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 3장 영웅의 길(英雄之路), 패웅의 도(覇雄之道) (2)
역병이 휩쓸고 간 사천성은 평화를 되찾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직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히 남아 있었다·
일련의 사태로 인해 사천성은 큰 타격을 입었다· 역병이 돈다는 소문이 돌자 제일 먼저 외부의 상단이 왕래를 뚝 끊었다·
원래 사천성 자체가 중원에서도 고립된 곳이라 자립의 기반은 든든하게 갖춰져 있었다· 특히 기름진 평야에서 나오는 곡식들은 사천성 전체를 먹여 살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외부와의 왕래가 끊기고 상행이 멈췄어도 크게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꼭 밥만 먹고 사는 것은 아니다· 사천성에서 생산되지 않는 생필품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고립감은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지금 사천성의 상황이 그랬다· 먹고사는 데 불편함은 모르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고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천성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많이 침체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 가지 소식이 사천성을 휩쓸었다·
사천무림대회(四川武林大會)· 사천 지역에 기반을 둔 문파들이 모이는 큰 대회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소문의 출처는 바로 북천문이었다· 사람들은 소문의 진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소문이 정말 사실이라면 사천 무림이 출범한 이래 가장 큰 행사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얼마 후 소문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북천문에서 공식적으로 사천무림대회를 치르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북천문이 주최하고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가 후원을 하는 사천무림대회· 대회의 승자에게는 사천무림의 주축인 북천문 당문 아미파 청성파 중 한 곳을 택해 진산절기를 익힐 특전이 주어진다고 했다·
사천성에 기반을 둔 젊은 무인들이 환호를 했다· 뿐만 아니라 사천성 인근 감숙성과 청해성에 있는 이들도 큰 관심을 가졌다·
사천무림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네 문파의 진산절기를 익힌다 함은 바로 그들에게 편입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최근 들어 당문과 청성파 아미파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았어도 사천성에 그들의 영향력은 변함이 없었다· 사천성에서 그들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영광이었다·
특히 그들이 주목한 곳은 바로 북천문이었다·
현재 누가 뭐래도 사천성의 맹주는 북천문이었다· 역병이 돌았을 때도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한 곳도 북천문이었고 가장 큰 위세를 떨치는 곳도 바로 북천문이었다·
무엇보다 북천문의 문주인 진무원의 위명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북검이라는 그의 별호는 강호 무리의 최정상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는 사천성 젊은 무인들의 우상이었다·
사천무림대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돌기 무섭게 수많은 젊은 무인들이 북천문이 있는 면양으로 몰려왔다· 그 덕에 면양엔 다시 활기가 감돌았다·
북천문이 보이는 북명로의 객잔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객잔마다 사람들이 가득 찼고 빈방이 없어 난리였다·
“사천무림대회라니· 사천성에선 백 년 내 가장 큰 행사가 되겠군·”
“누가 아니라는가? 정말 진 문주의 배포가 하늘을 찌르는군· 설마 이와 같은 시기에 사천무림대회를 열다니·”
“앞으로 사천무림의 주축은 북천문이 될 걸세· 내 불알 두 쪽을 걸고 장담하지·”
“누구나 아는 사실에 자네의 불알 두 쪽을 걸 필요는 없다네· 그걸 어디다 쓰겠는가? 흐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사천무림대회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허! 이거 정말 대단하구나· 북천문의 위세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러게요· 이렇게 엄청난 인파가 몰리다니·”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십오륙 세의 소녀가 객잔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자의 등 뒤에는 손때가 묻은 비파가 걸려 있었다·
그들은 바로 염광설 부녀였다·
예전에도 그들은 이곳 면양에 온 적이 있었다· 당시 북천문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북천문의 경계는 철통같아서 그들이 도무지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북천문에서 간자들에 대한 색출 작업에 들어갔다· 그 때문에 면양에 들어왔던 간자들 대부분이 북천문에 잡혀 들어갔다· 만일 염광설 부녀가 재빨리 눈치를 채고 면양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다른 이들처럼 북천문에 잡혀갔을 것이다·
“북천문은 무서운 곳이에요· 만일 아빠가 눈치채고 대비하지 않았으면 우리도 다른 이들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되었을 거예요·”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사천무림대회를 연 것일지 모르지만 방심했다가는 우리도 그들과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달라요·”
염초하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싱그러운 미소에 염광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객잔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염초하의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염초하가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곽 소협·”
“아! 여기 계셨군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소년은 바로 곽문정이었다· 곽문정이 그들이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염광설 부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곽문정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오랜만이네요 곽 소협·”
“두 분 모두 건강해 보이니 좋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곽문정이 두 사람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염초하가 말을 건넸다·
“그런데 곽 소협이 저희를 어쩐 일로 부르신 건가요?”
“사실 두 분에게 부탁이 있어 불렀습니다·”
“부탁?”
“이번에 북천문에서 사천무림대회가 열리는 것은 아시죠?”
“네! 사천성 최고의 화재인데 당연히 알고 있죠·”
“사실은 그 때문에 두 분을 찾았습니다· 이번에 많은 분들이 북천문에 들어올 텐데 흥을 돋울 예인들을 다수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인원이 아무래도 부족한 거 같아서 두 분에게까지 연락을 취했습니다· 혹시라도 시간이 된다면 사천무림대회 당일 북천문에 들어오셔서 연주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염광설과 염초하가 은밀히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 척했다·
“그때 다른 곳에 연주 일정이 잡혀 있는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곽 소협의 부탁이니 그쪽에는 위약금을 물고 취소를 할게요·”
“아! 고맙습니다· 대신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데 사천무림대회 당일까지 이곳에서 기다려야 하나요?”
