취를 자랑하는 검객들이었다· 그리고 모두 소무상이 수련시킨 자들이었다·
소무상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들의 성향 역시 소무상과 비슷했다· 말수가 적은 데다 칼날같이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간단하다· 기습으로 적들의 전력을 소진시키고 시간을 버는 것·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모두 단단히 각오하라·”
“우리는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주· 북천문에는 우리의 가족이 있습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언제든 버릴 수 있습니다·”
조장들이 앞을 다퉈 대답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계획은 모두 숙지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계획대로 실행한다·”
“존명!”
힘찬 대답과 함께 대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소무상은 멀어져가는 조장들을 잠시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들 중에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소무상도 자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조장들이었다· 나이는 그렇게 차이가 안 나지만 제자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런 이들을 사지로 보내는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믿어야 했다· 자신이 가르친 그들을 믿어야 했다·
그가 뒤돌아봤다· 열 명의 조장이 팔백여 명의 검혈대를 데리고 갔다· 남은 이들은 이백여 명· 이제부터는 자신이 그들을 이끌어야 했다·
“가자·”
“예!”
소무상과 이백여 명의 검혈대가 움직였다·
그들은 멀쩡한 관도 대신 으슥한 산길로 움직였다· 면양에 정착한 이후 그들이 가장 먼저 한일은 사천성의 지형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지도에 나오는 관도는 물론이고 표시되지 않은 외딴길과 산길까지 샅샅이 훑고 다니며 파악했다· 그 덕에 그들은 사천성을 자신의 손바닥 안처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지금 소무상과 검혈대가 이동하고 있는 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기에 무적세가와 운중천에서는 알 수 없었다·
“훅훅!”
소무상을 따르는 검혈대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빠른 이동 속도에 숨이 가빠져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혹독한 수련을 했다· 이 정도에 죽는 소리를 한다면 검혈대에 들 자격이 없었다·
소무상과 검혈대는 반나절을 뛰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사혈림(死血林)이라는 숲이었다·
사혈림은 무척이나 묘한 곳이었다· 워낙 수풀이 우거져서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시사철 어두컴컴해서 음습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사혈림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사냥꾼들이나 약초꾼들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혈림 내의 지리는 물론이고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소무상과 검혈대는 달랐다· 그들이 사천성 내의 지리를 파악하러 다닐 때 가장 크게 신경을 쓴 곳이 바로 사혈림이었다·
하진월은 외부에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무기라고 말했다· 그때는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지형 자체가 우리에게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소무상이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사혈림이라는 악명답게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소무상도 제법 많은 곳을 봐왔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음습한 숲은 처음이었다·
소무상이 검혈대 무인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모두 속명단은 확실히 챙겼겠지?”
“물론입니다·”
“여벌 목숨 하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라·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지체 없이 속명단을 복용하고·”
“옛!”
검혈대 무인들의 힘찬 대답에 소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부터는 기다리는 수밖에·
“이제부터 세 시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라·”
“알겠습니다·”
검혈대의 무인들이 사혈림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이미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었다·
소무상의 곁에는 아직 앳돼 보이는 젊은 무인이 있었다·
윤회경· 검혈대에서 가장 어린 무인이었다·
올해 나이 열일곱 어른이라기보다는 소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나이였다·
소무상은 윤회경을 아꼈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된 수련에 힘들다는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을 한 이도 바로 윤회경이었다·
윤회경은 열일곱의 나이에 독종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독종이라도 아직은 어린 소년에 불과했고 그런 소년이 이렇게 목숨을 거는 일에 자원한 사실 자체가 소무상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그래서 옆에 두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생존 가능성을 높게 하려고 말이다·
윤회경이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잠시 어깨를 문지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무적세가가 그렇게 무섭나요? 운중천보다 더?”
아직 어린 소년다운 질문이었다·
“그렇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라고 볼 수 있지· 그에 비하면 운중천의 전력이 많이 부족하다·”
“그런데 왜 강호에 무적세가의 전력이 알려지지 않은 거죠? 모두가 운중천을 이야기하지 무적세가를 언급하지는 않잖아요·”
“그것은 무적세가가 그만큼 강하고 똑똑하기 때문이다·”
“똑똑해요?”
“그렇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란다· 무적세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운중천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이지· 그럼으로써 모든 관심을 운중천에 돌리고 무적세가는 진정한 지배자로서 강호에 군림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존재를 드러낸 건가요? 이제까지처럼 운중천의 뒤에 숨어서 강호를 지배하면 훨씬 더 쉬운 거 아닌가요?”
어린아이다운 궁금증을 드러내는 윤회경이었다· 소무상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왜요?”
“주군 때문이다· 주군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기에 그들 역시 음지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아홉 하늘의 반수 이상이 주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니 다른 전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결국은 스스로 나설 수밖에·”
“그만큼 문주님이 대단하시다는 뜻이군요·”
“그렇다· 대단하신 분이지·”
“저도 언젠가 그분처럼 되고 싶어요·”
“너는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요?”
“하나 그러기 위해선 무공뿐만 아니라 마음도 단련해야 한다·”
“마음은 어떻게 단련하나요?”
“살다 보면 넘어질 일도 많을 것이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거라· 하루라도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거라·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는 너 역시 훌륭한 무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러면 가능할까요?”
“글쎄!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삶에 후회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 저도 그렇게 살겠어요·”
윤회경의 치기어린 다짐에도 소무상은 웃을 수 없었다· 그의 다짐이 현실이 되려면 이번 전장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를 반드시 살려야 할 이유가 생겼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전쟁을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