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 1장 피의 강으로도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다 (3)
댕댕댕!
웅혼한 종소리가 보광사에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진무원의 몸이 태풍을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종소리에 실려 있는 웅혼한 내공이 진무원의 심맥에 타격을 주는 것이다·
백팔 명의 나한이 펼쳐는 절진· 그래서 백팔나한진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팔나한진의 실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일단 백팔나한진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소림사의 백팔나한들뿐이었고 그들은 모조리 나한전(羅漢殿)에 소속되어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아갔다·
백팔나한이 세상에 나오는 경우는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강호 공적이나 대마두가 출현했을 때뿐이다· 이제까지 그 어떤 대마두도 백팔나한진을 상대하고 무사한 경우가 없었다· 상대해 본 자들 중에 생존한 자가 없다 보니 백팔나한진의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백팔나한의 구성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일단 선장과 계도를 사용하는 승려들이 각각 서른 명씩이고 권장을 사용하는 승려들이 다시 서른 명이 있다·
음공을 펼치는 승려가 네 명이고 나머지 열네 명은 진법을 주재하는 주체가 된다· 당연히 무공 또한 백팔나한들 중에서도 발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소림의 칠십이종절예 중에서 상위의 절기를 대성한 기재들이었다·
백네 명의 무인이 진무원의 주위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휘돌며 시선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난잡한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현묘한 이치가 담겨 있었다·
백팔나한진에 제마멸사(制魔滅邪)의 기운이 어렸다· 만일 마공을 익힌 자들이었다면 큰 타격을 받았겠지만 진무원에겐 그 어떤 영향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진무원의 심기를 가장 크게 거슬리는 것은 바로 동종을 이용한 음공이었다· 거대한 동종은 음공의 위력을 몇 배나 더 크게 증폭시켰다·
진무원은 금단엽을 떠올렸다· 그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음공의 소유자· 지금 나한들이 펼치는 음공은 금단엽의 음공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미타불!”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않겠다는 듯이 불호를 연신 외웠다· 그 또한 음공이 되어 진무원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정신이 자연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집중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진무원은 만영결을 운용해 음파에서 심맥을 보호했다·
후웅!
그 순간 십여 개의 선장과 계도가 그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진무원은 계류보를 이용해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들을 벗어나자마자 다른 공격이 진무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챠핫!”
“아미타불!”
칠십이종절예 중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지닌 천충중권(天衝重拳)과 금규지(禽叫指)가 진무원의 몸을 짓이길 듯 날아왔다· 진무원이 피할 방위까지 계산한 공격이었다·
휘류류!
진무원이 검결지를 펼쳐 그들의 절초를 모조리 상쇄시켰다· 진무원은 내친김에 그들에게 직접 타격을 가하기 위해 멸천마영검을 펼쳤다·
유성혼이 허공을 갈랐다· 목표가 된 승려가 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반야수(般若手)를 펼쳤다· 반야수 또한 칠십이종절예 중 당당히 상위에 위치한 극상승의 절기였다· 하지만 진무원의 멸천마영검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다·
쩌어엉!
“크흑!”
승려의 손바닥이 길게 갈라지며 피를 흩뿌렸다· 하지만 그 이상의 피해는 입지 않았다· 양쪽에 있던 승려들이 선장과 계도를 뻗어 진무원의 공격을 대신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진무원이 내심 감탄사를 터뜨렸다·
‘연계와 협응력이 뛰어나구나·’
백네 명이나 되는 승려가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무공은 진무원에 비할 수 없지만 대신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심령감응(心靈感應) 수준으로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대응했다·
백팔나한진 자체가 거대한 벽이었다· 인간으로 이뤄진 절망의 벽·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그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벽 앞에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달랐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절진· 절망하기보다는 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상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손을 뻗었다· 그러자 폐허 속에 꽂혀 있던 단봉 하나가 그의 손으로 쑥 빨려 들어왔다· 무게와 길이는 상관없었다· 진무원은 마치 오래전부터 다뤄온 무기처럼 단봉을 휘둘렀다·
따다다당!
단봉과 선장 계도가 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승려들의 몸이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승려들이 도움을 줘서 그들은 다시 견고한 벽을 구축했다· 아무리 공격하고 타격을 주어도 그들이 만들어낸 벽은 흔들릴 줄 몰랐다·
댕댕!
순간순간 파고드는 거대한 종소리·
뒤를 이어 선장과 계도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단봉으로 그들의 공격을 쳐 냈다 싶은 순간 다시 칠십이종절예가 진무원을 향해 펼쳐졌다·
백팔나한진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했다· 그들의 파상공세에 진무원은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목표가 된 승려가 유성혼을 막아냈다· 혼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순간 진무원은 보았다· 승려의 주위에 있던 대여섯 명의 동료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음을·
그제야 진무원은 깨달았다·
‘이들은 격체전공(隔體傳功)의 수를 사용하고 있구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내공 역시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응용해 만든 수법이 바로 격체전공이었다·
격체전공은 내공이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자신의 내공을 빌려주는 수법이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에게 내공을 빌려주는 것도 가능했다·
진무원에게 공격을 당하는 대상자에게 근처에 있던 나한들이 공력을 주입해 주었다· 워낙 순식간에 이뤄지는 일이라 진무원조차도 주의를 집중하지 못했다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이들이 격체전공의 수법을 사용한다면 한 사람이 백팔 명의 내공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했다·
한 사람에게 내공을 전이할 수 있는 무인의 수는 기껏해야 대여섯 명 그리고 열 명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항상 대여섯 명 정도의 승려들이 내공을 보태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무원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복면을 쓴 승려 한 명이 대웅전 지붕 위에서 진무원과 백팔나한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백팔나한진을 펼치기 전에 선두에 나와 있던 복면인이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미타불! 그가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결코 백팔나한진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복면인의 목소리에는 고뇌의 빛이 가득했다·
그는 백팔나한이 아니었다· 단지 백팔나한을 이끌고 이곳에 왔을 뿐이다· 그가 바로 진무원의 얼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진무원을 질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믿기지 않는 행보에 존경의 염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백팔나한과 진무원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그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의 입에서 연신 불호가 흘러나왔다·
소림사에 있었을 때는 모든 것이 명확했는데 세상에 나온 후 모든 것이 혼탁해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정(正)이고 무엇이 마(魔)인지 모르겠구나· 이젠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조차 할 수 없으니·”
그가 고개를 내저을 때였다·
쾅!
