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 8장 하늘이 무너져도 버텨야 할 때가 있다 (3)
발목에서 시작된 전사력이 온몸을 휘감았다· 가공할 기운이 전사력을 따라 등유명의 전신을 휘돌더니 태풍이 되었다·
거대한 태풍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음에도 모용율천의 입가에 어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 그대로 등유명을 바라보았다·
“이야아아! 죽어랏! 모용율천!”
등유명의 커다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무기는 필요 없었다· 금강불괴를 이룬 육신 자체가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거기에 전사력과 전 공력을 실었다·
등유명은 그 어떤 이도 자신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설령 그 대상이 모용율천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쉬쉭!
갑자기 모용율천의 뒤쪽에서 수십 개의 붉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붉은 무복을 입은 수십 명의 무인이었다· 그들의 눈은 용무성처럼 붉은 광망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움도 없이 등유명의 앞을 막아섰다·
콰앙!
굉음과 함께 붉은 무복의 무인 한 명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팔이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가슴이 움푹 함몰된 그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만큼 등유명의 무극천원벽의 위력이 가공한 탓이기도 했다·
동료가 죽었지만 붉은 무복 무인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또 한 명의 붉은 무복을 입은 무인이 무극천원벽을 막아섰다· 양손에 공력을 가득 모아 등유명의 전진을 막으려는 무인의 움직임은 수레바퀴를 막아선 사마귀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쾅!
당랑거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붉은 무복의 무인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바닥에 떨어지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벌써 두 명의 무인들이 등유명을 막아서다 목숨을 잃었다·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하건만 붉은 무복의 무인들은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등유명을 막아섰다·
콰쾅!
연신 굉음이 울려 퍼지고 또 몇 명의 붉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등유명의 무극천원벽이 동력을 잃고 멈춰 섰다·
멈춰선 등유명에게 남아 있던 붉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그런 이들이 수십 명이 넘었다·
“이 부나방 같은 것들이····”
등유명의 눈이 분노로 붉게 충혈됐다· 그들의 방해 때문에 모용율천을 공격하지 못한 것에 화가 치민 것이다·
쉬익!
붉은 무복의 무인들이 등유명을 공격했다·
그 한 명 한 명의 무위는 결코 등유명에 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지닌 바 역량을 십 할 활용할 줄 알았다·
그들이 등유명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으며 팔을 자신의 몸을 내던져 봉인했다· 그런 그들의 육탄공세 때문에 등유명은 자신의 절기를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쾅!
팔과 다리를 봉쇄당한 등유명의 몸을 붉은 무복을 입은 무인의 주먹이 강타했다· 하지만 금강불괴지신을 이룬 등유명의 육체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고 오히려 공격한 이의 주먹 뼈가 으스러졌다·
그런데도 무인은 계속해서 등유명의 육체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등유명을 둘러싼 붉은 무복의 무인들은 자신의 육체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했다·
뼈가 바스러지고 피가 튀었다· 살점이 찢겨 나가고 육체가 망가지는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등유명을 파괴하기 위해 자신을 파괴했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천하의 등유명도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충격이 계속해서 몸에 쌓이고 있었다· 누적된 충격은 그의 강력한 육체를 조금씩 뒤흔들고 있었다·
‘이럴 수가!’
등유명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모용율천이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암혼대(暗魂隊) 무성이와 마찬가지로 천형금뇌술을 받은 아이들이지· 두려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임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따윈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는·”
암혼대는 무적세가가 수백 년의 비전과 막대한 투자를 해서 키운 살상병기였다· 천형금뇌술을 이용해서 이지를 제압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기다 층층혈마공(層層血魔功)이라는 괴공을 익혀 잠력을 극한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잠력을 모두 격발시킨 그들의 무력은 놀라웠다·
콰쾅!
등유명의 육체에서 연신 망치로 바위를 깨부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등유명은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암혼인을 떼어내고 죽였지만 그가 죽이는 속도보다 암혼대가 달라붙는 속도가 더 빨랐다·
심무외와 한창 치열하게 싸우던 소금향이 등유명이 암혼대에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야주!”
하지만 등유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쩌적!
비록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았지만 등유명은 느낄 수 있었다· 금강석처럼 견고하던 육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금강불괴지신이 깨지는 징조였다·
“크윽!”
등유명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눈앞에 모용율천이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그곳에·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와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모두 비켜라!”
등유명이 무극열화권의 절초를 연이어 펼치며 암혼대를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암혼인 하나가 피떡이 되어 날아가도 또 다른 암혼대가 달라붙었다·
등유명의 몸통을 부여잡은 암혼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의지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눈동자에 등유명의 모습이 맺혔다·
순간 등유명이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에 흠칫했다·
“너?”
콰아앙!
순간 암혼대의 몸이 폭발했다· 말 그대로 육신이 벽력탄처럼 터져 나간 것이다· 뼈가 암기가 되고 살점이 파편이 되어 등유명을 덮쳤다·
품 안에서 일어난 폭발에 등유명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크윽!”
등유명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복부에서 격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려다보니 복부를 비집고 허연 뼛조각이 깊숙이 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금강불괴지신이 깨지고 만 것이다·
“쿨럭!”
