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4장 혼돈의 바람이 북쪽 하늘을 뒤덮으니······ (3)
“끄으으!”
바닥을 구르는 노지광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겨우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회색의 거한이 박살이 난 문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광기 어린 붉은 눈동자·
‘괴 괴물·’
“쿨럭!”
노지광이 기침을 하자 내장 조각이 섞인 선혈이 흘러나왔다· 회색 거한의 한 수에 가슴뼈가 모조리 부러지면서 장출혈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야 겨우 출세하게 되었는데 이게 무슨 개 같은····’
장패산의 개가 되어 삼 년이나 북방의 오지에서 썩었다·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이제야 중원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대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 순간 거한의 커다란 발이 그의 머리통을 밟았다·
콰직!
마치 잘 익은 수박처럼 노지광의 머리통이 깨지며 골편과 회백색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큭!”
거한 태무강이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북천문을 바라보았다·
그 옛날의 위상을 말해주듯 고루전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뿐 실상을 들여다보자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고 위태로웠다·
“생각보다 초라하군 북천문·”
힘이 없으면 도태되는 곳이 강호이다· 강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패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게 본다면 하등 억울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태무강이 북천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그의 보보마다 패기가 흘러나와 대지를 잠식해 갔다·
거칠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는 굳이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디에 있느냐 꼬맹이?”
그녀가 도망갈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북천문 주위를 회혼랑이 완벽하게 포위했기 때문이다· 경계를 서던 외당 삼조로는 결코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태무강의 몸에서 실타래처럼 기운이 풀려나와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절정의 무인들이 기감으로 타인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범위가 보통 이십여 장 정도이다· 하지만 그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그 몇 배 이상이었다·
태무강이 히죽 웃었다·
거미줄처럼 퍼진 그의 기감에 유난히 강한 기운이 몰려 있는 공간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휘영전이었다·
태무강이 휘영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결코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원래 노련한 사냥꾼일수록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잇감을 사냥하는 법이었다·
“누구냐?”
휘영전을 지키던 전호대 무인들이 태무강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하지만 태무강은 그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휘영전을 바라봤다·
“크큭! 그 안에 있느냐 꼬맹이?”
그때는 용케 빠져나갔지만 두 번 다시 그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호대주 목운평이 앞으로 나섰다·
“누구냐고 물었다·”
목운평의 눈엔 은은한 살기가 떠올라 있었다·
태무강이 그제야 목운평을 바라보았다·
광기가 태풍처럼 회오리치고 있는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목운평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무 무슨 눈빛이····’
목운평은 자신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거대한 흑곰 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느낌이다·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눈앞에 둔 느낌· 생전 처음으로 오금이 저리고 피가 바싹바싹 말라왔다·
태무강이 입을 열었다·
“네놈은 감히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다·”
마치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듯한 그의 음산한 음성에 목운평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순간 목운평의 얼굴에 수치심이 떠올랐다· 검로를 걷는 무인이 겨우 상대방의 기세에 눌려 물러났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놈을 포위하라! 절대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
“존명!”
전호대 무인들이 태무강을 포위했다· 그들의 몸에서는 살벌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태무강은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오직 한 곳 바로 휘영전이었다·
“꼬맹아 이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이 죽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스스로 나오는 게 좋을 것이다·”
“쳐랏!”
목운평의 외침에 전호대가 일제히 움직였다·
쉬라락!
파락거리는 옷 스치는 소리와 함께 전호대의 검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와 태무강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태무강의 거체가 금방이라도 검기에 난도질당할 것 같았다·
우우웅!
그 순간 태무강의 회색 장포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혼탁한 기운이 흘러나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회색의 기운은 반투명한 구체로 변해 태무강의 전신을 보호했다·
쿠와아앙!
“크헉!”
“억!”
굉음과 함께 쇄도하던 전호대의 무인들이 일제히 뒤로 튕겨 나왔다· 전호대의 무인들이 애써 만들어낸 검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상을 입은 듯 입가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렸다·
“바 반탄강기((反彈罡氣)?”
