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 6장 깊은 호수는 용을 불어들이기도 한다 (1)
북명로(北明路)·
북천문과 면양의 북부를 잇는 대로의 이름이었다· 원래는 허허벌판에 불과했지만 북천문이 개파를 하면서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서며 불과 서너 달 사이에 면양 최고의 번화가로 거듭났다·
“어서 옵셔·”
“질 좋은 비단이 있습니다·”
북명로에서는 수많은 상인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이가 북명로를 오가고 있었다· 북명로에는 단순히 상점이나 객잔만 있는 게 아니었다· 뒷골목 쪽으로 들어가면 홍루와 청루 같은 기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북천문이 사람을 끌어모으고 사람들이 돈을 끌어모은다· 돈은 여자를 끌어들이고 여자들은 다시 사내들을 끌어들이는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북명로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건 도대체····”
“북천문의 위세가 실로 엄청나군요·”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의 남자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청아한 외모의 여인이었다· 그들의 곁에는 이제 겨우 십여 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그들은 북명로 한쪽에 있는 객잔의 이층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이층의 자리는 모두 꽉 차 최근 북명로에 얼마나 많은 이가 모여드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남자의 이름은 금진평 사천성 북쪽에 있는 금천(金川) 지역에 있는 금가장(金家莊)의 장주였다· 여자는 그의 딸인 금수경이고 아직 어린 소년은 아들인 금우영이었다·
금가장은 오래전 금천 지역에 자리를 잡은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고 무공도 대단하지 않아 사천성 내에서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가 견고히 자리를 잡은 사천성에서 다른 문파가 크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금가장이 그나마 탄탄한 재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기에 이제까지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가문의 역사가 끝났을지도 몰랐다·
금진평이 자식들을 데리고 면양에 온 것은 순전히 북천문 때문이었다· 사천성에서는 그 어떤 문파보다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북천문이었다· 그들이 면양에 자리를 잡은 이상 사천성도 혼돈의 회오리에 휩쓸릴 것이 분명했다·
금진평은 금가장을 책임지는 가주로서 북천문의 실체를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워낙 사안이 중대하다 보니 아들과 딸까지 동행했다·
‘북천문의 선택에 따라 사천성의 운명 또한 갈릴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북천문을 지켜봤다· 수많은 이가 북천문을 드나들었다· 개중에는 당문의 무인이나 청성파 아미파의 무인들도 다수 있었다· 그 말은 곧 북천문이 사천성을 지배하는 세 문파와 암중에서 교감이 있음을 의미했다·
금가장이 워낙 오지에 있었기에 금진평은 그동안 세 문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당연히 북천문과의 관계도 알지 못했다·
당문 등은 금가장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 문파였다· 천하에 미치는 영향 또한 엄청났다· 그런 거대 문파들이 북천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북천문이 당문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운중천 역시 그들을 함부로 어쩌진 못할 것이다·’
가뜩이나 천험의 요새라는 소리를 듣는 사천성이었다· 오죽 했으면 그 옛날 유비와 제갈공명이 이곳에 촉나라를 세우고 수성에 들어갔을까?
제아무리 운중천이라 할지라도 그런 천험의 요새나 마찬가지인 사천성을 도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문 등이 북천문의 편을 든다면 그야말로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요새를 구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정했다·”
갑작스러운 금진평의 말에 금수경과 금우영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얼 말인가요?”
“북천문과 손을 잡을 것이다·”
“예?”
금수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나 뜻밖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성급하신 결정이 아닌가요?”
“아직 완전히 결정한 것은 아니다만 당문과 청성 아미의 지지를 얻고 있는 북천문이다· 사천성의 맹주와 다름없는 그들을 외면하고는 금가장에 미래가 없을 것이다·
“으음!”
금수경이 침음성을 흘렸다· 아비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이가 우리만은 아닐 것이다· 사천성에 있는 소문파나 무관들이 모두 이곳에 사람을 보내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음!”
“기왕 손을 잡을 거면 그들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이 낫다· 괜히 이것저것 재다가 뒤늦게 합류하면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할 테니까·”
무엇이든 초기가 중요했다· 많은 것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체계가 잡히지 않을 때에 합류해야 존중도 받는 법이다· 체계가 잡힌 후에 합류해 봐야 후발 주자에 지나지 않기에 얻을 수 있는 것도 극히 적은 법이다·
무엇보다 금가장은 북천문과 같은 사천성 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운중천이 무섭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서 이역만리 먼 곳에 있었다· 반면 북천문과는 지척이었다· 북천문이 금가장의 명줄을 잡고 있는 셈이었다· 먼 곳에 있는 운중천보다 가까이 있는 북천문의 눈치를 봐야 할 형편이었다·
“가자!”