굉음과 함께 이제까지 견고하게 진무원을 압박하던 백팔나한진이 크게 요동쳤다· 갑작스런 변화에 복면인의 눈동자가 크게 치떠졌다·
“이 이럴 수가!”
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크헉!”
“컥!”
백팔나한진의 주축을 이루던 승려 두 명이 뒤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안색은 흙빛에 가까웠다· 그만큼 엄청난 충격을 입은 것이다·
진무원의 공격은 그들이 미처 격체전공을 펼치기도 전에 일어났다· 마치 눈앞에서 섬전이 터진 것 같았다·
‘더 빠르게! 저들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진무원의 검이 섬전이 되었다·
격체전공을 해주려면 목표가 된 상대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곁에 있던 다른 이들이 내공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무원은 속도를 높였다· 그들이 미처 격체전공을 해줄 수 없을 정도로· 그 결과 백팔나한진에 미세한 파탄이 일어났다· 백팔나한은 허둥거렸고 진무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슈우우!
그의 단봉이 번쩍였다· 유성처럼 떨어지는 단봉에 강타당한 승려가 더 이상 선장을 붙잡지 못하고 놓쳐 버렸다·
견고하던 벽에 금이 간 순간 진무원이 몸을 날렸다·
“아 안 돼!”
진무원이 날아가는 방향을 알아차린 승려들의 입에서 당혹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진무원이 향한 곳은 바로 거대한 동종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동종을 이용해 음공을 펼치던 승려들이 진무원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며 사각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눈앞에 거대한 동종이 나타났다·
부채처럼 활짝 펼쳐지는 진무원의 손바닥·
쩌어엉!
진무원의 손바닥이 동종을 강타했다· 순간 폭풍 같은 음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윽!”
이제껏 음공을 펼치던 승려들이 내상을 입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진무원은 동종을 매달고 있던 쇠사슬을 끊어버린 후 발로 동종을 걷어찼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연계 동작이었다·
강력한 힘이 실린 그의 발길질 한 방에 거대한 동종이 허공을 날아갔다·
쿠쿠쿠!
거대한 동종이 향한 곳은 백팔나한이 진법을 펼치는 곳이었다·
“피해랏!”
거대한 동종의 습격에 백팔나한들이 분분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 안 돼!”
그 광경을 지켜보던 복면인이 경호성을 터뜨렸다·
쾅!
굉음과 함께 동종이 바닥에 처박히고 백팔나한진은 붕괴되었다· 백팔나한들이 다시 진을 펼치려고 했지만 그보다 진무원의 반응이 빨랐다·
진무원이 무서운 속도로 백팔나한들 사이를 헤집었다· 그가 쇄병지를 펼치는 순간 선장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멸천마영검이 그들의 육신에 상처를 냈다·
불패의 전설을 자랑하던 백팔나한진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진무원은 이미 백팔나한진의 허실을 파악한 듯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단봉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의 승려가 비명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스무 명이 쓰러졌을 때 절진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금강나한(金剛羅漢)들은 앞으로 나서라·”
그러자 진의 주축을 이루던 열네 명의 승려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바로 금강나한이었다·
금강나한은 나한기공(羅漢氣功)을 극성으로 익혔다· 외공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나한기공은 대성을 하면 철골보다 단단한 육신을 얻게 된다· 전설적인 경지인 금강불괴지체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그래도 인간의 육체가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를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아미타불!”
“멈추시오·”
금강나한들이 저마다 외침을 토해내며 나한기공을 격체전공을 펼쳤다· 열한 명의 내공이 선두에 선 세 명의 금강나한에게 집중됐다·
천지인 세 방위를 점유한 세 명의 금강나한이 진무원을 향해 일제히 집중된 내공을 토해냈다· 열네 명의 내공이 집약된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었다·
콰우우!
무시무시한 기파가 태풍처럼 진무원을 향해 몰아쳤다· 가공할 압력에 진무원이 들고 있던 단봉이 ‘쩌적’ 소리를 내며 실금이 갔다· 그러나 진무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파의 중심을 향해 몸을 날렸다·
“미친!”
복면인이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복면을 벗어 던졌다·
그의 눈에 비친 진무원은 자살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무모하게 금강나한들을 향해 달려들 수가 없었다·
열네 명의 금강나한이 격체전공으로 내력을 집약해 펼치는 대력금강장이다· 일개인의 내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열네 명의 내공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설령 북검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무인일지라도 말이다·
복면인의 눈에는 진무원이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으로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눈을 찢어져라 크게 치뜰 수밖에 없었다·
진무원이 손을 뻗고 있었다· 분명 평범한 단봉이었다· 하지만 복면인의 눈에는 신검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무원이 펼친 일식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집어삼켰다·
무영계(無影界)·
멸천마영검 마지막 초식이 펼쳐진 것이다·
순간 금강나한이 사라졌다· 복면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
쿠우우!
뒤늦게 후폭풍이 불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