목운평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동자는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흔히 노회한 강호인들은 무공에 경지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한다· 대략적인 분류는 될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낮은 경지에 분류된 무인들이 높은 경지에 이른 무인들을 이기는 일이 심상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 강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지에 걸맞은 실전의 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열을 나누기 좋아하는 강호인들은 몇 가지 기준으로 무공의 경지를 나누곤 했다·
검사(劍絲)를 발산하는 경지에 이른 자를 일류라 칭하고 검사를 넘어서 검기를 만들어내는 경지를 절정(絶頂)이라 부른다·
절정의 경지를 뛰어넘어 강기(罡氣)를 발산하는 경지에 이른 자를 초절정의 무인이라 부른다· 이 정도 경지만 되어도 두려울 것이 거의 없다 할 수 있었다·
초절정에 이른 자들은 검기를 유형화해서 검강(劍罡)을 만들 수도 있었고 도강(刀罡)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들이 만든 강기의 결정체는 같은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절대 막을 수가 없다 했다·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은 내공이 마르지 않아 스스로를 보호하는 강기의 막(膜)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가리켜 호신강기(護身罡氣)라고 불렀다·
초절정의 고수가 만들어낸 호신강기는 무적의 방패 같아서 같은 경지에 이른 무인이 아니면 절대로 파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강호인들은 호신강기를 가리켜 최강의 방호공(防護功)이라 불렀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호신강기를 단순한 방호공의 개념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적이 공격한 힘을 배가시켜 피해를 되돌려 주는 방법을 알아냈고 이를 가리켜 반탄강기(反彈罡氣)라고 불렀다·
반탄강기는 호신강기보다 훨씬 더 고도의 공부였고 초절정의 무인들조차 차별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펼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눈앞의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반탄강기를 펼쳐냈다· 그 말은 곧 상대가 초절정을 넘어선 측정 불가 즉 절대의 존재라는 뜻이다·
자신의 수준으로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목운평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반탄강기에 당한 다른 전호대의 무인들은 내장이 진탕됐는지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몰살당할 판이다·
목운평의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강호에서 살아가는 무인·
죽음이 두렵다고 자꾸 물러서다 보면 종국에 그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한 점의 희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싸워야 했다·
그것이 강호에 사는 자의 숙명이었다·
목운평은 오래전에 강호인의 숙명을 깨달은 자였다·
목운평이 검으로 태무강을 겨눴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백이 공기를 타고 태무강에게 전해졌다·
“이곳은 내가 지키는 곳 나의 주검을 밟기 전에는 절대로 넘어갈 수 없소·”
태무강이 처음으로 목운평을 제대로 바라봤다·
이 정도 기백을 가진 자라면 한 명의 당당한 무인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애송이 이름은?”
“목운평· 별호는 혈우검(血雨劍)이라 하오·”
“좋은 이름 좋은 기백· 내 이름은 태무강이다·”
이 정도의 기백을 지닌 자라면 자신의 이름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들은 자 중 살아남은 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챠앗!”
목운평이 태무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평생을 참오한 소혼화혈검(燒魂和血劍)이 그의 손에서 펼쳐지며 부챗살처럼 붉은 검기가 태무강을 휩쓸어갔다·
우웅!
주인의 절박한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목운평의 검이 울음을 토해냈다·
“호! 검을 울게 했는가?”
태무강이 더욱 감탄했다·
단순히 검명(劍鳴)만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공이 일정 경지에 오르고 내기가 무기와 상통(相通)할 수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생사가 걸린 백척간두에서 진정으로 검을 울게 할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검을 울게 했다면 그 역시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줘야 한다·
태무강이 목운평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류류!
일진광풍이 불었다·
그의 몸을 둘러싼 반탄강기가 회전하면서 회오리를 일으킨 것이다·
혼마회선강(混魔回旋罡)·
태무강을 증명하는 성명절기였다·
쿠콰쾅!
폭풍이 휘몰아치고 혈구 하나가 뒤로 튕겨나갔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목운평이라고 불리던 남자의 짓이겨진 육체였다·
“대주!”
목운평이 육체가 부서지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본 전호대의 무인들이 절규했다· 태무강은 그런 그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너희도 그를 따라가거라·”
촤라라락!
그의 몸에서 예의 혼탁한 강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와 전호대를 덮쳐갔다·
전호대의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미처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휘익!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쿠와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