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 5장 잃을 것이 없기에 모든 것을 건다 (1)
진무원과 마도광은 안강(安康)과 평리(平利) 사이에 있는 이름 없는 야산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같은 섬서성에 있는 종남산이나 화산만큼 높고 험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산세가 거친 편이어서 한밤에 마음 놓고 다닐 만큼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노숙할 곳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두 사람 모두 노숙이라면 이골이 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노숙하기 좋은 지형을 금방 찾아냈다· 개울가에 있는 커다란 바위 사이였는데 비바람을 막고 식수를 구하기 딱 좋아 보였다·
“주군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이 마도광이 금방 식사를 해 올리겠습니다·”
“건량을 먹으면 되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으하하! 사람이 어찌 마른 곡물 쪼가리만 먹고 살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마도광이 큰 웃음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마도광의 모습에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마도광은 무척이나 흥겨운 듯했다· 특히 진무원과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기분이 고조되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진무원은 마도광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역경을 헤쳐 왔는지 하나도 숨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속내를 다 털어놓다 보니 조금은 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진무원 자신이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것처럼 마도광 역시 거친 가시밭길을 헤쳐 왔다·
천여 명에 달하는 마적 떼들을 건사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위기를 넘기면서 오늘날의 세력을 만들었고 또 그 거대한 세력을 고스란히 북천문에 편입시켰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까워할 만도 하건만 그는 오히려 홀가분해했다· 그 이유를 묻자 마도광은 가슴을 쾅쾅 치며 이렇게 대답했다·
“우두머리 노릇 하니 좋기는 한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머리도 써야 하고 부하들도 다독여야 하고·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합니까? 머리는 군사가 쓰고 책임은 문주님이 지고· 저는 힘만 쓰면 되니까요· 하하하!”
마도광의 능청스런 대답에 진무원은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진무원은 마도광과 조금 더 일찍 이런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마도광과 조금 더 친해지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무원은 미소를 지은 채 나뭇가지를 주워 왔다· 나뭇가지를 쌓고 삼매진화로 불길을 일으켰다· 마른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타올랐다·
그때 마도광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 그의 등 뒤에는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실려 있었다·
털썩!
마도광은 멧돼지를 개울가에 내동댕이쳤다·
“주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가 진무원을 보고 씨익 웃더니 허리에서 소도 한 자루를 꺼내 멧돼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긁어냈다·
커다란 멧돼지가 순식간에 잘 손질된 고깃덩이로 탈바꿈했다· 마도광은 고깃덩이를 가지고 진무원이 앉아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가느다란 나뭇가지 몇 개를 고기에 끼워 불에 올렸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흐흐! 고기엔 술이 빠지면 섭섭하지·”
마도광이 말 위에 싣고 왔던 짐을 뒤졌다· 그러자 술이 든 항아리가 나왔다· 마도광은 항아리를 진무원 앞에 내려놨다·
“한잔하셔야죠?”
“물론입니다·”
진무원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마도광이 미소를 지으며 근처에 나뒹구는 통나무를 주웠다· 예의 소도로 몇 번 통나무를 다듬자 금세 훌륭한 나무 잔이 만들어졌다·
마도광이 진무원의 나무 잔에 술을 가득 따라준 후 자신의 잔에도 가득 채웠다· 진무원은 마도광과 술잔을 부딪친 후 입에 가져갔다·
“크으!”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도광이 내놓은 술은 무척이나 독했다· 한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짜릿해질 정도였다·
“흐흐! 어떻습니까?”
“굉장한데요· 어디서 구한 겁니까?”
“서부고원에 있을 때 캔 약초들로 담근 겁니다· 무척 독할 겁니다· 그래도 정력에는 최고입니다· 앞으로 문주님께 많이 필요할 테니 본문으로 돌아가면 따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흐흐!”
