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 4장 대말살지계(大抹殺之計), 짐승들의 싸움··· (3)
“아악!”
“사 살려줘!”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밀야의 무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정양에 있는 일반 백성들도 섞여 있었다·
“밀야가 기생할 수 없게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죽여라·”
정양을 향해 진격하는 무인들에게 떨어진 명령이었다·
운중천이고 사사천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명령을 받았다· 인간성이 말살된 명령이었지만 누구 한 명 그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오랜 전쟁에 지쳤다· 그들은 아예 밀야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지 않는 이상 전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그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다·
죽이고 또 죽였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며 그들은 전진을 했다· 그야말로 죽음의 행군이었다·
“어서 막아!”
“저 미친 새끼들!”
밀야의 무인들이 그들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물량 공세로 밀고 들어오는 적들에게 연신 밀렸다·
무엇보다 절대고수의 수가 부족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야주인 등유명은 물론이고 철혈마룡 궁문휘 그리고 소금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궁상화가 천무대와 함께 고군분투했기에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무척이나 위태해 보였다·
“제기랄!”
궁상화의 눈에 암담한 빛이 떠올랐다·
수없이 운중천과 싸워온 궁상화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운중천의 변화에 민감했다· 그런 그조차 운중천이 이렇게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미친!”
치가 떨렸다·
운중천과 사사천 불귀곡의 무인들이 펼치는 미친 살육은 그조차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는 사람들은 모두 궁상화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죽음 앞에서 궁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궁상화의 눈에 핏발이 섰다· 분노로 가득한 그의 시선이 전장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우문천과 모용현이 싸우고 있었다· 우문천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태해 보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심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궁상화가 주먹을 꽉 쥐었다·
“정파를 자처하는 놈들이 이래도 되는 거야? 이 죄를 어떻게 갚으려고·”
“그러게 말이오·”
“누구냐?”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궁상화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러자 뒷짐을 쥐고 있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그를 보는 순간 궁상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너는··· 담수천?”
“오랜만이오·”
남자 담수천이 담담히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섬서성에 있는 게 아니었나?”
“엊그제 이곳에 도착했소·”
“우리의 감시망을 피해서 들어왔단 말인가?”
“밀야의 감시망이 생각보다 촘촘해서 무척 고생했소·”
“당신도 이 미친 짓에 동조한 것인가?”
“미친 짓이라····”
담수천이 착잡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정양에서 벌어지는 미친 살육제가 눈에 들어왔다· 한 폭의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역겹기 그지없었다·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하지만 담수천은 그들을 외면했다·
대(大)를 위해서는 소(小)를 희생해야 했다·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가슴은 아프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궁상화가 독설을 내뱉었다·
“실망이군! 천하의 창천무제가 이런 미친 짓에 동참을 하다니·”
“누구나 오물을 조금씩 뒤집어쓰고 살아가게 마련이오·”
“지독한 자기기만이군· 당신은 반드시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소면광살(笑面狂殺)이라 불리는 궁상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럴지도 모르지·”
담수천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 순간 궁상화가 달려들었다· 푸른 전포를 휘날리며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푸른 섬전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담수천이었다·
쾅!
궁상화의 일격이 담수천에게 막혔다· 궁상화의 어깨에 잔경련이 일었다· 단순히 일권이 막혔을 뿐인데 엄청난 반진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장이 찌르르 울렸다· 궁상화는 치밀어 오르는 피를 억지로 집어삼키며 다시 공격했다·
“챠앗!”
궁상화의 공격이 연거푸 담수천을 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담수천의 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궁상화의 공격을 모조리 무력화시켰다·
성광류(聖光流)·
모든 사마(邪魔)의 극성이 되는 신비의 무공이 펼쳐진 것이다· 빛에 휩싸인 궁상화의 모습은 너무나 위태해 보였다·
“대주!”
보통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큰 거한과 아름다운 여인이 궁상화의 위기를 보고 달려왔다·
천무대의 부대주들인 백인력한(百人力漢) 묵원광과 천변화(千變花) 율사화였다· 그들이 담수천을 향해 각자의 절기를 펼쳤다·
담수천의 눈가에 드리워진 그늘이 짙어졌다·
“나를 용서하시오·”
담수천이 강렬한 빛을 흩뿌리며 몸을 회전했다· 뒤이어 채찍처럼 두 주먹이 뻗어 나왔다·
광월제마(狂月制魔) 성광류의 절초였다·
순간 세상이 온통 흰빛으로 물들어가는 듯 보였다· 궁상화도 묵원광도 율사화도 하얀빛에 물들어갔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모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그리고 엄청난 굉음이 뒤이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육처럼 짓이겨진 두 구의 시신이 생겨났다· 묵원광과 율사화였다·
“흐억! 흐억!”
궁상화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는 하반신이 거의 다 날아가고 겨우 숨만 이어가고 있었다·
그가 겨우 고개를 들어 담수천을 올려다봤다·
“당신은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아니 후회하게 될 거야· 반드시! 흐흐····”
궁상화가 피에 물든 입술로 웃었다· 담수천은 그런 궁상화의 모습이 께름칙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죽어가는 자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궁상화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생아 부디····’
그의 고개가 덜컥 떨어졌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도 궁상화는 웃고 있었다·
담수천이 뒤돌아섰다· 그러자 모용현과 우문천의 싸움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 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 갑자기 모용현 주위에 서른여섯 명의 검수들이 나타났다·
똑같은 복장을 한 서른여섯 명의 검수들이 협공했다· 무적삼십육검수였다·
무적삼십육검수의 협공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같이 정묘했다· 그들의 합세에 모용현의 공격은 더욱 힘을 얻었다·
무적삼십육검수가 합세했음에도 우문천은 밀릴줄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에 힘에 부친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다 보니 육신이 예전 같지 않았다· 특히 지구력이 딸렸다· 그러나 우문천은 힘을 내서 창을 휘둘렀다· 그의 창에서 창강이 폭출했다·
콰직!