등유명이 피를 울컥 토했다· 그가 토해낸 핏속에 짓이겨진 내장 조각이 보였다· 금강불괴지신이 깨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복하기 힘든 내상을 입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뼈가 박힌 곳은 내공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아랫배 기해혈이었다· 기를 담아두었던 그릇이 깨지면서 내력이 줄줄이 세고 있었다·
등유명이 손으로 아랫배를 부여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지혈을 하려 했지만 암혼대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섬뜩하게 벼려진 단검이 들려 있었다· 단검이 사정없이 등유명의 몸을 찔렀다·
푹 푹!
“크윽!”
등유명의 신음을 내뱉으며 몸에 달라붙은 암혼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피떡이 되어 날아가는 암혼인·
문제는 그런데도 너무 많은 암혼인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등유명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파상 공세에 천하의 등유명조차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야주!”
소금향이 심무외를 버려두고 등유명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심무외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흥!”
심무외는 원단심공(圓端心功)의 웅혼한 내공을 바탕으로 홍옥마수(紅玉魔手)를 펼쳤다·
천하에서 가장 완벽한 심법 중 하나로 평가받는 원단심공이었다· 특히 내공의 깊이와 단단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심법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원단심공을 바탕으로 펼치는 심무외의 홍옥마수는 실로 무서웠다·
쩌적!
홍옥마수에 걸린 어깨 살점이 뜯겨 나갔다· 은혼기로 전신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어깨가 통째로 잘려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소금향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암혼대가 달려들고 있었다·
암혼인들은 등유명에게 했던 것처럼 소금향에게도 똑같이 했다· 육탄으로 달려들어 저지하고 자폭을 해서 상처를 입히고·
일련의 공격에 소금향이 큰 충격을 받고 비틀거릴 때 심무외가 홍옥마수를 펼쳤다·
쩌어엉!
“아악!”
결국 소금향이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등유명에 이어 소금향마저 무력화되자 모용율천이 걸음을 내디뎠다·
등유명이 그런 모용율천의 모습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비겁하구나 모용율천· 부하들을 대신 내세우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천하의 지배자라 자부할 수 있는가?”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뿐이라네·”
“아니 당신은 비겁자에 겁쟁이다· 나와 싸웠다가 질 것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비겁자·”
등유명의 독설에 모용율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패배자의 변명을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구나·”
순간 모용율천의 모습이 등유명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모용율천이 다시 모습을 보인 곳은 바로 등유명의 코앞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이동해 온 것이다· 등유명조차도 그의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모용율천의 손이 부드럽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치 사랑스러운 연인의 볼을 쓰다듬듯 그렇게 부드러운 손짓이었다·
순간 등유명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
그의 목을 따라 붉은 호선이 생겨났다· 호선을 따라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툭!
호선을 따라 흘러내린 등유명의 머리통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바닥을 떼구르 구른 등유명의 머리가 모용율천의 발 앞에 멈춰 섰다·
“야주!”
소금향의 처절한 절규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모용율천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등유명의 머리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과 시선을 맞추게 했다·
“진작 이렇게 정리했어야 했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군· 그래도 그동안 좋은 꿈을 꿨으니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게야·”
퍼석!
그가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등유명의 머리통이 산산이 박살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때였다·
“야주!”
절규를 내지르며 피투성이가 된 인영이 모용율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등유명의 제자인 궁문휘였다·
사부의 죽음을 목도한 그의 눈에 이성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죽인다·”
“안 돼!”
모용율천을 향해 달려드는 궁문휘를 보며 소금향이 소리쳤다· 그 순간 심무외가 소금향의 가슴을 향해 홍옥마수를 펼쳤다·
콰직!
소금향의 가슴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렸다· 소금향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궁문휘를 향해 있었다·
“이야아!”
궁문휘가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모용율천을 향해 일권을 날렸다·
콰아아!
묵빛의 권강이 모용율천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모용율천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젓는 순간 가슴 앞에 검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궁문휘가 내지른 권강은 검은 공간에 집어삼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슨?”
궁문휘가 놀라 눈을 치뜬 순간 모용율천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가 궁문휘의 가슴에 부드럽게 손을 대는 순간 검은 공간에 집어삼켜졌던 권강이 발출됐다·
쾅!
“컥!”
자신이 내질렀던 권강에 강타당한 궁문휘의 신형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공간격참수(空間隔斬手) 모용율천이 이화접목을 연구해 만들어낸 희대의 괴공이 궁문휘를 향해 펼쳐진 것이다·
궁문휘는 피투성이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그런 그들을 향해 암혼대가 달려들었다·
심무외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궁문휘의 몸은 암혼대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갈가리 해체될 것이다· 그 잔혹한 모습을 굳이 두 눈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궁문휘가 암혼대에 난도질당하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궁문휘가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있기라도 한 듯 허공을 향해 쑥 딸려 올라갔다· 그 때문에 암혼대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커다란 나무 위였다·
나무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혼절한 궁문휘가 걸려 있었다·
위기의 순간 허공섭물로 궁문휘를 구한 남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진무원이 위태하게 낭창낭창 휘어진 얇은 나뭇가지 위에 서서 모용율천을 내려다보았다·
모용율천과 진무원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