“고맙습니다·”
진무원은 사양하지 않았다·
마도광은 격의 없이 진무원과 농지거리를 나눴다· 진무원은 그런 시간이 싫지 않았다·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멧돼지 고기가 익었다· 독주에 멧돼지 고기는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금세 술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저기 불빛이다·”
“저곳으로 갑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나눌 때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고기와 술잔을 내려놓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어둠을 뚫고 십여 명의 도사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진무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마시장에서 보았던 종남파의 도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꽤나 고생을 했는지 그들은 무척이나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온 말은 혀를 길게 내밀고 있었고 거친 숨을 토하고 있었다· 그중 몇 마리는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널브러져 움직일 줄 몰랐다·
도사들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떠올랐다·
“이놈들이 속을 썩이더니 기어이····”
도사들이 말에 채찍질을 했지만 움직일 줄 몰랐다· 이 상태라면 당장 내일 출발하는 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허! 돌아가는 대로 마시장 주인을 족쳐야겠구나· 이따위 말을 내주고 돈을 받다니·”
“저희 종남파를 우습게 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쉬기로 하지·”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자의 말에 중구난방 떠들던 도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눈치가 빠른 도사 한 명이 진무원과 마도광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종남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오· 보다시피 뜻하지 않게 노숙하게 되었으니 도와주길 바라오·”
“어떻게 말입니까?”
“자리를 양보해 주시구려· 이곳이라면 우리가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구려·”
도사의 말에 마도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도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가는 섭섭지 않게 지불하겠소·”
그는 품에서 은자 넉 냥을 꺼내 진무원과 마도광 앞에 던졌다· 은 한 낭이면 사 인 가족이 두 달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을 만큼 거금이었다· 하물며 네 냥이었다· 도사는 이 정도면 두 사람이 감지덕지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진무원과 마도광은 두 눈만 멀뚱거릴 뿐 은자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걸로 모자라다는 거요? 욕심도 많군·”
도사가 다시 은자 두 냥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진무원과 마도광은 반응하지 않았다· 너무 기가 막혀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흠흠!”
두 사람이 반응하지 않자 도사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헛기침을 했다· 알아서 물러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진무원과 마도광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우두머리 도사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의 도호는 청율· 장문인인 청학진인의 사제이자 종남파에서도 장로직을 맡고 있는 지고한 신분이었다·
“무량수불! 본도는 종남파의 청율이라고 하네· 우리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운중천으로 가니 편히 쉴 수 있게 자리를 양보해 주게· 보아하니 노숙에 능한 것 같은데 자네들 정도라면 다른 곳에 가도 금세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네·”
“거참! 살다 보니 별 개소리를 다 듣겠네·”
청율 진인의 말에 마도광이 어이없다는 듯이 한마디를 했다· 그에 종남파 도사들의 안색이 싹 변했다·
“지금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가? 개소리라는 말이?”
“귓구녕이 막혔나? 그럼 이 자리에 또 누가 있어 개소리를 지껄인단 말인가?”
“이자가!”
청율 진인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그때 도사들 중 한 명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자들은 석천의 마시장에서 말을 샀던 자들입니다· 우리가 도와달라고 했는데도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명문 종남에서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그냥 지나친 것을 보니 사파의 무인이 틀림없습니다·”
종남파의 도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한 마디씩 하자 장내가 금방 시장 통처럼 시끄러워졌다·
청율 진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무원과 마도광을 노려보았다·
진무원은 별 반응이 없었다· 완벽한 무시였다· 반대로 마도광은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인상이 일그러지자 더욱 섬뜩해 보였다·
청율 진인이 마도광을 보며 말을 이었다·
“본도가 누군지 알면서도 그런단 말인가?”
“흐흐! 종남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감히!”
청율 진인의 눈썹이 분노로 치켜 올라갔다· 그 순간 마도광이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덩치를 가진 마도광이 몸을 일으키자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에 청율 진인과 종남파의 도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자신들의 추태를 깨달은 그들의 얼굴에 이내 수치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감히!”
청율 진인이 화를 폭발하기 직전 진무원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정중히 물었다·
“종남파의 청율 진인이라 하셨습니까?”
“그 그렇다·”
“운중천으로 간다 하셨습니까?”
