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 8장 하늘이 무너져도 버텨야 할 때가 있다 (2)
푹!
진무원이 검결지로 용무성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거골혈(巨骨穴)을 제압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른쪽 팔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을 테지만 용무성은 달랐다·
“흐으!”
용무성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용린도를 휘둘렀다· 진무원은 간신히 용린도를 피한 뒤 다시 목 뒤쪽의 천주혈(天柱穴)을 공격했다·
퍽!
보통 사람이라면 전신이 마비되었을 공격에도 용무성은 끄덕하지 않았다· 오히려 흉성을 터뜨리며 진무원을 공격했다·
용린도와 육각단봉이 번갈아 진무원을 공격했다· 용린도를 피했다 싶으면 육각단봉이 날아와 생명을 위협했다·
쉬쉭!
장병인 용린도와 단병인 육각단봉의 조합은 무척이나 위력적이었다· 용무성의 방원 십여 장이 완벽하게 그의 권역하에 들어갔다· 일반 무인이었다면 용무성이 발산하는 강력한 기운에 짓눌려 벌써 손발이 어지러워졌을 것이다·
진무원은 용무성의 공격을 피하며 외쳤다·
“용 문주님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그의 음성은 용무성에게 집중되어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용무성이 일순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용무성이 이내 고개를 흔들며 다시 진무원을 향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런 용무성의 모습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아직 용 문주의 이지가 완전히 제압된 것이 아니다·’
이지가 완벽하게 제압된 것이 아니라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대법을 풀 수도 있을 것이다·
“흐아앗!”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진무원에 분노한 용무성이 더욱 거세게 공격해 왔다·
진무원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용무성을 제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를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진무원 역시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진무원은 마음속에 있는 검을 떠올렸다·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죽을 위험도 있었다· 차라리 죽이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용무성이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용린도가 진무원의 인중을 노리고 육각단봉이 무서운 기세로 허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야말로 인정사정없는 손속이었다·
진무원은 이제까지와 달리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무성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쉬가악!
간발의 차이로 용린도를 피해내고 육각단봉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용무성의 동작에 처음으로 파탄이 일어났다· 진무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설화야!’
마음속의 검 심검(心劍)이 용무성의 목을 향했다·
심검으로 용무성의 뒤통수에 있는 옥침혈(玉枕穴)을 파고드는 상상을 했다· 그의 상상은 현실로 이뤄졌다·
순간 용무성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옥침혈은 강한 힘으로 자극받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주요 사혈 중 하나였다· 광기와 내공으로 다른 요혈들을 외부의 충격에서 보호할 수 있었지만 이런 사혈은 워낙 연약해서 쉽게 강화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진무원은 심검을 절묘하게 운용해서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다·
“문주님·”
진무원이 용무성을 제압하자 종리무환과 채약란이 달려오려 했다· 하지만 진무원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두 분은 이대로 호법을 서주십시오·”
“아!”
진무원의 말에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멈추고 급히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밀야와 무적세가는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에 휘말렸다가 용무성이 휘말렸다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다· 그들은 진무원과 용무성의 주위로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경계를 섰다·
그사이 진무원은 용무성의 맥문을 잡고 그림자 내공을 주입했다· 순간 용무성의 몸이 크게 퍼덕거렸다·
용무성의 내공이 반항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림자 내공은 솜에 스며드는 물처럼 그렇게 소리도 없이 용무성의 몸을 잠식해 갔다·
진무원은 용무성의 몸 안에서 느껴지는 내공의 흐름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상식을 벗어난 경로로 내공이 운용되고 있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처럼 불안정했다·
진무원은 그림자 내공을 더욱 강하게 주입해 용무성의 혈맥을 샅샅이 훑었다· 비정상적인 흐름이 시작된 근원을 찾으려는 것이다·
순식간에 팔다리를 훑고 몸통을 헤집은 그림자 내공은 용무성의 목으로 치달아 올랐다·
꿈틀!
그 순간 용무성의 몸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여기구나·’
진무원의 눈이 빛났다·
천주혈과 풍부혈 백회혈이 이질적인 기운으로 꽉 막혀 있었다· 세 대혈 모두 목과 머리 사이에 위치한 주요 대혈이었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목숨이 위험한 것은 둘째 치고 뇌에 손상을 입어서 이지를 상실할 수 있었다·
모용율천은 잔인하게도 용무성의 세 대혈에 자신의 기운을 심어서 이지를 제압했다· 세 대혈을 제압한 기운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세 대혈을 잠식한 기운을 동시에 제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균형이 깨진다면 용 문주의 뇌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진무원은 그림자 내공으로 세 대혈을 조심스럽게 자극했다· 그러자 강한 반진력이 느껴졌다·
진무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 대혈을 잠식하고 있는 기운의 기반이 워낙 견고한 것이 마치 커다란 벽이 자리 잡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벽이 놀랍게도 용무성이 본래 갖고 있는 기운과 큰 이질감이 없어 보였다· 하루 이틀 사이에 자리를 잡은 기운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건 마치 오래전부터 용 대협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진무원의 눈빛이 침중하게 변했다·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모용율천이 아주 오래전에 친혈육인 용무성의 머릿속에 이지를 제어할 수 있는 기운을 심어놓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용 문주의 이지를 제압해 이용할 생각이었던 건가?’