“예! 아버님·”
금수경이 뒤를 따르고 마지막으로 금우영이 일어났다·
문득 금진평이 뒤를 돌아봤다· 금수경은 예쁘고 금우영은 자질이 뛰어난 편이었다·
‘진 문주가 아직 이십 대 중반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금수경도 아직 미혼이었다· 예쁜 데다가 제법 똑똑했다· 그녀라면 진무원의 배필이 될 자격이 충분할 것 같았다·
진무원을 사위로 맞아들일 수 있다면 금가장은 사천성의 명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금진평의 뇌리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다· 그는 미래를 잡기 위해 북천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꽤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면양에 와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금진평보다 더 빨리 북천문과 접촉을 하고 있었다·
“흐응! 난리구나 난리야·”
객잔 밖으로 나가는 금진평의 뒷모습을 보며 삼십 대 초반의 장한이 코웃음을 쳤다·
평범한 체구에 평범한 얼굴의 장한이었다· 길거리를 나가면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아무런 특색이 없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보통 사람들과 구별이 될 만큼 깊고 유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처럼 그의 눈빛 역시 깊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면양은 뜨거운 용광로 같았다· 수많은 이의 욕망과 야망이 결집되어 어마어마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무공을 익힌 이였다·
어떤 적이든 북천문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북명로를 통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들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 자신도 모르게 북천문의 방벽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진무원···아니 북천문의 군사라는 하진월의 작품이겠지? 재밌는 놈이군· 가경의가 최고인 줄 알았더니 그에 못지않은 자가 이런 벽촌에 숨어 있었다니·”
장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왔건만 꽤나 재밌는 구경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냥 지나쳤다면 꽤나 후회했을 만한 풍경이었다·
“어디 가볼까·”
마침내 해가 지고 어둠이 사위를 잠식해 나갈 때쯤 장한이 셈을 치르고 일어섰다·
하진월은 북천문 내를 거닐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계획이 담겨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북천문을 위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가끔 이렇게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이렇게 후원을 산책하며 머리를 식혔다·
이곳은 그가 특별히 설계한 곳이었다· 야트막한 가산과 넓은 연못엔 온갖 기화요초와 나무들이 아름답게 심어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진법의 묘리에 의해 설계되어 유사시 순식간에 죽음의 함정으로 돌변한다·
하진월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제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북천문을 다시 세우고 사람들을 모으고 체계를 만들고· 보통 사람이라면 족히 백 년을 걸릴 일을 십 년 만에 해냈다·
그만큼 엄청난 심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엄청난 혹사를 했다· 하지만 그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오갈 것이다· 무인은 눈앞의 적을 상대하면 되지만 자신은 운중천과 밀야 전체를 적으로 상정하고 계략을 써야 했다·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이 그의 결정에 달렸으니 부담감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듯 대범하게만 보이는 하진월이었다· 하지만 그가 짊어진 짐과 삶의 무게는 결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대범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렇게 홀로 있을 때는 고뇌 어린 표정이 무방비로 드러나곤 했다· 지금 이 순간만이 그가 유일하게 긴장을 푸는 순간이었다·
문득 하진월이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였다· 이름 모를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수많은 기화요초 속에서 몸을 떨고 있는 자그만 꽃의 모습이 하진월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이름 모를 꽃은 소박했다· 눈에 띄는 화려함도 없었고 진한 향기도 없었다· 그런 꽃의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하진월은 생각했다·
하진월은 하염없이 꽃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바스락!
갑작스러운 인기척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누가?’
하진월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일어났다·
이곳은 오직 그만을 위한 거처였다· 후원을 관리하는 자 이외에는 누구도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다· 북천문의 문주인 진무원조차 하진월을 배려해 이곳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진월이 뒤를 돌아보자 생전 처음 보는 장한이 정원석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집 안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해 보이는 장한의 모습에 하진월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장한은 무척이나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보는 순간 하진월은 정신이 다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신에 소름이 다 올라오고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입안이 바싹 마르면서 머릿속에 혼미해지는 것이 ‘아차’ 했다가는 정신줄을 놓을 것 같았다·
으득!
하진월이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극심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하진월의 모습에 장한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이군·”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진월이 몸을 휘청거렸다· 고막이 울리고 이명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정신을 차렸다·
“다 당신은 누굽니까?”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말장난을 좋아하는 분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흠! 자네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을 걸세·”
장한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의 모습에서 하진월은 장한의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무엇을 노리고 시험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곳은 북천문의 중지였다· 당연히 경계도 그 어느 곳보다 삼엄했고 수많은 무인이 지키고 있었다· 장한은 그런 북천문의 중지를 자신의 집 앞마당처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들어왔다·
아마 지금 밖에 있는 무인들은 이곳에 장한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 말은 곧 장한이 마음만 먹으면 하진월의 목숨을 쉽게 앗아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어떤 초절정 무인이라도 북천문을 이렇게 쉽게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절대지경에 이른 고수들뿐인데·’
우선 세상에 알려진 절대지경의 고수는 오무존과 진무원 그리고 담수천 등이었다· 눈앞의 장한은 그들과 어떤 특징도 일치하지 않았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절대의 고수들도 존재할 것이다· 은둔 지향의 성정을 지닌 무인들도 적잖으니까· 하지만 아무런 은원도 없는 그들이 이렇게 번거롭게 하진월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곳은 단 하나·’
하진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이었다· 자신의 추측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 않을 만큼·
그런 하진월의 모습을 보며 장한이 히죽 웃었다·
“생각해 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럼 무얼 망설이는가? 대답하지 않고·”
“그건····”
“듣고 싶군·”
장한이 하진월을 재촉했다·
“당신은··· 밀야의 야주인 것 같군요·”
하진월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충격적인 말에 장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냥 감입니다·”
“감이라····”
장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러자 그의 분위기가 변했다· 아니 인간 자체가 변했다· 분명 겉모습은 똑같은데 그 한 명 때문에 주위의 공간이 이지러져 보였다·
하진월은 인간이 분명할진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아찔한 이질감에 압도당했다· 단지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왔다· 하진월은 단 한 번도 이런 존재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이 불타는 듯 세상 전체가 붉게 보였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툭툭 불거져 나왔다·
“크윽!”
하진월의 입가를 비집고 선혈이 흘러나왔다· 단지 상대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제야 장한이 발산하던 기세를 거둬들였다·
“내가 밀야의 야주일세·”
그의 오연한 음성이 후원에 울려 퍼졌다·