섬뜩한 파골음과 함께 무적삼십육검수 중 하나가 어육이 되어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우문천의 몸에 상처를 하나 남겼다·
무적삼십육검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이 뻔한데도 어떻게든 우문천의 몸에 상처를 하나라도 남기려고 악착같이 발악을 했다· 그렇다 보니 우문천의 몸에도 상처가 점차 늘 수밖에 없었다·
열 명의 무적삼십육검수가 죽었다· 그리고 우문천의 몸에도 열 개의 상처가 생겨났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후욱! 후욱!”
우문천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정신이 다 아찔해졌다· 사대마장이 된 이후 이렇게 많은 상처를 입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무적삼십육검수의 합공은 집요했다·
우문천은 무적삼십육검수의 독기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모용현이 물었다·
“마음에 드시오 선배?”
“뭐가 말이냐?”
“이들은 선배를 위해 준비한 물건들이오· 정확히는 사대마장을 잡기 위해 키운 녀석들이지·”
모용현이 무적삼십육검수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도 무적삼십육검수는 별반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우문천의 턱이 씰룩거렸다·
“영광이구나· 무적세가에서 이런 특별한 준비를 했다니·”
“선배는 특별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니까·”
모용현이 히죽 웃었다· 반대로 우문천의 표정은 더욱 침중해졌다·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이 우문천의 무덤 자리인가?’
우문천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순간 무적삼십육검수의 파상 공세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우문천은 무적삼십육검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무적삼십육검수 뒤쪽에 있는 모용현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용현은 굳이 무적삼십육검수를 동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도 굳이 무적삼십육검수를 동원했다·
확실하게 우문천을 죽이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겠다는 비겁함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다·
우문천은 그런 모용현의 비겁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가 모용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적삼십육검수의 검이 그의 전신을 난도질할 듯 날아왔다· 우문천은 피풍의에 공력을 가득 주입했다·
피풍의가 철판처럼 일어섰다· 그 위로 무적삼십육검수의 검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뚜다다다당!
철판에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문천의 몸이 흔들렸다· 내장을 울리는 충격에 코피가 터지고 입가에서도 혈흔이 내비쳤다·
흑익이 깨지며 그의 전신에 새로운 상처가 수십여 개가 생겨났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상만 다섯 곳이 넘었다· 그런데도 우문천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상처를 감수하고 향하는 곳에 모용현이 있었다· 모용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 역시 우문천이 설마 모든 공격을 도외시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들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문천의 신창이 쏘아졌다·
쐐애액!
소름 끼치는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모용현이 급한 대로 황금신수를 펼쳐 자신을 보호했다·
쩌어엉!
“크윽!”
쇳소리와 함께 모용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급하게 펼친 황금신수가 깨져 나가며 우문천의 창이 그의 왼쪽 어깨와 뺨을 헤집어놓았다·
“주군!”
무적삼십육검수가 우문천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푸푹!
흑익은 더 이상 우문천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우문천은 고슴도치처럼 검에 꽂힌 채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아악!”
모용현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감미로운 자장가처럼 귓전에 울려 퍼졌다· 모용현은 피투성이가 된 어깨와 뺨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는 어깨의 상처보다 관옥과도 같던 얼굴에 생채기가 생긴 것에 더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모용현이 눈을 치켜뜨고 우문천을 향해 다가왔다· 우문천은 거의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뒈져!”
모용현이 우문천의 뒤통수에 검을 찔러 넣었다· 우문천의 몸이 작살에 꿰인 생선처럼 퍼덕거렸다·
‘야주 부디····’
우문천의 사고가 끊겼다·
하지만 모용현은 성이 안 풀리는지 연신 검을 찔렀다·
푹푹!
찌르고 또 찔렀다· 우문천의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지만 모용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의 잔혹한 모습에 무적삼십육검수마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크흐!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소?”
그의 광기는 낯선 음성이 개입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모용현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그러자 뒷짐을 쥔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담수천의 모습이 보였다·
모용현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지금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건가?”
“진정을 하라는 거요·”
“감히 나에게····”
모용현의 눈가에 살기가 어렸다·
누구도 감히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무적세가의 장로들조차도· 하지만 담수천은 무적세가의 사람이 아니었다·
뒷짐을 쥐고 있는 담수천의 전신에서 패도적인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에 살아남은 무적삼십육검수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어렸다·
우문천이라는 절대고수를 죽인 무적삼십육검수였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담수천에겐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모용현도 마찬가지였다· 담수천의 강렬한 안광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흥분했던 심장이 진정되면서 냉정을 되찾았다·
‘이놈!’
속에선 열화가 들끓어 올랐지만 지금은 담수천과 반목할 때가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은 말이다·
‘조만간 네놈은 내 발아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모용현은 이빨을 빠득 갈며 고개를 돌렸다· 그에 담수천이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도 학살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