“아닙니다· 저를 따라 북천문으로 들어가시죠· 미리 분위기를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럴까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안내하겠습니다·”
곽문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두 사람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들은 서둘러서 짐을 챙겨 곽문정의 뒤를 따랐다·
곽문정은 북명로를 가로질러 북천문의 정문으로 향했다· 염광설과 염초하는 마치 이런 곳에 처음 오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곽문정이 북천문의 정문에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안에 들어가면 정해진 거처 외에는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자칫 금지에 들어갔다가는 큰 고초를 치를 수도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시게· 우리 부녀는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맞아요· 곽 소협께서는 하나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염초하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십오륙 세 정도의 소녀라고 보기 힘든 농염한 미소였다· 순간 곽문정의 얼굴이 붉어졌다· 곽문정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염초하는 그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어렵지 않겠어·’
염초하는 곽문정의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와 같은 직종에 속한 자들에게 곽문정처럼 순진한 사람은 최고의 이용 대상이었다·
곽문정은 두 사람을 이번 행사를 위해 새로이 지은 건물로 데려갔다· 커다란 마당을 둘러싼 형태의 건물에는 스무 개의 방이 존재했다· 곽문정은 그중 하나를 염광설 모녀에게 내줬다·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방이 아주 좋네요·”
두개의 침상이 있는 깔끔한 방의 모습에 염초하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객잔보다 훨씬 나았다·
“그럼 다시 부를 때까지 쉬고 계십시오· 저는 이만····”
곽문정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염광설과 염초하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쉽게 북천문에 들어왔구나·”
“이제부터 더 조심해야 해요· 이곳은 호굴이나 마찬가지니까요·”
“흐흐! 들어오기가 힘이 들어서 그렇지 이미 들어온 이상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요 아빠·”
“물론이다· 그런데 검룡표라는 별호를 가진 이가 저렇게 순진하다니· 이거 정말 놀랄 노 자구나· 어떠냐? 너도 저 녀석이 마음에 드는 것 같던데·”
“글쎄요·”
염초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염광설이 히죽 웃었다·
“하여간 잘해보거라· 그래야 우리가 정보를 빼내는 것도 수월해지니까·”
염광설이 곽문정이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염광설 부녀에게 숙소를 내준 곽문정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사천무림대회를 치르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는 왜 하필 이런 시기에 북천문에서 사천무림대회 같은 행사를 열기로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진무원과 하진월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런 큰 행사를 열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손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곽문정은 손님들을 안내하느라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때 정문을 지키는 무인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곽 소협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요?”
“예!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보십시오·”
“알겠습니다·”
곽문정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을 안내했지만 그를 직접 호명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둘러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문에 도착하자 일남일녀가 보였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곽문정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함 대협 소령아·”
곽문정이 한달음에 그들에게 달려갔다· 곽문정을 발견한 소녀가 미소를 지었다·
“오빠!”
환한 미소를 짓는 소녀는 바로 함소령이었다· 그녀가 아비 함지평과 함께 북천문에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일세·”
“함 대협께서 여긴 어떻게?”
“북천문이 사천무림대회를 연다는데 한번은 와봐야 하지 않겠는가?”
함지평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기 온 것 때문에 공동파가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공동파의 제자로 온 것이 아니라네· 개인적인 친분으로 온 거니 그리 신경 쓸 거 없네·”
“알겠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문정이 두 사람을 잡아끌었다· 곽문정을 따라가는 함소령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곽문정이었다· 그동안 곽문정은 더 늠름해져 있었다· 이젠 제법 사내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거기에 검룡표라는 별호로 당당히 후기지수 중 최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함소령이 붉어진 얼굴로 곽문정을 훔쳐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사실 함지평 부녀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함소령 때문이었다·
함소령은 곽문정을 다시 보길 소원했다· 소원을 이룬 그녀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감정은 곽문정도 마찬가지였다· 함소령을 만난 순간부터 그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곽문정은 두 사람을 데리고 빈객청으로 향했다· 길을 가는 내내 곽문정과 함소령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함지평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문정이라면 소령이를 평생 아껴줄 것이다·’
이미 그는 곽문정을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작금 천하는 혼돈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밀야와 운중천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연일 죽어나가고 있었고 많은 문파들이 멸문을 했다·
공동파도 구대문파에 속할 만큼 대문파이지만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기에 늦기 전에 함소령에게 안전한 의지처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문정이 이대로만 성장해 준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보호자가 될 것이다·’
그때였다·
“곽 소협·”
갑자기 들려온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함지평의 상념을 깨웠다·
“염 소저·”
곽문정을 부른 소녀는 바로 염초하였다·
“염 소저· 왜 숙소에 있지 않고?”
“그냥 답답해서 나와봤어요· 허락받고 나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염초하가 곽문정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때 함소령이 슬쩍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곽문정을 가렸다· 그런 그녀의 눈엔 경계의 빛이 가득했다·
‘이 계집은 뭐지?’
‘뭐야? 여자가 있었어?’
함소령과 염초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녀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