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 6장 깊은 호수는 용을 불어들이기도 한다 (3)
진무원과 등유명의 대치에 하진월은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몸에서는 그 어떤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진월은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조그만 머릿속에 수많은 지식을 담고 있는 하진월이었다·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하는 하진월이었지만 지금 진무원과 등유명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만큼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들은 힘을 겨루고 있었다· 무공이나 내공이 아닌 마음의 힘을·
심력(心力)의 싸움· 누가 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천외천의 싸움이었다·
패하는 자에게 육체적인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심령에 타격을 입은 자 상처를 입힌 자에게 두 번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위험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진월은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나와는 다른 영역에 사는 사람들·’
문득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북천문의 무인들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대로 소리친다면 북천문의 정예들이 달려올 것이다· 은한설과 같은 절대고수들이 합세한다면 등유명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진월은 그러지 않았다· 진무원과 등유명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때문이었다· 어쩐 일인지 진무원의 기색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등유명의 눈에 문득 이채가 떠올랐다· 진무원의 눈 속에 숨어 있는 한 줄기 빛의 편린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갑자기 등유명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의 거친 웃음에 후원의 공기가 어지러이 요동쳤다· 하진월도 고막에 충격을 받고 몸을 비틀거렸다·
등유명이 허공으로 몸을 쭉 뽑아냈다· 진무원도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하진월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두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군사 괜찮습니까?”
등유명의 광소에 놀란 북천문의 무인들이 후원으로 달려왔다· 경무생 능군휘 은한설 등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웃음 속에 담긴 내공은 그들도 처음 느껴보는 막강한 것이었다·
경무생이 멍하니 서 있는 하진월의 어깨를 흔들었다·
“군사!”
“저는 괜찮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 웃음소리는 대체 누가 터뜨린 겁니까?”
“밀야의 야주가 왔습니다·”
“무슨?”
경무생 등이 눈을 부릅떴다·
은한설이 재빨리 물었다·
“그는 지금 어디 있나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주님이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무원이?”
은한설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녀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가 이내 어느 한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진무원과 등유명은 면양 외곽의 야산에서 대치를 하고 있었다·
등유명의 몸이 들썩이고 있었다· 단순히 심력 싸움만 하고 가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진무원의 눈 속에서 무언가를 엿보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기에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것이 그가 굳이 자리를 옮긴 이유였다·
갑자기 등유명이 진무원을 향해 포권을 했다·
“나의 이름은 등유명일세· 밀야의 주인이자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자네와 겨뤄보고 싶네· 허락하겠는가?”
“북천문의 문주인 진무원입니다·”
진무원도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등유명의 대결을 받아들인 것이다·
등유명이 주먹을 들어 진무원을 겨눴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 막강한 패기가 흘러나왔다·
무극열화권(無極熱火拳)·
밀야의 야주에게 전해지는 비전의 권공이었다·
대성을 하면 일권으로 태산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전설이 담긴 권공이었다· 정말 태산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진무원이 두 손가락을 모았다· 검결지였다· 그에 등유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먼저 가지·”
등유명이 대지를 박찼다· 강렬한 진각과 함께 그의 몸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진무원을 향해 쇄도해 왔다·
슈우우!
마치 팽이가 돌듯 그의 몸이 짧고 강렬한 회전을 했다· 엄청난 기운이 잔뜩 응축되었다가 주먹을 타고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전사력(轉絲力)이 담긴 일권이었다·
진무원이 그에 맞서 멸천마영검의 제이식인 북천벽을 펼쳐 냈다·
쩌어엉!
주먹과 검결지가 부딪쳤는데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경천동지할 대결의 시작이었다·
등유명은 무극열화권의 절초를 연이어 펼쳐 냈다· 진무원 역시 그에 대응해 멸천마영검의 절초를 풀어냈다·
주먹과 검결지가 격돌했다·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기파가 일어나 주위를 휩쓸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지고 집채만 한 바위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들이 발산하는 기파에 이름 모를 야산이 초토화되었다· 인간이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자들의 싸움에 짐승들은 도망을 가고 새들은 푸드덕거리며 하늘을 날아올랐다·
콰르릉!
그들의 싸움에 반응해 대기가 뇌성을 터뜨렸다·
진무원과 등유명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등유명의 무극열화권은 무서웠다· 전사력을 담고 있는 일권을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벗겨져 나가고 근육이 짓이겨졌다·
무극열화권에는 파멸의 힘이 담겨 있었다·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파멸의 권이 바로 무극열화권이었다·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무극열화권은 무서운 기세로 진무원을 위협했다· 하지만 진무원 역시 마냥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멸천마영검의 여섯 초식을 자유자재로 결합해서 펼쳤다· 그에게는 이제 초식의 구별이란 의미가 없었다· 그가 펼치는 평범한 검초가 바로 절초가 되었다·
상황에 맞는 적재적소의 검초는 무극열화권의 가공할 권초를 분쇄했다·
“헛!”