“그렇다·”
“혹시 무슨 일로 가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감히 운중천과 종남파의 기밀을 알고 싶단 말인가?”
“기밀입니까?”
진무원의 눈이 빛났다·
작년까지 종남파가 있던 섬서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 비록 올해 들어 전장이 산서성으로 옮겨갔다고 하지만 종남파가 따로 전력을 빼서 운중천으로 보낼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청율 진인이라면 종남파에서도 장로에 속하는 인물· 그런 인물이 빠진다는 것은 엄청난 전력의 손실이었다·
‘엄청난 전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운중천에 이들을 보낼 이유가 뭘까?’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진무원이 마도광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마도광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위 은자 필요 없으니까 가던 길이나 계속 가슈· 누굴 거지로 아나?”
마도광이 앞으로 나서며 은자를 걷어찼다· 그러자 은자가 청율 진인의 몸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청율 진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종남파의 도사들이 분노해 소리쳤다·
“장로님·”
“감히 종남파를 무시하다니·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종자구나·”
마도광의 도발에 종남파의 도사들이 걸려들었다· 그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마도광에게 덤벼들었다·
종남파의 절기인 천하검(天河劍)과 건곤산수(乾坤散手)가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살기가 담긴 그들의 공격에 마도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사들의 손속에 자비가 없구나· 으랏차!”
마도광이 솥뚜껑처럼 커다란 주먹을 내질렀다·
벽류신권(碧流神拳)·
이제는 잊어진 북천문의 옛 절기였다· 중원 각지에서 들어온 권공들의 장점을 조합해 만든 권공이었다· 북천사주에 의해서 북천문의 절기들이 흩어졌지만 벽류신권만은 온전히 마도광의 손에 남아 있었다·
퍼버버벅!
엄청난 경력이 담긴 마도광의 주먹질에 종남파 도사들의 검이 부서지고 팔목이 부러졌다·
“크억!”
“아아악!”
비명과 함께 종남파의 도사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마도광은 그런 종남파의 도사들을 머리를 걷어찼다· 십여 명의 도사들이 순식간에 두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그 광경을 본 청율 진인이 대로해 검을 뽑아 들었다·
“종남파의 무인을 공격하다니· 마인이 분명하구나·”
“무슨 개 뼉따귀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공격은 지들이 해놓고서·”
“시끄럽다·”
청율 진인이 마도광을 향해 천하삼십육검(天河三十六劍)의 절초인 천하격류(天河激流)를 펼쳤다·
슈우우우!
허공이 청율 진인의 검으로 뒤덮였다·
천하삼십육검은 종남파의 최고 검공이었다· 그 위력 또한 천하의 검공 중에서 수위를 다툴 만큼 대단했다· 그는 이 한 수로 마도광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은 마도광이 벽류신권의 절초인 벽류추지(碧流推地)의 초식을 펼쳤을 때 금이 간 도자기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푸른 기운이 대지를 밀어내듯 천하격류의 초식을 밀어내더니 청율 진인의 몸을 강타했다·
콰직!
“컥!”
청류진인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청류진인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방어를 단단히 하려 했지만 그가 본 것은 마도광의 커다란 주먹이었다·
쾅!
마도광의 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한 청류진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그나마 마도광이 손속을 봐주지 않았다면 머리가 깨진 호박처럼 산산이 박살 나고 말았을 것이다·
“캭! 퉷! 별것도 아닌 것들이·”
마도광이 손을 탈탈 털며 가래침을 뱉었다· 그야말로 가공할 무위였지만 마도광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진무원이 혼절한 청율 진인에게 다가갔다· 청율 진인은 발작적으로 몸을 떨 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진무원이 그의 품에 손을 넣었다· 잠시 후 빠져나온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첩지가 들려 있었다·
첩지는 종남파 장문인의 인장이 찍힌 채 밀봉이 되어 있었고 겉면에는 일곱 글자가 쓰여 있었다·
-운중천 총관 친전(雲中天 總管 親展)·
운중천의 총관인 관대승에게 가는 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