모용율천이 용무성에게 펼친 것은 천형금뇌술(天刑禁腦術)이라는 것이었다· 십여 세를 넘지 않은 어린아이의 머리에 천형금뇌술을 펼쳐 독문의 기운을 심어놓는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표가 나지 않고 자아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운이 쇠하지 않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시전자가 원하는 때에 기운을 발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천형금뇌술이 펼쳐진 자는 시전자의 꼭두각시가 된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든 간에 말이다·
모용율천의 심모원려한 계략과 친혈육마저 아무렇지 않게 도구로 이용하는 독심에 치가 다 떨릴 지경이었다·
‘할 수 있을까?’
진무원이 잠시 세 대혈을 잠식하고 있는 기운을 가늠하다가 마음속에 검을 그렸다·
심검이 세 대혈을 장악하고 있던 천형금뇌술의 기운을 성둥 잘라냈다·
“컥!”
순간 용무성이 시커멓게 죽은피를 토해냈다· 부릅뜬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문주님!”
종리무환과 채약란이 동시에 용무성을 불렀다· 하지만 용무성은 대답하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했다·
진무원이 대답했다·
“혼절한 것뿐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문주님은 괜찮소?”
“일단 지켜봐야 알겠지만 괜찮은 것 같습니다·”
“고맙소 진 문주· 정말 고맙소·”
종리무환이 진무원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까지 진무원을 질시하고 경계해 왔던 종리무환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는 그런 마음을 모두 날려 버렸다·
진무원은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용무성을 구해줬다· 그런 은혜를 모른 척한다면 인간도 아니었다·
잠시 용무성의 상태를 살피던 진무원이 몸을 일으켰다·
“두 분은 빨리 용 문주님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금제하고 있던 기운을 제거했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안전한 곳에서 정양을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진 문주님·”
종리무환과 채약란이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표했다·
콰아앙!
그 순간 무적세가 안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오더니 강렬한 기파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크윽!”
종리무환과 채약란이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하고 기파에 휩쓸려 비틀거렸다·
“무슨?”
두 사람의 안색이 싹 변했다·
무적세가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들의 격돌로 인해 대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진무원의 안색 또한 침중하게 변했다·
“두 분은 어서 용 문주님을 모시고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진 문주는?”
“저는 알아서 행동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문주님을 구해준 보답은 다음에 확실히 하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빠져나오십시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무원의 대답에 종리무환이 용무성을 들쳐 업었다· 그러곤 채약란의 보호 아래 무적세가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진무원은 기파의 근원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쿨럭!”
담적심이 피를 울컥 토해냈다· 그런 그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등유명과의 격돌에서 손해를 본 것이다·
“제법이구나·”
담적심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등유명을 노려보았다· 이번 격돌에서 우위를 차지했지만 등유명의 안색은 어두웠다·
무극열환권(無極熱火拳)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절초를 사용하고도 담적심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적심은 강호의 신비지처인 불귀곡의 주인답게 강대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무력은 내심 천하제일을 자처하던 등유명에 비해 그리 뒤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담적심은 어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용율천이었다·
모용율천은 입가에 미소를 담은 채 네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그들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개입하는 순간 전황이 어떻게 기울지 명약관화했다·
‘그가 개입하기 전에 단숨에 승부를 낸다·’
등유명이 이빨을 깨물었다·
결심을 굳히자마자 그가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후웅!
그에 반응이라도 하듯 대기가 요동을 쳤다·
담적심의 안색이 싹 변했다·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등유명이 담적심을 향해 들소처럼 달려들었다·
콰아아!
나선을 그리는 그의 주먹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극광멸화(無極狂滅火)·
무극열화권 중에서도 가장 파괴력과 살상력이 강한 초식이 담적심을 향해 펼쳐졌다·
담적심도 그에 대응해 무형탄강(無形彈罡)이라는 절초를 펼쳐 냈다· 무형의 탄강(彈罡)이 승천하는 용처럼 그의 몸을 휘감았다가 발출됐다·
쿠우우!
대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대지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뒤이어 그들이 격돌했다·
콰아아앙!
수십 개의 벽력탄이 동시에 터진 듯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크윽!”
담적심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발출한 무형탄강이 산산이 깨져 나갔다· 그 충격으로 내장과 머리가 진탕되었다· 사물이 두세 개로 겹쳐 보이는 그 짧은 순간 등유명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충격을 받은 것은 등유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금강불괴지신을 이룬 지 오래였다· 이 정도의 충격 따윈 아무렇지 않게 소화할 수 있었다·
등유명의 발목을 시작으로 무릎 허리 몸통 어깨가 팽이처럼 무섭게 돌아갔다·
콰아아!
순간 강력한 전사력(轉絲力)과 전인력(椄引力)이 동시에 발생해 담적심의 동체를 끌어들였다·
담적심은 접인력에 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그 힘을 역이용해 몸을 날렸다·
그의 양손이 붉은 수강(手罡)을 머금은 채 등유명의 육중한 동체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콰지직!
놀랍게도 수강으로 보호한 양손이 등유명의 동체에 걸린 전사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갔다·
“크억!”
양손이 튕겨져 나가고 가슴이 활짝 열렸다· 등유명의 몸통 공격은 그런 담적심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앙!
벽력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담적심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바닥을 나뒹구는 담적심의 눈에 산 자의 생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극천원벽(無極天元壁) 무극열화권 비전의 몸통 공격이었다· 금강불괴지신을 기반으로 펼치는 전사력이 담긴 몸통 공격은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금강불괴지신이라 할지라도 담적심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낸 충격은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등유명은 애써 치솟아 오르는 핏물을 억누르며 모용율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시 그의 육중한 동체가 전사력을 발산하며 모용율천을 향해 쇄도했다· 무극천원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 것이다·
쿠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