가슴을 파고드는 검초에 등유명이 놀라 탄성을 터뜨렸다·
위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강렬한 힘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극열화권의 허점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것이 그 어떤 절초보다 위력적이었다·
그제야 등유명은 자신의 짐작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챠핫!”
기합성과 함께 그의 몸 주위에 푸른색 기운이 일어나 둥근 막을 만들어냈다· 반탄강기였다·
서걱!
순간 진무원의 검결지에 반탄강기가 잘려 나갔다·
등유명의 옷자락이 길게 잘려져 나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검이 반탄강기를 두 동강 낸 것이다·
잘려진 옷자락 사이로 한 줄기 혈흔이 보였다· 진무원은 그것이 단순히 피륙의 상처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검이 등유명의 몸에 거의 닿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그의 몸이 단단한 것도 있었다·
진무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인가?’
진무원이 익힌 심검만큼이나 오르기 힘든 경지가 바로 금강불괴지체였다·
단순히 육체가 불괴(不壞)의 단계에 올랐다고 해서 금강불괴지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연혼단신(鍊魂鍛神)·
즉 혼을 단련하고 정신을 끝없이 연마해야만 진정한 금강불괴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금강불괴의 경지에 오른 자는 그야말로 육체와 정신이 완벽한 무인임을 의미했다·
강호사를 통틀어봐도 금강불괴의 경지에 오른 무인은 거의 없었다· 잘해봐야 한두 명 정도· 그리고 그들은 모두 시대를 지배했고 고금에 회자됐다·
등유명은 시대를 지배할 자격을 가진 무인이었다· 전력을 다하기 전에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한편 등유명도 나름 놀라고 있었다·
“심검을 이뤘는가?”
“그렇습니다·”
“역시 그렇군·”
등유명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는 진무원의 눈에 담긴 한 자루의 검을 보았다· 마음속에 검을 담으면 눈에도 검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확인했다·
진무원은 직접 검을 들지 않았지만 검을 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검을 이룬 자라면 변수가 되기 충분할 터·’
등유명의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등유명이 말을 이었다·
“대단하군· 북천문은 호랑이를 키워냈어· 아니 호랑이가 북천문을 만든 것인가? 어쨌거나 상관없겠지· 인정하겠다· 북천문의 진무원이 이 등유명과 대등한 곳에 서 있을 자격을 가진 자임을·”
“····”
“함부로 북천문에 들어온 것도 사과하지·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예의를 차려 오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네 예의를 차려 전력을 다해 무너뜨릴 생각이니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세상은 참 재밌어· 단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드니까·”
“아주 지랄맞죠·”
“맞네! 지랄 같네· 하지만 그래서 헤쳐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지·”
등유명이 히죽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문휘가 최고인 줄 알았더니 이 녀석에게는 안되겠구나·’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기재는 궁문휘였다· 자신이 직접 가르쳤기에 그의 오성과 재능이 얼마나 가공한지 알고 있었다· 하늘을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 천재가 바로 궁문휘였다·
스승으로 하여금 가르치는 재미를 알게 해준 천재 중의 천재· 하지만 그런 궁문휘라 할지라도 진무원에겐 많이 모자라 보였다·
진무원은 스스로 오롯한 길을 개척해 심검의 경지에 오른 자· 정해진 길을 걸어 지금의 경지에 오른 궁문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된다면 궁문휘가 익힌 무공이 상성상 의외의 결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진무원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신이 체감하지 못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진무원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녀석은 진짜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 자신의 힘을 믿고 세파를 헤쳐 나가는 힘을 지닌 진짜배기·’
그래서 즐거웠다· 이곳에 몰래 들어온 진실된 목적을 홀라당 잊어버릴 만큼·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생애 몇 번이나 있었던가? 없었다·
그때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낯익은 기운에 등유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은혼기가 느껴지는군· 한설이 오는 모양일세· 아무래도 이만 가봐야겠어·”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게· 다음에 볼 때는 조금 더 좋은 분위기였으면 좋겠군·”
“저도 그렇습니다·”
“그럼····”
등유명이 허공으로 몸을 뽑아내 은한설이 다가오는 방향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가 모습을 감춘 직후 은한설이 진무원의 곁에 떨어져 내렸다·
“무원!”
“나는 괜찮아·”
진무원의 대답에도 은한설은 그의 전신을 꼼꼼히 살폈다· 상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초토화가 된 야산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야주는?”
“그는 갔어·”
“그냥 갔단 말이야?”
“그래!”
진무원의 대답에 은한설이 야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아무리 털어버리려 해도 과거의 인연을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밀야와 자신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